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한미 FTA , 자본에겐 블루오션 서민에겐 인당수

- 황진미

한미 FTA , 자본에겐 블루오션 서민에겐 인당수

– 당신은 청나라 상인인가 심청이 인가? –

지난 22일 국회에서 한미 FTA 비준 안이 기습 상정되어 4분만에 통과되었다. 표결 직전 이들은 비공개를 선언하고 기자들을 내보냈다. 왜 이 역사적인 표결을 굳이 비공개로 하려 했을까?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았던 것일까? 국회 ‘날치기’ 통과 후, 전국에서 시민들이 연일 “비준무효”를 외치고 있다. 영하의 날씨에 물대포를 쏘아대던 경찰은 석연치 않은 돌출행동으로 시위대를 자극하고, 보수 언론들이 일제히 경찰관의 얼굴을 폭력시민의 얼굴인양 보도하며 시위대를 폭도로 모는 가운데, 11월 29일 아침 이명박 대통령은 가볍게 서명하였다. 이제 수출과 고용이 늘고 GDP가 성장할 일만 남은 것인가? 아니면 지옥문이 열린 것인가?

농민을 살처분하는 구덩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측되는 농업은 실제로 대책이 없다. 한·미 FTA 발효 즉시 38%의 농축수산물이 무관세로 수입되고 5년 이내에 60%로 확대된다. 미국업계에 의하면 쌀과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도 무관세로 수입될 전망이다. 미국 농무성경제연구소 는 미국산 농축산물의 한국수출 액이 연평균 2조876억원씩 증가할 것이라 한다. 산술적으로 앞으로 15년 후엔 연간 31조3140억 원의 미국 농축산물이 수입된단 뜻인데, 한국의 연간 농업총생산액이 40조원인 것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시장이 잠식되는 것이다. 설마 무슨 대책이 있지 않겠냐고? 한미 FTA 체결의 일등공신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농업대책이 불충분하다는 비판에 대해 “다방농민이란 말이 있다. 모럴 헤저드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 답했다. 농사도 짓지 않고 다방에서 노닥거리며 농업보조금을 타가는 농민들의 도덕적 해이가 문제란 뜻이다. 한미 FTA 비준의 선봉장 역할을 했던 남경필 의원은 “농업 보조금은 해롭다, 국회가 농민에게 저항할 용기를 내야한다”고 말한 바 있다. 두 주역의 말에서 보듯이, 정부는 농업에 대한 대책은커녕, 대책을 요구하는 농민들을 적으로 삼아 ‘용기 있게 저항’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그러니 이광석 전농 의장이 “한미 FTA는 농민을 살처분 하기 위해 판 거대한 구덩이”라고 말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제조업 수출도 장기적으론 손해

그래도 제조업 수출은 늘지 않겠냐고? 애초 한미 FTA의 목적이 여기에 있었던 만큼, 수출이 증가해야 할 테지만, 그렇지 않다. 한미 FTA 타결 직후인 2007년도에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한국개발연구원 등 11개 국책연구기관이 제출한 보고서에는 10년간 실질 GDP가 6.0%씩 상승하고 35만 명의 고용이 늘어날 거란 장밋빛 전망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위 결과가 2001년 기준의 세계거시경제데이터를 이용한 것이어서, 이후 2004년 기준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새 연구가 발주되었다.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기획재정부의 의뢰로 이 연구를 맡았다. 그런데 기획재정부가 도중에 GDP나 고용 등 거시경제효과에 대한 분석 작업을 중단할 것을 지시하여, 연구는 제조업의 무역수지 전망 등으로 축소되었다. 그 결과 2009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관세율 변화에 따른 수출입 가격 및 물량변화’라는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한미 FTA 발효 후 1년간은 2억 263만 달러의 수출증가효과가 있지만, 10년 뒤 15년간은 오히려 매년 평균 5억 910만 달러의 수출이 감소한다고 나와 있다. 정부는 이 보고서를 발표하지 않았고, <국민일보>의 단독보도로 알려졌다. 2009년 민간연구소인 국제통상연구소는 독립적인 분석을 통해 10년 뒤 실질 GDP상승은 최대 0.13%에 불과하며, 10년 뒤 15년간 연평균 70억 7785만 달러의 대미무역적자가 예상된다고 발표하였다. 2010년 대미무역흑자가 94억 달러임을 감안하면, 대체 한미 FTA를 왜 하는 걸까?

