동시대반시대

희망버스 좌담회: 상상해봐, 희망버스 어디로갈지(2)

- 은유

안건3: 운동의 연대, 연대의 운동

웃음은 웃음을 부른다. 고용불안이라는 심각한 주제는 유머에 실려 널리 퍼졌다. 노동운동의 주체는 조합원이 아니라 시민으로 확대됐다. 집회는 삶의 조건을 사유하는 장소이자 삶의 여백을 즐기는 시간으로 채워지고 있다. 비장함이 아닌 발랄함의 운동이 대세다. 트로트풍의 운동가요보다는 펑크와 테크노가 어떠할까. 토론자들은 문화의 힘을 통한 새로운 감성의 수혈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구태의연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노동운동은 이제 끝났다’는 일침도 나왔다. 해고노동자는 총파업은 결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일갈한다. 맑스도 말했다. “혁명이란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따라잡는 것이다.”

이창근 – 지금까지 노동운동은 문화운동에 대해 천박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문화공연은 여는 말 정도로 소모했다. 어떤 틀이 있었다. 쌍용차문제로 매주 화요일마다 보신각문화제를 했다. 나부터도 집회할 생각 전혀 없었다. 쌍차문제가 안 알려진 건 아니다. 다만 어떻게 사람들이 우리와 접촉할 수 있느냐, 우리 얘기를 어떻게 편하게 들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경찰과 티격태격 하면 사람들이 안 온다. 거기에 가면 노래라도 들을 수 있고 그래야 한다. 기륭, 용산, 두리반을 봐도 문화의 힘이 굉장히 크다.

근데 이 양반들(문화예술활동가)이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일을 거의 안 한다. 매우 자유롭다. 상상력은 그런 측면에서 나오는데 노동운동하는 사람은 경직됐다. 하루에 8시간씩 일하고 잔업하면 10시간씩 볼트 쪼아야한다. 그게 안 되는 거다. 파업 끝나고 6개월 감옥 살고 깨달은 건 우리가 문화랑 만나야한다, 그렇게 붙어야지 힘이 생기겠다는 점이다.

시위음악, 뽕짝에서 펑크로 바꾸자

이진경 – 두리반 경험은 중요한 걸 가르쳐줬다. 철거민 투쟁은 장기전이다. 지치는 싸움을 하는데 두리반은 참고 견디는 ‘낙타의 시간’이 아니라 공연을 보는 놀이의 장소로 만들었다. 두리반이 타결됐다고 했을 때, 이 밴드들 이제 어디서 공연하느냐고 물었다.(웃음) 무명밴드가 데뷔하고 연주하는 두리반에 가는 건 의무가 아니었다. 장기투쟁으로 지치기는커녕 두리반이 국제적으로 명소가 됐다.

서울 만민공동회 기본적인 정서가 뽕짝이다. 투쟁가가 나이든 사람은 그 정서가 맞는데 젊은 사람들 못 견딘다. 일본에서 1년 정도 머물렀는데 시위대가 디제잉 하면서 테크노 음악 틀고 간다. 독일 있을 때도 시위 그렇게 하는 거 봤다. 테크노, 펑크가 그렇게 될 수 있다. 펑크가아나키스트 음악이다. 흥분시키고 감정을 상승시킨다. 그러면서도 유머러스한 힘이 있다. 다른 종류의 음악으로 싸울 수 있는 방법을 문화운동 하는 분들이 적극 고민해야 한다. 새로운 정서를 결합하지 않으면 운동은 노인들의 것이 된다.

신유아 – 만민공동회 전야제에 밴드를 배치했다. 문화연대가 그런 운동들을 지금까지 시도했는데 좋아 보이는지 민주노총에서 모방하더라. 근데 민주노총이나 금속에 가면 어르신 발언 주르륵 순서 정해놓고 중간에 펑크밴드 넣어놓으니까 진짜 웃기다. 잘못된 결합이다. 판을 전체적으로 바꿔야한다. 재밌는 운동 번져나가려면 조약골 같은 친구가 많아야한다. 락밴드도 현장에 왔다가 경찰이 깔려 있으면 무서워서 돌아간다. 충분한 소통과 공유는 단기간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조합운동가는 판을 바꾸려는 의지가 있어야하고, 락음악은 저항정신을 포함하지만 뮤지션이 자기만의 저항이 아니라 사회적 현안이랑 연결해야 한다.

박정수 – 희망버스로 인해 노조운동 하는 분들 감성이나 감각의 변화가 있었는가.

