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W-ing의 밥상이야기

- 최정은(여성성공센터 W-ing)

아주 오래 전 우리가 막연하게 꿈꾸었던 공동체의 상은 바로 ‘밥상공동체’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꿈’일 뿐이었다. 돌이켜보니 그 때에는 ‘밥’을 먹는다는 것에 대한 깊은 의미는 물론 ‘공동체’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었다. 그저 함께 밥을 먹으면서 정을 나눈다는 것만 생각했을 뿐.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들은 ‘밥’을 할 줄 몰랐다. 사회복지기관의 관행대로 취사를 담당하는 분이 늘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따뜻한 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사람의 노동을 통해 여러 사람이 밥을 먹었던 것이다. 그것도 성인 여성이 대부분인 공동체에서 말이다. 물론 휴일에는 우리가 해먹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우리에게는 커다란 부담이었다.

현장인문학을 통해 수유너머와 접속하면서 W-ing에도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공부는 몸으로 해야 한다는 것과 송독을 하면서 나누는 공명속의 우정이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것은 바로 ‘밥’이었다. 남산의 주방에서 본 풍경은 우리에게 어느새 긴 여운으로 다가왔다. 그 곳에서는 밥을 하는데 있어서 여자와 남자의 구별이나 지위의 높고 낮음에 따른 위계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음식을 남김없이 먹으면서 모든 만물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몇 사람의 수고로움에서 벗어나 각자가 설거지를 했다. 고백하건데 내 안의 가부장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나 할까.

그 때 비로소 우리들은 직접 밥을 해먹어야겠다고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왜 이제야 그런 생각을 했을까. 더군다나 자립을 준비하는 여성들이라면 당연한 일 아닌가. 우리들은 그동안 왜 그렇게 친구들에게 밥을 해주려고만 했을까. 모두 함께 밥을 해먹을 수 있도록 왜 여 건을 만들어놓지 못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친구들을 ‘보호받아야 하는 수동적 존재’로 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밥’은 배고픔을 달래줄 한 끼의 식사 그 이상이다. 친구들에게 밥은 곧 ‘사랑’이고, ‘가정’이고, ‘엄마’인 것이다. 적어도 친구들이 밥을 먹는 순간만큼은 가정의 안락함과 엄마의 포근함을 느끼게 해주고픈 마음이 컸었다. 사실 그 때 친구들에게 우리는 ‘가정’이고 싶었고, 나는 ‘엄마’이고 싶었다.

맛있는 밥이 늘 준비되어 있고, 평소 접하지 못했던 음식들을 먹을 수 있고, 가끔씩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외식을 가는 것. 이것은 친구들이 W-ing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본격적으로 수유너머 길(지금의 인문팩토리 길)과의 운명적 만남을 통해 당연시했던 우리의 일상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들은 ‘결핍’을 채우기 위한 ‘모방’에 불과했다는 것을, 가족과 사랑의 결핍을 가족이나 사랑의 대체물로 보충하려 했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열심히 따뜻한 밥을 준비해 놓는 것으로 우리의 책임을 다하려 했으며 그것이 곧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누려야 하는 권리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누가 누구에게 도움을 주고 또 받아야 하는 일방적인 관계가 삶에 있어서 얼마나 삭막하고 피폐한 관계인지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위해 밥상을 차린다는 것은 이미 자신을 위해 수도 없이 밥상을 차려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을 위하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혼자 잘 살 수 있을 때 여럿이도 잘 살 수 있다는 그 평범한 진리를 ‘밥’을 통해 알게 되었다. 또한 인문학 수업에 들어가야 하는 우리들을 위해 1년 동안을 매주 수요일마다 꼬박 밥상을 차려주신 임수덕 선생님의 우직함과 우리에게 밥을 할 수 있는 신체적 변화를 직접적으로 요청했던 이수영 선생님의 집요함이 없었더라면 아마 불가능했으리라.

이제는 매일 점심과 저녁 두 끼의 식사를 하게 되었고, 식대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월4만원 또는 6만원을 내고 있다. 그리고 한 달에 두 번 정도의 식사 당번으로 주방의 달력은 충분히 채워지고 있다. 이제는 별도의 경비 지출 없이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주방을 가꿔가고 있다. 김치를 잘 담그는 사람은 김치를 담그고, 주방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매니저를 하면서 각자의 능력대로 살아가고 있다. 더 이상 누군가를 위해서 한다는 생색내기가 불필요해지고, 각자가 기꺼이 역할을 맡아서 충만한 마음으로 하니 모두가 평화롭다. 이제는 음식을 남기는 경우도 드물고, 주방 당번을 회피하지도 않는다.

우리의 일상의 이러한 변화들은 자신감으로 이어져 십대 여성들과 함께 ‘조잘조잘 분식집’을 오픈하게 되었고, ‘신길동 그가게’의 스낵 메뉴들도 보완하게 되었다. W-ing의 밥상이 맛있다는 소문은 이제 ‘출장 부페’사업으로 이어져 첫 번째 주문을 받아놓고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밥’은 단지 끼니를 해결하는 ‘밥’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 이상이다. ‘밥’을 통해 일상의 변화를 시도했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친구들을 우리가 돌보아야 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닌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능력을 맘껏 펼칠 수 있는 ‘능동적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아울러 공동체 W-ing의 비전을 만들어 가는데 긴요한 동력이 되어 주었다. 이렇듯 우리는 ‘밥’과 함께 앞으로 쭉쭉 커 나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렇게 살다보면 지금까지 한 번도 되어 본 적 없는 존재, 지금껏 한 번도 있어본 적 없는 공동체로 나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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