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한미FTA자유발언대] 탈출과 인간의 탈환

- 하마무

올해 3월 한국에 왔으니 벌써 10개월이 지났다. 시간이 참 빠르다. 내 인생 첫 번째 데모는 5월 메이데이였다. 일본에서도 데모나 집회는 있었다. 하지만 언론에서 보도되지 않고, 학생과 사회가 단절되어 있으니 그런 게 있다는 걸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메이데이 때는 집회가 끝난 후 명동의 롯데백화점 앞에서 농성하고 차도를 점거했다. 충격을 받았다. 민중의 힘. 모여든 학생수를 보고는 말문을 잃고 동시에 흥분을 느꼈다. “여기서 뭔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렇게 느꼈다.

일본에서도 스터디 그룹 등에 참가한 적은 있지만, 어딜 가도 학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나이든 분들이 질문 시간을 길게 끌어다 쓰며 자기주장을 늘어놓는 것에도 질려버렸다. 늘 고독했다. 사회 문제에 관해 발언하고 자신이 느낀 걸 말하면 “분위기를 읽지 못한다”라며 사회에 부적합한 사람들이나 마이너리티를 배제한다. 오히려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한다. 자기책임이라는 명목 아래서 소리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아픔을 느끼는 것조차 용서되지 않는, 그렇게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가 일본이다.

 그런 내게 한국의 학생이나 젊은층과의 만남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두리반의 스쾃. 지역과 젊은이, 아티스트와의 연대만이 아니라 운동의 본질을 생각하게 되었다. 두리반은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젊은이가 모여들었고, 운동의 즐거움을 느꼈다. 오히려 운동을 운동으로서가 아니라 사람과의 유대로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성공회대학의 노숙모임과의 만남은 나를 바꿔놓았다. 동료들은 학교 안에서 텐트를 치고 생활했다. 정말로 학생이 빈곤 상태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래서만이 아니라 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빈곤 문제는 당신들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걸 깨우쳐주기 위해서라고 동료들은 말했다. 학비가 내려가도, 기숙사가 지어져도 젊은이들의 빈곤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건 사회 전체의 문제다. 젊은 세대가 빈곤 문제를 떠안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인식되지 않는 사회에서, 동료들은 모여서 자신들의 고민을 공유한다. 살기 어려운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빈곤하더라도 고독하지 않은 상태를 만드는 게 중요하이다. 혼자여서는 안 된다는 감각이 사람을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만들어준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없어지기 전에 연대하는 것. 그렇게 내게 동료가 생겼다.

집회나 데모에 참가하면, 왜 외국인인 당신이 여기에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당연한 일이다. 한국의 현대 사회와 일본은 매우 깊게 이어져 있다. 재일조선인의 존재나 분단의 현실을 생각해봐도, 어떤 의미에서 일본의 식민지주의와 제국주의는 지금도 진행중이라고 여겨지며, ‘분단’이라는 사회적 상황이 발생한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거기에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결과도 포함된다.

책임으로부터 도피할 때 자주 등장하는 발언이 일본인으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교제한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필요한 감정이라도, 어떻게 해도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는 구조가 있음은 응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으로서 교제한다”는 견해는 강자의 견해며, 폭력적이다.

나는 일본국적을 소지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지금의 일본 사회에 책임이 있다. 그 사실을 인식하지 않는다면 일본의 전쟁 책임에 응답했다고 여기더라도 공허한 소리가 되고 만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역시 일본국적 소지자로서, 일정한 권리가 보장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그 입장을 유지하기 때문에 현대의 일본 사회에 이르기까지 식민지주의와 제국주의가 계승되고 있다는 사실을 마주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나 자신이 일본 사회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다수자, 어떤 의미에서는 소수자라는 것을 날마다 확인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차별하고 있다는 사실도, 자신이 차별받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아픔’에 대한 상상력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의 ‘아픔’이며, 자기 자신의 ‘아픔’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일본의 전쟁 책임에 응답할 실마리를 발견하고, 일본이라는 나라, 그리고 나 자신도 해방시켜 갈 수 있지 않겠는가. 누군가 한 사람의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나의 인권도 지켜주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누군가가 살기 힘들다는 것은 내가 살기 힘든 이유와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기가 힘들다고 느끼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나 자신의 문제이며 인간 권리의 문제이다.

왜 외국인인 나는 FTA 집회에 참가하는가. 그걸 내 문제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FTA가 비준되면 일본 사회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다. 특히 TPP에 관해 말하자면, FTA의 강행 체결을 일본의 경제계는 크게 반겼다고 한다. 양국은 서로 조약의 체결을 서둘렀고, 한국이 비준함으로써 일본도 서둘러 TPP에 참가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한다. 일본의 TPP 참가는 내게도 커다란 영향을 준다. 한국의 FTA를 저지하지 못한다면 일본의 시민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다.

