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꼼

9월 15일. 고대 성추행사건 4차공판

- 황진미

앞서 9월 5일 세 명의 학생들의 출교 처분이 있었다. 또 배씨의 보석신청에 대한 신문이 9월6일 비공개로 열렸고, 재판부는 9일에 보석신청을 기각하였다.

판사는 남은 증거들을 점검하였다. 배씨의 변호인은 펜션 현장검증 동영상을 참고자료로 제출하겠다고 하였다. 검찰이 제출한 (피해자와 피고인들의 최초진술이 담겨있는) 고대양성평등센터의 녹취록과 녹음파일에 대해 박00와 한00은 (증거물로는 동의하나) 검사의 입증취지는 부인한다고 말했다. 검사는 구속 전 학생들이 작성한 사실 확인서 7부를 제출하였다.

# 검사, 특수준강제추행으로 공소사실 변경

검사는 특수강제추행에서 특수준강제추행으로 공소사실을 변경하겠다고 허가신청을 하였다. (즉 형법 298조의 ‘폭행 또는 협박으로’ 행한 강제추행이 아니라, 299조에 나와 있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행한 준강제추행으로 죄목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형량은 둘 다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동일하다. 또한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4조에는 ‘2명이상이 합동하여’ 강제추행이나 준강제추행을 저질렀을 경우 ‘특수’라는 말이 붙고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나와 있다. 또 13조에는 촬영행위에 대해선 5년 이하의 징역, 1천만원이하의 벌금에 해당된다고 따로 규정되어 있다.)

박씨의 변호인은 공소사실을 인정하였다. 한씨의 변호인은 공소사실을 인정하나 과장이 있다는 이전입장을 되풀이 했다. 배씨의 변호인은 12시 상황에 대해서는 (항거불능 상태를?) 인정하나, 새벽 4시 상황은 술에 취한 항거불능 상태가 맞는지 엄밀히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상담소 녹취록에 “말리지 못한 것이 후회 된다”는 배씨의 말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배씨의 변호인은 피해자가 여행을 가게 된 출발과정에 대해 다른 여학생이 동행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손석희의 시선집중> 라디오 인터뷰에서는 출발할 때에야 알았다고 말했다며, 피해자의 진술을 탄핵한다고 말했다. 변호인은 이를 보여주기 위해 화면을 띄웠다. 인터뷰전문과 카카오톡 문자를 좌우에 대조해 놓고, 일치하지 않음을 설명했다. 그런데 화면의 카카오 톡 그림에 피해자 이름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의도적인 건지 부주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공개된 법정에서 한 번도 말해지지 않았던 피해자의 이름이 크게 전시된 셈이다. 검사는 카카오 톡의 부분적 캡쳐로 입증취지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판사도 여행을 가게 된 경위에 관한 것 아니냐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 방청석의 노부부 “어디 여자가 남자 앞길을 망치냐?”고 소리치고, <일요신문>에는 검찰조서와 피고인 측 주장이 고스란히

그런데 아까부터 방청석에서 한 60대부인이 계속 “억울하다…어디 세상에 가스나가 술 먹고….남자 앞길을 망치는…금쪽같은…”하며 웅얼웅얼 한숨과 신음이 섞인 소리를 냈다. 직원이 눈치를 주었지만, 소리는 계속되었고, 박씨가 피고인석에 착석하자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가 커졌다. 변호인은 피고인 심문을 비공개 요청했고, 검사도 증거조사와 피고인 심문을 비공개로 할 것에 동의하였다. 방청석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는데, 그 부인은 재판장을 향해 큰소리로 “정말 억울합니다. 제발 공정하게 헤아려주세요.”하며 합장 기도하듯 고개를 숙이며 읍소하였다.

