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어쩌다 우리 어머니들이….

- 김융희

일기가 무척 음산하여 을씨년스럽다. 상경하여 부지런히 일을 마치고 귀가길 전철 안이다. 청량리 부근이었다. 노곤하여 멍해 앉잤는데, 누군가 거칠게 옆좌석에 앉는다. 나이 든 할머니가 양손에 부피 큰 비닐보따리를 들고, 배낭까지 멨다. 거친 몸짖에 주위의 시선 쏠림을 의식하며 멋쩍은 듯 모면을 위한 수다를 떤다. 아담한 체구에 다부진 몸매로, 남도 어감의 카랑 카랑한 목소리로 당찬 할머니다. ‘내 나이 올해 이른 일곱이요’ 누구도 묻지 않는 나이를 밝히며, 싱싱한 김장거리가 너무 값싸서 욕심을 부렸더니 몹시 힘들다는 설명이다.

팔순의 할아버지와 양주에 살고 있는데, 당신의 김치를 너무 좋와하는 자식들에게 맛있게 담궈 보낼 것이란다. 주위에 아랑곳 없이 자신에 찬 목소리, 방금전까지 힘들었던 것도 잊은 듯, 뺑뺑한 보따리를 쓰다듬으며 행복해하는 할머니의 모습에 나의 노곤했던 몸이 금세 풀리며 정신이 든다. 할머니의 고운 목소리가 마음에 와 닿은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나는 ‘지난 한 세대의 여성사’를 듣는 듯 싶다. 할머니는 나보다 먼저 양주에서 내린다. (들었던 할머니 이야기를 다음 여러분과도 함께 나눌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근래 있었던 일로 온 국민이 몸서리치며 떠올리기조차 끔찍한 사건, 고등학생이 어머니를 살해하여 집안에 유기하고 오래토록 부패한 어머니의 시신과 함께 일상을 보내면서도 태연했다는 보도를 들으면서, 나는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그 일이 계속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인간으로써의 한계를 초월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우리 곁에서 벌어진 것이다. 누구나 평생을 마음에 담아 한시도 떠나보내지 못함이 우리들 어머니의 사랑이며 그리움이다. 그런 우리들의 어머니가 어찌 이지경까지 됐을까?

공부를 썩 잘했던 아들에게 계속 공부만을 강요하는 어머니가 미워서 저지른 일이라 한다. 더 잘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욕망이 지나쳤던 것이다. 성화를 모면키위해 성적표까지 위조하여 들킬까 불안했음이 범행을 부추겼다니 고분 고분한 성격에 크게 비툴리지도 않는 것 같다. 그런 아들이 더 좋은 사람이 되라며 독려하는 어머니께 인륜을 저버리며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니, 더구나 살해한 어머니의 시선이 썩어감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태연하게 수능시험까지 치루며 변함없는 일상을 계속하며 지냈다니….

오죽했으면 그랬으랴 싶은 생각도 해 보지만, 나는 그 너무도 끔직스런 사건을 떠올리기도, 이러쿵 저러쿵 끼어들기도 싫다. 요즘의 부모들, 특히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지나쳐 보기에도 민망스런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한 둘의 자녀만을 갖는 현대의 가족제도와 훨씬 좋와진 경제력등으로 이같은 현상이 점점 늘고 있다. 지나친 어머니의 성화에 아파트를 뛰어 내려 스스로 삶을 포기했고, 매사 아버지의 참견에 견디다 못해 아들의 머리가 돌아버린 일이 내 가까운 주변에서도 있었다. 과연 이같은 짖이 자식들을 위한 진정한 길이며, 공부만 잘해서 꼭 자녀들의 행복한 삶이 보장되는 것일까?

