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가 특집

카프카 – 출구로서의 글쓰기

- 지연

“나는 멋진 상처를 안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던 카프카. 그의 문학적 토양이 되었던 멋진 상처란 바로 ‘아버지’이다. “모든 글은 아버지를 상대로 해서 씌어졌다”고, 그리고 그건 “오랫동안에 걸쳐 의도적으로 진행된 아버지와의 결별 과정”이었다고 했을 만큼, 카프카의 삶과 작품에서 아버지-세계는 끝까지 그가 대면했던 문제였다.

그렇다고 해서 카프카의 아버지가 대단히 폭압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가부장적 아버지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카프카는 아버지-세계에 현미경을 들이대며, 한통의 긴 편지를 쓴다.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것은, 아버지의 세계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자신의 긍정이고, 그럼으로써 가능한 ‘아버지-세계의 반복적 고발’이다.

출구

카프카가 아버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글쓰기였다. 하지만 출구로서의 글쓰기를 발견하기까지, 그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그것은 끈질긴 대면의 과정이었다. 카프카가 연인들에게 보낸 수 백통의 편지는 이 끈질긴 대면으로 읽힌다. 편지 속에서 카프카는 자신의 존재론적인 불안을 대면하고, 세계를 대면하고, 그 속에서 꿈틀거리며 나아간다. 그것은 궤짝 속에 갇혀 출구 없음을 대면하고, 궤짝 안에서 출구를 내는 것이다. 카프카는 자유가 아니라 출구를 원했다. 글쓰기만이 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자유와 출구는 어떻게 다를까?

“저는 제가 출구라는 말로 뜻하는 바가 제대로 이해되지 못할까봐 걱정이 됩니다. 저는 이 단어를 그것의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완전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자유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사방으로 열려진 자유의 저 위대한 감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 인간들 사이에서는 너무도 자유라는 말로써 기만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유가 가장 숭고한 감정에 속하는 것처럼, 그에 상응하는 기만 역시 가장 숭고한 감정에 속합니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카프카에게 자유는 기만에 불과했다.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자유라는 이름의 환상이 아닐까. 아버지로부터 멀리 멀리 벗어나는 길 대신, 카프카는 평생 아버지 옆에 착 달라붙어 있는 길을 택한다. 결혼은 아버지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세 번의 파혼으로 끝나고 마는 것은, 결혼이 아버지로부터 벗어나서 또 다른 아버지가 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카프카는 아버지를 벗어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결혼 대신 글쓰기를 선택한다. 여기서 딜레마는 ‘확실하다’는 것에 있다. 결혼은 너무 확실한 방법이고, 아버지로부터 멀리 벗어난다는 것은 오히려 너무 가까워지는 것이 되고 만다. 그러니 완전한 극복, 자유는 얼마나 기만적인 말인가. 카프카는 오히려 철저히 집요하게 자신의 현실적 무능과 불안을 대면하는 쪽을 선택한다. 아버지-세계에 착 달라붙어서. 그게 카프카가 말한 출구다.

꿈틀거림

“그렇습니다. 저는 자유를 원치 않았습니다. 단지 하나의 출구만을 원했습니다. … 그 출구가 하나의 착각일지라도 말입니다. 요구하는 것이 작으니 착각 역시 그보다 더 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전진, 전진! 궤짝 벽에 몸을 밀착시킨 채 팔을 쳐들고 가만히 서 있지만은 말아야 합니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에서 궤짝에 갇힌 원숭이는 자물쇠를 끊고 도주하는 대신, 궤짝 속에서 출구를 마련한다. 오랫동안 인간을 관찰해서 흉내 내기 시작한다. 악수를 하고, 침을 뱉고, 파이프를 물고, 독주를 들이킨다. 인간-탈출구를 마련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관찰’과 ‘모방’이었다. 원숭이가 궤짝 벽에 몸을 밀착시킨 채 전진하듯이, 카프카는 아버지-세계에 달라붙은 채, 출구를 만든다. 아버지로 가득 찬 세계 지도 위에 가족주의 삼각형을 반복해서 그려 넣는다. 가족주의 삼각형-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관료제, 법, 권력으로 계속 변형되고, 반복되어 세계 전체로 확대된다. 아버지 세계에 달라붙어 아버지의 세계 속에서 출구를 만드는 작업, 그것이 그의 글쓰기다.

카프카의 소설은 늘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미끄러진다. <만리장성의 축조>에서 성의 전체는 결코 파악할 수 없으며, <법 앞에서>의 시골사람은 죽을 때까지 법 앞에 머물러 있으며, <황제의 칙명>의 칙사도 성곽의 가장 바깥문을 열고 성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출구는 도주를 통해서가 아니라 출구 없음을 대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카프카의 소설 속 인물이 종종 현실에 순응하거나 체념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봉쇄당한 출구, 출구 없음으로부터 카프카의 출구는 시작된다. 궤짝 안에서 관찰과 모방을 통해 인간탈출구를 마련하는 원숭이처럼, 카프카는 아버지-세계의 관찰과 모방을 통해 역설적으로 아버지-세계로부터 탈주한다.

응답 1개

  1. 탱탱말하길

    출구없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출구라.. 카프카의 출구는 생존과 결부되어 있는 듯 합니다.
    ‘아버지세계의 관찰과 모방으로 아버지세계로부터 탈출한다.’ 라는 말도 인상적이예요. 관찰과 모방이 아니라면 어떻게 출구를 가져올 수 있는지 도리어 묻게 하는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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