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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만필

김장 울력을 마쳤습니다.

- 김융희

지금까지의 초가을처럼 온화했던 날씨가 간밤 사이에 갑자기 영하로 뚝 떨어졌다. 거친 바람까지 겹쳐 마치 겨울날씨 같아 몹시 을씨년스럽다. 옛 어머니께서 오늘처럼 추운 날씨에 찬물에 손을 담그시며 힘들어 김장 하시던 일이 또렷히 떠올라, 서둘러 김장 담그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으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어 쉰다. 이처럼 한 때 김치담그는 김장일이 살림살이중 큰 비중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남들의 별로 관심도 없고 애써 수고도 하지 않는 김장일에 이처럼 신경을 곤두세움을 보면, 나도 살림꾼이 다 된 모양이다. 아닌게 아니라 금년 김장에 나는 유별난 관심과 기대를 했었다. 배추 500여 포기와, 여기에 상응한 무우를 심어 가꾸는 일이 나의 농삿일감으로는 결코 만만찮은 일이었다. 다행히 날씨를 비롯한 좋은 환경 여건으로 별수고 없이 작물을 가꾸었지만, 잘 자라준 무 배추를 막상 처리하는 일이 여의칠 않다.

수요에 맞춰 욕심없이 심어 기르는 평소의 작물 제배완 달리, 올 무배추에 좀 욕심을 부려봄은 나름의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세울 것이 별로 없는 “우백당”의 당주로써, 그럼에도 찾아주어서 고마운 이들의 뒷바라지에 늘 아쉬움과 고민이 컸다. 그때마다 “우백당”을 찾는 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래도 나를 즐겁게 해주면서 다행인 것은 우리집의 김치와 막걸리의 인기였다. 그동안 나의 위안꺼리는 우리김치에 막걸리를 곁드린 식사가 맛있었다는 말이다.

내년엔 맛있는 김장김치를 더 많이 준비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것이 욕심을 부려 올 무 배추를 심는 시발이였다. 분명 생각보다도 넘치게 많이 심었다. 욕심을 부린 무 배추는 좋은 여건에 힘입어 잘 자라주었다. 탐스럽게 자란 작물을 바라보는 마음이 흐뭇했다. 곧 곱게 자란 무배추로 맛있게 담글 김치를 생각하면 덩더쿵 신바람도 났다. 그런데 우리집 김장으로 좀 무리를 해(올 양념값이 금값이다) 200여 포기를 담궈도 아직 반 이상의 무배추가 남는다. 이같은 많은 작물의 수확을 이용해 더 신나는 무슨 일이 없을까?

그래, 내 가까운 이웃들과 함께 김장을 하자. 두레 울력으로 김장 축제를 열자는 생각을 했다. 새삼 마음이 들떠 신바람이 난다. 날씨는 따뜻하며 입동도 아직이지만, 김칫독 대신 김치냉장고를 사용하는 시대이다. 입동을 기다릴 것 없이 미리 하자. 따뜻한 날씨는 찬물에 씻고 양념을 버무리는 수고를 덜어줄 것이다. 나의 설레는 조급한 마음이다. 대충 날짜를 정하고, 꼽아둔 명단을 보면서 이곳 저곳에 전화를 했다.

무 배추는 있다. 물도 좋고 장소도 넓다. 소금은 6년을 묵힌 신안의 청정 소금이 준비됐다. 각자 기호에 맞춰 양년을 준비하면 된다. “우리 김장을 함께 하자”며. 전화를 했다.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여럿이서 함께 공동 작업을 하여 담근 김치는 맛도 훨씬 좋으리란 홍보도 했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각양 각색으로 반응이 전혀 엉뚱하다. 대답이 냉담하며 부정적이다. 아니겠지를 되내이면서 억지 기대로 전화질을 계속했지만 그게 아니였다.

나의 기대는 영 빗나갔다. 우리집 김장을 식구들 끼리서 힘들게 했다. 기대했던 가장 즐거웠을 올 김장 담그기가 제일 우울한 작업이 돼버렸다. 김장파티 행사를 가족들에게 열심히 설득했던 나는 면목이 없어 머슥고 쑥스럽다. 전에는 멀리서 남의 집 불구경 하듯 했던 김장 일을 열심히 거들었다. 처음엔 힘들다 싶던 일이 차츰 즐거웠다. 아내의 철저한 감독하에 씻고 또 닦으며 정성껏 담그는 일이 재미도 있고, 김치에 대한 새로운 이해도 큰 소득이다. 텅 빈 김장독에 가득찬 김치, 힘들어 우울하게 시작한 일이 뿌듯한 보람으로 끝났다.

