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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만필

서툰 농사꾼의 변.

- 김융희

나는 농사꾼이 아닙니다. 요즘 사이비가 많은 어수선한 세상에 태어난 엉터리 농사꾼으로, 서툰 농사꾼도 못 됩니다. 아버지께서 농부시었고, 나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어찌 살다보니 텃밭이 조금 딸린 시골집에 살면서 자급용 먹거리로 3, 4 백평에 채소를 가꾸고 있습니다. 그것도 몇 년 전의 근래에 시작한 일입니다. 그러면서 마치 농사의 달인처럼 농사꾼으로 행세하면서 주저없이 농사일지를 연재까지 하고 있는 엉터리 올시다. 오직 참과 진실뿐, 농부는 거짓을 모릅니다. 지극히 착하고 부지런합니다.

농부인 아버지는 땅에 떨어진 한 알의 곡식을 보고서도 줍지 않으면 하늘을 들먹이시며 몹시 나무랐습니다. 아버지는 동이 트면서 벌써 들녘에 나가시면, 저녁 어스름에서야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근본을 중히 여기시며, 본심을 갖추시고 거짓을 모르며, 조그만 틈도 없이 계속 꼼지락거리면서 삶의 일관성을 유지하신, 아버님은 참 농부이셨습니다. 따라서 내가 지금 감히 근면한 농부연하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일입니다.

비로소 지금에야 삶과 세상 물정을 어지간히 이해하는 경지에서 새삼스러이 아버님의 모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그립습니다. 당시 아무리 어렸기로 농삿일은 물론 집안 일에 손도 까딱치 않고서 철없이 지냈던 일이 지금은 깊은 회한으로 사무칩니다. 이제야 여름날의 뙤악볕에 새카맣게 탄 얼굴에 피가 마르고 뼈가 녹는 듯, 고되고 힘든 들일을 마다하지 않고, 매일 장포에 매달려 작물을 거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서툰 농사군도 못된, 농부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나도 농부가 되고 싶습니다. 이제부터는 나의 애정어린 작물과 더불어, 생이 다 할 때까지, 농사꾼으로 살고 싶습니다. 지극으로 바라는 나의 염원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나를 농사꾼으로 인정치를 않습니다. 주위의 곱지 않는 시선에 집안에서도 나를 한사코 말리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들일(농사)보다 더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나에 대한 주위의 시선인 듯 싶습니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으렵니다. 수 많은 뭇생명들이 천군만마의 든든한 원군으로 나의 이웃이요 벗이 되어 함께 하고 있는데, 그 무엇이 두렵고 문제가 되겠습니까?

한낮의 작물들은 나의 고된 모습이 안타까워 고개를 숙이며 시큰둥하고 지냅니다. 나도 이런 그들을 마주보기가 매우 민망스럽습니다. 목이 마른가 싶어, 해질 녘이면 물을 듬뿍 뿌려줍니다. 이른 아침 이슬을 털며 장포에 내려서면, 나의 고됨을 위로라도 하는 듯, 밤잠도 설치며 쑤욱 자라서 생기 넘치는 얼굴로 나를 맞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흐뭇하기만 합니다. 나의 일과는 이렇게 시작되며, 이것이 서툰 농사꾼의 일상사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내 장포에서는 더불어 살고 있는 생명체들의 주관자는 농사꾼인 내가 올시다. 토양이요 대지라 부르는 흙의 땅은 뭇생명체의 공동살이 삶터입니다. 이 토양에 우리의 먹을거리인 작물을 가꾸어 거두는 것이 농삿일입니다. 먼저 흙을 관리하여 물기가 밴 보드라운 토양을 만들고, 그곳에 씨를 뿌리면 작물은 싹이 트면서 갓 태어난 아기처럼 보호를 받으며 자랍니다.

그런데 농부의 마음처럼 작물들이 뿌린 씨앗만의 군락을 이뤄 자라주지는 않습니다. 흙에는 여러 생물들이 아우르며 살고 있어 끼리끼리 먹이사슬을 이루고, 그것들은 서로 얽히고 설킨 먹이그물을 이룹니다. 흙의 세계인 토양생태계는 생각보다는 훨씬 복잡하고 놀라운 세계입니다. 작물에서 잡초까지의 뭇식물로부터, 단세포의 세균, 곰팡이와 원생동물과 같은 토양미생물과, 고등의 선형동물인 땅강아지며 개미 등, 환경동물인 지렁이와 땅두더지, 들쥐와 같은 포유동물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생명체가 서로 뒤섞여 함께 살고 있습니다.

작물을 튼실하게 가꾸어 좋은 먹거리를 만드는 것이 농사꾼의 능력입니다. 작물을 기르는데 방해가 되거나 불필요한 것은 모두 가차없이 제거해야 합니다. 잡풀은 물론, 작물에 먹거리를 제공하고 조리하는 고마운 세균이나 지렁이까지도 방해가 되면, 사정없이 박멸하는 것이 재배자의 능력입니다. 인간세계처럼 토양생태계에서도 지배자라는 존재는 뭇생명을 짖누르고 박멸하는 살생자입니다. 약자나 불필요한 것이 도태되는 것은, 모든 생명체의 숙명이요 본질이며 한계인가 싶습니다. 이것이 착한 농부의 고민이요, 지배자의 시련입니다.

