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한 섬

- 김정우(청년유니온)

이제는 꽤나 오래전 일이다. 2007년 여름, 나는 방학을 맞이한 대학생이었고 내 용돈이라도 벌어 써야겠다 싶어 한 커피점에서 주말 알바를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나의 시급은 3700원, 카페라떼 한 잔의 가격은 4000원이었다. 한 시간 일해서 커피 한 잔 사먹을 수가 없다니.. 무척 힘이 빠졌지만 다른 알바를 구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커피점은 깔끔하고 분위기도 좋고 해서 평소 일 해보고 싶었던 곳이라 열심히 해봐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깔끔은 커녕 매장을 정리하는 마감 업무가 내 주 업무 중 하나였기 때문에, 밤이 되면 나는 사람들이 먹다 남아서 버리고 간 커피들을 모아놓은 통을 화장실에서 비우고 물로 닦고,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는 일 등을 해야 했다. 음식물 쓰레기통의 악취를 맡기 싫어 숨을 참고 있노라면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쓰레기를 비우고 정리하는 일 역시 고귀한 노동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 대가로 시간당 3700원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이런 생각들을 했었다.

그러던 그 해 겨울, 점장이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정우야, 알고보니까 야근수당이라는게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이 안되는 거더라고, 그래서 다음달부터는 야근수당은 없어.”

그 전까지 나는 밤 10시부터 11시까지 한 시간은 야근수당을 받고 있었다. 사실 ‘야근수당’이라는 것 자체도 이 일을 하기 전까지는 아예 모르고 있었다. 알바 면접 때 점장이 “밤에는 야근수당을 준다”고 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게 없어진다니.. 뭐 이런 거지같은 법이 있단 말인가. 누군가는 몇 푼 안되는 돈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피와 같은 돈이었는데.. 하지만 법이 그렇다고 하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슬펐지만 계속 일을 했고 그렇게 나는 2008년 1월까지 대략 7개월의 기간 동안 그 카페에서 일을 했다.

그리고 올해 4월, 나는 청년유니온을 통해 ‘주휴 수당’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주 15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는 누구나 일주일에 하루 쉬면서 하루치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 나도 주말 알바지만 주 15시간 이상이었는데! 그럼 나도 받을 수 있는건가? 그런데 기간이 문제였다. 퇴직 후 3년 안에 진정 신청을 해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나의 퇴직 시기는 2008년 1월. 안타깝게도 3년 3개월이 지나가버린 후였다. 정말 안타까웠다. 억울해서 내가 못 받은 주휴 수당은 얼마나 될까 계산이라고 해보자 싶어 해보니 대략 38만원 정도 되었다. 38만원.. 당시 내 시급이 3700원이었으니 무려 100시간을 일해야 벌 수 있던 돈이었다.

억울한 마음에 가슴을 치는데 불현듯 작년에도 5주 정도 동네 카페에서 알바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이건 받을 수 있겠다! 계산해보니 이 때 내가 못받은 주휴수당은 총 118,800원이었다. 근데 막상 받아내려고 하니 고민이 됐다. 주휴수당을 받으려면 사장에게 얘기해서 받아내거나, 이게 안되면 지방노동청에 진정을 넣는 방법 밖에는 없다. 그러면 한번은 사장을 만나야 한다. 그게 참 꺼림칙했다. 분명 잘못은 사장이 한 건데 뭔가 내가 죄를 짓는 듯한 이상한 기분. 하지만 ‘내가 내 권리도 찾지 못하면서 남을 어떻게 설득시킬 수 있겠어?’라는 생각이 들어 과감히 주휴수당을 받아내기로 했다.

나 대신 청년유니온 노동상담팀장인 친구가 내가 일했던 커피점에 전화를 걸어 사장에게 주휴수당을 미지급했으니 달라고 요구해주었다. 그러자 사장이 “나도 옛날에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인데.. 대기업 같은 곳을 공격해야지 우리같이 영세한 사업장을 공격하면 어떡하나?” 이런 아름다운 말씀을 남겨주셨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세한 사업장이라고 근로기준법을 위반해도 된다는 조항은 대한민국 법전에 없다.

나는 사장이 이런 헛소리를 하기에 주휴수당을 쉽게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며칠 후 바로 입금을 시켜줬다. 그런데 그 금액은 정확히 10만원이었다. 18,800원은 기어코 떼먹은 것이다. 정말 놀랍고도 대단한 자본가 정신이 아닌가! 저 알바생의 코묻은 돈 한푼이라도 떼먹고야 말겠다는 그의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우리 옛말에 ‘아흔아홉 섬 가진 자가 백 섬을 채우려고 한 섬 가진 자의 것을 빼앗는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가진 ‘한 섬’이라도 필사적으로 지키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 닉네임이 ‘한섬’이다.

이번 일은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남에게 빼앗겼던 나의 ‘한 섬’을 되찾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것도 껄끄럽게 내가 직접 사장과 만나거나 통화할 필요 없이, 노동조합이 그 일을 대신해주었다. ‘이래서 노조가 필요한 거구나’라고 절실하게 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문득 2007년에 카페에서 함께 일하던 알바 누나가 생각이 났다. 나 보다 한 살이 많은 누나였는데, 그 누나의 시급은 나 보다 약간 높은 4000원이었다. 카페라떼는 사 먹을 수 있지만, 테이크아웃은 할 수 없는 액수.(당시에는 환경보호 목적으로 테이크아웃 시 일회용컵 보증금 50원을 받았다.) 그 때 청년유니온이 있었다면, 그 누나와 함께 주휴수당을 받아내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을 텐데.. 나 혼자라도 소액의 주휴수당이나마 받을 수 있어 기쁘긴 했지만, 함께 기쁨을 나눌 사람이 없으니 조금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도 늦지는 않았다. 혼자 있으면 ‘한 섬’이지만, 우리도 백 명이 모이면 ‘백 섬’이 된다. 그러면 ‘아흔아홉 섬’을 가진 한 명을 이길 수가 있다. 이런 멋진 교리(?)를 왜 나는 진작 몰랐을까. 지금이라도 이 교리를 널리널리 전파하여 이제 모두가 자기 몫을 제대로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니 이 땅의 피 빨리고있는 청년들이여, 모여라~

응답 2개

  1. 비포선셋말하길

    한섬에 그런 아름답고 당당한 뜻이 담겨있군요.

    그 카페 사장님 “나도 노동운동 해봐서 아는데..”
    이 대사가 누구를 연상시키네요. ㅋㅋ

    잘 읽었습니다. 피 빨리고 있는 청년들 왕창왕창 모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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