단순하게 말해서는 안 되겠지만, 80년대 민주투쟁의 결과, 자신의 힘으로 사회를 바꾼 경험을 가진 한국과, 미국에서 온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일본에서는 시민이 지닌 투쟁의 감각이 다르다. 나는 한국에서 FTA를 저지한다면, 자신만이 아니라 일본 사회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일본은 ‘3.11’ 이후 우경화로 기우는 한편으로, 일종의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을 텐데 조금씩 데모나 집회가 눈에 띠기 시작했다. 거기서 중요한 것은 여러 운동과 연대하는 것이다. 학비 문제, 여성 차별 문제, 노동자나 학생의 권리, 원자력 발전의 문제, 분단 문제, 군대 문제, 등등. 어떤 부분 하나만을 뒤쫓는다면, 숨겨진 부분이 보이지 않게 되고 만다. FTA로 한국사회가 떠들썩한 지금, 원전은 가동되고 있고, 한국 정부는 다른 나라로 원전의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분단을 이유로 만들어진 군대 조직, 의무 경찰은 ‘시민 대 시민’의 구도를 만들어내고 있다. 군대는 여성을 비하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것이다. 여러 문제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 가지만을 문제로 삼는 것은 위험하다. FTA 문제는 가장 먼저 소수자를 향할 것이다.

한국에 와서 많은 사람과 만났다. 그리고 많은 용기와 동료를 얻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한국에 있는 게 좋고, 일본에서보다 잘 통하는 동료도 있다. 한국에서는 고독하지 않다. 하지만 일본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괴로움으로부터 도망치는 게 아닌가라는 기분이 든다. 현실에서는 일본국적 소지자라는, 어떻게도 도망갈 수 없는 자신의 다수자성과 만난다. 재일조선인 친구와 만나면, 일본어로 그들과 대화한다. 그것의 폭력성. 그들의 사상 자체까지 ‘일본적’인 방식으로 만들어 내는 식민지주의는 내 안에서도 존재할 것이라는 공포. 그런데도 어떤 때는 여성이고, 학생이라는 자신의 소수자성과도 만난다. 한국에서라면 ‘외국인’이라는 시선 속에 있다.

따라서 자신의 존재를 언제나 확인해야 한다. 일본이나 한국도 소수자가 거기까지 내몰리지 않을 수 없다는 사회라는 것을 확인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아직 도망치기에는 이르다. 따라서 나는 일본이라는 이름의 어슴푸레하고 괴로운 장소로 돌아간다. 하지만 내년 3월까지, 나는 여기서 싸운다. 나 자신의 권리를 위해.