의약품 특허권과 다국적 제약회사

한미 FTA의 최대 수혜는 다국적 제약회사와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는 세력들에게 돌아갈 공산이 크다. 정부는 의료부문이 한미 FTA의 예외조항이라고 말해왔지만, 그렇지 않다. 일단 약값이 오른다. 의약품 특허기간이 연장되고, 약가결정과정에 다국적 제약회사의 개입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복제약을 위주로 한 국내 제약 산업의 피해가 10년간 최소 1조원에 달할 전망이고, 약값은 최소 35%인상될 예정이다. 환자들의 부담은 커지고,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한미 FTA 만의 문제가 아니라, FTA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내년 2월 체결을 목표로 현재 협상을 진행 중인 인도-유럽 FTA가 발효되면, 전 세계에 복제약을 싼 값에 공급해 왔던 인도의 특허법이 손질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인도의 싼 복제약 때문에 오리지널 약을 비싼 값에 팔지 못한 다국적 제약회사 노바티스가 인도의 특허법이 무역관련 지적재산권 협정에 위배된다며 소송을 냈다. 만약 인도의 특허법이 무력화되면, 값싼 에이즈치료제가 절실하게 필요한 아프리카의 가난한 환자들이나 값싼 항암제로 연명하는 제3세계의 백혈병환자 등은 엄청나게 비싼 약값을 감당할 수 없어서 죽어야 한다.

