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노동잔혹사

- 김민수(청년유니온)

고등학교 졸업

월화수목금금금… 6시간의 수면과 2시간 가량의 휴식을 제외하면 온전한 학습 노예노동으로 하루를 보내던 고등학생들이 수능을 치뤘다. 12년 간의 질리게 씹어 삼킨 교육 수준(!)을 점검하는 데에는 한나절이 채 소요되지 않는다. 완전 허무하다.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는 2월 까지는 딱히 할 일이 없다. 잉여짓의 무한반복이 시작 된다. 수능이 끝나면 ‘이거도 하고, 저거도 해보고…’ 했던 설레임은 다 개뿔. ‘나의 꿈을 위해’라는 미사여구로 쉴드 쳐진 ‘부모 기대치 충족’에 매진하며 12년을 보내 온 이들이 아니던가. 타인의 욕망에 충실했던 이들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킬 방법을 찾는 데에 애를 먹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아, 요즘은 이 기간에 토익 공부를 하려나.

대학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은 어영부영 입시 원서를 넣고, 어영부영 합격해서, 90% 가까이 대학에 진학한다. 사회적 현상의 ‘오차범위’ 혹은 ‘예외조항’을 인정한다면, 모조리 대학에 가는 셈이다.

이들의 눈 앞에 ‘등록금 1000만원 시대’의 상아탑이 버티고 있다. 재벌가 자제들은 미국으로 유학 나갔고, 중산층 가정의 자녀들은 부모님에 손을 벌리는 ‘등골 킬러’가 되며, 이마저도 안 되는 이들은 ‘학자금’이라는 사채 시장에 진입한다. ‘우리 때는 맨주먹으로 시작했다’로 대표 되는 꼰대들의 ‘자수성가론’은 오늘날에 이르러 대단히 허접한 스토리텔링으로 전락한다.

‘시바, 우리는 빚으로 시작했다.’

눈높이

‘청년들의 높은 눈높이가 문제다.’

호연지기로 충만하고, 도덕적으로 완벽한 아무개의 전언이다. (주어는 생략한다.) 실력도 안 되는 것들이 대기업을 노리거나 공무원 되겠다고 설치니까, 중소기업의 고용상황과 청년실업이 악화 된다는 뜻으로 풀이 된다.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유럽의 청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노동시장으로 진입하기 까지는 평균 18개월이 걸린다. 한국의 청년들은 고작(!) 11개월 만에 취업한다. 선진국과 비교해 보았을 때, 한국 청년들의 눈높이가 높고 취업 준비기간이 길다는 것은 개뻥이다.

이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것이다. ‘취업준비생 = 잉여 or 루저’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사회적 분위기, 부모님의 등골에 대한 미안함… 결정적으로, 이들에겐 매 월 따박따박 갚아야 하는 ‘빚’이 있다.

이제, 재정상황과 자존감 그리고 눈높이가 동시에 낮은 한국의 청년들이 11개월의 취업 준비기간 끝에 ‘어떠한’ 노동시장으로 편입 되는 지 지켜보자.

대기업

대기업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은 차치하고, 이들이 ‘얼마나 뽑는지’만 지켜보자. 신규 고용시장에서 300인 이상 규모의 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6% 수준이다. 100명 중 6명을 고용한다는 소리이다. 넉넉잡아 100인 이상 사업장을 합쳐봐야 12% 남짓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문어발식 확장으로 국내총생산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유수의 대기업’들의 신규채용 수준은 대단히 소박할 것이라고 ‘졸라게 추정’ 된다.

어차피 무한경쟁 시대이니 100명을 뽑던, 1명을 뽑던 상관 없을까? 동료로 추정되는 경쟁자들을 찍어 누르고, 가까스로 승리하여, 이들 대기업에 취업하면 그것으로 되는 것인가? 패배하고 떨어져 나간 이들을 ‘루저’로 명명하며 자위하면 그것으로 끝인가?

글쎄. 심심찮게 들려오는 대기업 중년 노동자의 ‘과로사’ 관련 소식이나, 삼성반도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죽음들을 보자니, 이곳도 안전지대는 못 된다. 토끼 같은 자녀들의 ‘사교육비’를 충당하기 위해 ‘죽음에 근접한’ 혹은 ‘죽음에 이르는’ 모순과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이들이, 여기에 있다.

