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노동잔혹사

<실업 급여>

- 김민수(청년유니온)

*(늘 그래왔듯) 청년유니온 조합원의 이야기를 각색해서 끄적인 글입니다.

“천국이 어디 갔니?”
“천국이, 알바 갔어요!”

마트 알바 천국이, 카페 알바 천국이, 서빙 알바 천국이… 요즘 시중에 떠도는 광고홍보물 중에 가장 짜증나는 녀석을 선정해 보라면, 바로 이 알바천국 광고가 아닐까? 유명 연예인이 등장해서 뺀질뺀질 거리며 알바 스펙트럼을 나열하는 형상을 보자니, 솔직한 심정으로 TV 브라운관을 부숴버리고 싶다. (이 분의 팬들께는 죄송한 심정이다.)

천국이가 최저임금에 준하는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제껴 놓자. 천국이의 80% 이상이 주휴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일단 차치 하자. 꼰대들이 상상하는 아르바이트에 대한 판타지 만큼이나 천국이의 노동강도가 낮지 않다는 사실도 접어 놓자.

이 지면을 빌어 내가 궁금한 사실은 단 한 가지이다.

카페와 마트, 레스토랑과 주유소, pc방을 전전하며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시달렸을 천국이는, 퇴사 이후에 국가가 보장하는 실업급여를 받았을까? -내가 가진 경험적, 통계적 근거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우선, 내가 가진 경험치이다. 내 나이 올해 스물 여덟. 또래 친구들이 학업과 스펙에 매진하며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감수성에 젖어 ‘정의란 무엇인지’ 고민하는 동안, 녹록치 않은 가정형편으로 말미암아 ‘체험 삶의 현장’에 몸 담은 나는 ‘생활의 달인’이 되었다.

나열하기도 귀찮은 온갖 잡다한 일용직 노동부터, 일식 레스토랑, 쌀국수 프렌차이즈, 케익 공장, 수제 개사료 공장… 한 시대를 풍미한 온갖 노동을 경험한 나는, 단 한 번도 국가란 녀석이 제공하는 사회안전망을 누려 본 적이 없다. 고용보험? 그건 먹는 건가. 실업급여? 솔직히 이런 제도가 있는지도 몰랐다.

나의 사례가 너무 극단적이라고 생각하는, ‘객관적인’ 당신을 위해 도표와 그래프에서 산출한 통계적 근거를 들먹이도록 하겠다.

우선 2010년 통계청에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15~29세에 해당하는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중 사회보험(특히 고용보험)에 가입 되어 있는 비율이 50%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 되었다. 주당 근로시간이 15시간을 넘기는 모든 근로자를 ‘필수적 가입대상’으로 하는 사회보험의 가입률이 이토록 저조하다는 것은 참으로 난해하다.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으로부터 자라나는 미래 세대를 보호하기 위한 어버이들의 애국적 신념이 엿보인다.

다음은 청년유니온과 함께 일하는 재단에서 ‘청년층 대안적 사회안전망’을 연구하기 위해 15-34세의 청년층 300여 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조사를 인용한다. 조사 대상 중 이전 직장에서 1년 미만으로 근무한 비율이 75%에 이르며, 현 직장으로 이직하며 고용형태가 개선(비정규직 -> 정규직) 된 비율은 20%에 못 미친다. 이직 후 미취업 한 기간이 6개월 미만인 근로자의 비율은 70%에 육박하며, -조사 대상자 중 미취업 기간 동안 실업급여를 수급한 경험이 있는 비율은 단 13.5%에 불과하다.

불안정한 근로조건과 적성 불일치, 불확실한 전망 등으로 인해 현 직장에서의 근속 기간이 절대적으로 짧지만, 청년층의 절대 다수는 사회안전망으로부터 배제 되어 있다. 따라서 충분한 휴식과 취업 준비 기간을 보장받지 못한 이들의 대다수는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곧바로 취업 시장에 진입하며, 결과는 불안정한 고용형태의 고착으로 이어진다.

아 썅. 이거 내 이야기이다.

나는 1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며 청년실업률을 낮추는 데에 기여했으며. 국가의 부름에 이끌려 총도 잡아 보고 영창 구경도 해 봤지만, 단 한 번도 국가가 떠 먹여 주는 밥을 먹어 본 적이 없다.

쳇바퀴 돌 듯 달려 온 먹고사니즘의 시간들로부터 사무친 회한이 밀려온다. 칼날로 손가락을 쓸어내면 당장의 피 맺힌 고통보다, 내일의 끼니를 걱정하는 절망이 더 가까웠다. 더 나은 내일을 열망하는 가슴에게 ‘사회 경험’에 익숙해진 머리는 끝없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런 나에게 절실했던 것은 한줄기의 휴식이었으나, 휴식은 축복이었으며, 이 땅의 청년들에게 축복은 허락되지 않았다.

수 많은 음주와 흡연에 따른 간접세 지불을 통해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지분을 일정 수준 보유하고 있는 국민으로서, 나는 국가에 명한다.

청년들을 쉬게 하라.

도대체가 뇌를 사용하지 않는 그대들을 위해 방법도 알려드리겠다.

‘사회보험 가입률’과 ‘실업급여 수혜 경험률’을 100으로 만들라.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응답 1개

  1. 깨어나기말하길

    청년들을 쉬게하라! 참담한 현실을 반영한 구호 화끈하고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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