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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만필

겨울 채비가 걱정이다.

- 김융희

입동이 지나면서 빠르게 겨울로 치닫고 있다. 엊저녁엔 첫 눈도 내렸다. 아침에 나가보니 장포가 싸락눈으로 하얗게 덮여 있다. 대지에 덮인 하얀 눈을 보려니 겨울이 더욱 실감난다. 작물 재배를 한답시고 일 년을 내내 줄곧 함께 했던 장포에 뒤덮인 낙엽이 딩굴고 있어 쓸쓸한 모습이다. 도시의 거리에는 벌써 캐럴송이 울려 퍼지고 있겠다. 세모가 엊그제 같은데, 그토록 떠올리기 조차 싫은 한 해가 또 이렇게 지나고 있다.

세모 내내 지겹도록 유난스런 엄동에 혹한이 늦봄까지 버티며 기승을 피우더니, 봄은 머문둥 만둥 지나버린 채, 애시당초 비로 시작된 여름이었다. 그 짖궂은 비는 줄곧 내려 초가을까지 계속됐다. 빗속의 쓸만한 작물은 물구덩이에 잠겨 녹아 없어졌고, 쓸데없는 잡풀만 성왕 번창해 몹시도 지겨웠던 지난 여름 농삿일이었다. 도데체 되는 작물이 없었다. 먹거리 걱정에 자연도 너무하신다며 여름 동안을 계속된 원망의 장탄식이었다.

늦었지만 정상의 날씨는 한창 가을에서야 되찾았다. 작물들도 바삐 활동을 재촉하면서, 그동안의 피해를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나날이 몰라보게 쑥쑥 성장한다. 불안했던 날씨가 최적을 계속하면서 작물들, 벼농사, 밭농사, 과일도, 채소도, 모두가 튼실한 결실로 대풍이다. 욕심부려 잔뜩 심은 채소가 탐스럽게 장포를 가득 매웠다. 그토록 읽으면서도 무심히 넘겼던 “아무 걱정 말라”는 성경 말씀에 이제야 새삼 “아멘”이 절로 난다.

농사를 지으면서 속 깊은 자연을 실감케 한 지난 한 해였다. 그렇다. 하나님의 뜻데론지는 잘 모르나 자연은 항상 크게 변함이 없다. 그저 셈 빠른 우리 인간들의 이해에 얽힌 억측이 ‘이상기후’라는등, 이렇타 저렇타 호들갑들인 것이다. 순탄치 못한 자연의 빌미요 방해자인 당사자가 바로 우리 인간임에도, 지랄 방정의 자지러진 수선부림이 지나치다.

자연과 더불어 농사를 지으면서 매번 늘상 경험하며 느낀 것은 자연의 고마움이다. 생명체는 자연의 혜택없이는 생존이 전혀 불가능함이 엄연한 현실, 우리들이 자연 혜택을 실존적으로 생각해야 할 절대 당위인 것이다. 지나치다며 행여 자연의 혜택을 앝잡아 소흘하면 인간의 미래는 결코 무사치 못하리란 징후를 곳곳에서 보고 느끼게 된다. 너무도 명백하고 절실한 문제려니! 제발 하찮은 농부의 소갈머리 없는 넉두리로 끝났으면 싶은 마음 간절하다.

한 해를 보내며 텅빈 쓸쓸한 장포를 바라본다. 지난 농삿일을 되돌아 보려니 만상의 이 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착잡하다. 이제 첫 눈이 내렸고, 앙상한 나무와 구르는 낙엽을 보면서, 겨울 채비를 빨리 마무리해야 겠다는 조급한 마음이다. 잘 자라준 무배추등, 채소의 덕택에 반찬거리의 김장은 넉넉하다. 식구도 없는데 식량은 그럭저럭, 제일 문제가 된 것은 추운 겨울나기의 난방을 위한 연료문제이다.

