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공방 통신

[3호] 커피 볶는 달팽이

- 기픈옹달(수유너머 R)

커피 볶는 달팽이

2호에서는 만두를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커피를 볶아볼까 합니다. 키보드 자판으로 ‘커피’라는 단어만 적었는데도 코 끝에서 커피 향이 나는 듯합니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의 알갱이는 원래 푸른색입니다. 로스팅 작업을 거쳐서 갈색으로 된 것을 갈아서 마시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커피가 원래 푸른색이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마시는 커피를 생산하기 위해 먼 나라의 농부들이 일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커피는 나무에서 열립니다. 꽃은 하얗고 작습니다. 열매는 녹색에서 익으면 붉은색으로 변합니다. 나무를 키우는 데 드는 노동은 차치하고 열매를 수확하는 부분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열매는 손으로 따는 방법과 기계로 훑어서 수확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기계가 워낙 고가이기 때문에 주로 온 가족이 동원되어 손으로 땁니다. 키 만한 광주리를 어깨에 메고, 작고 까만 손들이 빨간 열매들을 부지런히 따는 모습이 보입니다. 딴 열매는 물로 씻어 햇볕에 말립니다. 빨간 열매에서 과육을 벗겨내고, 다시 물로 씻은 후 햇볕에 또 말립니다. 커피의 운명은 항상 뜨거워야 하나 봐요. 씨앗의 껍질과 내피를 분리하고, 크기에 따라 분류하면 드디어 푸른 생두입니다!

앗, 커피를 볶기 전에 잠깐만요! 함께 나누고 싶은 노래가 있어요.

어느 문 닫은 상점. 길게 늘어진 카펫트 갑자기 내게 말을거네.
난 중동의 소녀 방안에 갇힌 14살 하루 1달러를 버는.
난 푸른 빛 커피. 향을 자세히 맡으니 익숙한 땀, 흙의 냄새. 난 아프리카의 신 열매의 주인 땅의 주인.
문득 어제 산 외투 내 가슴팍에 기대 눈물 흘리며 하소연하네. 내 말 좀 들어달라고.
난 사람이었네. 공장 속에서 이 옷이 되어 팔려왔지만 난 사람이었네.
어느 날 문득 이 옷이 되어 팔려왔지만
난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루시드 폴의 <사람이었네>라는 노래의 일부입니다. 저는 커피를 마실 때 마다 이 노래가 떠오릅니다. 과연 이 커피를 생산한 농부는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받았을까? 뛰어 놀고 싶었지만 억지로 커피 열매 따기에 동원된 아이는 없었을까? 자신은 마실 물도 부족하면서 판매할 생두의 세척을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물을 썼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 마음은 커피 색깔처럼 무거워지고 커피는 더욱 쓰기만 합니다.

다큐 사진들에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의 얼굴이 참 많습니다. 하얀 이가 눈이 부시도록 드러내며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 배고픔에 아무런 생기 없는 커다란 눈으로 렌즈를 보고 있는 얼굴, 혹은 렌즈를 바라 볼 힘조차 없어 땅을 보며 앉아있는 아이들…
저는 항상 그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버겁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 힘들고, 커다란 세계 구조 앞에서 너무나도 작게 느껴지는 제 자신 때문에 속상합니다. 알고도 모르는 척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다’라는 무책임한 말을 뱉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루시드 폴이 자신의 위치에서 담담하게 <사람이었네>를 노래하며 사람들을 사유하게 하듯이, 저도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행동하는 것이 맞겠지요. 혼자 하는 것은 힘들고 재미없어서 달팽이 공방 사람들하고 함께 찾아 행하고 있습니다.

커피 하나를 놓고 별별 생각을 다하네요. ^-^a 이것이 원두커피의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10초면 타서 마실 수 있는 인스턴트 커피로는 별별 생각이 불가능했을 겁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커피를 볶아보겠습니다.

비싼 커피 로스팅 기계가 있냐구요?? 아니오. 커피 볶는 전문가가 있냐구요?? 아니오. -_-;;;;;; (달팽이 공방에서 빵 굽고, 천연 화장품 만들고, 천연 비누 만드는 이들 중에 그에 대한 자격증을 소지한 이는 없습니다. 다들 무면허 야매) 덩치 크고 비싼 기계가 아니더라도 시중에는 커피 마니아들을 위해 100g 정도를 볶을 수 있는 기구(Roster)가 나와있어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3~4만원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다이*에서 파는 2천원짜리 깨볶기로도 대체 가능합니다.) 하지만 달팽이 공방에서는 한번에 300g까지 볶을 수 있도록 특수제작한 멋진 기계가 있습죠!!