영리병원과 민간의료보험

약값만이 문제가 아니다. 현재 인천 송도 경제자유구역에서 추진 중인 영리병원은 애초에는 외국인이 설립하고 외국인 전용 병원을 설립하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했지만, 현재 내국인 진료와 국내자본 투자를 허용하고 있다. 삼성과 KT&G가 투자에 뛰어들었으며, 외국인과 내국인의 지분 비율이 3:7로 내국인 자본이 더 높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영리병원에 국내외 자본의 투자가 활성화되고, 이러한 영리병원이 6개의 경제자유구역과 3개의 경제자유구역 후보지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의료비는 당연히 증가한다. 보건산업진흥원의 연구에 의하면 최소 1조5천억원에서 4조 3천억원의 국민의료비 증가가 일어날 것이라 한다. 영리병원의 높은 의료비는 국민건강보험의 낮은 수가체계에 묶일 수가 없다. 현재 국민건강보험법은 국내의 모든 병원이 건강보험환자를 받아야 하는 당연지정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당연지정제는 영리병원에 투자된 자본의 이익 회수를 저해하는 족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ISD(투자자 국가제소조항)에 적용을 받아 제소당할 수 있다. 실제로 NAFTA이후 캐나다에 진출한 미국 영리병원기업인 센추리온이 캐나다의 무상건강보험서비스를 ISD로 제소한 바 있다. 사회보장서비스인 건강보험은 미래유보조항에 포함되어 예외라고는 하지만, 최소기준대우와 수용, 보장 등은 유보조항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당연지정제도 ISD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만약 당연지정제가 철회되면 영리병원의 비싼 치료비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영리병원의 고급한 서비스와 높은 병원비에 걸맞은 ‘명품 민간보험 상품’이 개발될 것이다. 이미 많은 국민들이 들고 있는 AIG 의료보험이니, 의료 실손형 보험이니 하는 상품에 특약이나 보험리모델링, 만기 후 재계약 등의 형태로 영리병원과 연계된 보험 상품이 판매될 수 있다. 초기에 이런 민간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들은 소득상위계층일 것이다. 이들은 소득이 높은 만큼 많은 국민건강보험료를 내고 있지만, 일반 병원에서 럭셔리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가져왔다. 이들은 이제 민간의료보험으로 영리병원의 의료서비스를 받기 때문에, 국민건강보험에서 떼어가는 많은 보험료가 부당한 이중부담으로 느껴진다. 이들은 전 국민이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현재의 의무가입제에 위헌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미국식 민간의료보험시장을 도입하자구?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위헌 소송은 이미 있어왔다. 2000년도에 직장의료보험과 지역의료보험 재정통합을 앞두고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부과기준이 달라 평등권에 위배된다는 위헌소송이 있었다. 헌재는 2002년 재정통합 전까지 평등한 부담기준을 만들면 된다는 조건부 합헌 판정을 내렸다. 이후 대한의사협회는 2009년에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평등한 부담기준이 마련되지 않았고, 보험재정 악화로 인한 보험료 인상이 직장가입자에게 전가되었다면서 다시 위헌소송이 제기하여 12월에 판결이 있을 예정이다. 대한의사협회가 이런 위헌소송을 낸 이유는 직장가입자의 입장을 대변해주기 위함이 아니다. 의사들이 현재의 거대단일보험자의 형태를 깨고 다보험자의 형태로 가길 원하기 때문이다. 즉 국민건강보험이 수가 등 지급 등 모든 결정권을 쥐고 공급자인 의사를 압박하는 지금의 형태에서 벗어나, 여러 개의 군소보험들이 서로 경쟁하는 가운데 공급자인 의사가 보험자를 마음대로 선택하여 보험자와 공급자가 평등한 계약관계에 놓이길 원하는 것이다. 즉 대한의사협회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모델은 여러 민간의료보험이 활성화되고 국민건강보험도 ‘one of them’ 인 가운데, 공급자인 의사와 소비자인 환자가 여러 보험자 중 하나를 선택하여 계약하는 체계이다. 바로 미국식 HMO 체계인 것이다. 공급자인 의사뿐 아니라, 국민건강보험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부당하게 느끼고 더욱 차별화된 의료서비스를 받고 싶어 하는 부유층의 환자들도 이러한 체계를 선호한다. 이번 헌재의 결정이 어찌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장차 영리병원과 연계된 민간보험이 활성화 되면 될수록 국민건강보험의 당연지정제와 의무가입제를 폐지하려는 압박은 가중될 것이란 점이다.

만약 한미 FTA 발효 이후 영리병원과 민간보험 활성화가 이루어지고, 그 여파로 의무가입제마저 위헌 판정을 받게 되면 어떻게 될까? 소득 최상위층부터 국민건강보험에서 이탈할 것이다. 소수지만 큰 재원이었던 이들의 이탈은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악화로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은 낮아지게 된다. 비싸지만 고급한 민간보험과 싸지만 안 되는 게 많은 국민건강보험을 저울질 하던 소득상위층들이 뒤따라 민간보험으로 갈아탈 것이다. 이후 재정 악화의 악순환이 돌게 된다. 몇 차례 사이클이 돌때마다 소득 피라미드의 상층부는 연쇄적으로 떨어져나갈 것이다. 불과 몇 사이클 만에 중산층이 대거 이탈하고,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은 급속히 악화될 것이다. 당연히 보장성도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다. 그 사이 공급자들도 경쟁력 있는 병원부터 국민건강보험 대신 재정이 튼튼해서 수가도 높게 쳐주고 삭감도 덜 하는 민간의료보험으로 계약을 옮길 것이다. 결국 국민건강보험은 비싼 민간보험을 들지 못하는 서민층들과 민간보험회사가 꺼리는 경쟁력 없는 병원들만 남은 저질의료보험으로 전락할 것이다. 즉 가난한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의료서비스를 가까스로 보장하는 껍데기만 남은 공보험이 되는 것이다.

이로써 한미 FTA는 대한민국에 미국식 민간의료보험시장이라는 ‘블루오션’을 열어젖히게 된다. 지금 발밑엔 자본에겐 블루오션, 서민에겐 인당수인 물결이 넘실댄다. 당신은 청나라상인인가, 심청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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