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꼼

국내최초의 본격법정스릴러 <의뢰인>을 찍은 손영성 감독을 만나다

- 황진미

국내최초의 본격법정영화 <의뢰인>이 개봉된다. 하정우, 박희순, 장혁 등 출연진도 쟁쟁하다. 최초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미끈한 장르물을 뽑아낸 감독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가 <약탈자들>(2009)로 장편데뷔한 손영성 감독이라니, 쫄깃하게 구미가 당긴다.

황진미(이하 황) : <약탈자들>을 굉장히 흥미 있게 보았다. <약탈자들>이 장르에서 완전히 이탈한 해체적인 독립영화이고, <의뢰인>이 장르에 완전히 몰입한 상업영화라는 점에서 상반된 듯하지만, 본질은 같다. 기저에 어떤 사건이 있고, 그 위로 사건을 둘러싼 담론들이 마구마구 쌓이면서 충돌하는 구조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의뢰인>을 어떻게 찍게 되었나?

손영성(이하 손) : <의뢰인>의 제작사에서 이춘형 작가의 시나리오를 보고, 내게 연락해왔다. 이런 법정영화는 <약탈자들>을 찍은 내가 만들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황 : 다들 알아보는 구나. 시나리오를 보았을 때 본인 생각은 어땠나?

손 : 제목이 마음에 들더라. 나는 ‘의뢰’를 받은 사람이다. 영화 속 변호사가 ‘믿고 안 믿고는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던가.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고, 나와 제작자와 관객들이 두루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약탈자들>은 친절한 영화가 아니고, 그게 매력인 영화이지만, 많은 관객들과 만나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황 : 법정이라는 곳이 굉장히 역동적인 담론의 각축장이고, 일종의 극장 같은 곳이지 않나? 법정드라마는 대단히 매력 있고, 지적인 장르인데, 그동안 우리나라엔 거의 없었다. 형사나 검사의 수사과정을 다룬 영화는 많았던 것과 비교하면 더 아쉽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손 : 이번 영화를 찍기 위해, 법정취재를 하고, 국민 참여재판도 참관했는데, 영화보다 더 영화적이더라. 살인사건 재판이었는데, 피의자가 부인하다가 검사가 시신 사진이랑 증거들을 보여주니까, 배심원들의 분위기가 순간 쏴~해지는 게 정말 드라마틱하더라. 법정영화가 없었던 이유는 배심제가 도입되지 못한 탓이 아닐까? 2008년부터 국내에 배심제가 일부 도입하긴 했지만, 결정권은 없다. 물론 배심제 자체도 감정에 호소한다는 등의 장단이 있긴 하지만, 배심제가 없었던 탓에 국민들은 사법적 판단에 민주적으로 참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아예 못하고, 관심도 적은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황 : 영화 속 배심제는 좀 형식적으로 그려져 있더라. 국내제도의 한계 때문인가?

손 : <의뢰인>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 그 대목이다. 배심제는 입체적으로 그리자면 드라마적 요소가 많다. 배심원 선임이나 표결과정 등등. 영화에서 빈약하게 그려진 건 제도적 한계가 있는 국내현실을 반영한 탓이기도 하지만, 검사와 변호사의 대결에 집중하기 위해 곁가지를 쳐냈기 때문이다. 영화 속 배심원들의 자리는 관객들이 채운다고 생각했다.

황 : 배우들의 연기는 어땠나? 난 장혁의 연기가 가장 인상적이던데.

손 : 장혁은 본인이 해보지 못한 절제된 연기에 도전하고 싶다고 자청했다. 하정우의 연기는 <멋진 하루>등의 모습과 좀 겹치는 면이 있지만, 자기 잘못을 수정하고 성장하는 모습으로 관객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인물의 묘사로 적당했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 다 멋지게 제 역할을 해냈다. 무엇보다 박희순은 가장 어려운 지점에서 영화의 균형을 훌륭하게 잡아주었다. 제일 고맙다.

황 : 변호사와 검사의 대립구도에서, 정황만으로 과잉 수사를 한 것이 옳지 않다는 게 핵심이다. 그런데 변호사 역시 과잉수사 논란으로 옷을 벗은 검사였다. 과잉수사에 대한 변호사의 입장은 정확히 뭔가?

손 : 시나리오 상에서 변호사는 검사시절 과잉수사로 피의자가 자살하고, 이에 대한 부채감을 지닌 캐릭터였다. 이를 생략한 건 난 이 영화가 전문직 드라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검사는 검사로서, 변호사는 변호사로 ‘롤 플레이’를 하는 것이다. 실체적 진실을 입증해야 하는 것은 검사이고, 변호사는 이 과정에서 절차적 정의가 실현되지 않으면 탄핵하면 된다.

황 : 맞는 말이다. 상황이 다 끝나고 나면, 검사는 ‘시체가 없는 사건’으로 무리한 기소를 할 게 아니라, 시체를 찾는데 더 집중했어야 한다는 당연한 결론에 도달한다. 이게 <형사 콜롬보>같은 형사물이라면, 시체는 어디 갔는지, 동선은 어찌 되었는지 브로커가 했던 수사를 형사가 했을 것이다. 검찰은 실체적 진실을 입증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무리수를 덮기 위한 ‘뻘짓’을 계속하느라 본질을 놓쳤다.

손 : 변호사가 주목하고 물고 늘어진 것도, 바로 검찰의 그 ‘삽질’이었고.

황 : 사실 모든 일이 지나고 나면 자명한데, 그 와중에 있을 땐 안보이고, 논란 위에 논란을 쌓는 형국이 되곤 한다. <약탈자들>도 실체적 진실은 허무하지 않나. ‘초라한 진실과 이를 둘러싼 허망한 담론’, 뭐 이런 주제와 구조에 계속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법정영화를 또 해볼 생각이 있나?

손 : 아니다. 법정영화는 이미 다른 분들이 준비하는 영화들이 많다. 요즘 관심이 있는 것은 인터넷 현상이다. 황우석 사건, 타진요, 미네르바 등등, 블로그나 SNS를 통한 담론의 형성과 유통 같은 것 말이다.

황 : 와우, 그 주제에 딱 맞는 소재인 것 같다. 우리나라야 말로 그런 영화를 찍기에 최적의 토양이고.

응답 3개

  1. 글쓴이말하길

    네 정말 오타입니다. 제목에 오타라니 ;; 담당자님은 고쳐주세요

  2. 애독자말하길

    앗 제목에 오타가 있는 거 맞죠? ^^
    피고인 -> 의뢰인
    순간 영화 이름이 바뀐 것인줄 알았어요~

  3. 애독자말하길

    앗 제목에 오타가 있는 거 맞죠? ^^
    ->
    순간 영화 이름이 바뀐 것인줄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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