이창근 – 조심스럽지만 없다.(좌중 웃음) 노조운동 하는 분들, 직책 있는 분들 희망버스가 불편하다. 끌고 가야하는데 끌려가니까. 당이나 조직에서 권력과 뭘 쥐고 있는 사람들은 다 불편하다. 희망버스 태생이 갖는 문제다. 최근 금속노조 선거했다. 금속노조 장기투쟁 사업장이 몇 달을 치고 박고 싸우는데 누가 나왔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시민이 금속노조고 금속노조가 시민이라는 슬로건 걸고나오면 좋겠다. 총파업 선언하면 총파업이 되는가? 안 된다. 이번에 단독 후보였다. 빨리 희망버스 끝나길 바라고 있지 있겠나 싶다. 현대차 출신이 아니면 후보에 못 나온다. 금속노조 내 공고한 카스트 제도다. 비정규는 후보를 못 세운다. 해결해야할 과제가 많다.

반성과 성찰이 없다. 이런 게 조직을 좀먹는다. 희망버스의 건강한 기운이 조직으로 들어가야 한다. 맹아는 있다. 발레오공조코리아도 타결이 임박했다. 내외부가 교류가 있어야 한다. 돌파구를 못 찾을 뿐이지 꽤 있다. 80%이상이 건강하다. 현재는 논쟁다운 논쟁을 안 하고 있다. 껍질 벗고 이념적으로 큰 차이 없으면 같이 해야 한다. 어떤 세력 배제하자가 아니라 이런 마음 모아서 다른 시도를 해봐야 한다.

“노동조합운동 끝났다고 본다”

신유아 – 조합운동 아직 죽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나는 끝났다고 본다. 희망버스 생기면서 금속이나 민주노총이 희망버스 눈치를 본다. 그 사람들이 왜 우리 눈치를 보고 적극 결합하려고 했을까. 이것 좀 해주세요 요구하면 적극 거절하지 못하는데 이유가 있다. 희망버스가 조합에 영향을 끼쳤다. 민주노총 희망시국대회도 희망버스의 결과다. 정당들, 민주노총은 희망버스에 얹혀 타고 성과로 가져가려는 마음이 있다. 민주노총이나 금속이 100% 발을 못 빼고 있다. 그들의 그간 운동방식이 경찰과 합의하고 울타리 쳐서 그 안에서 놀다 끝나는 식이었다. 관성화 됐다. 변화해야 한다. 자극 받을 것이다.

4차 희망버스 끝나고 집에서 앓으면서 고민스러웠다. 형식이나 숫자에 얽매이지 말자. 평화, 희망 이름을 써서 다양한 방식, 각자의 방식으로 여기저기 연대하는 것이 희망버스 성과다. 5차는 부산으로 몇 만 조직해서 가겠다, 이건 아니다. 희망버스 초심으로 돌아가자.

이창근 – 2차 희망버스가 185대 갔다. 불가능한 숫자였다. 회의 때 그런다. 우리 몇 대가 목표라고 질러놓고 채우는 방식으로 하지는 말자. 정말 안 좋은 방식이다. 날짜의 흐름에 따라 절박감이 극에 달한다. 240일 훌쩍 넘어갔다. 귀뚜라미 우는 가을이다. 이렇게 놔둬도 맞는 건가 싶다.

평택, 용산, 두리반, 영도, 강정 ‘비주류 운동주체’ 생산

조약골 – 김진숙 지도가 트위터를 통해서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조직했다. 이 정도면 나도 버스 한 대 조직해야겠다고 생각했고. 1차 얘기 들으면서 각자 열 명씩 모아보자 자연스레 얘기가 나왔다. 1차 때 700명 간 사람이 2차 때 10명씩 데리고 온 셈이다. 운동이 살아남고 힘을 내려면 새로운 주체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희망버스가 본보기가 되었다. 사회운동 참여의 장벽을 낮췄다. 사람들이 쉽게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예전부터 흐름이 있었다. 비주류나 세력화되지 않은 주체들이 널려있었다. 2006년 평택, 용산, 두리반 등을 통해서 그런 주체들이 생산되고 목소리를 내려했지만 그늘에 가려졌다. 희망버스를 계기로 전면에 나선 것이다. 아까 김여진 이야기가 나왔지만 자발적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트위터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수평적인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수 있는가를 보여줬다.

이진경 – 정치적 의미에서 어떻게 사건이 사건화 되는가를 보면, 희망버스에는 굉장히 많은 것들이 있다. 70-80년대는 기본적으로 전태일, 광주시민 등 죽음이 깔아주는 비장함, 숭고의 정서에 기반해서 운동했다. 죽음으로 향해있는 거대한 힘을 넘어서게 했는데 90년대 이후에는 젊은 사람들에게 먹히지 않는다. 촛불 때 대중들은 숭고의 정서가 아니라 자기표현의 욕망으로 운동에 참가했다. 밝았다. 그래서 100일 넘겼다. 비장한 운동은 길게 못한다. 그러나 이전의 비장한 운동은 돌파하는 힘이 있는데 즐거운 운동은 그게 없다.

