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노들 밥상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 김유미(노들장애인야학교사)

노들, 노들 네 단체 중에서도 매일 저녁 장애인학생들이 몰려드는 야학에서 밥은 꽤 뜨거운 화두다. 노들야학, 장애인으로 분류되는 학생이 많을 때는 50명이고 이 가운데는 제 손으로 밥을 못 챙겨먹는 사람들이 섞여있다. 활동보조인이든 가족이든 야학교사든 동사무소 직원이든 자기를 대신해 누군가가 숟가락을 들어줘야 밥을 먹을 수 있는 존재. 노들야학에 존재하는 이 언니 오빠들은 밥상 앞에서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똑같이 말했다. 눈앞에 음식이 나타나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지!” ‘그림의 떡’이라는 관용구가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는 때가 또 있을까.


야학 수업 시작 시간은 저녁 6시 30분. 애매하게 저녁 시간과 겹쳐 있다. 직장에 다니는 교사라면 수업 시작 시간에 맞춰 오느라 저녁을 거르고 오기도 하지만, 수업 마치고 먹으면 되니까 별 문제가 아니다. 교사들은 수업 앞뒤에 알아서 챙겨먹는다. 학생분들은 5시부터 슬슬 모이기 시작한다. 서울에 장애인야학이 몇 곳 없다보니 강서나 일산 같이 꽤 먼 데서 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에게 저녁 먹을 시간은 더 애매하다.

학생들의 저녁 식사는 다양하게 이뤄진다. 1. 집에서 해결하고 온다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꽤 된다. 그런데 이분들은 수업 마칠 때쯤이면 배가 고프지 않을까 싶다. 내 배는 그렇다. 2. 도시락을 싸서 오시는 분들이 계시다. 가족이 싸주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활동보조인이 챙긴다. 3. 야학 근처에서 사 드시는 분들도 계신데 음식점 계단과 밥값에 후달려 선택폭이 넓지 않다. 4. 빵이나 떡 같은 간식을 싸와 저녁을 간단히 때우거나 5. 컵라면이나 삼각김밥 같은 패스트푸드로 배를 채우는 사람도 있다. 6. 그리고 어떤 날은 먹고 어떤 날은 굶고, 아예 쭉 굶는 사람도 있다. 활동보조가 없으면 모든 음식이 ‘그림의 떡’이 되고 마는 사람들이 주로 택하는 방법이다.

온종일 휠체어에 누워 지내는 김여사님께 왜 저녁을 안 먹느냐고 물으니 “나? 활동보조가 없기 때문에 안 먹지.”라고 한다. “나, 아침 겸 점심 겸 저녁 겸 딱 한끼 먹고 살아. 1시나 2시나 돼서 그때 한 번 먹어.”라는 충격 진술. (배 안 고파요?) “안 고프겄냐? 참는 거재.” (옆에 있던 다른 언니 : 변비 안 생겨?) “변비가 안 생기겄냐? 참지. 아이고. 그것이 장애인 인생이란다.” 한탄한다. 시설에서 나와 혼자 산 지 이제 오년쯤 된 김여사, 너무 많이 독해져버렸다. 마음속에 거대한 한 보따리가 들어 있어서, 잘못 건드리는 날엔 눈물바다가 된다.

“전에 여그서 잔치가 벌어졌어. 되게 먹고 싶었는데, 장애인들만 놔두고 가버렸어. 장애인들만 놔두고 가서 저그끼리 처먹고 있는데, 쳐다만 보고 있었어. 조금만 먹으면 배가 안 고플 것 같은데, 어떻게 해.” 내 머릿속엔 들어온 적도 없는 일인데 김여사 가슴엔 여전히 딱딱하게 남아있는 사건이다. 스스로 먹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김여사 마음이 풀리려면,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자들이 더 민감해져야 하는 걸까?