재판장 밖에서도 부인과 남편은 목소리를 높였다. “여자가 남자들과 한 방에 든 것이 잘못이고, 술 마시고 장난으로 만질 수도 있는 건데, 여자가 남자들 앞길을 망치고 있다. 여자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모든 것을 감싸야한다”는 취지의 말을 반복하였다. 남편은 “배씨는 무죄를 주장하는데, 도매금으로 넘기는 언론이 문제이며, 고대에서 3명만 출교할 것이 아니라, 남자들과 술 먹고 논 여학생도 출교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들이 피고인의 지인이냐고 묻자, 자신들은 퇴직 후 청도로 귀농한 부부로 <일요신문>을 보고 울분과 걱정을 참을 수 없어 재판을 보러왔으며, 피고인들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이분들이 ‘성-정치계의 어버이 연합’인지, 피고인들과 전혀 무관한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이분들이 참고문헌으로 제시한 <일요신문>을 한번 검색해보자. 9월 14일자 이훈철 기자가 쓴 <고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 미스테리>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단독 입수한 검찰 피의자신문조서”의 내용과 더불어, “배씨의 무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언과 증거가 상당수 발견되었다”며, 피고인 심문에서 피고인 측 주장으로 나올법한 내용들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하단에는 아까 배씨의 변호인이 제시한 카카오 톡과 인터뷰에서 피해자 진술의 차이점이 박스기사로 실려있다. (출처가 짐작된다.)

이 기사에서 밝힌 검찰조서에 의하면 11시 30분경 방안에 4명이 있다가 피해자가 한씨의 어께에 기대는 것을 보고, 배씨와 박씨는 밖으로 나왔는데, 둘만 남은 상태에서 한씨가 피해자를 추행하였고, 방으로 돌아온 박씨가 이를 보고 함께 추행하였다. 한씨는 박씨가 함께 추행하고 있는 것을 알고 당황해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배씨와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한씨는 곧바로 화장실로 가고, 배씨는 박씨가 추행하는 것을 보고 “이래도 되는거냐”며 상의속옷을 내려주려 하였으나 못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배씨가 경찰 조사에서 “옷을 내려주다 손이 피해자의 가슴에 스쳤다”고 말했는데, 이는 경찰의 강압에 의한 진술이었다며 검찰에서 진술을 번복했다고 한다. 즉 ‘내려주다 닿았다’에서 ‘내려주지도 못했고 닿은 적도 없다’로 번복했다는 것. (그런데 배씨의 변호인은 1차 공판에서 “가장 나중에 방에 들어가 보니 피해자의 웃옷이 벗겨져 위로 올라가 있어 내려주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배씨가 박씨의 추행을 보고 “이래도 되는거냐”고 말했고, 상의를 내려주지 못했다는 검찰진술과 전혀 다르다.) 한편 한씨는 경찰조사에서 “배씨가 피해자를 추행하는 것을 봤다”고 말했는데, 이는 강압에 의한 것이었으며, 박씨는 검찰에서 “배씨의 추행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고, 옆의 배씨가 말리지 않기에 옆에서 추행하고 있는 줄 짐작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기사에 의하면 한씨는 검찰에서 “박씨와 배씨의 성추행 사실을 몰랐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이는 한씨가 몰랐다고 해서, 추행이 없었다는 증거가 될 수 없음을 말해주는 게 아닌가.)

