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A의 일드보기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 상실과 성장의 이야기

- AA

드라마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사랑의 그녀가 백혈병으로 죽은 후 17년이 지나도록 남자는 여전히 그녀를 잊지 못하고 있는데…” 이 한 줄로 본다면 ‘백혈병’이라는 올드한 클리셰까지 겸비한 완벽한 신파물인 이 드라마,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2004년 TBS에서 방송되었다. 제작 당시부터 츠츠미 유키히코 감독의 연출로 화제가 되었고 또한 같은 해 초 개봉한 영화판에서 여주인공을 맡은 나가사와 마사미가 그 해의 모든 영화제에서 ‘신인여배우상’을 휩쓸며 급부상했기에 드라마의 캐스팅도 큰 관심사였다. 그러나 이미 원작 소설이 일본에서 3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 베스트셀러였고 영화 역시 700만 관객을 동원한 후였다. 즉 이미 드라마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일본인의 반 이상이 내용과 결말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골국 우려내기의 끝판왕’ 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그만큼 컸다. 하지만 이 드라마야말로 원작, 영화, 만화 등 다양한 방면으로 재탄생된 결과물 중 최고의 ‘진국’이기에 꼭 소개하고자 한다.

1987년, 고등학교 2학년인 마츠모토 사쿠타로는 같은 반의 학급위원 히로세 아키와 풋풋한첫 사랑을 시작한다. 보고 있으면 빙그레 웃음이 나오는 청춘들의 사랑도 잠시, 여주인공 아키가 백혈병 판정을 받는다. 지금도 백혈병은 골수이식 외에는 고칠 방법이 없는 난치병이지만 1987년에는 골수이식의 의술이 아직 나오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하고 싶은 게 많았던 17세의 소년, 소녀는 죽음 앞에서 미래에 관한 모든 것들을 속절없이 잃어간다. 투병 중 호주 원주민인 어보리진의 이야기를 읽은 아키는 사쿠에게 마지막 부탁을 한다. 어보리진에게 있어 세상의 중심이라는 울룰루에서 죽고 싶으니 데려가 달라고 말이다. 두 사람은 어른들의 눈을 피해 병원에서 빠져나와 공항에 가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렇게 아키는 죽고 17년이 지난다. 사쿠는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아키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녀의 뼛가루(骨粉)를 늘 지니고 다니는 사쿠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할지 몰라 17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렇다. 이야기의 중심축은 ‘죽음’이다. 그래서 이것은 상실의 이야기이다. 자칫 슬픈 화면의 나열 속에서 때맞춰 터지는 음악과 함께 눈물샘이나 자극하는 신파로 끝날 수 있는 소재이지만 이 드라마는 그저 그런 졸작으로 머물지 않고 찬찬히, 공감대를 형성하며 소중한 것을 잃은 마음을 담는다. 그래서 어떤 때는 누군가를 잃고 혼자 먼 길을 걷던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자꾸만 잃어버린 그 사람이 떠오르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상실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표현함에 있어 특히 그 진가를 드러내는 것은 3화의 한 씬이다. 남자주인공 사쿠의 할아버지가 죽었지만 사쿠는 의외로 실감이 나지 않아 장례식을 치르는 내내, 그 후로도 며칠간 울지도 않고 평소처럼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쿠는 아키를 데려다 주고 돌아가는 자전거 위에서 문득 느낀다. 페달이, 가볍다.

늘 자신의 뒤에 멋대로 올라타던 할아버지가 있을 때와 달리, 페달에 느껴지는 무게가 다르다. 할아버지의 무게만큼 힘을 주어야 했던 페달이 너무도 가볍게 굴러간다. ‘없음’의 생생한 느낌, 부재의 확연한 증명이다. 그제야 할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더 이상 자신과 함께 자전거를 탈 수 없음을 온 몸으로 실감하게 된 사쿠는 그 자리에서 자전거와 함께 뒹굴며 울기 시작한다. 뒤따라오던 아키는 울고 있는 사쿠에게 말한다.