지난 봄, 시설에 살면서 자립을 준비하던 최형은 몇 달 동안 활동보조인 없이 맨몸으로 야학을 다녔다. 시설에 사는 동안은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최형은 시설 쪽에다가 ‘나 나가겠다’고 선언하고,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야학에 다니기 시작했다. 택시 기사님이 야학 교실까지 최형의 휠체어를 밀고 들어오곤 했다. 시설에서 잠깐 외출한 맨몸의 장애인 신분이다 보니 최형의 밥, 화장실, 이동 등 일상 여러 곳이 ‘빵꾸’ 난 상태. 최형은 거의 매일 복도에서 절규! 했다. “저기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 부름에 나가보면 “밥 좀 시켜주세요”로 시작하는 식사보조를 부탁했다. 식당에 전화해 밥을 시키고, 계산을 대신하고, 그릇에 랩을 벗겨 상을 차리고, 밥을 먹여주고, 상을 치우고, 그릇을 내놓고, 입 주변을 닦으면 “고맙습니다”와 함께 일이 끝난다. 30분에서 1시간이면 끝나는 일이었지만, 야학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그 일이 가볍지 않았다. 시설에서 탈출하려는 한 사람을 지원하는 아름다운 일이었지만, 노들엔 이미 여러 명의 ‘최형’이 살고 있다. 고작 밥 한 끼 활보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렵냐고 타박할 사람이 있을 것인데, 바로 그 생각 때문에 스스로도 ‘나 힘들다’고 말하지 못했었다. 부탁하는 사람은 얼마나 미안할 것이며, 활동보조 시간이 없는 걸 어쩌란 말이냐, 그 심정을 다 알기 때문에, 당신 때문에 힘들다고 느끼는 내 감정 자체가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시설 앞에 장애가 있는 자기 자식을 버리고 가면서 눈물바람 하는 부모 마음을 알 것 같다고 하면… 내가 분명 오버하는 것이겠지만, 그 시름의 정체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야학에 상주하는 비장애인의 도덕심에 있는 게 아니었다. 지나고 보니 알겠다.


최형은 이제 복도에서 도와달라고 소리치지 않는다. 최형 뒤에는 활동보조인이 있다. 최형은 활동보조인과 함께 ‘알아서’ 밥을 먹고 온다. 이제 밥을 먹었는지 걱정도 되지 않는다. 혹시나 본인 밥상에 불만 있냐고 물어보니, 한참만에 하는 말, “똑같애. 반찬이 맨날 똑같애.” 배부른 자들이나 한다는 반찬 투정을 하는 게 아닌가. 최형의 밥상은 활동보조인과 함께 빠르게 바뀌었다.

노들의 밥상은 너무 뜨겁다. 밥을 먹기 위해 타인이 필요한 누군가는 사람들 눈치를 살피고 종종 서러움을 느낀다. 일상적으로 활동보조를 하는 누군가는 피로를 느끼고 죄책감을 갖기도 한다. 비장애인보다 중증장애인의 수가 더 많은 노들야학. 가끔씩 뒤풀이 같은 걸 할 때면 나는 노들이 장애인이 지배한 세상 같다는 생각을 한다. 비장애인에게도 해방이 필요하다.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 스트레스 받지 않고 평화로운 면상으로 밥상 앞에서 만나기 위해선… 투쟁이 필요하다. 정으로, 의리로, 공동체 정신으로 돌파하는 것엔 한계가 있다.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지원하는 활동보조서비스 제도를 투쟁으로 쟁취해야 한다. (아 완전 투쟁 깔때기) 물론 돈도! 건강한 음식도! 너른 주방도! 식당도! 밥 챙겨줄 사람도! 서로에게 따뜻한 밥 지어줄 시간도! 욕심을 내자면 필요한 건 참 많다.

나는 먹었는데, 누구는 굶은 채로 함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굶은 사람이 일부러 다이어트 하는 게 아니라면, 내 밥상도 평화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노들에서 스트레스 팍팍 받아가며 깨닫고 있다. 혼자만 잘 먹으면 무슨 재민겨~

응답 3개

  1. 영희말하길

    우왕. 모두 모두 화이탕이요!!!! ^^

  2. 게으른지혜말하길

    인천장애인야학에서 교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읽으면서 왕! 동감했습니다.
    저도 죄책감 느끼는 1인이거든요 ㅎㅎ
    죄책감, 미안한 마음은 좀 벗고 연대하고 투쟁해야겠네요 ^ ^

  3. 사루비아말하길

    글 정말 잘 읽었어요. 요즘 하고 있는 고민들과도 맞닿아 있는 지점이 있어서 더욱 와닿았음 ㅠㅠㅠ
    아웅. 눙물이 쑥 튀어나왔네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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