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지가 쓰는 편지

존재에는 목적이 있단다

- 윤석원(전 전교조교사)

홍아야. 혼돈에는 목적이 없지만 질서에는 반드시 어떤 목적이 있단다. 인간이 우주의 질서를 따라 살려는 까닭은 진선미를 우리 안에 가득 채워서 할 수만 있다면 더 높은 수준에서 진선미의 가치를 누리려는 목적, 진화와 발달과 성숙으로 우리의 경험 가능성을 실현하고 확대하려는 목적, 바람직한 인간성을 실현하여 더 잘 살려는 목적 때문이란다. 우리는 우리의 가능성과 의식과 자유가 결코 퇴화나 퇴보나 퇴행에 사용되지 않도록 사람으로 태어난 몫(긍정적인 인간성이나 긍정적인 경험 가능성 실현)을 다해야지. 우주의 질서에 따른 진화 과정에서 진선미를 실현하려는 신의 경험이 축적된 바람직한 인간성은 우리가 아는 한 우주의 진화의 가장 큰 축적이며, 우주의 신격화의 표징이라고 나는 믿는단다.

그러나 인간이 환경을 보존하여 지속 가능한 문명을 열 수 있는데도 하나뿐인 삶의 터전인 지구를 다시는 못 쓸 것으로 만든다면 인간이 스스로 책임을 지게 되지. 인간이 서로 나누면 다 같이 행복해질 수 있는데도 욕심 때문에 상대가 가진 것을 빼앗으려고 서로를 못살게 하다가 핵전쟁이라도 일어난다면 우주 안에서 우리의 책임을 떠넘길 만큼 우리보다 더 많은 가능성과 의식과 자유를 가지고 우리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그 어떤 존재도 없으므로 그 책임은 결국 인간이 사라지는 것으로 지게 돼. 주어진 자유 즉 가능성만큼 인간에게 책임도 이미 주어져 있으니까.

자유 그 자체가 만물과 인간의 존재 조건이므로 자유를 준 신은 그런 일이 벌어져도 자신이 만든 만물의 존재의 법칙과 우주의 운행의 원리들을 깨고 인간사에 물리적으로 개입할 수는 없어. 그러면 우주가 와해되어 혼돈으로 돌아가는 더 큰 재앙이 생기니까. 진선미로 설득하여 우주를 진화시킨 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진화를 이끌어온 그 방식대로 다만 진선미에 대한 감동으로 인간을 설득할 수 있을 뿐이야. 신의 뜻을 의식적으로 거부할 만큼 많은 자유를 오직 인간에게만 주신 신에게 인간은 그만큼 사랑받는 귀한 존재이나 그만큼 커다란 신의 모험이라서 자신을 못 살게 한 인간의 책임은 신이라도 대신할 수가 없단다.

마찬가지로 너를 기를 때 네 아빠와 엄마는 신이 그랬듯이 진선미로 설득했을 뿐 결코 강제하지 않았어. 그러므로 네 자유와 가능성 실현으로 행복해지거나 불행해지는 것도 당연히 네게 있단다. 인간이 받아 가진 가능성이 종류로는 조금씩 다르나 진화 단계에서 수준으로는 비슷하단다. 만약에 정말로 네가 받아가진 가능성이 특정 부분에서 특별히 적다면 남들과 똑같은 기회를 가졌음에도 네가 수많은 전생의 여행에서 그 쪽의 네 가능성을 실현하기에 게을렀던 네 책임이라고 하버지는 믿는단다.

하버지는 인간의 염원대로 인간성이 완성되어 만족할 때까지 그 영혼(경험 가능성, 운영체제, 핵심 정보)의 소원에 따라 새로운 에너지(몸)를 얻어 수많은 여행을 통해 자기완성의 기회를 갖도록 진화 되었다고 믿는단다. 그러니까 네가 이번 여행에서 아빠와 업마의 유전자가 조합된 육체를 선택한 것도 신이나 네 부모가 아니라 바로 너일지도 몰라. 물론 네게 영혼이 있었다면 네 부와 모 그리고 너와 삼자 간에 전생에 얽힌 인연을 따랐을 테지만, 자유가 있기 때문에 그 인연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란다. 만약에 네 몸으로 네 가능성을 넘치게 실현한다면 다음 기회에는 이승에서 실현한 가능성이 포함된 운영체제(경험 가능성)를 가진 몸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단다. 그러나 다음 기회의 가능성이지 현실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야. 쓰지 않는 것은 무의식에 가라앉다가 거의 검색할 수 없을 정도로 잊혀져서 운영체제 즉 경험 가능성이 퇴화될 수도 있어.