다음 날, 연구실에서 두 팀이 왔다. 우리집 김장과는 달리 여럿이서 웃고 떠들며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울했던 기분이 모두 풀렸다. 연구실의 공부벌레들이 책을 떠나 산촌의 농가에서 김치 담그기 작업에 열중이다. 처음 접해본 김장 체험에 매우 흥미를 갖고 만족하며 즐거워 열심이다. 서툰 그들에게 주부 마이스터로 솜씨있는 아내의 설명과 인도에 따라 작업을 척척 익혀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역시 함께 김장하기의 시도는 좋은 발상이였음을 확인한다. 담근 김치를 가득 담아 손을 흔들며 떠나는 그들을 배웅한다. 변한 세태에 현대인들의 바쁜 일상의 삶이 아쉽게 느껴진다.

집에서 공동으로 김장 담그기 행사는 이렇게 끝났다. 아직 남는 무 배추는 몇 집에 나누어 줬다. 차를 갖고 실어가는 집도 있었지만, 대부분 택배를 이용했다. 물론 주문이 아닌 나의 배려에 의한 분배였다. 택배 비용이 만만찮아 몇 집들은 착불로 보냈음이 지금도 마음에 걸려 깨름하다. 농부들이 무배추를 갈아 엎는 장면의 뉴우스를 보면서 안타깝다. 기우겠지만, 행여 내 배추를 받으면서 갈아 엎는 뉴우스를 떠올려 연관 짖지 않을까 싶다.

애써 기른 작물을 값이 싸다고 뒤엎는 농부의 심정이 오죽하랴 싶지만, 그 심정에 역겨워 화가 치민다. 아무리 실리를 따지는 현대의 농사라지만, 자연을 섬기는 농심을 저버리면 참 농부가 아니다. 애지중지 기르며 자식처럼 보살핀 멀쩡한 작물을 무자비하게 갈아 엎다니…. 참 농부라면 실리 이전에 순리를 따라야 한다. 같은 농부로써 떠올리기조차 민망스런 가장 가슴아픈 일이다. 그래서 나는 자급용으로 작물을 가꾼다.

자급용으로 다소 넘치면 이웃과 나눈다. 나눔에 익숙치 못해 오해로 나를 난처하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금년처럼 폭락한 채소값에 넘친 양으로 나의 일방적 분배에 대한 오해가 두렵다. 애시당초 값을 떠올리지 않는 나의 농사이다. 이 부분에 오해의 소지가 많다. 그러나 조금도 가식이 없는 진심임을 믿어 주었으면 싶다. 금년 야채 농사도 돈거래가 전혀 없어 천만 다행이다. 주는 사람도 없었지만, 주었어도 사절이였을 것!

김장 담그기에 대한 이야기가 엉뚱하게 빗길이 되었다. 원래 의도는 사라진 김장 풍속도와 변한 김치문화에 대한 나름의 느낌과 체험을 쓰고 싶었다. 특히 김치문화에 대한 이번의 체험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 충격에 거의 진공상태의 의식으로 줄곧 마음이 사로잡혀 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읽고 쓰며 만나는 일들 모두가 작동을 하지 않는다. 민망스러워 밝히기도 거북스럽지만, 몇 차례의 빠뜨린 만필도, 지금의 애써 피하며 에돈 빗길도 그 충격의 영향일 듯 싶다.

차차 추스른 마음이 <지금 온대성 재료의 김치 담그기에 열풍>이란 오늘 아침 뉴우스에 다시 동요를 느낀다. 나의 여린 뱃심을 탓해야겠다. 새로운 문화를 받아드리는 아량도 가꾸어야겠다. 어떤 근거도, 명확한 소재도 없이 뜬금없는 넉두리에 의아스러울 여러분께 많은 양해를 바란다.

응답 3개

  1. 오성말하길

    어렸을적 해변에서는 배추 절임을 바닷가에서 바닷물로 절여 질질 물을 흘리며 집으로 지고와서 전식구가 함께 김장을 했었지요.소금대신 바닷물을 이용하면 영양(칼슘,게르마늄 등)도 좋고 아삭아삭 씹는맛도 있어 맛까지도 좋다는 신문 발표가 있더라고요.공기좋고 토질도 좋은 연천 산골에서 약치지 않은 채소에 6년묵은 신안염으로 절이면 구미가 당기지만 형편상 12월 하순에 담궈야 하니…

  2. 말하길

    샘, 덕분에 ‘김치 담그는 손’을 갖게 되었습니다. 숙원 사업이었는데, 너무나 즐겁게 이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때 남은 속재료로 돌아와서 다시 몇 포기 김치를 했습니다. 배추 절이는 법을 익히려구요. 감이 좀 잡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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