오늘 전철에서 만났던 할머니께서도 다섯 남매를 잘 키우고 가르쳐 지금은 좋은 직장에 다니며 잘 풀렸다는 자식들 자랑이 대단했다. 이제 삼 년 후이면 금혼인 결혼생활 육십여 년의 세월, 이후 지금까지 돈 한 푼을 벌지 않는 남편과 다섯의 자식들을 당신의 몸으로 메우며 살아왔다는 할머니의 탄식이었다. 할머니의 지난 삶의 여정을 잠깐 들으면서, 이같은 희생과 배려의 어머니였다면 자식들의 자랑이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란 심증이 간다. 좋은 어머니밑에서 자란 자식의 탈선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

나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들의 어머니상을 떠올리며 생각해 본다. 정말 이번 사건은 나에게 꿈에라도 도저히 상상이 안되는 일이다. 누구나 자기 어머니가 그립고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객지에 유학 보낸 아들이 못 잊혀 당신의 약값을 차비 삼아 왔다가 그만, 쓰실 약을 놓쳐 악화된 지병으로 그 해에 운명하신 나의 어머니이셨다. 한창 사춘기인 고일 때 갑자기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 이후 철이 들면서 지금까지 더해만 가는 어머니에 대한 나의 죄책감과 회한이 사무친다.

오늘은 어머니의 생각을 그만 멀리 지우고 싶다. 그래야 이 글이 계속될 것 같기 때문이다.

세상에 가장 진한 것이 모정이요, 모정은 모든 생명체의 본능이 아닐까 싶다. 엄마를 떨어져 그리는 송아지의 울음소리를 들어보라. 그 애틋한 감정엔 숭경이 따른다.

항상 마음에 간직된 나의 어머니와 함께 세상의 많은 어머니들을 기억하면서, 내가 결코 잊을 수 없는 한 어머니가 있다. 전미국의 MVP로 세계의 영웅이된 슈퍼볼 선수 하인즈 워즈의 어머니이다. 동두천 기지촌에서 흑인과 동거하며 몸을 파는 창녀인 그녀는, 귀국하는 남편을 따라 미국을 간다. 믿고 의지하며 따라나선 그녀는 어린애까지 딸린 몸으로 곧 이혼을 당한다. 주위엔 눈총과 외면뿐, 낯선 땅에서 의지할 누구도 갖은 아무런 어떤 것도 없다. 험한 일도 가리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천신 만고를 오직 버티는 길밖에 없다. 어린애와 함께 절박한 삶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멸시와 박대에도 고난의 삶을 살면서 아들을 바르게 키워 “하인즈 워즈”를 전세계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갖은 고난과 천대를 무릅쓰며 ‘전미 슈퍼볼 MVP’선수로 우뚝선 것이다. 멸시와 천대를 받으면서도 아들에게 “사람이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는 법이다. 항상 교만하지 말며 겸손해야 한다”는 권면과, 용기를 잃지 말라는 격려를, 아끼지 않는 어머니였다. 기도하고 싶어 교회를 찾아도 창녀라며 외면을 당한 그녀는 자기가 당한 고통을 아들을 위해 위로와 격려로 삼으며 살았다. 온 나라의 축제속에 피츠버그의 모든 시민이 거리로 나와 하인즈의 카퍼레이드를 환호하는 날에도 그녀는, 홀로 직장인 호텔에서 조용히 방청소를 하면서 아들을 지켜본 것이다.

그런 어머니의 뜻을 아들 하인즈도 알고 믿으며 따랐다. 갖은 차별과 멸시에도 항상 웃는 얼굴은 밝고 환했다. 고마운 어머니를 잊지 않고 늘 기쁘게 해드리며 사랑했다. 어머니 나라의 문자인 한글 이름을 몸에 문신으로 세기며, 어머니 나라를 그리워하기도 했다. 그는 어머니 앞에 많은 돈을 내놓으면서 “이 돈을 어머니의 이름으로 한국의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장학재단을 만들겠다”고 하면서 어머니를 기쁘게 했다. 그의 어머니에 그의 아들이었다. 훌륭한 어머니에 위대한 아들이 있는 법이다.

공부하란다고 반항하는 것은 옳지 않는 짖이다.

오직 공부만을 강요하는 것 또한 잘못이다.

참 인간이 되기위한 길이 곧 공부가 아닌가!

공부 이전에 참 인간이 되야 한다.

세상의 위대한 어머니들이여,

다시 한 번, 밝고 즐거운 세상을 위해.

간절한 바람이오 .좀 더 힘을 발휘해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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