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그녀들은 운다. – ‘불안해하는’ 여성들의 ‘불안하게 하는’ 점거 –

- 신지영

* 울며 울리는 그녀들, 김진숙들, 김상들.

2011년 11월 10일. 85호 포크레인 위의 그녀가 309일만에 내려왔다. 해고자와 비해고자의 구분이 사라진 직후였다. 파란색 작업복을 입은 “철의 노동자”들도 울고, 그녀도 울고, 대한민국의 모든 비정규직이 울고,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땅 속의 전태일도 울었을 것이고 그렇게 울음이 웃음이 되었다. 일당이 좀 세서 용접을 배웠고 돈 벌어 대학 가는 게 소원이었다던 그녀는, 조선소의 하루 하루가 지옥 같아 무던히도 울었고 “어머니 아버지 보세요” 한문장 쓰면 눈물범벅이 되곤 했던 그녀는, 이제는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그들을 모이게 하고 세상을 바꾸는 존재가 되고 있다.

후쿠시마 여성들에 대한 전국의 격려 메세지

후쿠시마 여성들에 대한 전국의 격려 메세지


그녀의 소식을 일본에서 처음 접했던 사진에서는 그녀를 찾을 수가 없었다. 파란색 작업복을 입은 수많은 “철의 노동자”들과 한참이나 떨어져 공중에 솟아 있는 포크레인만이 보였다. 대체 그것은 무엇일까? 보이지도 않는 그녀를 저 단단한 철의 노동자과 연결하는 힘은. 그것은 소금꽃의 냄새를 맡고 느끼고 그 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솔직하고 섬세해서 강한 감정이었을 것이라고 지금은 선명히 느낀다. 소금꽃이란 더운 여름 땀으로 젖고 젖은 작업복이 젖었다 말랐다 하며 만들어낸 무늬를 의미한다. 그녀의 글과 연설에는 유독 서러움, 눈물, 땀, 분노가 많다. 약하고 부정적인 단어들이지만, 그의 연설과 글 속에서는 따뜻하고 부드럽고 긍정적이고 강하다. 강렬한 냄새를 풍기며 우리들의 감각으로 직접 파고든다. 그리고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어느새 눈물을 펑펑 쏟고 있는 자신을. 희망버스에 몸을 싣고 있는 자신을. 85호 포크레인을 향해 휘말려드는 자신을. 더 나은 세상을 온 몸으로 꿈꾸고 있는 자신을. 꿈꾸고 싶은 자신을.
거짓말하면 엄마한테 혼난다.

거짓말하면 엄마한테 혼난다.


일본에서도 그녀들이, 또 다른 김진숙들이 울고 있다. 당장 먹고 마실 것이 불안하다고, 아이들이 숨 쉬는 공기가 내리는 비가 놀 공원이 불안하다고 말하는 그녀들. 집회나 데모엔 참여해 본 적이 없어 아이를 데리고 꽃 모자를 쓰고 도시락을 싸들고 나와 탈원전을 부르짖는 그녀들. 자신의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고 후쿠시마의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고 부둥켜 안고 울며 말하는 그녀들. 누군가는 그녀들로부터 집 구석 장롱 속 곰팡내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찾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는 ‘또다시 일본 어머니의 모성인가’라고 비판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그녀들을 통해서 느끼는 것은 집 구석 장롱 속 곰팡내 나는 어머니의 마음이, 장롱 문을 활짝 열어 젖히곤 길 위에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무언가 새로운 것이 있다. 이것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우선 그녀들/비남성들을 ‘일본의 김진숙들’이라고 불러 볼까… 아, 일본식으로 하면 김상들인가?
야채를 보내준 것을 기뻐하는 후쿠시마 아이들의 그림일기

야채를 보내준 것을 기뻐하는 후쿠시마 아이들의 그림일기

* 불안의 과학자, 길 위의 과학자, 그녀들.

