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국민국가사(史)조차 쪼개는 사람들

- 오항녕

몇몇 대학교가 퇴출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실정을 보면 퇴출당해도 싸다는 생각도 들지만, 주무 부처인 교육과학부에 대한 시선도 곱지만은 않은 듯하다. 예술대학에서 취업률 산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듯이 대학평가의 기준이 갖는 타당성에 대한 의문과 함께, 이른바 대학 운영에 대한 ‘감독’ 기관으로서 그동안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든 책임이 바로 교과부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듯이, 각 대학교는 등록금을 올리기 위해, 아니 알바하는 학생들의 시급을 뜯어내기 위해 짓지도 않는 건물 건축비 등을 포함시켰다. 감사원 발표만으로 그 규모는 6,552억 원이다. 대학들이 회계조작으로 부풀린 등록금 비율이 12.7%이고, 사립대 평균 등록금을 감안하면 매년 100만 원 정도의 등록금을 더 걷었다. 소위 각 총장들이 모인 대교협이란 데서는 감사원 발표가 대학 자율성 침해라고 대들었다. 부끄러움의 다른 표현이라고 믿겠다.
그러나 대학가에는 다른 괴담들이 더 있다. 이른바 주요 대학들, 쌓아놓은 기금이 수천 억대에 이른다. 괴담이란, 바로 그 기금을 중국, 미국, 남미 펀든지 뭔지에 투자(투기?)했다가 상당 부분을 날렸다는 것이다. 하긴, 정확한 액수를 모르지 얼마나 날린 지도 모를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괴담이 돈다는 것 자체, 나아가 얼마인지 모른다는 폐쇄성에 있다는 걸 알지 모르겠다.
내가 그 중 어떤 대학 당국자에게 돈 버는 방법을 일러준 적이 있다. 5년 전, 그 대학 기금은 7천억 원이 넘었다. 그래서 일러주었다. 잘 생각해봐라, 고생해서 말도 안 되는 지표 올려서 세계 50대, 100대 대학에 끼려고 애쓰지 마라, 지금 챙긴 기금은 일년 등록금 7백만 원으로 치고, 10년 이상 동안 전교생에게 등록금을 받지 않아도 되는 액수다, 10년만 전교생 장학생으로 뽑아봐라, 이렇게 치고 나가는 거다, 10년 뒤에 자동 최고 대학 된다, 근데 그 학교 졸업생들 애교심 끝내준다, 그때 다시 걷어라, 그러면 장담컨대 지금 기금 몇 배 걷힌다, 어떠냐, 끝내주는 장사 아니냐, 그러면 또 전교생 무상 교육하고, 또 좋은 학교 되고, 그러면 기금 또 걷고 …. 쯧쯧. 장사도 못하면서 장사를 하려니까, 장사하는 데가 아닌데 장사를 하니까,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정명(正名)이 중요한 이유이다. 감사원 발표에 항의하고 싶은 대학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반성할 때다.

