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노동잔혹사

혁명과 꼼수

- 김민수(청년유니온)

조직에서 네트워크로.

다른 이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완승이다.

필자의 화법으로 쓰자면, 지구를 ‘어느 정도’ 구했다.

근로기준법 55조(유급주휴일)에 근거하여 카페베네 측과 사회적 교섭을 이루어냈으며, 커피빈 측이 쥐도새도 모르게 5억 원의 금액을 3000명의 근로자에게 지급한 일련의 스토리에 대한 평가들이다.

대학생, 방송사 파견근로자, 커피숍 알바생, 백수(…) 등을 총망라 한 10명 가량의 팀원들이 이뤄낸 쾌거였다. 일부 사회운동 진영은 (전통적인 의미의) 조직력과 자금동원력으로 ‘혁명이 벌어질 수도 있는’ 확률적 가능성을 내세우지만, 적어도 나는, 전통적인 의미의 ‘혁명’에 대해, 대단히, 회의적이다. ‘잉여’들이 SNS라는 신무기를 동원해서 이뤄낸 ‘주휴수당의 난’을 보고 있노라면 더더욱 그렇다.

조직 동원의 시대는 가고, 컨텐츠를 갖춘 주체들에 의한, 네트워크의 시대가 도래했다. (미래형이 아니라, 과거완료형이다.) 대충 지르는 소리가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 SNS와 새로운 기술이 가능성을 열었고, 나꼼수가 증명했고, 박원순이 쐐기를 박았다. -세상은 그렇게, 우리의 관성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다.

1600만 노동자가, 그들을 대표한다는 민주노총에 전원 가입하면, 혁명이 올 것인가? 우리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판을 짜고, 혁신하자. 하나의 깃발 아래 모여, 위대한 령도자의 지도를 받아, 혁명을 완성하는 시대는 ‘끝났다.’ (이 또한 과거완료형이다.) 너와 나의 존재를 긍정하고, 힘을 모으자. 디지털 시대의 혁명은 요로코롬 진행된다.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꼼수

건방지게스리 ‘운동의 새로운 방향’ 운운하며 서문을 열었지만, 뭐 거창한 담론으로 이 글을 끌고 나갈 생각은 없다. 어차피 청년 노동의 잔혹한 단편으로, 큰 그림을 보는 데에 보탬이 된다면, 그것으로도 족한 지면이기 때문이다.

사실 혁신이 필요한 것은 우리 뿐만이 아니다. ‘저들’ 또한 혁신이 필요해 보인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한 꼼수로 청년들을 괴롭히고 있다. 똑똑한 대가리와 필요 이상의 돈을 소유하고 있는 저들이 자생적으로 혁신할 리는 없으니, 시간만 많은 잉여들이 괴롭혀서 혁신을 강제해야 한다.

커피빈 이야기이다.

‘주휴수당의 난’ 이후로, 저들은 아날로그 꼼수를 부리고 있다.

유급 주휴일의 개념조차 뇌에 들어있지 않은 노무사를 고용했던 저들은, 부랴부랴 파트타이머에 대한 인건비 감축에 들어가고 있다. 당연히 지급해야 할 돈을 등쳐먹고 있었다는 생각은 안하고, 종전 수준의 ‘인건비 비용’으로 회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모냥새가 가련하다.

4500~4800원 수준으로 지급하던 기본임금을 4320원으로 다운 시켜 재계약을 맺는 것은 꼼수 축에도 못 낀다. 어차피 너희들 주휴수당 못 받던 거 받으면, 기존의 임금 수준보다 높아지니 이 정도는 감수하라는 논리다. 앙증맞은 것들. 근로기준법은 ‘최저기준’이므로 이를 근거로 근로조건을 낮출 수 없다는 근로기준법 3조 가라사대는, 전태일 사후 40년이 지나도 그냥 개소리이다.

이런 앙증맞은 꼼수를 부리고도 성이 안 찬 이들은, ‘대 스타벅스’ 선배님의 방침을 컨닝하기 시작한다. 1주일에 15시간 미만의 근로계약을 체결하고(주당 15시간 미만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에게는 유급주휴일과 4대보험의 시혜(!)를 내릴 필요가 없다.) 그 이상으로 일을 굴려먹는 것이다. 스타벅스 잡것들이 대대적으로 말썽을 일으킨 꼼수이다. 이 꼼수를 따라하던 커피빈은 작살나게 깨지고 접었다. 15시간 미만 근로자로 매장 운영을 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인사개편이 이루어져야 하는 데, 이런 거 하루 아침에 뚝딱 만들어질 시스템이 아니다. 병신들. 좀 더 정진하고 꼼수를 부리도록.

이 외에도 온갖 꼼수들이 판을 치지만, 한 가지만 더 언급하겠다. ‘희대의 재계약 꼼수’. 근로자와 3개월 단위로 계약을 맺는다. 3개월 굴리고, 몇 주 쉬게 하고, 다시 재계약 한다. 맘에 안 들면 ‘해고’가 아닌 ‘계약 만료’로 퇴사처리 시키고, 이 따위 꼼수로 ‘경력 단절’을 통한 퇴직금 지급 의무도 면피 한다. 실제로 청년유니온에 상담을 받고 주휴수당을 지급받은 A는 ‘장기근속자’라는 이후로 ‘정리 계약만료’ 되어 버렸고, B는 요로코롬한 꼼수로 퇴직금을 지급받지 못했다.

-에라이 개새끼들. 아해들 코 묻은 돈 삥땅 쳐서 어따 써먹으려고? 이 친구들이 나이 먹고 안정 된 임금으로 꼬박꼬박 세금내야, 니들 노후보장 된다는 생각은, 눈꼽만큼이라도 해봤냐? 복지국가라는 키워드가 시대적 대세가 되고 있는 마당에, 각개격파는 그만 두고, 사회적인 룰을 새로 만드는 데에 일조하시라. 아우 썩을 것들. 욕이 아깝다. ‘개’한테 미안하다.

지구를 구하는 방법

근로기준법 55조를 근거로, 대한민국 청년들을 대변하여 ‘17% 임단협’을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의 아날로그한 ‘신경영전략’ 앞에서 처절한 무력함을 느끼고 있다.

나는 이 지면을 빌어, 대놓고 청년유니온 깔때기를 꽂도록 하겠다.

최저임금을 받는 2명의 상근자와, 잉여들의 자발적 동원으로는, 지구를 구하는 데에 한계가 분명하다. 필자 또한 20만원 남짓의 활동비를 받으며 하루 10건의 노동상담을 처리하느라 대뇌 피질에 과부하가 걸렸다. (결국, 지금은 쉬고 있다.)

https://spreadsheets.google.com/viewform?formkey=dEFtclBpQ00xb2RWdXRxa0lTcDFfcWc6MA

청년유니온 후원회원 신청라인으로 직통 되는 URL이다.

짧지 않게 연재 된 필자의 글을 읽으며, 청년노동의 암울한 현실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 분들이라면, 클릭해주셔도 좋을 듯 하다. 필자의 글이 마음에 들어서 ‘개인적으로’ 후원하고 싶으신 분들 또한 같은 맥락이다. (죄송합니다 -_-..)

적극적으로 후원해주신다면, 우리는 적극적으로 지구를 구하겠다.

깔때기 끝.

응답 2개

  1. 말하길

    후원신청 했슴돠. 욕나오는 얘기를 어쩜 이리 재밌게 하시는지..묵직한 살기가 느껴지는 유머!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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