김진숙이 조선공이 되었을 때 유일한 처녀 용접공이었듯이, 여자들은 철의 세계 과학의 세계를 모르는 혹은 몰라야 하는 존재들이었다. 합리적인 과학을 알기에 여성들은 너무 감각적이어서 이성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것이 전통적인 논리이다. 이 논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다양하게 변형되어 나타난다. 여성은 곧잘 울고 여성은 쉽게 감정적이 되어 버리고, 여성은 쉽게 삐지고 질투하고 등등…. 그러나 이 계산 가능하고 합리적이고 하나의 정답만을 허용했던 과학의 최첨단 산업인 원전에 사고가 발생했다. 계산 가능하고 예측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던 인간의 합리성은 계산도 예상도 불가능한 자연 재해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 이후 일본에서 일어난 탈원전/반원전 활동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이고 과학을 모른다던 여성들의 불안한 목소리이다.

울먹이고 격앙된 낭송- 원전이여 고이 잠들어라!

울먹이고 격앙된 낭송- 원전이여 고이 잠들어라!


분노가 명확한 대상이 있고 밖으로 분출하는 혁명적 감정이라면, 불안은 대상이 명확치 않은 상태로 일상에 뿌리내린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일상에 뿌리내린 그녀들은 말한다. 음식은 정말 괜찮은 것인가? 기준치라는 걸 믿어도 되는가? 아이들에게는 더 큰 영향이 나타나는 건 아닌가? 우리들에게도 측량기를 달라, 후쿠시마의 아이들은 어떻게 하는가? 등등. “식품의 방사능 오염이 걱정되어 노이로제가 될 것 같은데, 남편은 이해해 주지 않”아서 거리로 나오게 되었다 1고 토로하는 여성들도 있다. 이처럼 위험을 더 깊고 빨리 느끼는 비합리적 감각, 일상 속의 불안이 그녀들을 길로 나서게 했다. 길 위에 나선 그녀들은 그 길 위에서 비합리적인 감성적 과학을 얻고 만들고 확산시키고 있다.
손으로 만든 천그물을 든 그녀들

손으로 만든 천그물을 든 그녀들


미즈시마 노조미(水島希)는 여성들은 불임치료, 예방접종, 식품 및 화장품의 첨가물 등을 늘 고려해 왔기 때문에 생활의 과학을 일상적으로 접해 온 셈이라고 말한다. 삶과 직결된 과학자들이었던 그녀들은, 원전 사고가 일어나자 일상적 모임을 가장 빠르게 혁명적 집단으로 변형시켰다. 내 친구의 부인은 일본에서 생활하는 한국 부인 동호회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먹거리 육아 정보를 그 동호회 홈페이지를 통해서 얻고 있었다고 한다. 원전 사고가 터지자 그 동호회 사이트는 원전 상황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공급하고, 활동이나 행동을 지시하고, 집회나 연구회를 알리는 장으로 변화했다. 최근에는 어머니들이 중심이 된 원전 지식 사이트 <떡갈나무 엄마들의 방사능 편지(柏ママの放射線だより「http://members3.jcom.home.ne.jp/2143800701/)>등이 활발히 만들어졌고 그녀들은 <방사능 피폭에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버전2(放射線被ばくからこどもを守るために, NOP法人セイピースプロジェクト)>원전사고 대책>과 같은 소책자들을 모으고 읽기 시작했다.
사랑을 먹이고 싶다

사랑을 먹이고 싶다


그녀들의 이러한 마술같은 변신에는 비합리적이고 감성적인 그녀들의 과학지성이 있었다. 어느 날인가 나는 토마토 안에 쪽지가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쪽지에는 “소비자의 여러분에게 본 현에서 나온 농림수산물을 안심하고 구입할 수 있도록, 방사능 모니터링 검사를 매일 실시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품명이 규제치를 대폭 밑돌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습니다”라고 씌어져 있고 뒷면에서는 안전을 증명하는 과학적 수치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데모에서 우연히 만난 어떤 여성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일단 수치가 많으면 의심부터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들에게는 수치, 계산가능성, 예측 가능성을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감성적 과학이 있다. 핀란드의 한 조사에 따르면 ”교육 정도가 높은 여성일수록 원자력 발전을 강하게 거부하는 한편, 남성의 경우는 교육정도가 높을수록 원자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 2 도 있다고 한다. 이는 위험을 느끼는 능력이 여성이 더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처럼 불안이라는 민감하고 놀라운 감성적 과학으로 무장한 그녀들이 최근 길 위로 몰려 들고 있다.

