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찻집에서 여행을 생각하기

- 홍진

집에서 기차역 근처 차茶시장 까지는 경전철로 삼십분에 걸어서 십 분정도 더 간다. 그 중 한 도매상을 알게 된지 아직 한 달이 채 안된 주제에, 스스로 단골이라고 우쭐하여 가게에 들어가니 오랜 진짜 단골 서넛이 좁은 상을 둘러 차를 마시고 있었다. 구석자리에 찌그러져 앉았더니 주인아저씨가 가만히 잔을 놓는다.

기문祁门홍차는 향긋하다 못해 약간 달달한데 신기하게도 청량하다. 차를 따라주는 아저씨의 팔 근육을 물끄러미 구경한다. 주인장인 국菊씨 형님은 3년 전 보디빌딩 챔피언이었다는데 지금은 안휘성安徽省 출신인 마나님의 가게에서 얌전히 차를 따르면서 서서히 근육을 녹이고 있는 중이다. 아직도 다 안 녹았다. 아저씨는 이 찻집에서 좀 오랜 여행을 하는 중일 까. 나도 중국에 온지 삼년이 좀 넘었지. 퍼뜩 생각해 본다. 중국의 붙박이 여행자를 자임하는 나의 생각들은 아직도 한국에 더 얽혀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한국의 각종 번뇌들을 실시간으로 물어온다. 재개발 구역이 되어 힘들게 싸우고 있는 명동 마리. 아슬아슬 가슴 한 켠을 누르고 있는 강정마을 소식. 나는 왜 오늘도 월담을 해가며(중국의 만리방화벽) 한국의 속상한 소식들을 굳이 찾아가 읽고 있을까?

한 손님이 꾸러미에서 조심스레 찻잔을 꺼내 다른 이들에게 구경시킨다. 도기 유통하는 아저씨다. 쬐끄만 수제 찻잔 하나가 더럽게 비싸다. 핸드폰도 비싼 아이폰을 쓴다. 흥!(한국에서는 이미 흔해졌던가?) 아무튼 요새 사업이 바빠 죽겠다고 엄살을 떨자, 옆에서 재載씨가 한마디 한다. 바쁘다는忙 건 마음心이 망해亡 버렸다는 뜻이야. 찻집 소매상 주인인 재씨는 자기 가게는 안보고 여기 자주 와서 차를 마시는데, 외국인인 나를 좀 의식해서 항상 공자왈 맹자왈 하나 더 쓰려고 노력하신다. 도기 아저씨도 참, 바쁜 와중에 여기 와서 몇 시간씩 차를 마시고 가는 거라면 그거 엄살이 아닌가. 혹은, 아직 마음이 망하지 않았다는 증거겠지.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인터넷을 통해 약간의 소식을 전해 듣고, 걱정 하고 화를 내고, 기뻐한다고 해서 한국과 더 가깝게 얽혀 지내고 있다는 표현도 좀 이상하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팔레스타인 해방연대 사람들처럼 물리적으로 먼 거리를 확장하여 사는 것과도 좀 다른 것 같고,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여기서는 몸으로 느끼지 못하는 강한 감정들을 잠시 빌려보는 것뿐일까? 정말 그렇다면 살날이 창창한 젊은이로서는 씁쓸한 일이다.

중국으로 건너오기 전, 한국에서 내게 가장 강렬했던 시간들은 어처구니없는 권력의 횡포와 맞닥뜨리는 지점에서 벌이는 불법의 모멘트, 반란의 궁둥이 춤이었다. 그 순간 함께 했던 친구들은 작은 내가 훨씬 유쾌하게 확장되는 방법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이곳 중국 대련에서는 마음이 맞아 즐겁게 이런저런 일을 벌일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다. 중국의 사회문제들과 나 사이에 흐르던 시냇물은 점점 불어나 강이 되고, 나는 여전히 건너편에 남아 바라 보고만 있다. 작년 겨울 동네 미용실에서 공연을 벌였을 때, 마침 한국에서 놀러 온 친구들이 준비를 도와주다 말고 문득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어, 그러고 보니 사대강 삽질 반대 같은 거 없는, 그냥 순수하게 술만 처먹는 파티도 있었던 거야?”

나도 모르는 새에 어떤 종류의 에너지원에 대한 일종의 금단증상(큰 범위에서는 외로움으로 분류될 지도 모른다)에 시달리던 나는 작년 여름, 한 필리핀 활동가에게 좀 이상한 편지를 보낸 적도 있다.
“제가 이번 여름에 놀러가는 필리핀 뭐뭐 지역에는 재미있는 활동가들이 있나요?”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활동가들과 연락하고 싶은데? 어떤 연대가 필요한데?”
‘아니, 그냥 설렁설렁 뭐하고 사는지 구경도 좀 하고, 잠시 마음과 정을 통해보고… 있잖아요. 그런 거.’
마지막 문장은 마음속에서만 구슬프게 울려 퍼졌다. 말했으면 사람 실없어 보였을까.

여행을 떠날 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기존의 일상에서 벗어나 그저 그 낯 선 시간과 장소에 온전히 몸을 던지는 것이다. 다른 언어와 다른 밀도를 가진 공기, 공기에 섞인 냄새의 차이만으로도 온몸의 감각이 예민해지고 하루하루가 찐해진다. 그러나 한 곳에서 오래 체류하기 시작할 때 상황은 달라진다. 일 년이 지나고 또 일 년이 지나면서 설레임은 사라지고 어느 새 수동적인 구경꾼이 되어가고 있던 나는 한국에서의 경험들, 우리를 제한하려는 힘들로 가득한 그 자리에서, 오히려 새롭게 우리를 바꾸고 정의하던 시간을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어느 새 모든 것이 당연하게만 느껴지는 장소에서, 다시 날 선, 찰나에 충실한 붙박이 여행자가 될 수 있을까.

헤진 티셔츠를 입고 도수 높은 안경을 쓴 선비 타입의 고高씨 형님이 벼루를 하나 꺼내 든다. 상 한쪽에 올려놓은 금이 간 핸드폰은 골동품인데 벼루는 비싼 거를 쓴다. 무릇 서예가라면 벼루는 안 비싸도 되지만 핸드폰은 좀 낡은 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조심히 꺼내든 벼루를 주인장에게 품평을 맡긴다.
“이 벼루를 얼마 얼마에 샀는데, 잘 산건가?”
사람들이 서로 한참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돌을 문지르고 손가락 등쪽으로 두딩겨 본다. 가게 주인이 최종 품평을 한다.
“돌은 꽤 좋은 건데, 모양이 약간 아쉽군. 좀 흔해 보이잖아요.”
그러자 고씨 형님은 순간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골탕골탕한 목소리로,
“그래? 이거 이천 팔년 겨울에 바로 여기서 산건데. 크하하하. 기억 안나? 응?”
하고는 사람을 면박 준다.
“이런 나쁜 사람이 있나, 그냥 봉황단총凤凰单丛이나 마시자구.”
민망해진 주인은 찬장에서 우롱차를 꺼낸다. 친구에게 우롱 당한 아픈 마음을 달랠 때 어울리는 차다. 하얀 찻잔에 떠있는 단아한 색깔의 찻물을 보며, 뭔가 애틋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한 마음으로 언제나 그렇듯이 내일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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