하버지는 영혼이 육체를 선택하는 것은 마치 새 컴퓨터를 사서 운영체제를 깔아야 여러 가지 작업이 가능해지는 것과 같이 모든 생물은 영혼이라는 운영체제가 깔려야 생명을 얻는다고 믿는단다. 생물학자들은 그 운영체제를 바로 유전자라고 보지만 하버지는 유전자는 육체의 설계도이고 이 설계도를 발현시키는 운영체제라는 경험 가능성이 따로 있으며 그것은 생물체의 생명이라고 믿는단다. 그리고 이 운영체제(생명)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경험의 축적으로 수정되면서 계속 진화, 발달, 성숙해가는 것으로 본단다.

세 살인 너는 말은 아주 잘하는데 아직 노래할 때는 시를 낭송하듯이 가락의 높낮이가 없이 불러. 아마 음감을 식별하고 표현하는 경험이 더 축적되어야 음악 프로그램이 보다 정교해질 건지 아니면 아직 발현되지 않은 건지 잘 모르겠다. 아마 노래를 더 많이 듣고 부르다 보면 나아지겠지. 그래도 못한다면 그것도 이승과 저승에서 음악 프로그램을 수정해나가는 데에 게을렀던 네 책임일거야. 물론 네가 잘하는 것을 더 잘하기 위해 경험을 축적해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만.

아무튼 하버지는 불교식으로 말하면 성불할 때까지 윤회를 거듭하듯이 자신의 경험가능성이 다 실현되어 만족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경험을 계속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결심할 때까지 계속하여 경험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단다. 진선미에 대한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여 만족하면 새로운 여행에 대한 발원이 사라지므로 신에게 돌아가서 신의 만족으로 수렴되는 거라 믿지. 그런 상태가 천사나 신선이나 보살 어느 쪽에 가까울지는 내가 알 수 없지만.

이런 말을 하는 하버지는 육체와 영혼을 별개로 여기는 이원론자는 결코 아니란다. 컴퓨터의 운영체제도 하드디스크에 담아야 존재가 가능하듯이 에너지(또는 질량)가 없이 정보만으로 이루어진 영혼은 존재할 수가 없단다. 육체의 죽음 이후에는 육체에 기록된 모든 생리와 기억을 다 버리고 다만 그 때까지 성취된 경험 가능성이라는 운영체제만이 생전에 충전된 에너지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어. 그 영혼(운영체제 또는 경험 가능성)이 다른 몸을 선택하면 그 몸의 에너지에 의지해 이제까지 축적된 경험의 가능성을 실현하면서 새로운 경험으로 가능성을 확대하기 위하여 계속 진화하고 발전하고 성장하는 거라 믿어.

이러한 나의 신념을 반박하기 위해 만약 복제 동물이나 꺾꽂이 식물은 생명 즉 영혼이 같으냐 다르냐고 묻는다면 하버지는 물론 처음에는 같은 경험의 가능성을 지녔으나 서로 다른 개체이므로 환경이 달라서 다른 경험을 할 것이기 때문에 결국 달라질 거라고 대답한단다. 컴퓨터는 같은 운영체제(작동원리 – 경험 가능성)라도 제품의 특성과 용량에 따라 조금씩 운영체제(작동원리)가 다르게 구현되지만 똑같은 제품이라면 똑같이 운영된다. 그렇다는 것은 컴퓨터의 운영체제는 얼마든지 복제(복사)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생물의 운영체제는 서로 다른 경험에 따라 계속 수정되기 때문에 한 종 안에서는 공통점이 더 많지만 개체마다 조금씩 달라져서 나중에는 다른 종으로 갈라지기도 하지. 그리고 다른 만큼 경험 가능성과 의식과 자유가 확장되거나 축소된 것이란다.

그러나 홍아야, 여기서 신이니, 영혼이니, 윤회니 이런 얘기는 사실이라기보다는 하버지의 믿음이고 이를 네게 강요하는 것은 아니란다. 다만 너는 영혼을 육체와 정신의 통합 운영체제(경험의 가능성)인 생명의 근원 정도로 생각하면 될 거야. 하버지는 인간의 영혼(-운영체제)은 육체의 죽음 너머에서 새로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진화되어 있다는 믿음으로 사셨구나하는 정도만 알고 다음 얘기로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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