# 그녀들은 길 위에서 외치고, 울고, 먹고, 수다 떤다.

3월 이후에 열리고 있는 집회의 사진들을 그 이전 집회들과 비교해 보면 가장 눈에 띠는 것이 여성과 아이들이 압도적으로 늘어났다는 점이다. 여성과 아이들이 잔뜩 참여함에 따라서 우선 데모대열의 눈높이도 색깔도 걸음걸이도 목소리도 바뀌었다. 색깔은 더 알록달록해졌고, 데모대열의 눈높이는 낮아졌고, 걸음걸이는 재고 당차졌으며, 목소리는 떨리면서 격앙되었다. 불안해 하면서 주섬주섬 도시락을 싸들고 길 위에 모인 그녀들은 집회와 데모의 모습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http://www.youtube.com/watch?v=2W6QUOveuVo )

점거농성을 한 후쿠시마의 여성들이 만든 천그물을 뭉쳐 만든 푸른 지구

점거농성을 한 후쿠시마의 여성들이 만든 천그물을 뭉쳐 만든 푸른 지구


그 중에서도 일본 전체에 충격을 주었던 것은 경제산업성 앞에 모인 후쿠시마 여성들의 점거농성이었다. 도쿄 중심부에 태어나서 처음 와 봤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원전 옆에서 30년간 운동을 지속한 사람도 있고, 가족들이 뿔뿔이 헤어져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뿔뿔이 흩어진 그녀들이 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후쿠시마 어린이들에게 피난의 권리를 인정해 줄 것, 가동중인 원전과, 멈춘 원전 재가동을 멈출 것. 다음의 영상을 보라. 번역할 필요가 없는 말이 들릴 것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pTXXOHW5Cmk 인터뷰하는 목소리에는 울음과 한숨과 격앙된 분노가 켜켜이 들어차 있다. 그녀들은 울음을 참느라 말이 끊긴다. 그 끊긴 침묵 사이로 강하게 다잡는 마음이 드러나고 다시 말이 끊긴다. 그 끊긴 사이사이로 영상을 보는 우리의 마음이 철썩철썩 파도쳐 움직인다. 그냥 한번 보라. 이것은 말이 아니라 우리를 울리고 우리를 온몸으로 끌어당기는 강력한 힘, 에너지이다.
장애인들이 누빔천에 새긴 평화헌법

장애인들이 누빔천에 새긴 평화헌법


이 힘을 이어받아 10월 30일부터 11월 5일까지는 도쿄 경제산업성 앞에 도쿄와 전국의 여성들이 점거 농성을 했다. 마지막날인 5일에 가 보았더니 앉은뱅이 의자들만 쪼르륵 있고 아무도 없었다. 놀라서 여쭤보니 11시부터는 그 근처에 있는 히비야 공원에서 회의가 있어 모두 그리로 몰려 갔으니 어서 가보라는 것이었다. 히비야 공원에서는 누군가가 선언문인지 시인지 구별할 수 없는 것을 낭독하고 있었다. 원전에게 고이 잠들라고 말하는 그 낭독을 듣고 있자니 눈물어린 격앙된 감정이 전해져 왔다. 주변에 서 있는 여성들은 손으로 엮어 만든 천그물을 손에 손에 이어서 들고 있고 낭독자 옆에는 푸른색 공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후쿠시마 여성들이 만든 손그물을 둘둘 말아 만든 푸른색 지구라고 했다.
알록달록 덧대어진 누빔천의 뒷면

