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수유너머

사진은 말이 없어야 한다.

절대적인 주관성은 하나의 상태.

즉 침묵의 노력 속에서만 얻어진다.

-롤랑바르트 <카메라루시다>

뮤직비디오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락뮤지션들이 연신 들락거리는 홍대 부근 건물 앞. 저만치서 검은 트렌치코트 자락 휘날리며 누군가 걸어온다. 부석부석한 단발머리, 주름지고 약간 부은 얼굴, 청바지와 검정구두…낙락장송 같은 쓸쓸한 아우라가 물씬 피어나는 그는, 한대수다. 키가 크지는 않았지만 거인의 풍모다. 사진가 박은 한대수를 찍기 위해 기다리던 참이다. 박은 인사를 나누고 한대수의 주변에 머물렀다.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차분한 낯빛과 짙은 색 옷차림의 박은 어디서나 배경에 흡수되었다. 한대수가 편의점 앞에서 담배를 피며 말했다. “사진은 여기서 찍지. 파라솔도 있고 재밌겠네.” 박은 슬며시 웃으며 두어 번 셔터를 눌렀다.

곧 한대수와 베이스 김도균, 키보드 이우창 등 음악적 동지들이 합류했다. 연습실 안, 늙은 뮤지션이 뿜어내는 기타의 전율이 공간을 팽팽하게 조여 왔다. 박은 기타와 오르간, 드럼과 베이스, 음악과 사람 사이를 소리 없는 그림자처럼 오가며 사진을 찍었다. 협소한 공간 안에서 용케도 길을 냈고 흥에 겨운 한대수 표정을 포착했다. 한 시간 남짓 흘렀을까. ‘음악은 몸에서 새어나오는 방귀일 뿐. 정복의 대상이 아니므로 죽기 살기로 연습하지 않는다’는 소신을 피력한 한대수는 밖으로 휑하니 나가버렸다.

초봄의 밤은 쌀쌀했다. 새순도 올라오기 전의 빈 나무와 전봇대가 번갈아 서있고 야트막한 담벼락과 고만고만한 상가 건물들이 들어선 동네다. 널찍한 큰 길에 드문드문 차가 오갔다. 한대수는 친구와 나란히 앞서 걸어갔다. 박은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달이 따라오는 속도로 느릿하게 일행을 뒤따랐다. 멀찌감치 그러나 한눈에 대상을 관조할 수 있는 지평을 확보한 박은 마침내 지그시 셔터를 눌렀다. ‘나의 애인은 외로움이고 정부는 고독’이라고 읊조리던 사람, ‘인간 한대수’를 발견한 것이다. 이날 그가 찍은 한대수는 괴나리 봇짐마냥 어깨춤에 외로움을 덩그마니 달고는 추적추적 걷고 있었다.

"아무래도 카메라가 있는 걸 의식하고 있을 때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아내기 어렵지요. 그래서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넣지 않고 따라 갔습니다. 앞에 걸어가는데 뒷모습이 굉장히 외로워보였어요. 일부러 외로운 척 하는 사람과는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박은 느슨한 말투로 외로움이 ‘훅’ 시야를 덮쳐 오던 그 순간을 회상했다. 그리고 고백했다. "유독 생각나는 사진"이라고. 타인을 찍은 인물사진은 그 사진을 찍은 이의 자화상이다. 생의 신산스러움이 올올이 드러난 사진. 견디기 어려운, 그러나 일생동안 견뎌온 ‘생의 역설’이 아릿하게 배어 있는 노장의 사진. 왠지 가슴 미어지게 하는 그 사진은 가장 한대수답기에 가장 박다운 작품이 됐다.

의도 대신 우연, 침묵의 추구

박은 아무 것도 꾸미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윤리로 카메라를 잡는다. 오직 한 발 한 발 침묵의 심연 속으로 걸어가며 대상이 스스로의 본성으로 피어날 때까지 기다린다. A병원으로부터 무료진료를 받은 희진이를 찍던 날. 필자가 보호자에게 구구절절 사연을 듣는 동안 박은 침대 난간에 서있는 희진이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새끼손가락을 건네며 손에 쥐어주기도 하고 다정스레 이것저것 물으며 말을 걸기도 했다. 경계의 눈빛이 풀어지자 박은 인형을 갖고 본격 놀이를 시작했다. 떨어지면 줍고, 또 떨어뜨리고 줍는 단순 반복적 동작에 희진이는 까르르 까르르 웃기 시작했다. 꽃망울처럼 터지는 아이의 웃음에 묻혀 셔터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다운증후군에 백혈병까지 걸린 아이라고 믿기지 않는, 온 집안을 환하게 밝히는 귀하디귀한 ‘인화초’ 희진이의 모습이 한 장의 사진으로 기록됐다.

