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노동잔혹사

<휴업수당>

- 김민수(청년유니온)

글을 좀 미리미리 써놓으면 참 좋을텐데, 나의 천부적인 게으름은 그런 사태를 용납하지 않는다. 결국 원고 마감일이 닥쳐와서야 대뇌가 활성화 되곤 한다. (‘monthly 수유너머’로 운영하실 생각은 없으신지 ^^; 아무튼 웹진 운영하시는 분들게는 죄송한 마음을 전해드린다.) 우선 소재부터 잡기 위해 한 주간의 기억을 더듬어야한다. 일상에서 등장하는 헛소리들, 가슴 아팠던 뉴스 기사, 진솔한 취중진담… 마땅치 않으면 할 수 없다. 최후의 보루인 근로기준법을 뒤적거린다. -옳거니, 하나 건졌다. 이번에는 근로기준법 제 3장 46조 말씀이다.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휴업하는 경우에 사용자는 휴업기간 동안 그 근로자에게 평균임금의 100분의 70 이상의 수당을 지급하여야 한다.’

모든 법률이 그러하듯(?) 조문만 읽어봐서는 도통 감이 오지 않으니 실제 사례를 묘사해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와 함께 커피숍에서 일했던 동료 직원 A의 이야기이다.

2009년, A는 계절음료 프렌차이즈 매장에서 근무했다. 여기서 계절음료라 함은 ‘얼음과 함께 갈려 시원하게 나오는 음료’를 말한다. 고상한 표현으로는 ‘스무디’라 일컬으며, 구수한 발음으로는 ‘슬러쉬’를 연상하면 쉽겠다. 여름에 불티나게 팔리고, 겨울에 손님 뜸한 그런 장사인 셈이다.

(이야기 흐름이 전래동화 느낌이라 조금 민망하지만) A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아침에는 재료를 손질하고, 오후에는 불티나게 음료를 갈았습니다. 물론 불티나게 설거지도 했고요. 낮에는 진상 손님이 괴롭히고, 저녁에는 동료 직원과 상사의 눈치가 보였지만, 그래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통장에는 최저임금이 찍히고 주휴수당은 안 찍혔지만, 그래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원래 청춘은 아픈거지요~ 사회생활이 다 그런거지요~

자, 상황은 비가 촉촉하게 내린 어느 흐린 날에 벌어진다. 딱 봐도 이런 날은 스무디 음료의 매출이 저조하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고뇌하는 점장의 의중을 알아챌 수 없는 A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천진난만하게 출근한다. 그런 그에게 점장은 멋쩍은 웃음과 함께 음료를 손에 쥐어준다. 그리고 나직이 말한다.

“미안하다. 오늘은 손님이 없을 것 같네. 들어가 쉬고, 내일 보자.”

상사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는 ‘아픈 청춘’ A는 당혹스러움을 뒤로하고 귀가한다. 이런 사태가 누적되어 월급통장은 꼬박꼬박 3~4일 씩 펑크가 나고, 결국 교통비만 축낸다.

다시 근로기준법 46조 말씀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주장한다.

‘A는 휴업수당을 받아야하는 것이 아닌가?’

A는 자신이 고용 된 매장과 일정 수준의 근로시간, 즉 일정 수준의 임금 수준을 두고 계약을 맺은 것이다. 그것이 설령 최저임금 수준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사업체의 비용절감을 위해 매출이 저조할 것으로 판단 되는 날에는 노동력을 제공하지 못하였으며, 결국 그의 임금수준은 보호되지 못했다. 별책부록으로 생계까지 위협 받은 것은 당연하다.

근로기준법 46조는 이러한 상황으로부터, 근로자의 임금 수준을 보전해주기 위함을 목적으로 제정 된 법률이 아니던가? 대한민국의 법률이 이러한 청년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보호해주지 못한다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위와 같은 청년들에 대한 근로기준법 46조의 적용을 강력하게, 재탕해서 주장하는 바이다.

어떤 분들은 ‘근로기준법 46조’에 묘사 된 ‘사용자의 귀책사유’에 눈길이 가실지도 모르겠다. 대체 어디까지를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보고 휴업수당을 인정해 주어야 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다분하다. 글을 쓰고 있는 필자 또한 법률적 지식이 부족하기에, 관련 된 판례와 해석을 언급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주목할 점은 ‘불가항력적 천재지변’이 아닌 이상에야 어지간해서는 ‘사용자의 귀책사유’를 인정했다는 점이다. ‘휴업수당’이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부터 근로자의 임금 수준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 된 조문이라는 사실이 재차 확인된다.

‘고용기간의 정함이 있는 근로계약에서 사정변경으로 작업량이 줄어들었다면 휴업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1969.3.4, 대법 68다1972)’

‘제품 판매 부진 및 자금난으로 인한 휴업은 사용자의 귀책사유에 의한 휴업이다. (1968.1.5, 기준1455.9-12)’

‘화재로 인하여 공장을 이전하는 기간은 휴업수당을 지급해야 한다(1980.2.13, 법무811-3396)’

A의 휴업수당 수령은 과연 합리적이고 타당한가에 대한 고민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과 천천히~ 함께 나누고 싶다. 모쪼록 청년노동 시장에서 사문화 되어 있던 근로기준법 46조에 대한 긍정적인 논의와 조명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여담이지만, 조남호 회장은 ‘경영 악화와 실적 부진’을 근거로 정리해고를 감행할 것이 아니라, 근로자들에게 휴업수당을 지급하면서 ‘닥치고 반성’했어야 옳다. 하루속히 정의로운 결과와 함께 김진숙 지도위원께서 내려오시길 바란다.

응답 1개

  1. 말하길

    법이 지배하는 세상도 무섭지만 법으로 명시된 권리조차 내팽개쳐지는 세상 참 치사하고 더럽네요. 근로기준법 46조. 명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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