알록달록 덧대어진 누빔천의 뒷면


도쿄 한 가운데에서 손으로 만든 천그물을 든 그녀들은 후쿠시마의 여성과,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아이들과, 그리고 지구 전체와 연결되어가고 있었다. “여자들은 원전을 원치 않는다. 모두 원전을 원치 않는다. 여자는 아이들을 지킨다. 모두가 아이들을 지킨다. 여자는 세계를 바꾼다. 모두가 세계를 바꾼다. 여자는 연결되어 간다. 모두가 연결되어 간다……” 그 순간 누군가가 달려 왔다. 장애인들이 손으로 평화헌법 9조를 새겼다는 붉고 큰 누빔천이었다. 그 천의 뒷면은 훨씬 더 아름다웠다. 작은 천 조각들이 알록달록 불규칙하게 이어져서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알록달록한 천조각과 영롱한 눈물로 얼룩진 분위기가 맘에 들었다. 그녀들을 따라 점거농성장으로 되돌아 오자 12시가 좀 넘어 있었다. 그 순간 기막힌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녀들은 갑자기 약속이라도 한 듯 도시락, 빵, 오니기리 등을 꺼내더니 당연하다는 듯이 모여 먹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농성장에서 음식을 먹는 건 흔하지만, 이렇게 천으로 도시락, 오니기리, 음료수 등을 알뜰하게 골고루 싸 와서 나눠가면서 먹는 모습은 드물다. 나도 배가 고픈 듯한 생각에 앉아 있자니, 초코렛, 빵, 오키나와 설탕 등이 연이어 전달되어 왔다. 그 음식들과 함께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할지 방사능의 오염에서 식탁을 어떻게 지켜야 할 지 수다를 떨곤 했다. 가정의 식탁이 길 위에 펼쳐졌고, 그녀들은 음식을 나누어 먹기 시작했다. 음식 먹기가 끝나자 그녀들은 바느질로 손그물을 엮기도 하고, 털실을 짜기도 하고 노래도 하고 춤도 췄다. 그녀들은 단지 점거 농성을 한 것만이 아니라, 길 위에 식탁과 살림을 펼쳐놓고 점거 농성의 풍경을 바꾸고 있었다.
점거농성에 참여한 꼬마- 피켓에는 후쿠시마 여성들의 3일간의 생각을 이어간다라고 씌어있다.

점거농성에 참여한 꼬마- 피켓에는 후쿠시마 여성들의 3일간의 생각을 이어간다라고 씌어있다.


내 오른편에는 한 40살쯤 되어 보이는 활달한 여자분이 앉아 있었고, 왼편에는 젊고 이쁘게 생긴 분이 있었다. 40세쯤 되어 보이는 여자분의 피켓이 재미났던지 신원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그녀에게 인터뷰 요청이 왔다. 그런데 옆에서 듣기에도 인터뷰 질문이 좀 이상했다. 이러한 점거 농성으로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하느냐? 자신은 선거 등 제도적인 힘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사람이 많다는 질문이었다. 인터뷰가 그렇게 진행되자 그 여자분은 질문에 문제를 제기했다. 결론이 있어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의지표명을 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결론은 잘 모르겠지만, 답은 하나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내 옆에 앉아 있던 젊은 여자분이 “저도 그 말에 찬성이예요!”하더니 거들기 시작했다. 뭘 할지 알아서 여기 있는 게 아니라 뭐든 해야 하기 때문에 와서 앉아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원전을 만든 것은 모든 문제에 답이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즉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꼭 원전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일제히 도시락을 꺼내 먹기 시작하는 그녀들. 다른 사람들에게 음식을 돌리고 권하는 장면

