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인도네시아로 수출되는 원자력 발전소, 그것을 생각한다

- 사에키 나츠코(佐伯奈津子)

* 인도네시아의 원자력 발전소 계획

인도네시아의 원자력 발전소 도입 계획은 실상 반세기 이상의 역사를 지닌다. 1945년 태평양지역에서 이루어진 아메리카의 핵실험의 영향이 있었다. 이후 핵을 개발하여 이용할 가능성을 조사하기 위해서 방사성 물질 연구 국가 위원회가 설치(1958년에 원자력 자문 위원회로 개조됨)된 것을 시초로, 1964년에는 원자력 기본법이 성립되었다. 이어서 국가 원자력 관청(BATAN)이 설립되고, 1965년에는 서부 자바주(州) 반둥에서 최초의 연구로(硏究炉)가 가동되었다.
수하르트 신질서 체제기에 들어서면서 원전 건설 계획은 보다 현실감을 띠게 되었다. 1971년 BATAN은 국제 원자력 위원회(IAEA)의 원조를 받아 원전 도입 조사를 실시하며 1972년에는 원전 건설에 관한 준비 위원회가 설치되었다. 1) 지멘스(SIEMEN, 독일) + 후라마톰(Framatome ANP, 프랑스), 2) 웨스팅 하우스(Westinghouse, 미국) + 미쓰비시 중공업(三菱重工業) + 안살도(Ansaldo, 이탈리아) 3) 캐나다 원자력 공사 3 그룹에 의한 원전 경제성 조사(1986년), IAEA에 의한 원자력 후보지 조사 평가 지원(1988)을 받아, 인도네시아 정부는 1987년, 원전 건설을 결정한다.
최초로 원전 건설의 실행 가능성 조사(F/S)를 수주했던 것은 건설 컨설팅 뉴 제크(간사이 전력 관련 공사)1였다. 뉴 젝크의 F/S비용은 15억원이었는데 이중 7억원은 일본 수출입 은행(당시)에서 융자로 조달되었다. 뉴 젝크는 1996년, 건설 후보지로서 중부 자바주 무리아 반도가 최적격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후 1) 웨스팅 하우스 + 미쓰비시 중공업, 2) GE(아메리카) + 도시바(東芝, 일본) + 히타치(日立, 일본) 3) 지벤스 + 후라마톰, 4)캐나다 원자력 공사가 이 사업에 대한 참여를 모도하기 시작한다.
수하르트 정권은 원전 개발을 국책으로 삼았다. 이 정권에 의해 압력을 받으면서도 원전계획에 대한 반대 운동이 고조되었다. 1994년에 결성되었던 <인도네시아 반핵 시민 연합(MANI)>은 원전 건설 반대 100만인 서명을 실시했으며, 그 외에도 일본 국회에 요망서를 제출했다. 1995년에는 인도네시아의 최대 환경 단체 <인도네시아 환경 포럼(WALHI)>이 자카르타에서 체르노빌 9주년 집회를 개최했다. 1996년, 무리아 원전 건설 예정지로 결정된 중부 자바주 쥬바라 현에서 최초의 반 원전 데모가 일어난다. 또한 자카르타 중부 나바 주 소로, 죠그 자카르타에서 <제4회 No NUKE Asia Forum>가 열리고 있다.

* 원전 계획의 부활

1997년에는 반대 운동의 영향과 아시아 통화 위기로 인해 원전계획이 중지된다. 이 원전 계획이 다시 부활했던 것은 2003년의 일이다. 핫타 라자사 연구 기술 대신(당시)이 인도네시아(특히 자바 섬, 발리 섬)의 에너지 위기를 이유로 삼아, 원전 건설 계획을 재개한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에너지 공급의 다각화, 에너지원의 보호, 온실효과가스 배출량 감소에 의한 환경보호, 재생 가능한 에너지가 불충분하며 매우 비싸다는 점을 이유로 들고 있었다. 원전 계획 재개 선언에 앞서 2000년~2001년에 IAEA와 JBIC 의 지원으로 실시된 <원전 에너지원의 비교평가(CADES)>에서는 인도네시아에서 원자력을 실시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내려지기도 했다.
더욱이 2005년 에너지․광물자원 관청이 발표한 <2005년~2025년 국가 에너지 매니지먼트 청사진>이나 <국가 에너지 정책에 관한 2006년도 대통령 결정 제 5호>에서는 2025년의 재생 가능 에너지(수력, 태양력, 풍력, 원자력) 비율을 5% 이상, 원전 설비 용량을 400만KW이상으로 한다는 목표가 결정되었다. 원자력은 지금까지는 ‘제로’였던 것에서 2020년에는 2790만 BOE(석유 환산 베럴), 2025년에는 5580 BEO까지 증가시키도록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이어 원전 건설을 추진하는 법도 정비되었다. 예를 들어, <장기 국가 개발 계획에 관한 2007년 법률 제 17호>는 최초의 원전이 2015년~2019년에 조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결정하고 있으며, <에너지에 관한 2007년 법률 제 30호>는 원자력 에너지를 장래의 에너지 시스템의 일부로 규정하고 있다.
무리아 원전 건설 계획도 단박에 진행되었다. 뉴 젝크가 실시한 F/S를 개정하여, 2025년까지 합계 400만 KW의 설비용량을 지닌 4기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1,2호기에 대해서는 2008년~2009년 입찰, 2010년~2011년 착공, 2016년~2017년 운전을 개시한다는 계획이 설립되었다.

