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노동잔혹사

생리휴가

- 김민수(청년유니온)

정의로운 법과 제도는 어떤 모습일까? 만인에게 동등하고 평등하게 적용된다면, 그것으로 정의로움을 갖춘 법률이 되는 것일까? 글을 끄적이고 있는 입장에서 사견을 밝히자면,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더욱 평등하다.“

두고두고 회자 되는 조지 오웰의 문장이다. 세기를 뛰어넘은 오늘 날에 이르러서 까지, 위 명문의 진리치는 대단히 높은 것으로 확인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다른 동물들 보다 더욱 평등한 명박 가카와 거늬 회장님의 자태를 보라. 사족이지만 이런 동물들이 공정과 정직을 논하는 몰골을 보자니 심장이 오그라든다. 더욱 평등한 동물들이 엄존하는 현실 세계에서 법과 제도를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한다는 것은 – 내 생각에는 정의의 관점에 부합하지 않는다. 재벌과 노숙인에게 똑같은 세율을 적용하고, 남성과 여성이 같은 제도 아래 경쟁하게 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똑같은 수준으로 보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가장 편파적인 법이야 말로 가장 정의로운 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노동법(특히 근로기준법) 또한 특별히 편애하는 집단이 있다.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차이(혹은 차별)을 미약하게 상쇄하는 수준이지만.) 대표적으로 여성과 (청)소년이다. 이 지면에는 ‘여성’에 관한 ‘재미없는’ 법률적 이야기를 끄적여 보고자 한다. 그래봤자 결국에는 삼천포로 빠지겠지만. 뭐, 아무튼.

우선 산전후 휴가 제도가 있다. 출산 전후 90일 정도는 여성 근로자를 ‘돈 주고’ 쉬게 하라는 근로기준법(제 74조)의 지엄한 가라사대이다. 수꼴들 입장에서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는 자가당착적 개드립을 들먹이며 노발대발 할 제도이고, 일부 여성주의의 시각에서는 ‘여성의 출산을 유도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라는 해석도 가능할테지만 – 내가 보기엔 출산을 전후한 여성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아주 절실한 제도이다. 안타깝게도 실제 현실에서는 이 제도를 놓고 사업주와 근로자 사이의 굉장한 갈등이 발생하는 것으로 아는데, 모쪼록 좋은 방향으로 산전후 휴가 제도가 사회적으로 뿌리내리길 바란다.

다음으로 육아 휴직 제도이다. 만 6세 이하의 미취학 자녀가 있는 근로자(남성도 상관없다!)는 1년 간의 휴직이 법률적 권위로 인정된다. 보너스로 고용보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일정 수준의 급여도 보장되니 제대로 적용만 된다면 나름 쓸만한(응?) 제도라 할 수 있겠다. 이 제도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자리 잡았는지에 대해서는 과문하니 긴 사족은 생략한다.

마지막으로, 생리휴가 제도이다. 이 글의 제목이기도 한데, 한 번 재미없는 조문을 그대로 컨트롤 씨 + 컨트롤 브이 해보도록 하겠다.

“사용자는 여성근로자가 청구하는 경우에는 월 1일의 생리휴가를 주어야 한다.”
(근로기준법 제 73조)

짤막한 문장이지만, 여성의 신체적 특성을 보호하는 중요한 제도이다. 사실 이 휴가제도는 원래 ‘유급’으로 적용 되었으나, 주 40시간 제도 도입과 함께 ‘무급’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덧붙이는 사족 – ‘무급’ 생리휴가는 이 제도의 실효성을 극적으로 떨어뜨리는 개악 조치라 할 수 있겠는데, 하루 빨리 정치적 역량을 갖추어서 도로 아미타불 시켜야 한다고 본다. 더 나아가 (연차휴가와 마찬가지로) 생리휴가를 사용하지 않은 경우 별도의 수당을 보전해주는 정책으로 발전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 다시 말해 청년노동의 관점에서는 ‘유급’이니 ‘무급’이니의 논쟁을 떠나 이보다 더 사문화 된 제도가 있을까 싶다. (어찌 보면 지난 번에 논한 ‘유급 주휴일’ 제도보다 사회적 인지도와 적용범위가 떨어질 것 같다.) 혹시 주변 지인들 중에 월 1회 생리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분이 계시다면 제보 바란다.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는 없다.

이 제도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가 대단히 떨어지며, 근로자의 권리에 대한 마음가짐이 희박한 사측의 대응 또한 가관이다. 생리휴가를 지급받고 싶으면 산부인과에서 진단서를 끊어오라는 관리자에게 피 묻은 생리대를 집어 던짐으로써 휴가를 보장 받았다는, 하종강 쌤이 서술한 유명한 일화는 결코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 제도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 초등교육 과정을 통해 탈피했어야 할 ‘자기중심적 사고’의 화신들이 여전히 득세하기 때문이랄까.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일련의 ‘적극적 차별 시정 조치’에 대해 사안 불문하고 ‘역차별’을 논하는 이들의 영.유아 감수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어찌하랴. 신체적 특성이 주는 불편함을 사회적 구속으로 말미암아 정신적 강인함으로 견디는 인류의 절반. -이들이 법률에 기반한 권능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확실히 한결 아름다워진다.

p.s 그나저나 요즘 ‘나는 생리휴가 필요 없다’는 문구의 여성의약품 광고가 눈에 거슬린다. 생리가 주는 신체적 고통을 억제하여 굳이 쉬지 않아도 될 만큼 효능이 좋다는 의미로 사용 된 표현이겠지만, 그래도 부적절하다. 부적절한 광고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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