“내가 할아버지만큼 살쪄서 뒤에 탈게.”

이렇게 씩씩하고 따뜻하던 아키가 백혈병에 걸리면서부터 모든 것에 균열이 생기고 그 균열의 틈에는 두려움과 절망이 끊임없이 솟아난다. 고작 열일곱 살인 아키는 왜 하필 자신이 그런 병에 걸려야 했는지 납득할 방법이 없고, 그 옆에 선 사쿠는 그녀 대신 눈물을 참을 수는 있을지언정 대신 아플 수도, 대신 죽을 수도 없다. 그것은 17년이 지나서도 마찬가지다. 어른이 된 사쿠는 죽은 아키를 살려낼 수도, 그렇다고 쉽게 잊을 수도 없다.

드라마는 현재의 사쿠와 과거의 사쿠를 오고 간다. 이는, 이 드라마가 그저 ‘불치병에 걸려 죽은 첫 사랑’을 추억하고자 함이 아님을 뜻하기도 한다. 이 드라마가 그저 신파극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상실’의 무게만큼 ‘성장’을 다룬다는 데에 있다. 17년 후라는 설정은, 17년 동안이나 죽은 여자친구를 잊지 못하는 절절함을 표현하고자함이 아니라, 커다란 상실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마음이, 삶이 성장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함이다. 그래서 이것은, 상실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키를 잃고 혼자 17년을 살아온 사쿠는 늘 생각했다. 얼마나 더 살아야 잊을 수 있을까. 몇 번의 밤과 낮을 혼자 달려야할까. 과연 끝까지 달릴 수는 있을까. 그리고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직 보이지 않는, 멀고 먼 골라인 지점에 만약 그녀가 서 있다면 과연 그녀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한때 인생의 전부였던 사람을 잃고도 평범한 얼굴로 대학에 진학하고, 병을 연구하는 의사가 되었다. 그럭저럭 살다보면 잊을 것이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17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고 긴 시간을 지나 사쿠가 마주한 것은, 보기 흉하게 얼기설기 덮여 있는, 버려진 무덤 같은 흔적이었다. 그제야 사쿠는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고 어두운 둔석(窀穸)이 그 시작과 끝에 있는 아키를 진심으로 보낼 수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봉분이 될 수 있을 것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나서야 다시 한 번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 믿기 시작한다. 또 다시, 누군가를 뒤에 태우고 달릴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번 더 진심어린 웃음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드라마가 ‘성장’에 무게를 둘 수 있었던 것은 극에서 양쪽의 부모, 학교 선생님 등 ‘어른’의 역할이 크다. 청춘의 혼란 속에, 상실의 고통 속에 헤매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성장을 강요하지도, 극복을 다그치지도 않는다. 이렇게 하면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고 설교하지도 않는다. 그저 지켜보며 옆에서 지탱해줄 뿐이다. 막다른 벽 앞에 부딪힌 아이들에게 극복의 방법을 가르치는 대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을 찾을 수 있도록 등을 두드려준다. 곁에서 지켜보는 것이 아프지만 그저 묵묵히 참고 지켜봄은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들 역시 상실을 온전히 겪고 그것을 성장으로 삼는 과정을 통해 지금의 어른이, 진짜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상실과 결핍은 있다. 그리고 사람은 살아 있는 이상, 언젠가는 잊게 된다. 드라마는 그 잔혹한 진실을, 공허함과 절망을 몇 번이고 곱씹으며 자신의 앞에 놓인 오늘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사람만이 진정한 ‘사람 어른’이 되어 또 다른 누군가의 성장을 지탱해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흔히 말하는 걸작의 3요소, 연출, 극본, 연기를 모두 갖추고 있다. 정극의 흐름을 놓치지 않은 연출도 훌륭했고, 다소 작품성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원작을 탄탄하게 각색한 대본도 뛰어났지만 어림에도 불구하고 훌륭하게 배역을 소화해낸 남녀 두 배우의 활약도 몹시 컸다. 그저 유망한 여배우였던 아야세 하루카는 사쿠를 향해 따뜻하게 두 팔을 벌리는 장면에서 새로운 히로인으로 확실한 도장을 찍었다. 이 드라마의 프로듀서인 이시마루 아키히코가 후일 언급했듯 이 장면에서의 아야세 하루카의 얼굴에는 ‘여신, 어머니, 그리고 연인’ 의 세 가지의 표정이 모두 담겨 있다. 또한 어리숙하지만 ‘뭐든지 괜찮다’고 따뜻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쿠를 연기한 야마다 타카유키는 섬세한 본인의 연기력을 유감없이 펼쳤다. 성장을 이야기한 드라마를 창조한 사람들답게, 연출자였던 츠츠미 유키히코도, 각본가 모리시타 케이코도, 두 남녀배우도 이 드라마를 통해 한발 더 나아갔음을 각각의 필모그래피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드라마의 처음과 마지막에 등장했던 시를 소개한다. 사쿠와 아키의 만남에 계기가 되었고 아키가 죽기 전 사쿠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로 완성한 시이다.