# 검사 “피해자가 없는 사실로 배씨를 무고했다는 변호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각 징역 1년 6월씩 구형”

3시간 가까운 비공개 공판이 끝나고, 법정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검사는 “배씨의 변호인이 피해자가 사후적으로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올 것을 계산하여 없는 사실을 무고했다며, 고등학생 같은 의대생활을 언급하였으나 이들은 졸업을 앞둔 본과 4학년으로 그리 볼 수 없으며, 피해자가 피고인들과 함께 방을 예약하고 잠을 잤다 해도 이는 피해자가 피고인들을 6년간 동아리 생활을 함께 한 가장 믿었던 친구들로 생각했지 남자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성폭행 피해자로 고소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결심이며, 피해자는 법원과 경찰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까지 한 것으로 보아 진술에 신빙성이 있으며, 사후적으로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 올 것을 계산하여 피고인을 무고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하였다. 3시간 동안 무슨 말이 오갔는지 잘 모르겠으나, (카메라 파일과 타액 DNA라는 물증이 있는 박씨, 한씨와 달리) 피해자 진술만이 유일한 증거인 배씨의 혐의를 부인하기 위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끈질기게 탄핵하던 배씨의 변호인은 급기야 피해자가 없는 사실로 배씨를 무고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고등학교 같은 의대사회에서) 자신에게 돌아올 사후적 책임을 벗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라는 주장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검사는 무고라는 주장을 일축하는 것으로 배씨를 포함한 피고인들이 유죄가 다 입증되었다고 판단했는지,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피고인들이 피해자와 함께 여행을 간 것은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니며, 술에 의한 우발적 범행이라는 점은 사실이다. 이들은 초범이고, 지금까지 성실하게 살아왔다”며 정상참작용 말을 덧붙이더니, 피고인 3인에게 각각 징역 1년 6월에 처하고, 박씨와 한씨의 압수물 (피해자를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 파일)은 몰수한다고 구형하였다. (특수준강제추행의 법정형량이 3년 이상의 징역이고, 선고가 아닌 구형인 것을 감안하면 낮은 형량이다.)

이제 피고인 측 최후진술이 이어진다.

박씨의 변호인이 말한다 “박씨가 신뢰를 배반한 것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으며, 이는 철저하게 반성하고 있다. 스스로도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자책하고 있다. 사건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피해자가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지만, 피고인 역시 고통 받고 있다. 피고인이 행위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지, 행위이외에 과도한 처벌을 받지 않도록 양형해주길 바란다. 피고인이 재판에 임하는 태도와, 출교처분으로 상당한 처벌을 받았음을 감안하여, 다른 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선처를 부탁했다. 박씨는 울먹이며 “너무 미안하다. 피해자가 재판과정에서 더 큰 고통을 받았음을 알고 괴로웠다. 가족, 친구에게 죄송하다. 제 잘못을 용서받기 어렵겠지만, 한 번의 기회를 주신다면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한씨의 변호인은 우선 “특수준강제추행의 법정형량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인데 비해 징역 1년6월을 구형해주어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말로 시작하였다.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으며,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을 사람이다.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언론의 왜곡된 보도로 피해자와 피고인 모두가 깊은 상처를 입었다. 법원에서 따뜻한 결정을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한씨는 거의 흐느끼며 “피해자와 6년간 친구로 지내왔고, 좋아했었다. 스킨쉽도 나눌 만큼 좋은 감정이 있었다. 피해자가 내 어께에 기대어, 술김에 이성적 판단을 못했다. 박씨가 (함께 추행)하는 것을 보고 밖으로 나와 우물쭈물하다가 재판까지 받게 되었다. 피해친구를 위해 기도하며 뉘우치고 살겠다. 부모님께 불효자가 된 것이 가슴 아프고,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그러나 나의 꿈도 산산이 부서졌다. 수많은 악플을 보면서 죽고 싶었다. 앞으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겠다. 남을 위해 새 삶을 살겠다. 용서를 빌며 진심으로 사죄드리고 싶다.”고 진술을 마쳤다.

# 배씨 “나는 피해자를 이성으로 본 적이 없다. 앞으로 닥터 노먼 배쑨처럼 살겠다”

배씨의 변호인은 “총명한 아이가 무고함에 빠져, 혼돈과 무질서를 느꼈다”로 말문을 열었다. 먼저 12시경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무고함을 증명해야 했던 그리스시대의 법과는 달리, 현재의 법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으며, 이는 막강한 수사력을 지닌 검찰로부터 개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원리에 의해 ‘불공정한 권력 내의 공정한 룰’로 헌법이 보장하고 있음을 환기시켰다. 그러나 검찰 공소가 과연 그러한지 의문이라는 말과 함께, 법정에선 마음약한 사람이 불리하다고 말하였다. 배씨가 다른 두 명의 피고인의 잘못에 동조적인 마음이 있었던 탓에 재판을 받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 12시에 배씨가 속옷상의를 내려준 것으로 추행이 종료된 것으로 보아 배씨는 추행을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4시경에 일어난 일은 피해자의 진술만이 존재하는데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새벽에 계속 잠을 자고 있었으며 깨어나니 11시경이었다는 배씨의 진술을 배척할 수 있는지 판단해달라고 말했다.