1. 푸른 생두입니다. N카페에서는 공정무역으로 들어온 생두를 소비하고 있습니다. 요즘 마시는 커피는 동티모르와 치아파스예요. 엥?? 치아파스?? 사파티스타 민족 해방군이 있는?? 네!! 맞습니다. 혁명의 맛을 느끼고 싶으시다면 N카페로 오세요~ (혁명의 맛은 신맛이 강합니다)

2. 왼쪽이 100g 정도를 볶을 수 있는 로스터. 오른쪽이 300g 정도를 볶을 수 있는 기계입니다. 오른쪽 기계의 제작자는 웹진 1호 인터뷰에서 소개된 도영입니다. 생두를 넣는 은색통은 식당에서 다시 낼 때 쓰는 ‘다시통’이라고 합니다. 와우! 다시-기계가 로스팅-기계로 되었군요!!

3. 원두를 볶을 만큼 넣어준 후, 약한 불 위에서 힘차게 통을 돌려줍니다.

4. 팔이 저릴 때 즈음이면 원두들이 소리를 냅니다. 톡! 토톡! 이 때 나는 소리는 원두가 껍질 벗는 소리입니다. 1차 팝핑이라고 합니다.

5. 껍질이 기계를 빠져나와 펄펄 날리기도 합니다. 로스팅 후에 이 껍질들을 치우는 것이 살짝 귀찮기도 합니다. -_-;;;;;

6. 1차 팝핑 후 부터는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커피가 통에 닿으며 나는 차르르- 소리 때문에 2차 팝핑의 소리를 놓치면 곤란하기 때문이지요. 자칫 딴 생각하다가 이 친구들의 소리를 놓치면 원두도 까맣게 타고, 제 맘도 까맣게 탑니다. ㅠ_ㅠ

7. 2차 팝핑의 소리는 지글지글입니다. 기름이 나오는 소리예요. 어떤 커피를 보면 위에 기름이 떠 있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요 기름입니다.

9. 2차 팝핑의 소리를 들었다면 불을 끄고 남은 열로 볶아줍니다. 한 김 빠지고 식을 때 까지 키에 널어줍니다. 푸른 생두였을 때에는 삐쩍 말라보이던 아이들이 갈색의 원두가 되더니 통통해졌군요. 윤기도 흐르는 것이 참 귀엽습니다.

처음 커피를 볶을 때에는 ‘1차 팝핑까지 몇 분, 2차는 몇 분’ 이렇게 시간을 재가며 볶았었는데, 소용없습디다. 생두의 원산지마다 커피 모양과 크기, 수분 함유량 정도가 다른데다가, 볶는 장소와 볶는 날의 기온도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볶기 전에는 강하게 볶을 것인지, 약하게 볶을 것인지를 먼저 머릿속에 그려놓아야 합니다. 강하게 볶아서 기름이 좔좔 흘러나오면 쓴맛이 강하고요, 약하게 볶아서 조금 건조해 보인다 싶으면 원두 특유의 신맛이 강해집니다. 볶는 이의 취향에 따라서도 맛의 차이가 있답니다.

커피에는 신맛, 쓴맛, 단맛이 들어있다죠? 예전에는 쓴맛이 너무 강해 다른 맛을 느낄 겨를이 없었습니다. 공정무역으로 들어온 커피를 직접 볶아서 마시니 이제야 신맛, 쓴맛, 단맛이 느껴집니다. 가만히 앉아 마시면 쓴맛은 흙의 냄새, 신맛은 농부의 땀의 냄새, 단맛은 그의 웃음이었음을 온몸으로 알아차리게 됩니다. 언젠가는 검은 색의 커피를 마시면 잔 속에 검은 피부를 지닌 아이가 하얗게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아이의 뒤로는 아이가 수확했을 푸른 생두만큼이나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면 더욱 멋지겠지요!

추신: 공방의 달팽이들은 커피 볶을 줄 알뿐만 아니라, 판매할 줄도 압니다. 호호호. 방산시장에서 금박의 커피백을 샀기 때문이지요. 멋지게 밀폐도 됩니다. 밀폐는 와플기계가 수고해주고 있습니다. 이 아이 역시 와플 구울 때는 와플-기계, 커피 봉지 밀폐할 때는 밀폐-기계가 됩니다.

-글. 사루비아 달팽이

응답 4개

  1. 현민말하길

    린이 참 예쁘다. ^^ 엊그제는 함께 놀아서 반가웠단다…

  2. 고추장말하길

    린이 달팽이 공방의 도제 같아요 ㅋㅋ 장인들 옆에서 … 아니 혹시 마이스턴가? ㅋㅋ 커피 향이 여기까지 올라오는 듯해요.

  3. 헹인 2말하길

    와, 커피 맛에 이런 깊은 사연들이 숨어 있었군요. 혁명의 맛은 시다. 소리를 놏치면 타고 만다. 볶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대목들이 크게 와 닿습니다. 근데, 저 귀여운 아이는 누구?

    • 물범말하길

      2호에서 만두 만들기 할때 훼방꾼으로 나왔던 바로 그 꼬마입니다. 이번엔 커피 볶기에 도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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