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잉여들에게 장소를 허하라

- 박정수(수유너머R)

어제(15일) 카페 ‘별꼴’에서 재미난 발표회가 열렸습니다. 오오사카에서 ‘카페 커먼즈’를 거점으로 ‘커먼즈 대학’, ‘니트피아’(니트족들의 유토피아) 활동을 하고 있는 와타나배 후토시의 실험 보고였습니다. ‘대학’이라고 해서 교과과정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같이 식사하고 맥주나 커피를 마시며 즉흥적인 주제로 잡담하듯 토론하는 모임입니다. 가령 ‘발효’를 주제로 “성장한다는 말보다 발효된다는 편이 좋지 않나” “성장경제에서 발효경제로!” “인간이 발효되면 어떻게 될까?” “히키코모리는 오히려 발효가 덜 됐다” “화폐 증식은 발효와 다른가”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식입니다. 그냥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어떤 이는 과일에서 천연 효모를 내 오고, 어떤 이는 치즈 덩어리를 가져오고, 어떤 이는 3년 된 묵은지를 입수해 오고 어떤 이는 맥주 제작 키트를 구입해 양조를 하는 등 체험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물론, 원전 사고 후 일본의 내셔널리즘과 같은 ‘무거운’ 주제로 방사성 물질에 대한 위험에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예민한 이유는 뭘까, 남자들은 ‘일본 힘내라’ 식의 민족주의에 쉽게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는 ‘느낌’과 ‘체험’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카페 커먼즈의 주인과 손님은 (정신)장애인, 이키코모리, 니트족, 비정규직 노동자들입니다.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말로 하면 ‘잉여’들이죠. 쓸모없이 남아도는 인간들, 사회가 그렇게 취급할 뿐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로 느끼는 사람들, ‘쓸모’만을 찾는 사회가 무서워 자기 안에 틀어박힌 사람들, 혹은 사회가 요구하는 ‘쓸모’를 의심하는 사람들 그런 잉여인간들이 카페 커먼즈의 주인입니다. 하는 짓도 잉여스럽습니다. 돈 벌 궁리는 안 하고 커피 마시며 노닥거리기, ‘marginal art’랍시고 콧노래나 자장가 부르기, 화덕에 피자 구워 먹기, 자기들에 앓고 있는 방콕증, 우울증, 정신병, 대인기피증, 무력증은 자기 책임 이전에 사회가 문제라며 사회에 대한 불평불만 터뜨리기 등 돈 버는 ‘쓸모’와는 딴 판의 잉여질만 합니다.

목표나 대안? 그런 거 없습니다. ‘커먼즈’(commons)라고 이름붙인 이유도 문제는 목표나 대안이 아니라 ‘장소가 거점이 되어 태어나는 공통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카페 구석의 빈 창고를 청소해 놨더니 그 장소에서 지역통화 오사카 LETS 모임, <자본론> 독서회, 명상회 같은 모임이 생깁니다. 그처럼 심히 잉여스런 카페 커먼즈는 ‘함께 존재함’의 공통감과 소통의 장만 열어 두고 거기서 어떤 이념이, 어떤 목표가 생길지는 미리 규정하지 않습니다.

요즘 청(소)년들에게서 ‘잉여’라는 말이 유행합니다. 중고등 학생들은 친구가 ‘병맛짓’ 하면 “너 잉여 같애”라고 하고, 시험 망치면 “국어 잉여됐어”라 하더군요. ‘애자’라는 말의 자리에 ‘잉여’를 사용하는 듯 합니다. 쓸모없이 남아도는 ‘잉여인간’이라는 의미에서 파생된 용법일텐데, 손창섭의 <잉여인간>(58년)의 용법이 다시 부활한 게 놀랍습니다. 하긴, 지금의 실업문제는 전쟁 여파보다 더 심각합니다. 당시의 실업문제는 전쟁 탓이나 할 수 있지만 지금의 실업(구매되지 못한, 잉여노동력) 문제는 꼭 집어 탓할 데도 없습니다. MB 탓이라고, 신자유주의 탓이라 해도 정권 바뀌면, 정책이 바뀌면 ‘잉여’가 해소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그래서 50년대 잉여인간들의 회의와 염세에는 ‘산업화’와 ‘개발’이라는 가혹한 희망이라도 있었지만 오늘날 잉여들의 회의와 염세는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린 망했다” 라는 상투어구가 2011년 잉여인간들의 종말론적 염세주의를 압축하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의 잉여인간들이 안 그렇겠냐마는 오늘날의 잉여들에게는 ‘희망’, ‘진보’, ‘역사’의 이념에 종말을 고하려는 비극적 의지가 엿보입니다. “나아질 거라고? 나빠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그런 건 왜 해? 난 안 해” “왜? 그냥! 재밌잖아” 이 짙은 냉소와 무기력에는 어떤 삶의 의지와 열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희망을 말하기 전에 철저히 절망하겠다는 의지, 모든 거대한 것들에 대한 철저한 불신, 역사와 진보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온갖 폭력에 대한 혐오 속에 역사를 중단시킬 의지가 숨어 있다고 믿습니다.

카페 커먼즈 실험 보고를 통해 느낀 점은 잉여인간들에게 필요한 건 ‘희망’이 아니라 ‘장소’라는 겁니다. 절망을 공유할 장소, 서로의 체험을 나눌 장소, 혼자가 아닌 함께 있다는 공통감각의 장소 말입니다. 그래서 ‘못 가져 안달하는’ 기성사회의 고독한 장소가 아니라도 얼마든 실존의 장소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합니다.

혹여, ‘잉여세대’에게 죄스런 마음이 있거든 섣부른 희망이나 교사하지 말고 실존의 거점이 될 장소를 찾아줘야 할 겁니다. 잉여들의 장소, 그 잉여 장소에서 쓸모없이 남아도는 잉여가치만 좇는 1%를 왕따시킬 힘이 생겨날 것입니다.

응답 4개

  1. 갈매기말하길

    우와 감사합니다! 다녀와서 인증샷 쏠게요 꺅~

  2. 달팽이달팽이말하길

    http://cafe-commons.com/
    카페 커먼즈 홈페이지입니다~ 평소에는 그냥 카페라서, 올해 마지막 날에 뭔가 열릴지는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점심메뉴도 맛있고, 커피도 맛있어요~ ^ㅗ^

  3. 갈매기말하길

    올해 마지막날을 커먼즈에서 보내면 큰 위로가 될 것 같아요. 주소를 알려주실 수 있나요?

  4. […] [편집자의말] 잉여들에게 장소를 허하라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