운동의 정서가 바뀌었다.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힘이 없고, 돌파하는 힘이 없다. 이 난점을 어떤 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절묘하게 결합한 사례를 희망버스가 보여주었다. 죽음이라는 구 좌파적인 낡은 운동의 테마들에도 불구하고 비장함, 의무감, 무언가를 걸어야 한다는 당위의 운동이 아니다. 표면적인 영향력보다 잠재력을 갖고 있다. 또 그래야만 운동의 미래가 있다. 희망버스는 운동전체에서 중요하다. 조약골처럼 운동의 중요한 영역과 따로 놀다가 결합하기도 했고 여러 측면을 가진다. 이후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희망버스는 한국 사회운동의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아무리 많이 생각해도 모자랄 것 같다.

이창근 – 교수님 얘기 들으니까 저희들은 구속 되겠다. (좌중 폭소)

낡은 경험, 낡은 언어, 낡은 감각을 넘자

조약골 – 이전부터 축적됐던 모순이 여기서 폭발했다. 80년대 90년대 말씀하셨는데 2000년대 또 달라진다. 예를 들면 집회에 오는 사람에게 뭘 알려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데 요즘은 정보가 넘친다. 집회에서 누가 두들겨 맞아 죽었다 폭로할 때 분노하고 투쟁하는데 이제 사람들 알고 싶으면 안다. 사람들이 몰라서 행동하지 않는 게 아니다. 노동자들이 탄압받고, 비인간적인 삶을 사는 걸 알고 있다. 정보 과잉이니까. 집회에서 뭘 알려주겠다는 게 아니라, 5개 팀 밴드 공연하고 1명 연사 발언만 해도 충분하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 자리에 계속 있게 하는 힘이 뭔지 그걸 관심 있게 봐야한다. 그게 문화예술의 힘이다.

이창근 – 전적으로 동감한다. 연설은 많은데 진짜배기 말이 없다. 발언 많이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김지도가 좋은 말 많이 하는데 일일이 쓴다. 이야기에 힘이 있고 전달력이 있고 내용이 있다. 말이 생기 있고 슬프고 즐겁기 위해서는 밴드가 기타 연습하는 것처럼 말도 연습해야한다. 지부장, 본부장이라고 발언권만 준다. 연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신문은 보는지 문학책은 보는지 모르겠다. 정보도 늦다. 사람들은 트위터로 다 알고 있는데. 간극이 크다.

마지막으로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하겠다. 첫째는 희망버스는 어디로 갈지 모른다. 에너지라 줄일 수 있다. 규모를 의도적으로 줄일 수 있다. 정말 힘이 센 조직은 삼만 명, 십만 명으로 늘 수 있는 상황에서 오백 명으로 줄일 수 있는 힘을 갖는다. 적들은 고민할 것이다. 관계 속에서 봐야하는 문제다. 인원을 늘려서 해결할지 줄여서라도 해결할지는 고민을 해봐야겠다.

둘째는 상상력의 한계에 부딪혔다. 경험이 전진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어떤 사람들은 4차 때 안 오고 훈수만 둔다. 운동을 좀먹는 핵심이다. 정치인도 좀 더 나가야 한다. 수혈이 필요하다. 누구나 판 벌리면 된다. 공간이 열렸다. 기획단이 어디 있나. 내부적으로도 상상력은 고갈되었지만 체력적으로 고갈되진 않았다. 당이나 연구소에서 의견을 주길 바란다. 배후가 더 많아져서 경찰조사가 더 혼란스러워야 한다.

셋째는 희망버스 관련 하이에나 습성 가진 사람들이 살점 어디 없나 뜯어먹을 것이다. 시장선거라든지… 결론은 물어뜯기는 과정에서 정말 마지막 남을 건 뭘까. 박제화 된 뼈다귀로 남을 건가. 건강한 물고기로 유영하고 다닐 건가. 희망버스라는 단어에 집착이 아니라 이것이 갖고 있는 마음, 방향, 지켜야할 가치를 본격적으로 지켜야한다. ‘희망버스’라는 이름을 전매특허 하듯이 가로채지 말고 순도 높은 투쟁으로 전진하길 바란다.

응답 1개

  1. 맹찬형말하길

    흔히 사회변화에 있어서 문화의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죠. 흥미로운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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