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결국 유권자가 옳다

- 맹찬형(연합뉴스 제네바 특파원)

대한민국이 온통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을 때 필자가 주재하는 스위스에서도 중요한 선거가 있었다. 4년에 한 번 총 200석의 하원 의원과 46석의 상원 의원을 뽑는 스위스 총선은 서울시장 보선 사흘전인 10월 23일에 치러졌다.

스위스 총선은 우리나라처럼 지역구 후보에 직접 투표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당에 투표한다. 각 정당은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나누고, 연방정부인 연방각료회의를 구성한다.

이번 총선의 최대 관심사는 `이민 반대’를 전면에 내세운 극우보수 정당인 스위스국민당(SVP)이 과연 스위스 현대정치 사상 최초로 3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정당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보수적인 농촌 지역을 기반으로 태동한 스위스국민당은 이민에 반대하는 정책에 앞장서왔고, 최근 20년 동안 주요 선거와 투표에서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총선에서는 매번 꾸준한 약진을 보여 4년 전인 2007년에는 28.9%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총선뿐만 아니라 스위스 정치 체제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는 국민투표를 통해서도 스위스국민당은 이민 반대 정책을 관철시키는 데 막힘이 없었다.

2009년 11월에는 이슬람 사원의 첨탑(Minaret)의 추가 건설을 금지하는 발의안을 국민투표에 부쳐 가결시켰고, 2010년 11월에는 사회보장 급여를 불법으로 수급한 경우를 포함한 외국인 `중(重)범죄자’들을 자동으로 추방할 수 있도록 한 안건도 통과시켰다. 현지 신문에 ‘스위스에는 스위스국민당밖에 없느냐’는 탄식조의 해설기사가 등장했다.

이번 총선에서도 스위스국민당은 외국인 이주 노동자를 상징하는, 검은 부츠를 신은 사람들이 빨간색 스위스 국기를 짓밟고 들어오는 섬뜩하고도 선동적인 벽보를 내걸고 의기양양하게 선거전에 나섰다.

스위스국민당이 양심적인 사회단체와 진보정당의 비난을 무릅쓰고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선거벽보를 내건 것은 유럽의 재정위기와 경기침체로 실업률이 상승하고 외국인 이주 노동자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반(反) 이민 구호가 다시 한 번 먹힐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막상 투표함을 통해 나타난 유권자의 뜻은 달랐다.

결론부터 말해서 스위스국민당은 20년 만에 처음으로 득표율이 뒷걸음질치는 쓴 맛을 봐야 했다. 스위스국민당은 하원투표에서 26.6% 득표율을 기록해 최다 득표 정당의 자리는 지켰지만, 4년 전에 비해 2.3% 하락했다.

사실 스위스의 실업률은 작년 말 기준으로 2.8%밖에 안 되고, 스위스 경제는 인근 유럽국가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견실하다. 더욱이 포르투갈 등에서 건너온 이주 노동자들이 도로 공사와 아파트 건설 현장, 거리 청소 등 온갖 궂은 일들을 저임금으로 소화해내지 않는다면 스위스 경제가 지금의 번영을 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민을 차단하자는 구호는 현실과 부합하지 않으며 위선적이기까지 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최근 몇 년 동안 스위스국민당이 주도하는 반이민 캠페인에 표를 던져왔던 스위스 유권자들이 이번 총선을 통해 “더이상은 안 돼”라고 선을 그은 셈이다.

극우보수만 퇴조한 건 아니었다.

제2당인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은 18.7%의 득표율로 4년 전에 비해 0.8% 감소를 보였고, 제3당인 급진당과 제4당인 기독민주당의 득표율도 모두 하락했다.

제5당인 녹색당의 득표율도 8.4%로 4년 전보다 1.4% 줄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환경 문제가 중대 이슈로 등장하면서 전통적으로 환경보전론을 주도해온 녹색당은 이번 선거에서 세력을 넓힐 것으로 예상됐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주요 5개 정당들이 모두 퇴조를 경험하는 사이 그 빈 공간을 중도정당인 녹색자유당과 보수민주당이 채웠다. 4년 전 1.4%에 불과했던 녹색자유당의 득표율은 5.4%로 약진했고, 올해 첫 총선무대에 데뷔한 보수민주당도 같은 득표를 이뤄냈다.

이는 스위스 유권자들이 좌우 양극단보다는 균형추를 잡아줄 수 있는 중도정당에 무게를 실어주고, 기존 정당들의 활동에 경고를 보낸 결과로 해석되고 있다.

스위스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프랑스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0월 중순 실시된 여론조사기관 해리스 인터랙티브의 조사에서 내년 대선 결선투표에서 제1야당 사회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된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표가 이길 것이라는 응답이 60%나 됐다.

니콜라 사르코지 현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보다 앞서 라팔 전투기를 보내 리비아 공습을 주도하는 등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을 나타내는 데 주력하고 있고, 부인 카를라 부르니의 임신과 출산으로 유권자의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지만 재선 전망이 밝은 편은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유럽에서 나오는 선거 기사의 제목은 `유럽 우향우’였지만, 앞으로는 양상이 달라질 것 같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서울에서 확인된 것처럼 결국 유권자가 옳다.

응답 1개

  1. 렛잇비말하길

    희망적인 글이네요.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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