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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만필

김장 울력- 힘들어 못한다!

- 김융희

우리집엔 벌써부터 벚나무로 시작된 단풍이 지금은 느티나무에 이르러 한창 절정이다. 바람은 거칠고 기온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종일 불어덴 거친 바람에 딩굴고 쌓인 낙엽으로 을시년스러운 사위 울녘에 마음이 몹시 스산하다. 장포에 내려서니 진즉 내린 서리에도 꼿꼿 싱싱했던 무 배추가 오늘은 썩 측은해 보인다. 갑작스런 기온변화에 잘 여문 무우가 얼어버릴까 걱정이다. 거두는 계절의 농가에 거친 바람의 성화 독촉이 심하다.

김장 때가 임박했다. 금년 여름 내내 짓 궂던 날씨와는 달리, 가을동안 호최적의 기후로 여무진 작물들, 특히 올해 무 배추는 대풍이다. 풍채있는 시골의 마음씨 좋은 아줌마 궁둥이처럼 탐스러운 배추통과, 씨름선수의 다리통 같은 무우를 바라보려니, 욕심껏 심어 욕심처럼 잘 자라준 채소가 고맙고 대견하다. 옛 이맘 때면 년중 행사로 어머니들의 집집을 돌며 김장 울력의 왁자지껄 웃고 떠들던 정경이, 빽빽이 들어선 배추통같이 정다운이들의 얼굴과 함께 새삼스레 떠오른다.

지난 옛 때에는 집집마다 겨울살이용으로 쌀독에 쌀은 체우지 못해도, 김장독은 반드시 체워 겨울을 대비했다. 집안 어딘가에는 반드시 김장독이 묻혀있었다. 지금도 식단을 대표하여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김치의 지위는 막중하다. 그런데 지금은 김장독 대신 김치냉장고가 실내에 놓이고, 그것도 아니라며 아예 그때 그때마다 마트에서 조달해 먹는등, 손수 마련하여 집집의 맛을 지킨 김치가 이제는 생산 규모의 대량화 산업화에 밀려 고유의 맛도 변했고 아름다운 생활 문화도 바뀌고 있다.

내가 출생해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마을은 유난히 긴 등마루길이 있어, 길다란 마룻길엔 탱자나무가 늘어섰고. 익어 노란 탱자가 열린 탱자나무숲엔 참새들의 보금자리로 시끌벅적 새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새소리와 어울려 해맑은 웃음소리가 동구밖까지 들렸던 옛 이맘 때의 김장울력의 떠오른 생각에 감개가 사무쳐 그립다. 집의 문턱을 들어서면 마당에 깔린 멍석에서 어머니들이 갓 버무른 겉절이와 함께 둥글 넓적 큰 양푼을 둘러 앉아 비빔밥을 나누는 정경이 새삼 그립기도 하다.

주방의 지킴이 주부들의 김장김치를 담그는 울력은 계절의 마을 축제이기도 했다. 지금은 그 어머니들도 세상을 떳고, 흐르는 세월에 변한 김장담는 옛 풍경은 다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버렸다. 잔손 질로 일거리가 많은 김치담그는 일이 편리와 편안을 우선으로 하는 현대인들로부터 점점 외면 당해 멀어지고 있다. 유구의 전통이 점점 사라지고 있음은 변한 시류의 탓이겠지만, 조상의 빛난 지혜로 지금까지 우리의 입맛과 건강을 지켜준 전통의 좋은 식단에 변화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마침 잘 자라준 배추 덕에 모처럼 ‘김장김치 담그기’를 “우백당”의 가을 행사로 “대동 두레제”를 열고 싶다. 배추와 절임용 소금을 줄터이니 각자 양념을 마련하여 풍부한 물과 널찍한 곳에서 함께 김장 울력을 하자며, 우선 떠오른 이들께 전화를 했다. 한 집, 두 집 전화질이 늘어가면서 처음 들뜬 기대와는 달리 점점 실망이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사가 답답하고 착잡하다. 매우 즐겁고 유익한 행사가 되리라는 나의 기대가 별무호응이다. 불가, 아님의 변들이 참 다양하다. 가정에서의 김치의 제외와 비중의 변화를 새삼 실감한다.

