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평화를 위한 전쟁은 허구다

- 황진미

지난 주말 강정마을에는 평화문화제가 열렸다.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응원하러 뭍에서 180여명의 시민들이 비행기를 탔고, 평화의 버스에서 제주도민들과 만나 강정마을 입구에 모였다. 참가인원이 1천-2천명에 달했다. 미군기지 건설로 마을을 빼앗긴 대추리 주민,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용산참사 유가족 등이 함께 했다. 해군과 경찰은 이들을 ‘외부세력’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강정문제는 강정주민만의 문제도, 제주도민만의 문제도 아닌,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문제이다.

제주도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데 이어, 2010년에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 받았다. 제주도가 천혜의 자연을 지녔음은 더 이상 수식이 필요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올해 ‘세계7대 경관’에 선정되기 위해 ‘범국민추진위원회’까지 만들어 투표를 독려하였다. ‘세계7대 경관’은 유네스코 등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설재단이 주최하고, 참여자의 무제한 무기명 중복 유료투표로 선정하는, 공정성보다 상업성이 짙은 행사이다. 정부는 관광제주의 경제효과를 강조하며 이런 ‘야바위스러운’ 곳에까지 국민들이 푼돈을 내어 투표하도록 독려하면서도, 제주도의 자연을 근원적으로 파괴할 국책사업을 무리하게 추진 중이다.

2003년 노무현 정부는 4.3 사태를 공식사과 하였고, 2005년 제주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선언했다. 그러나 선언 3개월 후 해군은 기지건설을 발표한다. 2002년 제주도 화순에 건설하려다 주민반대로 무산된 해군기지를 재추진하겠다는 것이다. 2007년 당시 김태환 지사는 주민과 상의 없이 강정을 부지로 선정했다. 주민들의 마을투표 결과, 투표가능인구 1,050명 중 725명이 참여하여, 반대 680표, 찬성 38표를 얻었다. 그러나 기지건설은 계속 추진되었다. 삼성과 대림이 건설수주를 맡았다. 농지는 협의매수하거나 실거래가보다 낮게 강제수용 되었다. 정부는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업무방해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하였고, 건설사는 주민 14명에게 2억 8,900만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주민들은 군사시설승인 무효소송을 냈고, 정부는 주민들에게 공사방해금지가처분 소송을 냈다. 주민들은 찬성 측과 반대 측으로 나뉘어 4년간 반목하면서 지역공동체는 파괴되었다. 지난 4월 낙향한 양윤모 영화평론가의 옥중단식투쟁이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평화운동가와 환경운동가들이 강정에 모여들었다. 8월에는 뭍에서 온 600여명의 경찰병력이 현장에 투입되었다. 4.3 이후 최초였다. 평화문화제 하루 전인 9월 2일엔 경찰이 기습적으로 펜스공사를 강행하여, 현장을 지키던 주민 100여명과 충돌하였다. 35명이 연행되었고, 4명이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구속되었다.

제주기지는 노무현정부의 ‘대양해군’론에 의해 추진된 것이다. 한국해군이 연안을 벗어나 대양에서 자국교역수송로를 지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외에 ‘대양해군’을 가진 나라는 없다. 이명박 정권 들어 ‘대양해군’론은 폐기되었지만, 해군은 기지건설을 강행하고 있다. 이어도부근 초계활동 강화가 명분이다. 이를 위해 1조원의 건설비와 연간 200억 원에 달하는 유지비가 드는 대형함정용 기지가 필요한지, 중국과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과 경계에 위치한 이어도부근의 초계활동이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을 불러오지 않을지 하는 질문은 안보의 이름으로 묵살된다. 해군은, 기지는 한국군이 건설하는 것으로 미군과는 무관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미동맹 상 유사시 미군의 기항요청에 응할 수밖에 없다. 제주기지가 미국의 대중국 아시아전략의 일환이며, 미사일방어체제의 전초기지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는 이 때문이다. 4.3을 겪은 제주도에 더 이상 군사시설을 들이지 마라. 6.25를 겪은 한반도에 더 이상 강대국 간 군사대립을 들이지 마라. 평화를 위한 전쟁은 허구다. 평화는 평화를 통해서만 구축될 수 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