배씨는 “같이 여행을 가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 그것을 막지 못한 것에 책임을 느낀다”고 발언을 시작했다. 그리곤 “12시경에는 상의를 내려주려 한 것뿐이며, 4시에는 먼저 잠들고 늦게 일어난 것 뿐”이라는 주장을 한숨을 섞어가며 반복해서 말했다. “저는 친구가 나쁜 사진을 찍었다고 질책했고, 사과하는 취지에서 선의로 한 행동(아마도 피해자 인터뷰에 언급되었던 ‘미안하다. 후회하고 있다’고 배씨가 피해자에게 문자 보낸 것?)이 오해를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그리고 “언론에 알려지고, 인터넷에 얼굴과 신상이 공개되고, 출교처분을 받아 죽고 싶었다. 그러나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지금은 누명을 벗고 싶은 마음뿐이다” 고 말했다. “저는 6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피해자를 이성으로 본적이 없고 스킨쉽도 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어? 3차 공판에서 배씨의 변호인이 피해자와 배씨가 과거에 깊이 사귄 적이 있다고 자세히 언급했던 것은 뭐지?) 배씨는 “의사가 된다면 노먼 베쑨과 같은 삶을 살고 싶다. 노먼 베쑨은 캐나다의 의사였으나 다른 나라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였다. 그를 본받아 헌신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공정하게 판단해 달라”고 최후 진술하였다. 배00과 ’베쑨’ 사이에 (이름에 ‘배’자가 들어가고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 외에) 무슨 공통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배씨가 다른 피고인들과 달리 의사의 삶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 재판 후 출교무효소송을 할 모양이다.

선고는 9월 30일 10시, 서관 513호로 잡혔다. 폐정이 되고 밖으로 나온 배씨의 변호사에게 물었다. “지난 공판에서 배씨가 피해자와 사귄 적이 있다고 말했는데, 배씨의 진술과 다르지 않나?” 그러자 변호사는 “내가 그렇게 말했나요? 잘 기억이…그냥 다른 사람과 연인이라고 말했거나 ‘저기 피고인(그럼 한씨?)’이라고 하지 않았었나요? 전달이 잘못되었나?”하며 얼버무렸다. 이미 주위엔 다른 기자와 방청객들이 몰려들었다. 다른 분이 “나도 배씨라고 들었다. 명예훼손 아니냐?”고 물었다. (피해자의 카카오 톡과 인터뷰 발언이 다르다고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해야 한다던 변호사가 어찌 한 입 가지고 두말을 하랴 싶어 혹시 정말 내가 잘못 알아들은 건 아닌지 당시에 받아 적은 공책을 확인해 보아도 “여학생은 피고인 배00와……사귄 적이 있다….함께 여러 번…..하고…”로 적혀있다. 물론 법원엔 더 정확한 녹취록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변호사가 얼버무린 것처럼, 피해자가 다른 사람과 연인관계였음을 그가 말한 것이라면, 그것 역시 괴이쩍다. 변호인이 자신의 의뢰인도 아닌 사람이 피해자와 깊이 사귀었고, 어떤 행위까지 같이 한 사이임을 누구한테 들어 알 수 있단 말인가? 설령 본인한테 들었다 한들, 피해자와 다른 이와의 관계를 무슨 취지와 맥락으로 재판정에서 공표했단 말인가?) 의문의 말풍선이 사람들의 머리위로 뭉개 구름처럼 피어올랐지만, 변호사는 “그쯤 하시지요.” 하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응답 1개

  1. 김태경말하길

    진정한 의료인이란 인간의 본질적인 성품을 망각한
    자는 의료인이 아닌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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