교우 권사님, 김장이 얼마나 복잡하고 힘드는 일인데, 그렇게 힘든……

집안 친척, 이미 다 결정된 일, 그런 일을 이제 주선함은 늦었다.

친구 A, 우리는 전문 업체에 맞춰 배달된 김치를 먹고 있어서……..

친구 B, 오래 전부터 시골 어머니께서 담궈 보내준 김치를 먹고 있다.

공부방 주방, 김치를 어떻게 담지, 담글줄을 몰라 할 수 있나?

공동체 주방, 상의를 해보고 나서 연락 ….

지인 A, 지금은 바빠서 죽을 지경, 앞으로 시간이 날 때쯤 고려해 보겠다.

지인 B, 복잡하게 김장을 하다니, 필요할 때면 늘 마트에서…..

동조자도, 모두가 시원한 대답도 없다. 민망스러워 허무감마저 든다. 그러나 어쩌랴,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 첫 째, 동떨어진 곳에 위치한 먼 거리와, 양념을 준비해야 하는 번거러움이 제일 원인일 것 같다. 그리고 바쁜 일상에 하룻걸이의 일이 아닌 시간의 무리와, 복잡 불편의 교통도 문제가 되었으리라. 아마 전에 없던 돌출 행동의 어색함과 부담감도 있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맛있는 김치를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먹을 수 있어, 힘들여 김장을 해야할 필요성이 많이 줄었음을 생각할 수 있겠다. 비싸지 않는 배추값도 작용했을까?

이런 문제들은 모두 처음부터 생각했던 일이다. 그러면서도 행사로 함께 어울려 울력을 하려 했슴은 나의 허황하며 소박한 꿈이었다. 함께 어울린 공동 작업은 우선 즐겁고, 옛적의 정경도 그리웠다. 여럿의 익힌 경험과 의견의 나눔이 새로운 맛을 기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또한 누구나 쉽게 익혀 우리의 식단을 지켜온 ‘김치담기’가 일상에서 밀려나는 현실을 아쉬워하면서, 이같은 행사로 인한 솜씨의 전수와 확대를 염원함도 없지 않았다. 어떻든 안타깝지만 기대는 빗나갔다. 슬프지만 이제는 마이스터 시대답게, 훌륭한 김치 기능장의 출현을 기대해야 될 것 같다.

(글의 뜻에 공감하며 동참을 바라는 분이 있으시면 연락 주십시오.

다섯 가정까지는 함께 할 수 있습니다. 010-3399-6622. 우백당 당주,)

응답 1개

  1. 최석균말하길

    존경하는 형님,
    자연 속에서 묻어나는 참 진리와 땅의 소산으로 250만년 전부터 가장 건강식으로 알려진 것들을 체험하며 사랑하며 즐겁게 사시는 모습이 참 아름답고 귀합니다.
    좋은 글들 읽고 갑니다.
    오랜 지난 날들을 회상하고 공감하면서 가슴이 울컥합니다. 감동입니다.
    형님의 손 끝에는 늘 사랑과 섬김과 나눔과 희생이 겸손하게 묻어납니다.
    감사하며 건강하게 오래오래 혜안을 가지고 후학들에게 지혜와 사랑의 흔적을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일흔 중반에도 끝없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소중한 삶을 사시는 형님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김치가 밥상까지 올라올 때는 다섯번의 죽음을 거쳐서 온다네요~~
    밭에서 뽑혀서 죽고,
    칼로 잘려서 죽고,
    소금에 절여서 죽고,
    양념으로 범벅되어 죽고,
    마침내 씹혀서 죽어 그 맛을 우리에게 준다하네요.
    그 귀한 소재를 여름동안 잘 가꾸어 축제한다는데…….
    날짜 정해지면 연락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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