 今年3月に韓?に?たからもう10カ月が?過したことになる。早いものだ。5月のメ?デ?に?加したのが人生で初めてのデモだった。日本でもデモや集?がなかったわけではないが、報道もなく?生と社?との?絶がある中で知るのは容易ではない。メ?デ?では集?の後にミョンドン、ロッテ百貨店の前に座り?み、車道を占?した。衝?を受けた。民衆の力、そして?生の?にも言葉を失うとともに興奮を?えた。「ここで何かできるかもしれない。」そう感じたのだった。
日本でも、勉??などには?加していたが、どこに行っても?生の姿はほとんどなかったし、年配の方が質問時間の度に長?と自己主張をすることにも飽きあきしていた。いつも孤?を感じていた。社?問題や自分が感じたことを話せば「空?を?まない」などという言葉と共に社?に適合できない人?やマイノリティは排除されていく。むしろ存在しないものとして扱われていく。自己責任の名の下で?を出すことすら許されない、痛みを感じることすら許されない、そんな生きづらい社?が日本である。
 その私に、韓?の?生や若年層との出?いは新鮮だった。トゥリバンでのスクウォット。?なる地域と若者、ア?ティストとの連?としてだけではなく、運動のあり方を考えさせられた。トゥリバンが人を集めた。若者の居場所になったし、運動の?しさを感じた。むしろ運動を運動としてではなく、人との?がりを感じることが出?た。
 そして、聖公?大?の노숙모임との出?いが私を?えた。仲間たちは?校の中でテントを張って生活している。本?に?生が貧困?態であることもあるが、しかし、ただそれだけでなく、道行く人?に、その貧困問題は道行くあなたたちの問題でもあると?付かせたいと仲間たちは語っていた。?費を下げても、寮が出?ても、若者の貧困問題を解決できない。社?全?の問題なのだ。若い世代が貧困問題を抱えていること自?が認識されていない社?で、仲間たちは集い、それぞれの?みを共有する。生きづらい社?で、貧困ではあるが孤?ではない?態を作るのは重要なことである。ひとりではないという感?は人を人でいさせてくれる。人間が人間で無くなる前に、連?すること。私に仲間ができたのだった。
集?やデモに?加すれば、多くの場合、なぜ外?人のあなたがここにいるのかとい質問を受ける。多くの人にとっては不思議な事だろう。しかし私にとっては、?然のことである。韓?の現代社?と日本はとても深く?がっている。在日朝鮮人の存在や分?の現?から考えても、ある意味で日本の植民地主義や帝?主義は現在も進行していると感じるし、「分?」という社??況をつくりだしたのには多くの要因があったにしろ日本の植民地支配の結果でもある。多くの責任逃避としてみられるのが、日本人としてではなく「人として付き合う」。ある意味では必要な感情であってもどうしてもそこから?けられない構造があることは見つめなければならないし、「人として付き合う」という意見は?者の意見で暴力的である。私が日本?籍を所持しているということは、今の日本社?に責任があるということである。つまり、それを認識せずに日本の??責任に?答したとしても空?なものになってしまう。そうしない?にはやはり日本?籍保持者で、ある程度の?利を保障されているという前提に立ち、その立場を保持しているからこそ現代の日本社?にまで?承されてしまっている植民地主義や帝?主義と向き合わなければならない。そして私自身が日本社?で、ある意味ではマジョリティ、ある意味ではマイノリティという事を日?確認していく必要があるのだ。自分が差別していることも、自分が差別されていることも?付かせてもらえないからこそ、「痛み」に?する想像力を持つべきなのだ。それは、誰かの「痛み」であり自分自身の「痛み」である。そうすることではじめて日本の??責任に?答することの手掛かりになり、日本という?の、私自身の解放にもつながるのではないか。誰か一人にとって人?が守られていないという事?は、私の人?も守られていない社?である。誰かにとっての生きづらさは、私の生きづらさと?連している。だから、韓?社?で生きづらさを感じている人がいればそれは私自身の問題で、人間の?利の問題なのだ。
FTAの集?になぜ外?人の私が?加しているのか。それは自分自身の問題として捉えているからだ。FTAが韓?で批准されれば日本社?に?える影響は大きい。特にTPPに?して言えば、FTAの?行採決を日本の??界は大いに?迎したという。??は互いに、?約の締結を急いだし、韓?が批准したことで日本も急いでTPPに?加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雰??が生じたという。日本のTPP?加は私自身にとっても大きな影響がある。韓?のFTAを阻止できれば日本の市民に?える影響も大きい。?純には言えないが、80年代の民主??の結果、自分たちの力で社?を?えた??をもっている韓?と、アメリカからやってきた「民主主義」を信じている日本では、市民が持っている??の感?も異なる。私はこの韓?でFTAを阻止することが自分自身だけでなく、日本の社?を?えることができると信じている。日本は「3.11」以後、右傾化が進む一方で、ある種ム?ブメントとも呼ぶことができるが、デモや集?は少しずつ目に見え始めた。そこで重要なのが、多くの運動と連?することだと思う。?費の問題や女性差別問題、??者や?生の?利、原?の問題、分?の問題、軍隊の問題、etc…ある部分一つだけを追いかけていると、?されていた部分がもっと見えなくなってしまう。FTAが韓?社?をにぎわせている今、原?は動いているし、韓?政府は他の?に原?の建設を推進している。分?を理由にした軍隊組織、義務警察は市民?市民の?をつくっている。軍隊は女性を卑下する要因にもなっているだろう。多くの問題が?がりあっているなかで一つだけを問題とするのは危?である。FTAの問題はマイノリティに一番初めに影響をもたらすだろう。
韓?に?て、多くの人?と出?った。そして多くの勇?と仲間を得た。正直、私は韓?にいることが?だし、日本よりも通じ合える仲間がいる。韓?では孤?ではない。しかし、それは日本社?の生きづらさから逃げているような?がしてならないのだ。現?に出?うのは日本?籍所持者というどうしても逃げられない自身のマジョリティ性。在日朝鮮人の友人と出?えば、日本語で彼らと?話をする。そのことの暴力性。彼らの思想そのものまで「日本的」なものに仕立て上げている植民地主義は私の中にも存在しているという恐怖。それでもある時には女性であり、?生であるという自分のマイノリティ性にも出?う。韓?では「外?人」という視線の中にいる。だからこそ、自分の存在を常に確認しなければならない。日本も韓?もマイノリティがそこまで追い詰められなければならない社?であることは確認しておかなければならない。まだ逃げるのは早い、だからわたしは日本という名の薄暗く、苦しい場所に?るのだ。それでも?年の3月まで、私はここで?う。私自身の?利の?に。

여이루 님이 2011-12-06 10:55:57에 고쳤습니다.

목록보기글쓰기← 94호 커버스토리 | (94호) 편집자의 말 – 어떻게 해… →

응답 1개

  1. 말하길

    아픔에 대한 상상력을 가져야한다.
    아픔이 있는지조차 잊을때가 많지만 그 상상력은 정말 꼭 필요한것같습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