그래도 산중에선 나무가 제일 흔해서 경제적이고 손쉬울 것 같아 화목보일러를 준비했는데 나무의 소모가 생각을 초월한다. 불 피우는 일이 농한기인 겨울을 보내는 마땅한 일거리로 생각 했었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다. 엄동에 덥힌 온수가 오래 버티질 못해, 소모된 나무의 수요도 만만찮으려니와, 불피우는일 역시 시간을 너무 허비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서민들, 특히 집중 난방이나 도시까스 혜택이 없는 농어촌에서의 난방문제는 제일 버거운 일로 골칫거리다. 겨울의 문턱에서 따뜻한 계절이 그립다.

모처럼 서울에 사는 아들내 집을 다녀온 이웃 아주머니의 이야기이다. 아들네 집 작은 아파트가 어찌도 편코 따뜻한지 꼼짝하기가 싫어 그냥 머물고 싶었단다. 너무 따뜻한 하룻밤을 지내면서 집에 계신 영감이 생각나더란다. 겨우 군불이나 피우고 둘이서 체온으로 버티기 일수였는데, 간밤 기온이 뚝 떨어졌다는 뉴우스를 들으며, 홀로 떨고있을 영감이 걱정되어 그냥 돌아왔다고 하신다. 농담처럼 그냥 흘리는 말씀이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찡하고 짢한 여운을 느낀다.

지금 농어촌 저소득층의 겨울나기는 참 힘들다. 경제에 이은 또 다른 여러 구조적인 문제에 불온한 정책까지 겹쳐 그 심각성은 매우 크다. 농어촌의 주택 대부분이 열효율을 거의 기대할 수 없는 낡은 고옥이다. 거기에 대가족을 수용하는 설계의 구조에 지금은 한 둘의 노인만이 거주하고 있다.

이런 기본 구조의 여건을 무시한 채 방 하나만을 사용해도, 기름이나 가스를 사용한 난방에는 몇 백이 넘는 경비가 들며, 심야만 사용하는 심야전기는 신청도 쉽지 않지만, 설치후 전기사용료 역시 거의 비슷하다. 가장 값싼 연탄을 사용해도 백만원에 가까운 경비가 든다.

이것도 대부분 시설을 새로 해야 가능하며, 시설을 바꾸는데 드는 경비는 더 큰 목돈을 필요로 한다. 우리집 화목보일러를 약간 저렴하게 설치 했지만, 이백만원이 넘게 들었다. 목돈의 대금도 힘겹지만, 이것도 안된 집에서는 울며 참고 지내는 경우가 예사이다.

불온한 정책을 탓했다. 어쩌다 도시 아파트인 자식집에 가보면 별의별 전기기구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다리미에 머리를 말리는 헤어드라이어며, 습도를 조절하는 가습기에서 청소 도구까지 전기사용 아닌 것이 거의 없다. 만약 그들처럼 시골인 우리집에서 이같이 전기를 사용하면 료금이 거의 십만원에 가까우리라. 월 전기료를 물었더니 줄이고 아끼며 사는 우리집보다 훨씬 적은 액수였다. 아파트는 전혀 누진제가 아닌 모양이다. 시골의 외딴 집들의 백 단위로 바뀐 료금누진제의 두려움으로 전기 없는 화장실 사용은 예상사다.

시골의 취사용 에너지는 대부분이 가스이다. 도시가스를 기대할 수 없다. 대게 LPG를 쓴다. 도시 가스인 LNG와 시골에서 쓰는 LPG의 리터당 값을 서로 비교해 보라. LPG의 값은 인상이 수시로 진행되는데 비해, 도시가스의 인상은 거의 요지부동인 그 이유는 뭘까?

오늘날 도농의 문제를 훨씬 초월한 전 지구적인 과제의 아주 심각한 에너지 문제를 우리집 난방문제로 걱정하는 나의 주제는 분명 아니다. 다만 하도 답답해 부글거려 터진 속을 달래며 주변의 보고 듣는 경험을 간략했다. 차라리 유구무언, 참고 말걸 공연히 변죽의 내 밷음에 속이 더 단다. 간밤을 꼬박 세우고 말았다.

산에 썩어 넘어진 나무가 지천이라 생각했는데, 주워 모아 끌어올 일이 가당찮아 걱정이다. 앗차 실수인가? 구슬이 서 말이래도 꿰야 구슬이랬는데, 이래 저래 겨울 채비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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