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노동잔혹사

<150만원의 쓰임새>

- 김민수(청년유니온)

*등장인물은, 애석하게도(?) 가명입니다.

김혁민(28) 씨는 2010년 8월 까지 홍대에 위치한 프렌차이즈 커피숍에서 시간당 4500원에 40시간 풀타임 노동으로 입에 풀칠했다. 애석하게도 언제까지 이렇게 생활할 수는 없다는 판단을 내린 그는, 2010년 10월에 한 중소 무역업체에 1년 계약직 사무보조 업무로 취직했다. 이력서를 넣었고, 다음날 형식적인 면접을 봤고, 그 다음날부터 나오라는 간결한 과정이었다. 전담할 부서와, ‘보조’해야 할 사무가 대체 무엇인지는 누구로부터도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부적절해 보이지만, 할 수 없다. 사회 생활이 다 그렇지 뭐.

그는 난생 처음(!)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지난 6년 동안 커피숍과 레스토랑, 호프집을 전전하며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로 살아 왔으나, 그럴듯한 서면 근로계약서에 자기 이름을 또박또박 새겨 넣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었던 것은 임금 항목에 적혀 있는 숫자였다. 여태껏 90만원이 넘는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는 그의 입장에서 볼 때, 대단한 신분상승이 아닐 수 없었다.

급여 : 월 135만 원

그가 급여항목 옆 괄호 안에 작은 글씨로 적혀진 문장을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이 취업이 결코 신분 상승이 아니었음을 판단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2010년 10월 : 초반이라 그런지 별다른 업무가 없다. 간혹 이루어지는 깨알같은 회식으로 인해 간에 부담이 되었으나, 9시 출근하여 6시 퇴근하는 칼같은 나날의 연속이었다. 월말에 통장으로 135만 원이 입금 되었다.

-2010년 11월 : 회사 분위기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자 오히려 업무량에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내가 책임지는 전담 업무가 없다보니, 모든 부서에서 발생하는 온갖 사무 잡일을 처리해야 했다. 저녁 8시 퇴근은 대단한 선방이었으며, 대개 10시가 다 되어서야 퇴근 할 수 있었다. 월말에 통장으로 135만 원이 입금 되었다.

-2010년 12월 : 연말 결산과 겹쳐서 충격과 공포의 업무량에 시달리고 있다. 정규직 동료들은 연말 분위기 내며 유유자적 칼퇴신공을 보이는데, 이상하게 나만 바쁘다. 10시 퇴근은 당연지사이며, 며칠 전에는 새벽 1시까지 일하기도 했다. 월말에 통장으로 135만 원이 입금 되었다.

어처구니 없지만, 위의 사례는 모두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가 집고 넘어가지 못하고 서명한 근로계약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급여 : 월 135만 원 (이 금액은 연장,야간 근로에 따른 추가 급여 및 수당, 연차휴가 미사용에 따르는 연차휴가 수당이 포함 된 금액입니다.)

우리는 이런 개떡같은 계약조건을 두고 ‘포괄임금 산정제도’라 부른다. 이는 법률이나 시행령이 아닌, 대법원 판례에 근거를 두고 있다.

사업의 업종 또는 노동자의 근무형태에 따라 연장근로 시간수를 확정하기 어려운 경우 정액수당으로 지급할 때 그 금액이 실제 연장근로에 대한 가산임금보다 높은 경우에는 근로기준법 제2조에 따라 유효하다고 본다(대법원 1982. 3. 9. 선고 80다2384 판결)

쉽게 말해서, 연장 혹은 야간 근로가 불 보듯 뻔히 이루어질 근로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수당을 ‘퉁’쳐서 포함한 월급(혹은 연봉)으로 근로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대법원은 ‘이 방식으로 지급되는 급여가 실제 연장근로에 대한 가산임금 보다 높아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포함함으로서 ‘공평무사한 판례’를 남겼을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 당신은 한 기업체의 사장이고, A를 고용했으며, 그에게 월 150만 원을 지급한다. 당신은 A를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까?

1.매일 9시 출근, 10시 퇴근을 강제한다. A는 매주 60시간 노동한다.

2.매일 9시 출근, 8시 퇴근을 강제한다. A는 매주 50시간 노동하고, 휴가는 모두 반납한다.

3.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휴일 없이 매일 8시간 일을 한다.

①법정근로시간인 8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에 대해서는 근로자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던지, ②1주일에 1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를 시킬 수 없다는, 어설픈 법 규정은 무시하자. ‘사회 생활은 다 그런거야.’라는 마법같은 주문(혹은 협박?)과 함께 무력화 될 강행규정이므로. -사업주가 위의 2가지 장애물(?)을 무사히 통과한다면 앞서 서술한 3가지 사례는, 모두 ‘적법’하다.

A는 자신의 근로조건(1 혹은 2 혹은 3)이 터무니없이 부당함을 느끼고 근로감독관에게 신고한다. 근로감독관은 사업주를 앉혀놓고 경위를 묻는다. 사업주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A의 통상시급은 4320원(최저임금)이며, 그는 포괄임금 산정방식의 근로계약에 동의했다.”

사업주의 ‘무혐의’가 인정되며, ‘적법’하게 귀가한다.

보았는가? 150만원으로 ‘인간 자유이용권’을 구입하는 방법이다.
꼼수는 청와대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응답 1개

  1. tibayo85말하길

    글쿤요. 간명하네요. 간명하게 잔혹하네요. 150만원으로 ‘인간 자유이용권’을 구입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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