일제히 도시락을 꺼내 먹기 시작하는 그녀들. 다른 사람들에게 음식을 돌리고 권하는 장면


나도 어쩐지 한마디 거들어야 할 것 같아서 주섬주섬 말을 시작하니, 저쪽 건너편에 있던 여자분이 어디 출신이냐고 묻는다. 한국이라고 하니까, 내 옆의 젊은 여자분이 내 어깨를 감싸면서 “환영해요”하면서 기뻐해 주었다. 갑자기 화제가 일본은 오염물질을 바다에 버린 게 가장 나쁘다, 세계를 오염시켜서 너무 미안하다는 쪽으로 변화되었다. 나는 그 이야기의 내용 보다도 그 말이 나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표현이기 때문에 기뻤다.
춤추고 노래하고 발언하는 장이 된 점거농성장

춤추고 노래하고 발언하는 장이 된 점거농성장


그 이후에는 저쪽 언니한테도 좀 물어봐요, 그쪽 언니도 이쁘다. 어떻게 생각해요? 등등 인터뷰는 단독 인터뷰에서 집중 인터뷰로 극히 산만한 형태가 되었다. 나는 한 사람에 대한 인터뷰가 옆의 사람으로 퍼져나가면서 서로 거들어주는 이 분위기가 참 좋았다. 집회나 데모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은 뭔가 대단하거나 훌륭한 말이 아니다. 격앙되고 울음섞인 진실에 고양되거나, 이렇게 따뜻한 배려와 관심과 맛난 음식이나 관계들에 이끌리게 되고 그 분위기를 사랑하게 될 때, 그 집회는 커지고 지속되고 끈끈해진다. 나는 트위터 데모에 참여한다는 그녀와 함께 전철로 향했다. 그녀는 자기 이름이 J라고 했다. 나도 이름을 말해 주었다. 우리는 언젠가 다시 길 위에서 만나자고 약속하며 헤어졌다.

# 길 위에 펼쳐진 울음-가족

하키타 카스미(疋田香澄)는 어머니들이 강연 후에 부둥켜 안고 울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사회에서 아이를 기르는 여성의 입장이 이렇게 약한가”라고 느꼈다고 쓴다. 3 그러나 이것은 약함이 아니라 강함이다. 그녀들은 불안해하고 울고 음식을 나누고 격려해주고 방사능으로부터 아이들과 자신들과 지구를 지키자고 약속한다. 그녀들은 불안을 느껴야 할 때 불안을 느끼며 울어야 할 때 울 수 있는 감성을 지니고 있다.

다니가와 간은 1959년 「어머니 운동에 대한 직언(母親運動への直言)」 口婦人公論 口(1959.10)이라는 문제적 글에서, 전쟁에 참여한 아들의 입장으로서 어머니 운동에 직언을 한다. 그녀들이 진정으로 울어야 할 때 울지 않았던 탓에 태평양 전쟁기에 수많은 아들들이 전쟁에 참여하도록 내몰았다는 것이다. 2011년의 그녀들이 길 위에 펼쳐놓고 있는 울음-가족들은 어떠할까? 나로서는 왜 일본 전통 의상을 입고 와서 말해야 하는지 의아할 때도 있다. 또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기도 없는 나로서는 자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이들의 이야기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해질 때도 있다. 또 방사능에 대한 이 불안과 분노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기반으로 한 것은 아닐까 하는 불편함도 있다.

그러나 그녀들은 불안해야 할 때 불안해하고, 울어야 할 때 울고 있고, 소리쳐야 할 때 소리치고 있다. 불안에 떠는 그녀들이 울음이, 그녀들의 몸 속을 휘감고 나온 감정들이, 어느새 나에게도 육박해 온다. 그리곤 위험에 눈 감아 버리고 싶어 하는 자기기만이, 일본 공동체의 눈가리고 아웅 식의 안전 선전 속에 둔감해져 버렸던 감각이, 서서히 깨어나는 걸 느낀다. 그러므로 불안에 떠는 그녀들은 자신들의 불안을 통하여 대중의 감각을 마비시키려는 온갖 선전, 온갖 거짓말쟁이 과학자 전문가 정치가들을 오히려 불안하게 만든다. 그렇게 그녀들은 불안한 존재에서 불안하게 하는 존재로, 두려워하는 존재에서 두려운 존재로 변해간다.

