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학원강사는 왜 근로자가 아닌가?

- 조영훈(청년유니온)

내가 왜 학원강사가 됐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기로 한다. 재미없는 얘기가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내가 궁금한 점은, 그리고 함께 논구하고 싶은 지점은 ‘(일부 스타강사를 제외한 ) 영세보습학원의 종합반 강사들이 근로자인가 근로자가 아닌가’이며, 보다 공격적으로 표현하면 ‘왜 그들을 근로자로 취급해주지 않는가’이다.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 대부분의 학원강사는 자영업자로 분류된다.)

그리고 이러한 물음이 중요한 이유는 학원강사라는 직업 특성상 해고와 이직, 심지어 임금체불이 빈번하게 발생함에도, 근로기준법상(이하 근기법) 근로자가 아니란 이유로 근기법 혹은 고용보험법 등 하위법의 보호를 쉽게 받을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근로기준법과 판례를 통해 본 근로자성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학원강사는 주로 자영업자로 분류된다. 아니 돈 받고 시키는 일 하는 보습학원의 영세강사가 근로자가 아니라니! 이 나라의 근로자가 되려면 대체 어떤 기준을 만족시켜야 되는가? 이를 위해 우선 근기법의 도움을 받아보자.

근기법 2조에 따르면 근로자는 “①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②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③임금을 목적으로 ④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 일단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보습학원 종합반 강사로 일했던 내가 근로자 아닌 자로 간주될 여지는 전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어디 법이란 게 법전대로만 돌아가나. 오늘을 사는 판사님들은 판결 한 번도 어제를 살았던 선배 판사님들의 사례를 참조해서 내린다. 하여, 지금까지 누적된 판결 사례가 중요하다. 판례를 살펴보자.

판례는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관계없이 실질적인 ‘사용종속관계’가 있느냐의 여부를 가지고 근로자성을 판단한다. 이 같은 종속관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구체적인 요소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①업무의 내용이 사용자에 의하여 정하여지는지 여부, ②업무수행 과정에서 사용자로부터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휘 ‧ 감독을 받는지 여부, ③사용자에 의하여 근무시간과 근무장소가 지정되고 이에 구속을 받는지 여부, ④근로자 스스로가 제3자를 고용하여 업무를 대행케 하는 등 업무의 대체성이 있는지 여부, ⑤비품 ‧ 원자재 ‧ 작업도구 등의 소유관계, ⑥근로제공관계의 계속성과 사용자에의 전속성의 유무와 정도, ⑦취업규칙 ‧ 복무규정 ‧ 인사규정 등의 적용을 받는지 여부, ⑧보수에 관한 사항, ⑨사회보장제도에 관한 법령 등 다른 법령에 의하여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는지 여부, ⑩기타 양 당사자의 경제 ‧ 사회적 조건 등’(이상 김유성, 『노동법1』, 법문사, 2005, 23~4쪽 참조)이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보습학원 종합반 사회강사였던 나는 ‘①업무의 내용이 사용자(학원장)에 의해 명확하게 정해졌으며, ②업무수행 과정에서 사용자로부터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휘 ‧ 감독을 받았고(출퇴근시간과 강의실 청소 및 학부모 상담 등의 업무상 명령), ③사용자에 의하여 근무시간(출퇴근시간과 시간표)과 근무장소(학원 교무실 및 강의실)가 지정되고 이에 구속을 받았으며, ④근로자 스스로가 제3자를 고용하여 업무를 대행케 하는 등 업무의 대체성이 전혀 없었고, ⑤비품 ‧ 원자재 ‧ 작업도구 등을 모두 사용자가 소유하고 있었으며, ⑥근로제공관계의 계속성과 사용자에의 전속성이 있었고, ⑦취업규칙 ‧ 복무규정 ‧ 인사규정 등의 적용을 받았으며, ⑧보수에 관한 사항은 전적으로 사용자가 결정했고, ⑨사회보장제도에 관한 법령 등 다른 법령에 의하여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는지 여부에 대해선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⑩기타 양 당사자의 경제 ‧ 사회적 조건 등에서 사용자와 나는 감히 비교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이 정도면 당연히 근로자 아닌가?

종합반 강사? 근로자 yes! 단과반 강사? 근로자 no!

근로자다. 위대하신 판례님도 이를 입증하고 있다. “[종합적 판단] 당해사안의 경우 귀 질의내용을 중심으로 근로자성 여부를 종합 판단해 보면 일부 근로자성이 부인될 수 있는 요소도 있으나,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요소가 월등히 많고, 당해 민원인들의 경우 실질적으로 학원의 지휘 ‧ 감독을 받아 업무를 수행하면서 그 대가로 실적급제 형태의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 근로기준법 제14조에 규정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에 해당됨.”(2001.10.16, 근기 68207-3194)

이 판례에서 근로자성이 부인될 수 있는 요소는 기본급 없이 성과급을 받는다는 점과 개인사업소득자로 신고 되어 사업소득세를 납부한다는 점이다. 앞부분의 경우 영세 보습학원의 경우 성과급 없이 기본급을 받는 경우가 훨씬 던 많다는 점을, 뒷부분의 경우 나 역시 개인사업소득자로 신고 되기 싫다는 점을 들어 보습학원 강사의 근로자성을 한 번 더 변호하고 싶다.

