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꼼

타운 3부작에 이어 차기작 <바라나시>를 부산영화제에 출품한 전규환 감독을 만나다

- 황진미

전규환 감독은 2008년부터 <모차르트 타운>, <애니멀 타운>, <댄스타운>을 연년생으로 뽑아낸 다산의 감독이다. <애니멀 타운>이 4월에 개봉된데 이어, 9월 1일에는 <댄스타운>이, 9월 15일에는 <모차르트 타운>이 개봉되었다. 3년 치 농사를 한해에 수확한 셈이다. 해외 반응은 더 뜨겁다. <댄스타운>이 스페인 그라나다 영화제와 미국 달라스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데 이어, 9월 말에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전작전이 열렸다. 최근 아일랜드, 터키, 스톡홀름 영화제에도 초청받았다. 작년영화제에서 <애니멀 타운>을 보고 팬이 된 황진미 평론가가 전규환 감독을 만났다.
황진미평론가(이하 황) : 개봉에, 수상에, 감회가 남다르겠다.
전규환감독(이하 전) : 해외영화제 수상은 기분만 좋지 별 의미는 없다. 상금이 좀 되면, 제작진들 회식하는거구. 현대미술관 전작전은 이례적인데, 그쪽 관장이 베를린 영화제에서 <댄스타운>을 보고, 타운시리즈 특별전을 열고 싶다고 보내달라더라.
황 : 벌써 새 영화를 찍어서, 부산영화제에서 상영한다고 들었다.
전 : 부산영화제 출품작은 <바라나시>라고, 일종의 멜로이다. 제목은 힌두교 성지인 갠지스 강가의 지명이다. 거기서 35%쯤 찍었고, 서울에서 65%를 찍었다. 위선적인 출판사대표와 여성작가, 그리고 이슬람 폭탄테러리스트가 나온다. 11월에 촬영에 들어가는 새 영화 <무게>는 꼽추(척추장애인)이 나오는 영화이다.
황 : 정말 대단하다. <바라나시>는 TV 연기자 윤동환씨가 주연이라 들었다. 타운시리즈엔 배우들이 반복적으로 나왔다. 이들 연기도 참 좋았는데, 이제 배우 군이 바뀌는 건가?
전 : <애니멀 타운>의 이준혁이나, <댄스타운>의 라미란은 여러 영화에 조단역으로 많이 나왔던 배우들이다. 내 영화에선 이들의 새로운 모습을 끌어내고자 많이 노력했다. 자꾸 과장되게 몸을 쓰고 판에 박힌 연기를 하려는 걸 많이 억제하였다. 윤동환이라는 배우는 참 흥미로운 사람이다. 사회문제나 종교철학에도 관심이 많고.
황 : 감독님은 배우 매니지먼트 하면서, 촬영장 구경한 게 전부라고 들었다. 단편을 찍지도 조연출을 거치지도 않은 채 장편을 이렇게 계속 찍는 게 가능한가? 감독지망생들이라면 몹시 궁금할 노릇이다.
전 :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는 많이 봤다. 영화 찍고 싶으면, 아무 카메라나 들고나가 찍으면 된다. 스마트 폰도 가능하다. 문제는 감독지망생들이 ‘어떻게 하면 저 돈을 주어먹을까’하는 마음으로 영화판을 바라보니까 어려운 거다. 내 영화는 국내 주요 관객층인 20대 정서에 맞지 않아서, 투자가 어렵다. 개봉을 해도 교차 상영되기 때문에 관객을 만나기 힘들다. 이건 시장논리에선 어쩔 수 없다. 그걸 보완할 법과 문화정책이 있어야 하는데, 국내문화정책은 20대 중심의 한류에만 치중한다.
황 : 우리나라 멜로는 20대가 나오지만, 정서는 거의 10대 수준이다. 그에 비하면 감독님 영화는 확실히 19금이다. 노출수위를 말하는 게 아니고, 정서가 그렇다. 감독님 영화에서 섹스는 쾌락이나 금기의 문제가 아니고, 죄다 쓸쓸함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모차르트 타운>에서 여주인공이 모텔에서 콘돔 들고 우는 장면이나, 마담이 자기 엉덩이를 잡고 자위하는 남자를 돌아보는 장면 등이 그렇다. ‘섹스를 한다, 만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할 수도 있지만, 합일되지 않는 섹스는 쓸쓸하단 얘기다. 반면 <댄스타운>에서 남편이 정림과 누워 “임자몸은 참 부드러워. 냄새도 좋구”라고 말하는 건 어떤 에로틱한 수사보다 살갑더라.
전 : 역시 40대라서 40대의 정서를 알아보는 구나! 해외영화제에선 중장년층 관객들이 많아서, 이런 대화를 하며 서로 배우는 게 참 좋더라.
황 : <애니멀 타운>에서 소아성범죄자를 보는 시선이 참 엄정하더라. 그의 딱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마지막 순간 카메라는 그를 연민하거나 애도하지 않는다. <댄스타운>에서 탈북여성을 바라보는 시선도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 북한의 부부싸움 장면은 가부장적 억압과 수령님 사진으로 대표되는 국가적 억압이 한꺼번에 느껴지고, 남한에서 경찰의 대사엔 탈북민을 일종의 이주노동자로 보는 시각이 표출된다.
전 : 애도는 딱한 모습을 비춘 것으로 다 했으니 필요 없지. 탈북민은 내가 서울에서 영화를 찍었으니 탈북민이지, 파리에서 찍었으면 이주노동자였을 것이다. 다르지 않다.
황 : <댄스타운>에서 국정원 여직원은 편모와 살고, <모차르트 타운>의 조율사는 편부와 산다. 이유가 있나?
전 : 생각해봐라. 나이 든 자식이 편부모랑 함께 사는 게 얼마나 쓸쓸할지. 사람들이 외롭다고 하면, 주로 혼자 사는 걸 생각하는데, 혼자 살면 외로움을 발산할 수나 있지. 잔소리하는 편부모, 말도 잘 안통하고, 지긋지긋하지만 헤어질 수도 없고, 미치는 거다.
황 : 다중 플롯으로 여러 인물들을 사슬처럼 보여주는 영화들은 꽤 있지만, 이들이 하나의 그물처럼 보인 영화는 타운 시리즈가 유일한 것 같다.
전 : 다른 영화들이 인물에 집중하는 반면, 나는 인물이 빠져나가도 남는 관계나 배경에 주목하니까.
황 : 도시라는 생태계를 하나의 군집으로 바라보는 인류학적 시선이 돋보인다. 그런 시선으로 멜로를 찍었다니, <바라나시>가 정말 궁금하다. 부산 영화제에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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