서울종합촬영소 편집실. <말아톤> 정윤철 감독의 작업은 반나절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았다. 박은 토라진 애인의 집 앞을 지키듯 주변을 내내 서성였다. 편집실에서 붙박이장처럼 앉아 골몰하는 모습을 몇 컷 찍었으나 더 이상의 상황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이 일 년이면 절반 이상은 꼼짝달싹 않고 시간과 씨름해야 한다는 걸 알아버린 박은 ‘영화감독, 그 쓸쓸함에 대하여’ 생각했다.

“촬영 이후의 일들은 고스란히 감독의 몫이었습니다. 고되고 외롭겠더라고요. 그 외로움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우연히 편의점 앞에서 감독님을 마주쳤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음료수를 사러 왔더라고요. 자전거 자주 타시냐고 물어봤더니, 복잡한 생각도 정리하고 운동도 할 겸 즐겨 탄다고 하더군요.”

박은 정윤철에게 자전거 타는 시간과 장소를 물었다. 며칠 후 넌지시 한강둔치를 찾아가 정윤철의 자전거 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그 사진은 고요한 수면처럼 정윤철을 받아냈다. 자전거 타는 정윤철의 사진에는 설핏 초원이 엄마의 대사가 들려왔다. “우리 아이는 다르지 않아요. 적어도 달릴 때만큼은 다르지 않아요.” 당하면 외로움이고 선택하면 고독이라고. 박이 찍은 사진은 천형의 외로움을 벗어던진 영화감독, 고독해서 자유로운 한 영혼의 질주를 보여주었다.

침묵의 예술은 응시를 잉태한다.

침묵은 깨끗이 정화되어 장애물이 없는 시각의 메타포다.

– 수잔손탁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

박의 청년기는 방황기였다. 딱히 반항도, 그렇다고 당찬 저항도 아닌 어정쩡한 떠돎. 본디 청춘이란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기에 불안한 시기다. 나를 강제하는 것이 없다는 공포는 실로 크다. 박 역시 무한대로 열린 가능성의 광막함에 그만 숨이 막히고 마는 불우한 청춘들 중 하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방에서 설거지를 했다. 또 학원 주위를 맴돌며 ‘내가 지금 여기서 이 공부는 왜 하는 건가’ 고민 했다. 그렇게 불안했으되 육체적 힘만은 용솟음치던 시절, 하루하루를 몸으로 떠밀다시피 보내던 박은 카메라 둘러메고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예전부터 이정표를 봐도 글자는 생각 안 나고 거리의 빌딩이나 도로의 이미지는 선명하게 남았다”는 박에게 사진은 운명적 선택이었다.

“일본에서 새벽 2시에 일어나 신문배달을 했습니다. 동이 틀 무렵 집에 와서 샤워하고 나면 저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곤 했어요. 자꾸 오전수업을 빼먹었죠.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신문배달 마치고 씻고는 바로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갔지요.”

도시가 깨어나는 시간. 헬렌켈러가 삼일만 눈을 뜬다면 보고 싶다던 ‘밤이 낮으로 변하는 기적의 시간’에 놓인 박은, 시야로 달려드는 원초적 시공간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받아냈다. 그 때 찍은 일본의 새벽풍경으로 박은 서울에 돌아와 첫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남들이 볼 때 ‘꿈을 향해 신나게 달려가던 일본유학 시절’. 박은 서른 가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접시닦이, 수도배관, 고속도로 공사 안내, 하역작업… 방학 때면 다음 학기 등록금을 벌기 위해 강도 높은 일을 택했다. 목돈을 손에 쥐어야했으므로 박의 발걸음은 더 낮은 곳, 더 외진 곳, 더 험한 곳을 향했다.