두려운 존재인 그녀들이 길에 차려놓는 밥상, 길에서 꾸리는 울음-가족들의 살림은, 길의 정치 자체를 따뜻하고 섬세한 강렬함으로 채워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울린다. 그러므로 우는 그녀들, 일본의 김진숙들, 일본의 김상들은, 강하다.

신지영(申知瑛, Shin Ji-young)

* 한국 : 문학박사 / 연구공간 <수유+너머>연구원/ 031-918-7652 / boltaguni@daum.net

* 일본 : 東京外大 外国人研究員 / 080-5348-7781 / rakuta0929@yahoo.co.jp

  1. 水島希, 「女には女を使え」, 『女たちの21世紀 核と向き合う女性たち』67号, 2011.9, p.23 []
  2. ウルリケ ローア「工業國のエネルギ」『女たちの21世紀ー核と向き合う女性たち』67号、2011.9、p.28, p.30 []
  3. 疋田香澄「聲をあげることでつながる」『女たちの21世紀 核と向き合う女性たち』67号,2011.9,p.17 []

응답 9개

  1. 한만수말하길

    잘 읽었습니다.
    가고 싶은곳에 가셔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느니까 하는 일을 보셨군요.

    하고 싶으니까 하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었겠구요.

    습관적으로 쓰는 논문들과 책들
    그것들은 오늘 나의 삶,
    탈핵과 20대80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야 하)는가
    다시금 고민하게 됩니다.

  2. 장수희말하길

    답을알아서가 아니라 뭐든 해야겠기에의 절박함,
    인터뷰가 이어지고또 이어지고 다함께 말하게 되는,
    또 그것이 가능한 저 집회의 힘이 찡하게 전해집니다.
    감사합니다.

    • 낙타말하길

      장수희님,

      공감해 주셔서 기뻐요.
      요즘 때때로 집회 현장에서
      어떤 꽉 뭉쳐진 에너지 같은 게 느껴져요.
      그게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되었으면 하고 생각해요.
      한미FTA 반대 투쟁에 그 힘이 전해졌으면 바랍니다.

  3. 이경말하길

    낙타님 글 잘 보았습니다. 일본 현지 상황을 한 사이트에서 번역기를 돌려가며 보는데 자세히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이 글을 보면서 예전에 쓰셨던 글 중 쉽게 떠날 수 있는 입장에 고민.. 그 부분이 생각이 나네요. 건강하게 잘 지내시는지… 한국엔 원전에 대한 글과 일본 상황에 대한 글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감사하고 염려되고 그렇습니다.. ~

    • 낙타말하길

      이경님, 반가워요. 늘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 주시는 게 참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쉽게 떠날 수 없는 분들이 많지요. 조상의 무덤이 거기 있으니까, 일자리가 거기니까, 그곳이 익숙하니까, 새로 살 길이 막막하니까 등등….
      말 할 때마다 참으로 말하기가 어렵고 모르는 게 많고, 말해 놓고도 걱정스러운 것도 많지요.
      그래도 이번 일이 일본만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

      이경씨도 건강하시고, 늘 활기차시길!

  4. 낙타말하길

    tibayo85님,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슬픈 것을 슬프다고 느끼고 분노할 것에 분노하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
    (참, 글 뒷부분이 좀 잘렸어요. 현재 수정요청해 두었어요.)

  5. 낙타말하길

    fibayo85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글 뒷 부분이 잘렸어요. ^^
    잘린 부분 여기에 붙여 둡니다.

    다니가와 간은 1959년 「어머니 운동에 대한 직언(母親運動への直言)」

  6. tibayo85말하길

    굉장히 중요한 문제와 현상을 지적한 글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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