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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와 밥

- 박사라(홈리스행동 상근활동가)

‘밥’, 나의 별명이다. 밥은 하늘이고, 하늘은 혼자 가질 수 없듯이 서로서로 나누어 먹어야 한다는 밥가처럼 밥이란 모든 사람이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고, 배고픈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었다. 또 내가 밥을 좋아한다. 밥을 안 먹으면 괜히 힘이 빠지는 것도 같고, 신경질적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성격순화를 위해 밥을 꼬박꼬박 챙겨먹는다. 하지만 혼자 먹는 밥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혹여나 혼자 밥을 사 먹는 날엔 모든 사람이 나를 보는 것만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렸고 괜히 서러운 마음이 들어 재빨리 먹고 나와 버린다. 내가 만나는 홈리스들도 대부분 혼자 밥을 먹는다. 그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밥은 어떤 의미일까?

*밥 먹는 것은 중요해.

‘나에게 밥이란?’이라는 질문을 만나는 홈리스들에게 던져봤다. ‘굶을 수 없으니 먹는 것, 건강을 위해 챙겨먹는 것, 일하기 위해 먹는다. 당연히 먹어야 하는 것, 움직이면서 생활하려면 먹어야지,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들 대답했다. 거리생활을 하면서 먹는 밥은 우르르 무리지어 먹는 밥이고, 퍽퍽한 인생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밥이었지만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고 힘을 주는 것이었다. 또 혼자 쪽방이나 고시원에서 생활을 하면서 먹게 되는 밥은 외로움이 섞여있었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용기를 주는 밥이었다.

이렇듯 홈리스에게 있어서 밥은 무지무지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누구와 어디에서, 어떻게 먹는가도 단순히 밥을 먹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왜 그럴까?

*무료급식? 쪽팔리지만 먹어야지.

외환위기가 터진 직후 거리에서 무료급식을 먹는 거리홈리스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들이 밥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생존을 위해 먹는 이 밥에는 수치심이 있었다. 밥 먹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며 눈치보고, 혹여나 아는 사람을 만날까하는 불안함을 느끼면서도 먹어야 했다. 밥이 설익거나 죽이 되어서 맛이 없어도 그냥 먹었다. 반찬이 어떤 날은 너무 짜고, 또 어떤 날은 싱거워도 상관하지 않고 먹었다. 그저 조용히, 빨리, 이 밥만 먹고 자리를 뜨고 싶었던 것이다.

어느 홈리스가 무료급식을 먹으며 느꼈던 말이 생각난다. 때론 감사한 마음으로 먹기도 하지만 ‘내 식구가 먹을 밥이라면 이렇게 해올까?’ 라는 생각이 들만큼 성의가 안 보이는 급식을 먹으면서도 쪽팔렸다고 했다. 거리에서 밥 먹는 자신을 사람들이 오가며 쳐다보는 눈들 때문에 처량한 마음이 들어서 밥 먹기 힘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구석으로 가거나 벽을 보고서서 빨리 먹어버리기 위해 입속으로 밥을 털어 넣었다. 밥과 국과 반찬을 대접에 몽땅 넣어서 씹지도 않고 꿀꺽 삼키는 것이 습관이 되어 지금도 그렇게 먹는다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여유도 없었고, 수치심에 사람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고 했다. 살기 위해 불편하지만 그냥 먹어야만 했던 밥이었다.

작년부터 실내급식소가 마련이 되면서 밥을 먹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물론 길게 줄을 서서 들어가는 것과 급식의 질은 비슷하지만 깨끗한 공간에서 의자에 앉아서 먹는 것이 달라졌다. 그러다 보니 마주앉은 사람들과 조금씩이지만 대화도 나누면서 먹는다. 거리생활에서 오는 어려움을 토해내기도 하고, 노숙하기 이전 생활에 대해, 그 그리움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기에 이전보다는 편한 마음으로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거리에서 행해지던 무료급식에서 실내급식소가 생긴 후에 이런 변화가 있었지만, 전혀 달라지지 않은 한 가지가 있었다. 무료급식은 거의 대부분이 종교단체에서 하기 때문에 밥을 먹기 위해서는 대부분 종교행사에 참여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식사 전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가량을 예배를 드려야 한다. 어떤 곳은 참여한 사람에게만 밥표를 주기도 한다. 밥과 종교를 거래해야 하는 것이었다. 비홈리스들은 원치 않은 종교행사에 참여해야 밥을 준다고 한다면 거절하고, 밥을 사 먹거나 집에서 먹는다. 그만큼 주머니 사정도 좋고 그게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홈리스들은 그럴 수 없는 형편이다 보니 밥을 빌미로 보이지 않게 강제되어지는 종교의식에 참여하고, 그 대가로 밥을 먹는다. 급식환경은 나아졌지만 귀찮은(?) 종교행사가 여전히 밥 먹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밥은 편하게 먹어야 체하지 않는 법인데.