어느 부둣가의 수산시장. 일자리를 구하러 갔으나 한국학생들은 깡다구가 부족하다며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일이 힘들어서 그만 두는 사람이 많고 당신도 별 수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박은 “일을 다 끝내지 못하면 돈을 안 주셔도 좋다”는 조건을 내걸고 일을 시작했다. 죽을 각오로 일했고 보름이 지났을 때 트럭에 궤짝을 나르다가 진짜로 죽은 듯이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그 뒤로는 주위에서 전부 친동생처럼 믿고 잘해주셨어요. 어떤 분이 트럭에 몰래 싣고 가서 음료수를 주면서 좀 쉬게 해주기도 했고요. 막막하고 어려울 때는 달리 빠져나갈 방법이 없잖아요. 일단 끝까지 가서 부딪히는 편이에요. 그러면 거기서 또 길이 열리더라고요.”

사진은 부활과 관련된 무엇인가를 지니고 있다

이후 박은 ‘우리는 삶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번번이 깨우친다. 한국에 돌아왔으나 사진만 찍어서는 생활비는커녕 필름 값도 벌기 어려웠다. 퀵서비스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그런데 박이 들어간 퀵서비스 회사의 주요 거래처가 하필 광고회사들이었다. 설마 설마 했으나 아뿔싸! 어느 날 퀵서비스 나가야할 주소지를 보니 박이 사진을 담당하는 그 광고회사였다. 난감했다. 어떻게 할까 돌아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일을 안 할 수는 없으니까” 그냥 헬멧을 쓰고 사무실에 들어갔다. 다행히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또 한 번은 교차로에서 앞 오토바이를 따라가다가 신호위반으로 걸렸다. 벌금이 5만원. 당시 하루일당이었다. 게다가 다음날 촬영에 쓸 필름 값이었다. 무조건 애원했다. 제발 봐달라고 매달리다시피 부탁했다. 그런데 끝까지 안 된다고 거절당했다. 박은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차고 쓴 눈물을 흘렸다.

모든 창작물은 자신을 연료로 땐다. 정직하게 산만큼 나온다. 박의 인물사진이 사려 깊은 인간애와 차분한 감수성이 돋보이는 이유는 땀과 눈물로 꾹꾹 다져진 마음 밭에 기인하리라. 아울러 박에게는 작업 원칙이 있다. 사진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연출’사진은 찍지 않는다. 목적에 맞는 사진을 만들기 위하여 사진 통제술을 행한다는 자체에 반대했다. 억지스러운 게 싫었고 그건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 정도면 됐다’ 혹은 ‘상황이 안 좋아서 안 되겠다’ 싶을 때 한 번 더 셔터를 누른다.

“그림은 하얀 종이 위에 색을 입히는 겨죠. 사진은 반대에요. 검은 색 바탕에 빛으로 이미지를 표현하는 겁니다.” 사진은 침묵이다. 침묵만이 사진이다. 침묵. 니체가 말한 생성과 가치창출의 시간. 박은 침묵에서 한 방울씩 길어낸 것으로 한 사람의 얼굴을 빚는다. 그것은 마치 화면조정시간처럼 시간의 미립자들이 꿈틀거리고 충돌하는 흑백이미지로, 고유의 유전자와 삶의 서사를 드러내주는 매우 명료한 사진이다.

박에게 사진은 껌 혹은 꿈이다. 하도 씹어 단물 다 빠진 껌. 하지만 버릴 수 없어 아직도 혀 밑에 숨겨두고 있는 꿈. 박은 자분자분 두어 마디 독백처럼 되뇌었다. “흑백 인물사진을 계속 찍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는 매순간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사는 거죠. 그간 부모 없는 아이들, 몸이 불편한 사람들, 장관, 연예인, CEO 등등 사회 여러 계층의 사람을 많이 만났습니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나의 고정관념으로 그 사람을 미리 재단하지 말자. 그거 한 가지는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아름다워질 수 없는 피사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 수잔손탁 <사진에 관하여>

* 이 글은 2008년 박정훈과 동료로 일하면서 겪었던 상황과 틈틈이 나눈 대화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남기고자 시도했던 개인작업입니다. 박정훈에게는 사후통보 되었고 ‘미화되었다’는 핀잔을 들었습니다. 위클리 수유너머에 ‘행복한 사진관’을 연재하는 기념으로 내려놓습니다.
* 위 사진은 박정훈인물사진전 ‘BETWEEN’ (201,류가헌)에 전시된 이미지입니다(필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