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추석을 보내며…

- 김융희

가을은 감사의 계절이다. 생명의 원천은 먹거리, 우리에게 굶주리지 않고 무엇보다 귀중한 생명을 지켜주는 그 먹을거리가 나는 계절이 가을이다. 그래서 햇곡식과 햇과일을 추수하여 하늘과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는 추수 감사절이 이 가을에 있다. 한민족의 큰 명절인 추수 감사절 한가위, 가을은 한가위인 그 추석 명절이 있음에 고마움을 더한다.

여름이 다가서면서부터 시작된 긴 장마가 걷히고, 늦게나마 맑은 날씨에 내리쪼이는 햇살로 다시 작물들은 생기를 얻어, 영근 결실을 한창 맺고 있다. 다른 때보다 빨리 찾는 이른 중추절에, 아직은 곡식들이 여물지 않았으나 결실에는 차질이 없어, 머잖아 수확의 기쁨을 맛 볼 것 같다. 짖궂은 날씨에도 조금치도 불평 불만의 내색이 전혀 없는 자연이 기특하다.

“조상의 덕을 추모하여 제사를 지내며, 자기의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는” 追遠報本(추원보본)의 정신을 기리어 추석 한가위는 지켜진다. 조상의 묘를 성묘하고 다례를 지내기 위해 많은 인구의 동선의 길이가 복잡하게 길어지면서 전 국토가 대혼란에 빠진 듯 법석거린다. 거리마다 넘치는 차량 행렬로 대란을 겪고 있다. 그동안 스스로 푸르름을 간직한 채 정적만이 감돌았던 산자락에도 성묘객들로 생기를 띄며 새로운 정경이 펼쳐지고 있다.

자못 세상이 바빠진 듯 싶다. 산촌의 우리 동네도 사뭇 달라진 풍경이다. 새들이 떠난 둥지처럼 정적을 지키던 집에는 도시의 거리처럼 차량들이 늘어서 있다. 넓은 마당을 채우고 집밖의 고샅 울타리 곁에도 주차 행렬이다. 물론 모든 집들의 다는 아니며, 차량이 보이지 않는 집들도 있어, 그런 집은 더욱 쓸쓸하고 측은해 보인다. 시골 마을 모든 집들이 이같은 명절만이라도 고르게 주차된 차량이 보였으면 좋겠다. 자식도 찾아주지 않는 독거노인에게는 추석의 의미란 너무나 잔인하다.

달이 가고 해가 지날수록 시골은 적막해 가고 있다. 모든 젊은이들이 떠난지는 이미 오렛적이고, 이제는 떠난 젊은이들이 추석 명절마저도 두고 온 부모를 찾기가 힘들다며, 부모가 자식을 찾아오게 하는 전혀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면서, 요즘 시골의 명절은 더욱 쓸쓸하게 변하고 있다. 대신에 열차와 버스 터미널, 공항이 여행객들로 북적대며 호황이란다. 차례도 아예 주문 식단의 상을 차려 여행중에 치루기도 한다고 들었다. 잊지 않고 이같은 차례상을 차리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야할 조상들이 가엾고, 이토록 변하는 세태가 한심하다.

맛난 음식과 새옷이 기다려지는 옛적의 명절은 이제 별로 의미가 없지만, 그래도 중추절과 같은 명절은 여전히 있어 좋은 날이다. 특히 굽은 허리로 하늘짐을 진 늙은이들만의 마을에 오랜만의 어린이들의 뛰노는 소리와 모습은 사람 사는 생동감과 정이 있어 더욱 행복스러워 보인다. 꽃을 꽃이라 불러줄 때 꽃이 되어 다가오듯, 사람이 있는 곳에 자연이 어울려, 산새 소리도 즐겁고, 물소리 바람소리도 고우며, 푸른 하늘 아래 꽃들도 아름답게 느껴진 것처럼, 사람 사는 마을에는 늘상 언제나 남녀노소가 함께 어울려 생동감이 넘처야 한다.

조용했던 우리 집에도 갑자기 소란스럽게 북적댄다. 두 살백이부터 초등학생들이 여섯이서 한자리에 모이고 보니 별의 별 작난질에 괴성도 각가지다. 그동안 홀로랍시고 마음데로 펼쳐놓은 책이며 도구들이 더욱 요란하게 어질러지고 있다. 그들에게는 가까이서 눈에 뜨인 것은 관심이 별로 없나보다. 꼭 욉둔 곳의 것들만을 찾아 버리고 퍼트린다. 가던 시계가 멈추었고, 서랍도 뒤집혔다. 컴퓨터에 매달려 깨임을 하더니, 급한 메일이 있어 뷰팅을 해도 모니터가 감감이다. 아무리 재 시도를 해보지만 전혀 무반응, 그들의 부모를 동원해 바로잡아봐도 되질 않는다.

고약한 늙은이 기질에는 불편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어지러 놓은 책이며 잡동사리를 치울 일이며, 또 먼거리까지 가서 컴퓨터의 A/S를 받아야겠는데 연휴를 넘겨야 한다. 사람 사는 맛과 생동감을 맛보는 것에 대한 보상이려니 생각해도 너무 지나쳐 짜증이 인다. 그렇지만 참 이상하다. 늙은이가 하는 짖거리는 눈만 감춰도 볼상이 사나운데, 어리애들의 지나친 짖거리가 하나도 미웁지를 않으니 말이다. 그렇게 악착같이 놀고 있는 그들이 더욱 귀엾고 사랑스럽다. 그래서 늙으면 서러운 것인가?

이제는 긴 연휴를 끝내고 매사가 일상으로 돌아갔다. 지난 여름 내내 긴 우기로 작물들은 모두 녹아 없어지고, 무용의 웃자란 잡초 제거에 매달려 지내며 몹시나 지친 심신이다. 그런데다 치다꺼리에 뒷정리가 모두 녹록치를 않다. 나흘간의 명절 연휴에 마음 놓고 쉬려는 기대가 컸었는데 오히려 기진맥진이다. 대충 정리를 끝내고 A/S를 받은 컴퓨터 앞에서 새삼 졸음에 빠진다. 그동안 주경 야침에도 무리가 있었나 보다. 차분하게 푹 좀 쉬고 싶다.

조상의 묘에 성묘하고 차례를 지내는 혈연 중심의 중추절이 많이 변하고 있다. 변해가는 세상사에 명절도 변해 마땅한 것, 그러나 걸맞는 변화가 절실하다. 바쁜 일상에 벌초만은 외주라 해도, 나이든 부모를 오라고 불러 손자들과 함께 있게 하고는, 먼 길 여행을 떠나는 것은 부모를 얕잡은 행위다. 여행이면 화끈한 여행이지 형식에 얽메인 여행중 차례상을 차리는 짖과 같은 변화는 넌센스요 도단이다. 차라리 아니함만 못한 이런 변화는 말기를!

혈연 중심의 중추명절이 이제는 자연과 환경을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는 내 이웃과 더불어 보듬고 즐기는 진지한 변화로 거듭나기를 바래는 마음이다. 불볓 더위 맑은 하늘아래 토실 토실 밤이 여물어가는 가을은 풍요롭다. 금년 추석도 여러분 모두에게 늘 한가위만 같아라는, 즐겁고 행복한 명절이 되었기를 기원하면서, 큰 명절에 스친 생각들을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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