배추밭에 똘갓이 나타나 무성하게 자라며 배추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본디는 똘갓을 뽑아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너무 탐스럽게 자라는 갓이 아까웠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갈등의 현장이요 실정입니다. 불필요한 것은 철저하게 배제되는, 이곳은 함께 어울려 더불어 사는 삶이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요즘 생물의 성장에 좋은 날씨가 계속되면서 작물들의 기가 펄펄 섭니다. 풀속에 덮여 비실대던 줄기가 다시 기를 펴고 자랍니다. 호박이 열리며, 살아남는 고추며 가지도 주렁 주렁 열리고, 무 배추와 같은 소채작물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오히려 지나친 욕심으로 인해 결실을 감당치 못해 호박이 떨어지고, 가지가 쇠하며, 고추도 지탱이 버거워 보입니다.

거둔 작물이 자급용으로는 너무 많아, 넘친 작물을 포장해 가까운 친지들께 보내드립니다. 이럴 때 농사꾼은 그저 즐겁고 흐뭇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입니다. 혹자는 ‘농사를 지으면 수익이 있어야지, 죽 써서 개 주는 짓거리를 왜 하느냐’고 닥달입니다.

본디 농사란 자기 먹거리의 장만이었습니다. 먹고 남으면 이웃과 나누며 사는 삶, 그것이 농심입니다. 내 먹거리로 실컷 들고서 여유가 있으면 가까운 이들과 나누는 것이 문제라니! 나는 도대체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세상사입니다.

오늘날 농부들의 참상을 봅니다. 평생 땅만 바라보며 흙과 더불어 살면서 자식들 가르치고 시집장가 보냈던 천생의 농부가 변했습니다. 착하고 순박했던 농부가, 이제는 아니라며 도시의 자식들을 따라 비좁은 아파트에서 겨우 허리를 걸치고 지내면서, 며누리 손자들 눈치속에 짹소리도 못하고 빈둥대는 꼴이 되었습니다. 비록 천생 팔자가 누룽질망정 이것이 본디 그 착하고 부지런했던 농부였을까, 땀 흘리기 싫어 빌어먹는 불한당보다 못한 금수짓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나이며 우리들이라는 씁쓸한 자괴지심마저 든다면 제 생각이 지나친 것일까요.

우리는 지금, 그 알량한 문명의 혜택이나 돈 맛의 향수를 잊어야 합니다. 그리고 누구를 위함도 아닌 나를 위해 어서 본디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직은 쓸만한 삭신일 때. 환경 좋고 경개도 좋은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 팔다리를 계속 움직거리며 고향을 지켜야 합니다.

내 먹거리를 직접 챙기며 사는 삶은 참 아름다운 삶입니다. 그리고 건강하게 살면서 보람도 찾는 참살이 생활이기도 합니다. 비록 아직은 서툴지만, 지극으로 바라는 나의 염원은, 엉터리가 아닌 참 농사꾼이 되고 싶습니다. 또한 그리 될 것을 믿는 마음이 나의 소망입니다.

여러분들도 같은 소망을 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응답 3개

  1. 김융희말하길

    우리 고추장님, 계절 탓? 향수? 갑자기 막걸리가…
    남는 시간, 잘 보내고 오이소. 막걸리는 잘 익을수록 맛나는 법.
    오는 날 눈 빠지게 기다리며, 막걸리를 관리하고 있소.
    나 홀로 쓸쓸하오만, 건강합니다. 반가워요.

    은유님 감자탕집 자리 잡아 둬요. 그런데 반드시 맛은 후암동보다 좋와야해요. 그럼………..

  2. 고추장말하길

    오랫만에 선생님께 인사전합니다. 땅에서 자라고 살아가는 각종 채소들, 그 밑을 기어다니는 벌레들, 선생님은 우리들 중 가장 많은 동지들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고, 정말 선생님 막걸리가 그리워, 입에 침이 고이더니 그새를 못참고 꿀꺽 넘어갑니다. 건강하세요.

  3. 은유말하길

    선생님. 잎이 달린 고추와 가지, 호박 등등의 정성가득 야채 잘받았습니다. ~~~ 맛있게 먹었고요, 고추는 양이 많아서 집에도 좀 가져왔어요 ^^ 지난번 집들이 때 주신 막걸리, 김치, 감자샐러드, 가지나물도 고맙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국만 끓여서 먹어도 식탁이 풍성합니다. 멋진 농사꾼님. 감사드려요. ㅎㅎ

    해방촌을 떠나서 그 감자탕집은 못가지만, 여기도 다른 감자탕집이 유명한 곳이 있더라고요. 시장에 먹을 곳 정말 많아요. 다음에 오시면 같이 산책해요. 구경시켜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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