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노동잔혹사

<일본>

- 김민수(청년유니온)

‘Gimpo – Tokyo JL090 2011-10-21’

한국 청년유니온의 롤 모델이자, 폭넓은 교류를 발 맞추고 있는 일본의 수도권 청년유니온이 초대장을 보내왔다. (커뮤니티) 유니온은 굉장히 보편적인 일본의 노동운동 단위이다. 지역별 색채가 강하며, 전국 규모의 노동현안 이슈를 만들기 쉽지 않은 일본의 특성이 반영 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일본에서는 매년 전국의 ‘유니온’들이 모이는 거대한(약 5000명 규모) 집회가 열린다고 한다. 올해는 10월 23일에 열리는데, 일본의 수도권 청년유니온은 이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국의 청년유니온을 초청했다. 나는 이러쿵저러쿵한 과정 끝에 사주팔자에 없는 일본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비슷한, 너무도 비슷한

한국과 일본의 청년들이 마주하는 사회.경제적 어려움이 대단히 유사하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미디어 노출과 츨판물을 통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지면을 빌어 새삼 재탕 해보도록 하겠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청년실업’이라는 키워드이다. 청년들의 실업률이 높은 것은 쉰자유주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글로벌 스탠다드로 깔고 들어가는 ‘지구적 이슈’이다. 다시 말해, 문제의 본질을 ‘실업률’로 퉁쳐서 환원하는 것은 대단히 일면적이고 깊이가 없는 분석이라 하겠다. (혹은 문제 해결의 의지가 없는 자세라고 볼 수도.)

솟을 것은 없고, 꺼질 것은 거품만 남은 ‘정체 된’ 경제 구조 안에서 청년들은 저임금.불안정 노동 현장으로 내몰린다. 일본인 관광객을 호객하기 위해 홍보판을 휘두르는 명동의 청년과, 한국인 관광객을 호객하기 위해 찌라시를 뿌리는 신주쿠의 청년이 이에 해당한다. 먹물들의 세계에서 이들은 ‘서비스 산업 종사자’라는, 아주 그럴듯한 표현으로 분류 된다. 하지만 현실은 오갈 곳 없는 ‘잉여’들의 먹고사니즘을 위한 고육지책의 ‘고용’일 뿐이다. 건국 이래 최대의 스펙과 교육수준을 갖춘 이 청년들에게는 딱히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아무튼 이들은 오갈 곳이 없다.

주거 상황은 어떠한가? (문제가 많아 보이지만) 대다수 인류가 옳다고 믿는 생애 주기에 근거하면, 청년세대에 반드시 이루어야 할 지상과제는 독립이다. 독립에는 여러 가지 요건이 있겠으나 대표적으로 주거를 내세울 수 있겠다. -허나, 이 동네 청년들에게 정상적인 독립은 ‘한나라당 FTA 접는 소리’이다. 살인적인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PC방 난민, 캥거루족이 되는 일본의 청년과,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해 1.5평짜리 고시원에 몸뚱아리만 털어 넣는 한국의 청년은 –너무도 닮은, 그리고 너무도 비극적인, 현실이다.

안정 된 직장을 얻을 수도, 정상적인 독립을 할 수도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은 또 어떠한가? 얘들 밥 한끼 먹이는 일에 망국적 포퓰리즘 드립치는 유력(과거형) 정치인과, 수 천만원의 학자금을 감당하지 못해 목을 메는 대학생이 공존하는 한국이 아니던가.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는 이가 ‘재정 건전성’을 운운하며 ‘복지병’을 경계하는 한국이 아니던가. 더 언급하면 부끄러우니 한국의 상황은 이 쯤으로 접는다. 일본의 사정도 크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 오죽하면 없는 게 메리트인 청년들이 가벼운 지갑을 아름아름 털어서 상호부조 사업을 만들겠는가(궁금하신 분들은 일본의 ‘반빈곤 네트워크’를 검색하시면 좋을 듯 하다). 할 수 없이 한국의 청년유니온도 조만간 만들 예정이다.

일본에게 그나마 나은 광경이 있다면 최저임금을 통한 기본 생계비의 보전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잉여들에게 주어진 고육지책의 고용과 최저임금이 밀접하게 연결 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는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다. 2011년 기준으로 도쿄의 최저임금은 약 800엔이다. 1시간 일해서 500엔 짜리 가츠동을 사먹고 300엔 짜리 커피로 입가심을 하는 도쿄의 청년과, 1시간 일해서 5000원 짜리 제육덮밥을 사먹을 수 없는 서울의 청년 사이에는 무시 못할 심연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상황이 제법 좋다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상황이 개판이라는 의미일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Tokyo – Gimpo JL095 2011-10-24’

저녁 8시에 하네다 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밤 10시에 김포에 도착했다. 고작 사흘을 떠나 있었을 뿐인데, 그 사이 한국은 (예정대로) 난리가 났다. 깨알 같은 선거 이슈들이 올라오고 있으며, 미디어는 조폭을 제어하지 못하는 경찰의 무능함을 공격하고, 유감스럽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외국인의 절도 행각이 프라임 뉴스로 나오고 있다. 바다 건너의 비극을 목도하고 온 뒤에 마주한 국내 미디어의 습격은, 나를 한없는 공허함과 쓸쓸함으로 밀어 넣고 있다.

시바, 어쩌랴. 그람시의 격언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우리는 ‘긍정의 힘’이라는 후천성 자기계발을 체득하고 있다. 끝없는 심연과 공허함을 ‘피곤한 탓이겠지’라는 일상의 언어로 희석시키고, 숙면을 취하자. 그리하여 ‘지금, 여기’의 현실을 해석하는 냉철한 이성과, 더 나은 내일을 염원하는 뜨거운 감성을 회복하고 아침을 맞이하자. 이것이 청년 노동의 잔혹한 현실과 인류의 비극에 맞서, 나와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처세술’이 아니겠는가.

응답 1개

  1. tibayo85말하길

    비극적 상황이 너무나 비슷해 신경을 돋구는군요.
    상호부조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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