아무튼 학원에서 제공하는 강의계획표와 교재로 강의를 하고, 강의 진도도 시험 전까지 끝내라는 등 사용자의 구체적인 지휘 ‧ 감독 하에 있으며, 강의 외에 담임 등을 맡아서 학부모들에게 일명 ‘관리’를 명목으로 주기적으로 전화상담 전화를 돌려야 되고, 심한 경우 학원 강의실과 복도 등을 청소까지 해야 하는 영세 보습학원의 강사들은 분명 근로자, 맞다.

학원강사가 자영업자라는 생각은 따라서 오해이다. 이러한 오해는 단과반 강사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프리랜서로 이 학원 저 학원을 움직이며 수강생 수에 따라 학원과 강사 사이에 5:5 비율로 액수를 나눠 갖는 단과반 강사는 ‘레알’ 자영업자다. 역시 판례님도 이를 못 박고 있다. “학원강사가 학원의 구체적인 지시 ‧ 감독 없이 수강생수에 따라 수입의 일정비율을 배분하는 경우라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다.”(1993.12.24, 근기 68207-2617)

하지만 근기법상의 보호가 아쉬운 건 단과 강의를 할 정도의 경력을 자랑하는 스타 혹은 준스타 강사가 아니다. (그들은 게다가 분명하게 근로자도 아니다!) 바로 밀려 밀려서 어떻게 하다 보니 ‘먹물들의 막장’이란 학원까지 오게 된 보습학원의 생계형 강사들이다. 이들은 어쩌다가 자영업자, 한마디로 사장(?)이 되어 해고되면 실업급여조차 못 받는 처지가 되었나?

여기에 대해선 몇 가지 설들이 있는데, 첫 번째는 사업소득세 신고를 할 때 직업구분란에 ‘학원강사’가 명시되어 있어 세무사가 학원강사를 당연히 사업주로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역시 잘 나가는 단과반 강사들 때문에 생긴 오해 같다. (실제로 단과반 강사의 근로자성 불인정 판례가 종합반 강사의 근로자성 인정 판례보다 더 먼저 있었다.)

두 번째는, 이게 중요한 건데 바로 비용의 문제 때문이다. 4대 보험료의 절반을 학원장이 부담해야 하는데 이를 아끼기 위해서 자신의 학원의 강사들을 자영업자로 신고해버리는 것이다. 사실 여기에는 학원강사들의 공모가 더해진다. 강사들도 세금을 아끼기 위해 사업주 신고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유들로 학원강사는 단과반, 종합반 가릴 것 없이 자영업자로 신고 되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근로자가 아니라서 받아먹을(!) 수 없는 것들

물론 잘못된 관행이다. 나처럼 6개월 정도 일하고 애들 성적 안 나왔단 이유로 잘린 다음에 한동안 도서관과 동네 공원 등에서 쓸쓸한 방황기를 보내는 이 사회의 많은 영세강사들이 실업급여라도 받아먹을 수 있어야 방세도 내고 라면도 먹을 수 있을 테니.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실업급여를 못 받는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빈번하게 벌어지는 시험기간 대비 보충수업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근기법에서는 이 같은 연장근로에 대해 근로자의 동의를 구한 다음에야 비로소 성사될 수 있으며, 통상임금의 150%에 해당하는 임금을 가산하여 지급해야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근기법 53조 참조).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하라면 하는 것이고 150%의 가산임금은커녕 통상임금 100%도 지급받지 못한다. 한마디로 1년에 네 달(고사 당 한 달을 보충수업 한다. 고사는 1년에 네 번 있다)을 무료봉사하는 셈이다. 게다가 퇴직금도 당연히 없다. 임금체벌 및 각종 권리침해 사례도 수시로 일어난다(‘학원강사 모여라’ 카페 http://cafe.daum.net/educationpark 의 페이미지급학원공개 게시판 참조).

이 같은, 입시경쟁처럼 말도 안 되는 모든 불합리한 처우들은 학원강사가 여전히 근로자성을 분명하게 인정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말도 안 되는 입시전쟁에 일조하고 있다는 자괴감 때문일까. 많은 학원강사들은 꼭 자신의 현실을 포기한 것처럼,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권리실현에 대해 무지하다. 국영수만 알았지 자신들의 정확한 법적 지위에 대해서는 모르며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래서 모범생처럼 앞에서는 원장이 하란 대로 말없이 무급보충수업을 하고, 문제아처럼 뒤에서는 자기들끼리 담배나 피우며 원장을 욕한다. 그리고 고된 노동을 반복한다. 보조국사 지눌이었나.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 했다.

이 모든 악순환의 매듭을 끊는 건 학원강사가 자영업자가 아니라 근로자라는 현실을 적확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응답 4개

  1. fiona말하길

    이거 완전 제 얘긴데요??
    법이 개정되어야 하는것 아닌가요??

  2. someday말하길

    학원강사로 일하는 친구나 후배들을 봐왔기에 남얘기가 아닙니다. 고된노동을 반복하는 현실이거나 갓졸업한 만만한 젊은 선생들로 쉽게 바꿔치기 되는 현실..참담하죠. 정말 입시경쟁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이 주변에 너무 많습니다.

  3. 조영훈말하길

    이 글 쓴 조영훈입니다. 필자 이름이 잘못 나왔네요. ‘조영은’이 아니라 ‘조영훈’입니다. 정정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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