* 주민들은 원전을 거부.

무리아 원전 건설 예정지인 중부 자바주 쥬바라현의 인구는 120만 명이다. 쥬바라 현은 인도네시아 유명한 가구생산지이다. 인구의 40%를 점하는 많은 노동자가 가구 생산에 종사하고 있다. 여기에 어민(인구의 10%), 농민(30%)를 더하면 주민 대부분이 자연에 의지해 살림살이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변의 쿠도스현(인구 72만명, 그 중 농민은 35%, 노동자는 48%로 대부분이 담배 산업에 종사), 파티현(인구 120만명, 어민은 5%, 농민은 60%, 노동자는 20%로 대부분이 농산물 가공업에 종사) 도 마찬가지다.
무리아 반도에 있는 세 곳의 현에 있는 어민, 농민, 노동자들, 즉 무리아 반도 인구의 70% 이상이 원전 건설에 강하게 반대했다. 원전 건설 예정지로 지정된 곳 대부분이 국영 농원기업의 고무 농원이어서, 이곳이 원전 건설지로 토지 수용 당하면 그들은 직장을 잃는다. 방사선으로 인해 생활양식이나 자손이 삶과 건강이 위협 당한다. 도시의 경제 정치적 이익의 산제물이 되고 만다. 무엇보다 그 고장의 주민들에게 원자력 발전은 핵폭탄을 상기시키는 위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주민은 원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어찌됐든 반대. 살 곳도 죽을 곳도 나 자신의 토지가 아니라면 (안된다-역자)”
2007년 중반, 원전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반대 운동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롱구 행진>일 것이다. 건설 예정지인 쥬바라현 쿤반도 바롱 마을의 주민 약 6000명이 9월에 처음으로 실시했던 것으로 쥬바라시까지 35km 를 행진했다. 때마침 쥬바라 시의 현 의회에서는, 쿠스마양토 카디만 연구 기술 대신과 HM 핸드로 마루토요와의 대담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에 주민과 경찰대가 몸싸움을 벌였고 일촉즉발의 긴박한 상황으로 치달았다.

* 무리아 원전은 “하라무(이슬람법으로 금지된 것)”다.

롱구 행진이 있던 날 밤에는 인도네시아 최대의 이슬람 조직인 <나프다토르 우라마(NU)> 중부 자바주 지부가 “무리아 원전은 ‘하라무(이슬람법에서 금지된 것)’”라는 결정을 내놓기도 했다. 무리아 반도는 15~16세기에 자바섬으로 이슬람을 전했다고 알려진 9명의 성인(우리 손고) 중 스난 무리아, 스난 구도스의 유래를 지닌 땅이다. 주민의 약 90%가 무리아이고 대부분이 NU에 속해 있다. 우라마(이슬람 법학자)들은 무슬림인데 담배를 피워도 될까, 은행 거래를 해도 될까, 등 일상적인 문제에 대해서 이슬람 법에 비추어 해석해 줄 것을 요청받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원전에 대해서도 이슬람법 심의 기관에서 협의를 했다.
우라마들은 플라스와 마이너스의 영향 중 어느 쪽이 더 큰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이 방법은 예언지 무하마드가 도박이나 술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플라스의 영향도 있지만, 마이너스 쪽이 크다”라고 대답했던 데 기인한다. 원전에 대해서는 방사성 폐기물, 건강에 대한 영향, 주민의 사업계획에 대한 불참가, 테러의 위협 등이 마이너스 요인으로 제시되었다. 플라스 효과로는 발전소가 언급되었지만, 무리아 원전의 전력 공급량이 인도네시아 전체의 2%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다지 의미 있는 효과로 여겨지지 않았다.
또한 인도네시아의 법에는 우라마의 판단에 따른 상대적인 것(Hukm Ijtihadi)과 알라의 말에 의한 절대적인 것(Qothi)이 나뉘어져 있다. 무리아 원전을 하라무라고 판정한 것은 전자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우라마의 판단은 우라마 자신의 지식과 경험 등에 근거해서 내려지는 것이기 때문에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우라마 평의회(MUI) 쥬파라현 지부는 원전을 하라루(이슬람 법으로 허가된 것)로 한다는 판정을 낼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우라마에 따르자면 원전을 하라루로 하거나 하루무로 하거나 하는 것처럼 전혀 상반된 판정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의 정당성 여부는-역자) 우라마의 고결함 등에 근거하여 무슬림 개개인이 판단하게 된다.

