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나는 잉여다

- 조르바(잉여세미나)

1.

일단 우리 세대를 동일한 문화 선상에 있다고 단정하는 건 좀 안 될 것 같다. 초딩 시절 HOT를 좋아하던 친구와 에반게리온을 좋아하던 친구를 하나로 묶기가 좀 애매하단 말이다. 실사 남친과 종이 남친의 차이는 그들의 입체감(!)만큼이나 다르니까. 그래도 굳이 비슷한 점을 찾는다면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쫓아 용돈을 다 쏟아 부을 만큼 좋아했다는 거다. 특히 어릴 적부터 친구 보기를 돌 같이 하고 일본만화와 친구 먹었던 내 경우에는 그 충성도가 가히 최고였다.
일본만화에서는 어떤 캐릭터를 만나던 어떤 이야기를 만나던,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서사구조는 거의 동일했던 것 같다. 나를 둘러싼 세계와의 불화, 그 불화를 극복하기 위해 내속에 있는 폭발적인 가능성(요새 말로 “포텐 터트린다”고 한다더라)을 끄집어내 갈등을 극복하는 서사. 이러한 개인 서사는 기존 세대가 생각하던 선악 구도 혹은 집단 대 집단의 대립구도와는 다른 양상을 띄고 있었다. 어떤 구조적인 모순을 극복하기 보다는 세계 속에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을 뛰어난 잠재능력의 발현으로 납득시키려는 마음. 누군가가 이런 마음을 성인이 되어서 까지 간직한다면 그는 필시 중2병이라 놀림 받을 것이다. 하지만 불합리한 세계 질서를 넘어서 온전한 개인으로 우뚝 서려는 오덕들 특유의 세계관은 세상의 불합리를 자신의 힘으로 넘어서겠다는 중2병 특유의 순수함을 원천으로 한다.

2.

내가 기억하기로, 20대 중 태반을 중2병 환자로 보낸 사람들은(자기 자신에게 직접 위해가 가해지지 않는다면) 굳이 사회 참여에 관심 기울이지 않아도 됐다. 꼼꼼하고 섬세한 가카가 안 계시던 그 시절은 당장 눈에 보이는 거대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 인생 속에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청춘은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뭔가를 찾아 일상을 살아가면 그뿐이었다. IMF가 터져 실업자가 쏟아져 나오는 걸 보면서도 부모님 직장 멀쩡하고 본인은 어린 아이에 불과하니, 세상의 불합리를 체감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적어도 그 시절에는 말이다. 때마침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저절로 돈을 벌게 돼 있다”는 이해찬 총리의 발언은 우리 시대의 주문 같은 거였다. 좋아하는 일만 찾으면, 그 일을 찾아 제대로 매진하다 보면 미래가 보일 거야! 너무 자기 하고픈 일만 하다 보니 “단군이래 최저학력”이라는 닉네임이 붙었지만 그러면 어떠하리, 내가 좋아하는 일이 분명하고, 그 일을 잘 펼치면 삶의 지모가 생길 거란 믿음이 있었다는 말씀. 순진하기도 했지!!
그리고 대반전. 그 믿음은 취업이란 관문을 만나면서 현실감각 없는 철부지의 공상이란 것이 밝혀졌다. 높으신 장관님께서 한국의 현실을 무시하시고 판타지를 꿈꾸셨던 걸까. 내 경우는 중2병 판타지를 곧이 곧대로 믿은 까닭에 대학 졸업 후 만화읽기, 약간의 그림 그리기, 논문 쓰기 등 돈을 만지는 데에는 콩알만큼도 도움 안 되는 ‘잉여 스펙’으로 사회로 나왔다. 사실 남들보다 만화를 좀더 많이 봐서 정신세계가 남다른 줄 알았기에 토익점수 따윈 안 봐도 될 것 같았다만. 지금은 말할 수 있다. 잠재능력이고 뭐고 간에 토익과 학벌이 없으면 자기 능력을 보여줄 기회도 없다. 또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서 앞뒤 재지 말고 일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그림 좋아한다고 만화가 되고, 책 좋아한다고 편집자가 되고, 글쓰기 좋아한다고 작가가 되면 (제대로 된 고용주가 있는 직장이 아닌 이상) 수면 부족과 업무 과다로 비명횡사하기 딱 좋다. 그리고 이런 삶의 조건은 결국 좋아하는 일로는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없는 열정노동을 강요하는 사회의 구조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열심히 그림 공부 안 했다고, 열심히 책 안 읽었다고 우릴 탓하면 조금 섭섭하다. 열심히 노력해 성공한 선배들은 가뭄에 콩 나듯 하고, 결국 우리 눈에 보이는 건 하청업체에서 밤 세워 그림 그리는 애니메이터들의 서글픈 현실이다. 이런 구조적 모순 앞에서 잉여 스펙을 가진 잉여들은 도서관으로 가거나 공무원을 향해 미친 듯이 공부하거나..
개인의 자아가 강한 그들에게는 자기 자신에 대한 순수성은 간직하고 있으되 타인과 부딪히며 어울리는 연대의 감각은 결여돼 있다. 연대감각, 이들에겐 별로 없다고 봐도 된다. 심지어 회사에 취직한 나도 머리에 띠 둘러맨 노동자들을 보며 동질감을 느끼기가 어색하다.

3.

나는 계속 “없다”라는 말을 쓰겠다. ‘우리’라는 말을 감각하기 어려운 나의 세대에는 출구가 없다. 출구 없음의 현실을 중2병이랍시고 있어 보이게 포장하기에는 동어 반복이 지겹기까지 하다. 수많은 나’들’이 안고 가는 현실 지반은 대부분 언제 망할지 모를 회사, 혹은 장기 미취업으로 돈 한푼 없는 백수이기에 매우 취약하다. 차라리 이들에게는 “열심히 노력하면 나아질 수 있어”라는 말보다는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서 희망 없이 삶을 헤쳐나가는 태도가 더 유용하다. 여기서 더 힘내라고 하신다면, 자신의 없는 처지를 개그 소재로 삼아 인터넷 게시판에 서식하는 열혈잉여들의 시크함을 돋보이게 해봐도 좋겠다. 사실 잉여 청년들이 잉여 아닌 척 해 봤자 다 티 나게 마련. 이 수많은 나들을 묶는 힘은, 바로 자신을 잉여라고 지명하는 타인의 시선에 대해 매우 잉여스럽게 대처하는 거다. 사실 나는 다른 잉여와 제대로 뭉쳐보지 않았으므로, 잉여가 현실을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지 잘 모른다. 다만 잉여는 잉여스럽게 솔직함을 드러나야 뭔가가 시작된다는 거. 중2병 환자들 특징은 걱정(만) 너무 많다는 거다. 일단 질러보자. ㅅㅂ.

응답 2개

  1. 01말하길

    잘 봤습니다. 유익했습니다.

  2. […] [동시대반시대]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나는 잉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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