*같이 먹는 밥이 제일 맛있어.

예전 노실사(홈리스행동의 전신)에서부터 여럿이서 밥을 같이 해먹게 되었다. 2002년 겨울, 노실사에서 유료단신자 숙박소인 사랑방을 개소하면서 이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사랑방에 모여 하루 3끼를 모두 해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른 상담을 위해 방문하던 사람들도 상담을 하다가 밥 때가 되면 숟가락 하나를 얹어 자연스럽게 같이 밥을 먹었다. 사랑방이 해소 된 이후에도 이렇게 모여서 밥을 먹는 것이 이어졌고, 돈이 있으면 500원, 200원, 100원을 모아서 반찬값에 보태기도 했다. 급식소보다 훨씬 더 편한 마음으로, 사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면서 먹는 밥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이었을 것이리라.

현재는 홈리스야학 수업에 오시는 분들과 밥 먹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와서 함께 밥을 해 먹고 있다. 쪽방, 고시원 작은 방에서 혼자 앉아서 먹는 밥보다 여럿이 모여서 먹는 밥이 좋아서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좁은 아랫마을(사무실)에서 20명 때로는 30명이 북적북적 모여서 부족한 듯 먹는 밥. 각자 밥 먹는 문화가 달라서 어떤 사람은 조용히, 어떤 사람은 시끄럽게 말을 하면서 먹는 밥. 어떤 사람은 밥만 한가득 먹거나 어떤 사람은 국에 밥을 말고, 거기에 반찬까지 넣어 짬뽕으로 먹는 밥. 맛이 없어도 잘 먹었다고 인사하거나 맛없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모여 먹는 밥. 이들에게 ‘이렇게 밥을 같이 먹으면 뭐가 좋아요?’라고 물어봤더니 자유롭게 앉아서. 종교의식도 없고 사람 눈치 안보며 편한 마음으로 밥을 먹을 수 있으니 좋다고 했다. 식사자리에서 농담도 오가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가 참 좋다고 말이다.

식사준비는 당번을 정해서 하고, 설거지는 각자가 하는데 모두들 신선하다고 하신다. 그 중에서 가위바위보로 설거지 몰아주는 것을 하기도 하는데, 져도 싫지 않고 재미있어서 즐겁다고 말한다. 이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거리에서 오랫동안 노숙을 했던 홈리스가 오셔서 했던 말이다. ‘와, 이제야 사람 사는 것 같네. 맨날 혼자 밥 먹어서 외로웠는데 사람들과 같이 있으니 진짜 기뻐.’ 그렇다. 여럿이서 먹는 밥은 혼자라는 외로움도 잊게 해주고, 한 식구 같은 느낌을 갖게 해주는 것 같다.

때론 쌀독이 텅텅 비었거나, 김치가 없을 때는 당황스럽기도 한다. 매일 많은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쌀과 김치가 금방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찬통(천원씩 내서 국거리나 반찬하는데 보탠다. 돈 없으면 말고~)에 돈이 조금밖에 없을 때는 식사비용 때문에 때론 심적 부담도 있다. 또 밥 당번이 빨리 돌아오는 것 같아서 가끔은 ‘내가 밥순인가!‘ 라며 짜증도 나지만, 요즘은 그 마음도 접었다. 가끔씩 쌀을 갖고 와서 ’맛있게 해주세요‘라는 말과, 밥을 드시며 ‘집에 혼자 먹는 밥보다 여기서 여럿이 먹으니까 너무 맛있어요!’라는 말 때문이다.

*밥은 서로서로 나누어 먹는 것

역시 밥은 혼자보다 여럿이서 먹어야 제 맛이다. 우리가 함께 먹는 밥은,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나누어 먹는 것’을 통해 외로운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생명’과도 같다. 이 소중한 생명의 밥이 누구에게나 행복하게 주어지길 바라며, 오늘도 시끌벅적 모여서 따듯하고 아주아주 맛있는 밥을 먹을 것이다.

응답 3개

  1. 하문휘말하길

    같이 먹는 밥이 제일 맛있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2. 비포선셋말하길

    밥님~ 아이디가 탐나요. 따뜻하고 넉넉하고 ㅋㅋ 밥은 서로 나눠먹는 것. 맞습니다.오늘도 시끌벅적 맛난 밥 드시길~

  3. 문혜미말하길

    잘 읽었습니다. 매일 생명을 나누는 일에 힘 쓰시는 박사라 님을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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