* 늘어가는 원전 건설 계획

무리아 원전에 대한 반대가 거세자 정부는 어쩔 수 없이 대체 건설지를 찾게 되었다. 현재 건설이 계획되어 있는 것은 마도라 섬(동부 자바 주), 고론타로 주, 방카 주(방카, 브리튼 주), 반텐 주, 동 카리만탄 주, 서 카리만탄 주이다. 마도라 섬에 예정되어 있는 원전 건설은 한국 원자력 연구소(KAERI)가 개발한 SNART원자로(해수 담수화 설비의 결합) 이다. 고론타로 주에서는 주지사가 러시아의 RAOUES와 부유식 원전 건설에서 합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모두 아직 시험 단계에 있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원전이다. 따라서 이러한 방식의 원전에 대한 이후의 전망은 불투명하다.
한편 지역 자치체가 적극적으로 지지하여 계획이 급속히 진행된 경우가 방카 주와 브리튼 주이다. 후쿠시마 제 1원전 사고 후에도 국가 원자력 관청(BATAN)에 의한 F/S(2011~2013년 예산 1590억 루비아)는 진행되었다. 더욱이 서쪽 방카 현 에너지 광물자원국은 BATAN이나 원자력 규제관청(Bapeten)에 의한 원전 건설 계획의 사회화(廣報)를 촉진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주 개발국이 2011년 4월의 F/S 완료까지는 주민에 대한 원자력 발전 계획 사회화(廣報)를 중지하겠다고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하다.
정부는 원전만이 인도네시아의 “에너지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계속해서 선전하고 있다. 또한 이것을 국제사회가 뒤에서 지지해주고 있다. 2006년 엘바라데이 IAEA사무국장(당시)은 유도요노 대통령과 회담하고 인도네시아 원전을 지원한다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2010년 미국 원자력 에너지 협회, WiN, 인도네시아 재생 가능 에너지 사회(METI)등 5개의 <NGO>도 인도네시아의 원전을 지원한다고 선언했다. 같은 해인 2010년 12월에는 인도네시아가 요르단, 베트남과 나란히, 원자력 개발에 대한 준비가 가장 잘 되어 있는 나라라고 평가한 IAEA의 보고서도 나왔다.
인도네시아 반핵사회(MANUSIA)는 “에너지 위기”는 에너지 부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에너지 자원의 대부분을 외국에 수출하고 있는 미스 매니지먼트(miss-management)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지적한다. 덧붙여 원자력 추진에 대해서도, ASEAN 인근 각국과의 라이벌 의식이 원자력과 같은 하이테크적인 상징성을 지닌 최초의 국가가 되려는 경쟁을 이들 인근 국가들 사이에서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 일본과 한국의 경쟁

기술력이 있고 세계로부터 인정받는 부유한 국가가 된다는 꿈을 당장 실현하고 싶다 — 인도네시아의 이러한 야심에 “표본”이 되고 있는 것이 일본과 한국이다. 원전 추진파는 일본과 한국의 성공이, 주요하게는 원자력에 의해서 촉진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일본과 한국이야말로, 인도네시아에 최초의 원전을 건설하기 위해서 경쟁하고 있는 국가들인 것이다.
일본과 한국이 인도네시아 원전 건설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던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이다. 2004년~2005년에는 국가 원자력 관청(BATAN)과 한국 수력 원자력(KHNP)가 공동조사를 실시한다. 유도요노 대통령은 2005년 2월에 한국을 방문하는데 그때 KHNP가 관리하는 원전을 방문했다. 2005년 12월에는 KHNP, 한국 전력 공사(KEPCO)와 국유 전력공사(PLN) 사이에, 원전 건설 공동조사에 관한 합의서가 조인되었다. 인도네시아와 한국 사이에 원자력 평화이용에 관한 양국 간 협정( 원전의 연구, 개발, 계획, 건설, 조작 및 원자력 원료의 제조, 공급 등에서의 협력)도 맺어져 있다.
일본도 지지 않는다. 2005년 5월에는 미쓰비시 중공업이 인도네시아에서 7년 만에 세미나를 개최하고, 무리아 원전 건설 사업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경제 산업성은 2006년부터 5년간 “아시아의 원자력 발전 지원(대상은 인도네시아, 베트남)”을 실시하여, 2006년 3월에는 자원 에너지 관청을 중심으로 한 <관민 합동 미션>이 자카르타를 방문했다. 더욱이 2007년 2월에는 JETRO가 자카르타에서 원자력 규제 관청(Bapeten)과 원전 건설 조업에 관한 세미나를 열었으며, 인도네시아 상공회의소(Kadin)와 함께 “인도네시아에서 원자력 발전의 전망”을 테마로 한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에서 원전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를 “배우는” 기회도 만들어져 있다. 예를 들면, 2006년에 KEPCO와 KHNP가 스폰서가 되어, BATAN, PLN, 국가 개발 기획 관청(Bappenas), 국회의원이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2007년에도 종교 단체나 반 원전 단체가 일본과 한국에 초청받았지만, 대부분이 초대를 거부했다(국회의원이 일본과 한국을 방문). 최근에는 2011년 2월, 이명박 한국 대통령이 유도요노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핫타 라자사 경제담당 대신을 고리 원전에 초대했다. 같은 시기에 방카와 브리튼 주의 주지사 등이 일본의 원전 사절을 방문했다는 정보도 있다.