헌데 대학도 대학이지만, 곳곳에서 학과 단위의 퇴출이 나타나고 있다. 여러 학과가 있지만 그중 심한 곳이 인문대학에 속하는 학과들이다. 역사학과나 철학과가 피해갈 리 만무하다. 이미 지방 여러 대학에서 역사학과는 관광 계통 학과 쪽으로 통합되든지, 무슨 콘텐츠학과라는 식으로 시대와 호흡하며(!), 가 아니라, 시류에 영합하며(!) 생존하고 있다. 그러면서 ‘인문학의 위기’라고 한다. 아니다. 대학 강단의 역사학과 교수, 철학과 교수들의 위기이다.
역사학도의 입장에서 볼 때 현재 역사학과의 위기는 예견되어 있었다. 현대의 오만이기는 하지만, 역사학 역시 ‘진보사관’과 ‘근대주의’의 오만 속에서 협애해졌다. 고대-중세-근대라고 부르는 순간 작동하기 시작하는 진보사관과 근대주의는 사실 역사학의 무덤을 파는 일이었다. 사실과 가치 두 측면 모두 현대의 삶이 지고의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 누가 지난 경험을 진지하게 현실로 끌어 오겠는가? 과거 또는 경험은 기껏해야 호고(好古) 취미일 뿐이다. 마치 사극(史劇)이나 유사 역사평론이 역사학을 대신하듯.
그런데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역사학이 비실거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다. 현재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역사교육은 국민국가사로 한정되어 있다. 전국 모든 대학의 역사학과(국사학과)는 고대사, 고려사, 조선사, 식민지 및 현대사로 되어 있다. 그렇다. 국사(國史)다. 서양사와 동양사 역시 국민국가사 또는 국민국가사를 모아놓은 지역사(예를 들면 유럽사, 남미사)를 커리큘럼으로 하고 있다. 대학이 위치한 지역이나 규모의 차이, 이런 거 반영되지 않는다. 스테레오타입의 교과가 국민국가답게 전국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당연히 해당 전공 교수가 퇴임하면 그 자리에는 그 해당 전공만 뽑는다. ‘자리’니까. 이렇게 해서 이 국사교육체제는 온존, 강화된다.
익히 알다시피 19c 국민국가의 완성에 충실히 시녀노릇을 했던 역사는 국민국가 탄생과 유지에 기여했지만, 한편으로는 국민국가의 아이덴티티에 방해가 되는 기억은 지워버렸다. 예를 들어, 탐라나 제주의 기억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고, 빨리 지워버리고 국사가 보여주는 기억으로 대체해야 하는 거다. 그럼에도 웃기는 것은, 현대사는 가능한 지워버리려는 것이 국사였다.(폴 벤느는 아예 역사학은 현대사를 사회학과 인류학에 넘겨주었다고 단언했다.)
사람은 여러 차원의 역사를 만들며 살아간다. 가족은 누구나 피할 수 없고, 학교에 다니면 학교의 역사를 구성한다.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은 교회나 절의 역사를, 또 자연스럽게 자기 고장의 역사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국사는 가족사에 대해 봉건적이라는 굴레를 씌워 봉쇄한다. 하지만 족보는 여러 역사의 일부이지, 타도대상이 아니다. 그 외에 학교나 사회단체, 지역 등 사람들이 곳곳에서 만들어가는 역사는 ‘역사교육’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일곱 색깔 무지개로 구성되어있는데 굳이 빨간색이나 파란색으로 물들이려고 하면 받아들여지겠는가. 수능시험, 공무원시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할 뿐이다. 그나마 공무원시험도, 경상도나 충청도 공무원을 뽑는데 국사를 시험 치는 것은 타당성이 없다. 그 지역 공무원으로 근무해야 하니까 경상도사(史)나 충청도사를 보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20c ‘근대’ 역사교육이 들어선 이래 지금까지, 역사학은 근대주의에 입각한 진보사관을 통해 역사학의 바탕인 과거의 경험을 부정했고, 국민국가사로 자신의 정체성을 제한하면서 역사학의 문채(文彩)를 지웠다. 게다가 역사학이 해줄 수 있는 풍부한 일, 즉 자료발굴과 정리, 번역과 해설의 책무는 한갓 허드렛일로 버려두고 줄창 논문만 요구했다. 재미없는 논문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시간의 문제일 뿐, 현재의 역사학을 반성하지 않으면 역사학과는 차례차례 망할 것이다. 왜 망하는지도 모른 채.