중소기업

이번에는 위에 언급한 ‘대기업’에도 못 끼는, 속칭 ‘떨거지’들의 이야기이다.

20-34세 청년 노동자 중 200만 원 이상의 임금을 받는 비율이 35% 남짓인 것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중소기업에 서식하는 ‘떨거지’들이 ‘도시노동자의 평균 임금(230만원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워 보인다. 필자 주변 인사들의 급여수준을 통해 귀납적으로 추론해보니, 이들은 약 120-170만 원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뭐, 이 정도면 살 만하네’ 싶기도 하면서도, 실상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지난 연재에서 언급했던 ‘포괄임금 산정’의 문제가 대표적이다. 통장에 150만 원을 끌어안고, ‘인간 자유이용권’으로 이용당하는 이들의 상황은 안구에 습기를 유발 한다. 청년유니온의 실태조사 결과, 구로와 가산 등지에서 일하는 중소기업 청년 노동자의 절대 다수가 1주일에 55시간 이상 노동한다. 70시간 이상 일한다는 비율도 적지 않다. 근로기준법상 1주일에 근무할 수 있는 ‘맥시멈’이 52시간임을 고려할 때, 개판이다.

이 뿐이 아니다.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통계를 훑어보면, ‘20-39세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중, ‘연차 유급휴가 / 4대보험 / 퇴직금 / 상여금’ 등의 적용을 받는 비율은 ‘모조리’ 절반 남짓이다. 학자금 상환과 높은 생활물가, 주거비용 등을 함께 고려해 보았을 때, 이들의 월급이 통장에서 스쳐지나 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아르바이트(파트타임) 노동시장

여기는 정규 노동시장이라기 보다는, 학업과 생계를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지방 출신’의 학생, 혹은 가정형편이 녹록치 않은 이들을 위한 잠정적 노동시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청년 노동 잔혹사에서 ‘이 곳’에 대한 이야기는 자주, 장황하게 늘어 놓았으니 짧게 정리한다. 이 놈들은 ‘법’도 안 지킨다. 이건 뭐 정규 노동시장 또한 마찬가지이지만, 이 친구들은 대놓고 악질이다.

확률 게임

취업 준비 과정을 거쳐 노동시장으로 편입 된 청년들의 절대 다수는 위에 서술한 ‘늪’에서 예외 되지 않는다. 공무원 / 교사 / 국가고시 등 여타 변수들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천문학적인 경쟁률을 고려해 보았을 때 여기 또한 답이 없다.

합리화의 감성이 아니라, 합리적 이성으로, 상황을 냉정하게 보자.

동료들을 찍어 눌러 경쟁에 승리하고, 사회 상층으로 ‘편입’되어 행복해질 확률보다, ‘다함께 행복한 세상’이라는 지극히 ‘사회주의적 발상’으로 힘을 모아, 지구를 구하고, 행복해질 확률이 28만 배 정도 높아 보인다.

헛소리를 장황하게 늘어 놓은 것 치고는 결론이 소박한 것 같지만, 할 수 없다. ‘닥치고, 정치’와 ‘쫄지마, 시바’가 한 시대를 풍미하는 관용구로 자리 잡은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 쯤에서 새삼 김어준 총수에게 경의를 표한다.)

정치의 계절이 오고 있다. 칼을 갈자.

아울러, 선배 세대에게도 부탁드린다. ‘자라나는 미래 세대’가 어르신들의 ‘행복한 노후’를 보장해주기 위한 방향으로 ‘사회를 개조(혹은 수습)’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시길. FTA 체결 따위에 ‘우국충정의 사활’을 걸어서는 어르신들의 내일이 없달까.

응답 1개

  1. tibayo85말하길

    시바, 우리는 빚으로 시작했다! 쿵! 우린 맨주먹으로 시작했다고 지껄이며 FTA 체결에 우국충정의 사활을 거는 어르신들에게는 미래가 없다. 왜? 씨바, 빚으로 시작한 우리가 당신네들 부양하게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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