* 원전 수출에 대한 감시를

동일본 대재난을 위문하기 위해서 일본을 방문했던 스시로 반반 유도요노 대통령은 6월 17일, 공동 통신(共同通信)과 단독 회견을 갖고 “재생가능하고 깨끗한 지열(地熱), 태양열 등, 원자력 발전 이외의 에너지원을 개발하는 게 가능하다면, 나는 그쪽을 선택하겠다”고 발언했다. 이것은 일본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되어, 얼터너티브한 길을 모색하려는 자세로 여겨져 일반적으로는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일본에 전혀 보도되지 않았던 다른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 경제 포럼(6월 16일~17일)에 출석하기 위해서 러시아를 방문하고 있었던 핫타 자라사 경제 담당 조정대신이, 비슷한 시기에 러시아와의 원자력 협정을 조인했던 것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핫타 자라사 경제담당 조정 대신은 연구 기술 대신이었던 2003년, 원전 계획의 재개를 발표했던 인물이다(덧붙이자면 유도요노 대통령의 아들과 핫사 자라사 경제 담당 조정 대신의 딸은 약혼중이다).
인도네시아는 후쿠시마 제 1 원전 사고 후에도 원전 건설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 원전이 건설될 것인가 아닌가는 자금이나 기술을 제공하는 일본, 한국 등의 동향에 달려 있다. 설령 후쿠시마 제 1 원전 사고를 계기로 일본이 탈원전을 실현한다고 해도, 일본의 원자력 수출을 막지 않는다면, 1970년대 초와 같은 전철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일본 국내에서의 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한편, 그것이 “공해수출”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던 것 과 같은 현상을 말이다.
일본의 원자력 발전 수출 후보지로는 인도네시아 이외에도 베트남, 타이, 말레이시아, 터키, 리투아니아, 요르단 등이 있다. 이들 국가들에서 제2, 제3의 “후쿠시마”가 일어나지 않도록 원전 수출을 멈출 수 있을 것인가? 우리들도 함께 책임을 지고 있다.

인도네시아로 수출되는 원자력 발전소, 그것을 생각한다<원문은「인도네시아로 수출되는 원자력 발전소, 그것을 생각한다(インドネシアへの原発輸出を考える)」, 『임펙션-원자력 발전소 수출? - 국제적 핵 ‘관리’체제를 묻는다(インパクションー原発輸出? 国際的核「管理」体制を問う)』, 182호, 임펙션 출판회, 2011년 11월, 54~62쪽. 웹진에 글을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임펙션 출판사와 저자 사에키 나츠코(佐伯奈津子)씨에게 감사드린다

사에키 나츠코(佐伯奈津子) 인도네시아 민주화 지원 네트워크(インドネシア民主化支援ネットワーク), 저서로는『아체(Aceh의 목소리-전쟁, 일상, 쓰나미(アチェの声ー戦争・日常・津波)』코먼즈 등(コモンズ等).

역자 : 신지영

  1. 주식회사 뉴 젝크(株式会社ニュージェック, The New Japan Engineering Consultants, Inc): 오사카부 오사카시에 본사를 둔 간사이를 기반으로 한 중견 종합 건설 컨설턴트 회사.- 역자 []

응답 2개

  1. 낙타말하길

    답글 감사합니다. 원래 저자에게 링크를 걸어드리려고 하는데, 번역해서 메세지 전해 드릴게요. ^^

  2. 박카스말하길

    일본과 한국에서의 원전으로 인한 피해과 공포를 인도네시아로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다른 곳곳에 부디 원전이 설치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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