여기에 위험요소가 하나 더 늘었다. 한국현대사학회라는, 뉴라이트와 인적 구성과 지향이 상당히 겹치는 어떤 학회를 중심으로 역사교과서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게 또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위 학회의 건의와, 역사교육과정 개발추진위원회(위원장 이배용)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이태진), 교과부(장관 이주호)가 주체가 된 개정작업이다. 발단은 교과부가 지난 8월 9일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사회과 교육과정”을 고시하였는데, 그 고시에 당초 교육과정심의회를 통과한 초중고 역사교육과정안(한국사 부분)의 원안이 바뀌었고, 그중 하나가 ‘민주주의’ 개념이 모두 ‘자유민주주의’로 바뀐 것이었다.
바뀐 과정부터 이상하다. 당초 과정안 원안은 전문역사학자들의 자문과 시민들도 참여한 공청회, 역사교육과정 개발추진위원회라는 교과부 자체의 검토를 거친 것이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개념에 대해서는 논의된 바가 없었다. 불쑥 들어간 것이다. 대개 그렇듯이, 이렇게 슬쩍 또는 불쑥 들이밀 땐 사심이 있는 경우가 많다.
굳이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liberal-democracy)로 표기하려는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민주주의를 시장경제 중심의 자유주의 베이스로만 이해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평등한 시민권에 방점을 둔 민주주의와 소유권의 자유와 시장우위에 기반을 둔 자유주의의 대립과 조정의 역사가 배어있다. 자유민주주의 개념은 당연히 복지, 사회정의, 이런 거 생각하는 사회민주주의(social-democracy)와 다르다. 전자를 채택하면 후자는 역사교육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현행 헌법에 나오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the basic free and democratic order’로 번역되기 때문에 이번 교육과정에 집어넣으려는 자유민주주의(liberal-democracy)와 애당초 기원과 맥락이 다르다. 이런 논의가 오고가는 중에 논리가 궁색해지자 자유민주주의론자들은 자유민주주의는 사회민주주의를 포함하는 개념이라는 논리를 들고 나왔다. 그럴 거면 그냥 민주주의라고 하면 되지, 왜 굳이 자유민주주의라고 쓰고, 거기에는 사회민주주의의 개념도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까지 해야 하나? 지리멸렬.
원래 자유민주주의는 특정 정당의 정강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1961년 12월7일 기자회견에서 박정희 혁명정부가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다’고 선언하고, 1963년 2월26일 제정된 공화당 강령 1조에서, ‘민족적 주체성을 확립하며, 자유민주주의적 정치체제의 확립을 기한다’고 하였다. 1950년대 양대 정당인 자유당과 민주당의 정강 1조는 ‘진정한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확립’(자유당), ‘일체의 독재주의를 배격하고, 민주주의의 발전을 기한다’(민주당)로만 되어 있었다. 특정 정당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정강으로 채택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특정 정당의 정강 용어를 한국 현대사의 기조로 가르칠 순 없는 일 아닌가?
이렇게 해서 국민국가사로 편협해진 역사학으로도 부족해서, 이제는 그 국민국가사의 일부만으로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보편적 공감이 아닌 특수한 배제로 작동하는 양상, 공익이 아닌 사익이 우선하는 양상, 《서경(書經)》의 표현대로 하면 도심(道心)이 아닌 인심(人心)으로 작동하는 양상이 요즘 정부 정책의 기조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던 바이지만, 역사교육까지도 이렇게 세심하게 관리할 줄은 몰랐다. 정말 디테일이 살아 있다!
현재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사연구회 등 11개 연구단체가 개정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학계 대표들을 면담한 자리에서 이주호 장관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김관복 교과부 학교지원국장은 “교과부는 합법적인 절차를 밟았다. 장관이 다시 한 번 검토하겠다는 뜻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합법적이라…. 그랬겠지. 공무원들이 어련했으려고. 그래서 고전이 중요하다. 공자는 《논어》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을 법으로만 다스리면, 요행히 법망을 빠져나가려고 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

목격담 추가.
10월 28일, 서울 서대문 4.19혁명기념도서관 강당에서, “보수와 진보가 보는 민주주의-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이론, 헌법, 역사”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역사교과개정 논란의 원인이 된 ‘자유민주주의’ 개념을 토론하는 자리였다. 발제를 맡은 박명림 교수(연세대)의 발표에, “임시정부 이래 이승만 정부까지 어떤 헌법, 연설, 인터뷰에도 자유민주주의는 없다”는 내용이 구체적인 사료와 함께 제시되어 있었다. 발표문에서 시종일관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썼던 김용직 교수(성신여대)는 단 하나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1차 사료도 제시하지 못하고, 모두 연구서에서 차용했다. 일단 현재까지, 역사학자인 내가 볼 때 임시정부부터 이승만 정부까지 자유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의 기본방향이라는 걸 보여준 사료는 없다.
목격담을 추가하는 이유는, 박명림 교수에 대한 토론 패널을 맡았던 권희영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의 발언 때문이었다. 그는, “역사학에서 사료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해석이다. 이는 역사학의 기본이다. 그런데 박교수는 사료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자유민주주의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그랬더니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었다!) 일리가 있다.
그의 말대로, “역사학에서 사료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해석이다.” 그러나 “역사학은 사료가 없이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이것이 더 역사학의 기본이다. 알고 보니 그 분이 현대사 전공인 역사학자시란다. 그리고 그 분이 마침 한국현대사학회 회장이신지라 그날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했는데, 한국현대사학회는 학술단체이지 운동단체가 아니라고 하셨다. 학술이 운동보다 그리 대단한지는 모르겠으나, 그 학술이라도 제대로 하셨으면 좋겠다.

응답 2개

  1. 고추장말하길

    ‘도덕을 넘어서자’고 말하면 꼭 ‘그러니까 악덕이 도덕이다’고 우기는 놈들이 한편인양 달라붙고, ‘진리를 넘어서자’고 말하면 꼭 ‘그러니까 오류가 진리다’는 식으로 엉겨붙는 놈들이 있지요. ‘도덕 비판’이 ‘부도덕 비판’이기도 하다는 것, ‘진리 비판’이 ‘오류비판’이기도 하다는 걸 알려주기 참 힘들어요. 저도 ‘역사는 해석’이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만, ‘해석’을 통해서 ‘역사’가 드러난다고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해석’을 통해서 ‘해석자’가 어떤 인간인지가 드러나는 거지요. 그나저나 잘 지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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