<하늘의 노래 – 살아갈 너에게>

만약 네가 마른 잎은 무슨 쓸모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겠지. 황폐한 대지를 살찌우기 위해서라고.

너는 묻는다. 겨울은 어째서 필요한 거지?

그러면 나는 대답하겠지. 새로운 잎을 피우기 위해서야.

너는 묻는다. 나뭇잎은 왜 저렇게 푸르른 거지?

그러면 나는 대답하겠지. 어째서냐니, 녀석들은 생명의 힘이 넘치고 있기 때문이야.

너는 다시 묻는다. 여름이 끝나야하는 이유는?

나는 대답하겠지. 나뭇잎들이 모두 죽어가기 위해서야.

너는 마지막으로 묻는다. 곁에 있던 그 아이는 어디로 갔어?

그러면 난 대답하겠지. 이제 볼 수 없어. 왜냐하면 네 안에 있기 때문이야

너의 다리는 그 아이의 다리야.

힘내.

원작소설의 부제는 ‘나의 세상의 중심은, 너’ 이다.

덧붙임.

원작 소설은 2001년 처음 발행되었고 점차 입소문을 타면서 결국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넘어 일본 내 소설 최대 발행부수를 기록했다. 영화는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이 연출했으며 애니메이션을 제외한 일본 방화 중 역대 흥행 수입 순위 2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파랑주의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그리고 제목의 일본어 발음(世界の中心で愛を叫ぶ세카이노 츄우신데 아이오 사케부)을 축약한 ‘세카츄’라는 단어가 2004년 당시 ‘올해의 유행어 대상’을 수상했다.

일본은 매년 12월 그 해의 ‘유행어’ 순위를 발표한다. 한 해의 세태와 유행을 반영하는 생생한 지표이기 때문에 주요 신문은 물론 TV프로그램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한다. 각종 기업의 마케팅에도 유용하게 활용되기 때문에 다음 해의 히트상품에도 참고 자료가 될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시상식에는 각 유행어의 장본인(유행시킨 사람)이 나와 상을 받기도 한다. 참고로 2009년 일본의 유행어 대상은 ‘정권교대’였다. 우리나라도 만약 이런 ‘유행어 시상식’을 한다면 올해의 유행어는 무엇이며 그 장본인은 누구일까? 아! 당신이 지금 떠올린 그 분, 탑 텐에 가장 유력한 ‘유행어’를 가장 많이 배출해낸 그 분이 내가 생각하는 그 분과 동일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응답 2개

  1. 말하길

    뻔하다고 생각했는데, 찌~ㄴ한 울림이 있네요. 가을이라 그런가? 잘 읽었습니다

  2. someday말하길

    성장, 고통, 청춘에 대한 예의. 그저 등을 두드려주는 어름들의 역할이 드라마를 아름답게 만들어주었을 것 같습니다. 시간내어 챙겨보고싶네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