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원전사태 이후 일본>흙과 농민

- 이케가미 요시히코

흙과 농민1

이케가미 요시히코

번역: 윤여일

사고가 발생한지 100일이 넘게 지나려 하고 있다. 민중의 훌륭한 활동에 힘입어 후쿠시마현 및 도쿄를 포함한 관동권의 방사능 오염상황이 조금씩이나마 밝혀지고 있다. 물론 개개인의 생활권 구석구석까지 방사선량을 계측해야 하기에 이 운동은 여전히 불충분하다. 그러나 방사능 측정기를 갖고 있는 개인은 지금부터 비약적으로 늘어날 것임이 분명하고, 불충분하기는 하지만 자치체도 마지못해 계측을 시작했다. 각지의 방사선량은 각 개인의 블로그, 홈페이지에서 점차 공개되어 우리가 나날이 행동할 때 지침이 되고 있다. 우리는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은 외부 피폭의 이야기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아니 보다 심각한 피폭에 우리는 노출되어 있다. 그건 말할 것도 없이 내부 피폭이다. 우리는 날마다 호흡해야 하기에 방사성 물질을 몸속으로 빨아들이고, 아울러 음식으로 섭취하고 있다. 음식의 방사능 오염 상황은 현재 매우 심각하다. 국가는 “잠정적”이라면서 국제 기준치의 10배에서 20배의 수치로 오염된 음식, 특히 야채를 유통시키고 있다. “잠정적”이라는 일시적 조치가 대체 언제까지인지는 전혀 불분명하다. 그리고 이런 기준치는 가혹하다. 가령 허용치에 가까운 수치의 야채를 1년 간 계속 먹으면, 그 밖의 외부 피폭이나 고기, 호흡 등을 통해 유입한 것을 포함해서 연간 50 미리 시베르트에 이르지만, 그 정도는 괜찮다고 설정된 값이다.

우리는 그런 야채를 계속 먹을 수는 없고, 결코 구매해서는 안 된다. 구입할 때 신중히 선택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때 판단의 기준은 각 야채에 방사능 값이 개별적으로 표기되지 않는 이상, 산지가 어디인지를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즉, 오염되었다고 추정되는 산지의 것이라면 피해야 한다. 농림수산성의 홈페이지에 가보면, 매일 야채 오염상황의 샘플링 값을 얻을 수 있지만, 그것은 하나의 기준에 불과하다. 야채를 구입하는 일은 실로 중요한 나날의 투쟁인 것이다.

국가는 이 안이한 기준치를 고칠 생각이 없을 뿐더러, 음식을 사지 않는 소비자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더구나 사지 않고 저항하는 우리의 운동에 맞서 산지 표시를 되도록 애매하게 만들려고 획책하고 있다. 또한 물로 씻겨 흘러들어간 방사성 물질은 도랑 등에 괴어 진흙으로 퇴적해간다. 그런 진흙은 농업용 비료로 쓰여왔는데, 이번 사고로 인해 고농도로 오염된 진흙은 지금껏처럼 야채 등의 비료로 가공되고 이윽고 전국으로 뿌려지고 있다. 전 국토가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갈 것이다.

국가는 왜 사지 않으려 하는 소비자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전략마저 취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농민의 존재 때문이다. 국가는 생산자인 농민의 이익을 위해, 농민을 구실로 삼아 도덕적인 존재로서 거동하고 있는 것이다. 농민은 일견 두텁게 보호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정말로 그런가. 사고의 초기에는 그나마 조금은 들려왔던 농민의 목소리가 지금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농민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사고 직후 원자력 발전소에서 마구 뿌린 방사성 물질은 칸토 전역으로 쏟아져, 농지는 한순간에 오염되었다. 대지는 더러워진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눈치 채지 못했다. 야채에서 옥소, 세슘 등의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어 비로소 알아차린 것이다. 농민은 오염된 토지를 멍하니 바라보고, 스스로 정성을 들여 재배한 야채를 출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렇게 살아가는 현실을 한탄했다. 농민에게 땅이란 가장 중요한 것이며, 살아가는 기초이며, 생존의 근거다. 그런데 토양이 오염되어서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농민의 한탄과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분노는 반복해서 뉴스로 보도되었다. 우리는 그 분함을 몇 번이라도 반복해서 공유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잊어선 안 될 것은 원자력 발전소의 작업원에 이어 농민들의 피폭량이 높다는 것이다. 그들은 흙에 가장 가까이서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고 방사성 물질이 흙에 퇴적하기 쉽기 때문에, 도시에서 생활하는 인간에 비해 수 십 배는 피폭당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가장 먼저 피난해야 할 자들은 그들이 아닌가.

공식적으로는 사고 이후, 직접적인 방사능 피해로 사망한 자는 아직까지 없다. 그러나 농민 가운데서 사망자가 이미 나왔다. 발표된 것만으로도 벌써 몇 사람이 자살했다. 토양이 오염되어 이제껏 기른 야채를 팔 수 없고, 앞으로도 나아질 전망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뭄이나 자연재해로 농민이 낭패를 당하고 죽어가는 장면을 이제껏 상상으로만 그려왔다. 그러나 이제는 눈앞에서 비극적 장면이 확실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체르노빌 사고의 25주년인 4월 26일, 도쿄의 마루노우치에 있는 도쿄전력 본사 앞에서 농민들이 항의데모를 했다. 그들은 스스로 재배한, 그러나 시장에 내놓을 수 없는 야채를 가져왔다. 무엇보다 우리는 그들이 소를 데리고 온 장면에서 감동했다. 하이테크 설비를 자랑하는 세계의 유수한 메가시티인 도쿄 한복판에 소가 출현한 것이다.

소는 농민에게 친구 이상의 존재다. 그것은 아이와 같고, 함께 살아가고, 함께 한탄하는 존재다. 무시로기(에도시대에 농민폭등 등에 쓰였음)와 함께 글로벌시티의 중심을 천천히 행진하는 그 모습은 교과서로만 알았던 중세 이래의 모습이 그대로 부활한 것 같았다. 소의 울음소리가 도쿄의 하늘을 울리면서, 우리는 수 백 년의 역사 속에 있었다. 이번 사고는 우리 역사의 고층을 흔들고 파냈던 것이다.

그러나 사태 초기에는 들려오던 농민의 목소리가 최근에는 끊겼다. 농산물을 팔아치우는 것의 시비를 둘러싼 논의의 그림자로, 농민의 모습은 다시 봉해지고 있다. 무엇이 실질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묻기가 어려워졌다. 하지만 지금 훌륭한 기세로 진행되고 있는 방사선량 계측 운동은 주로 도시에서 벌어지는 운동이다. 농촌의 방사선량을 측정하고, 토양의 오염 상황을 구석구석까지 조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보증은 재검토되지 않으면 안 된다. 토양의 교체도 필요할 것이다. 아울러 지역에 따라서는 피난도 계획해야 한다.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시작되려 하고 있다. 상황을 단지 입 다물고 받아들이고 있어서는 안 된다.

원자력 식민지 체제의 침묵은 과학적으로 타파되어야 한다. 계측 운동을 일컬어 야베 시로는 새로운 공중위생학, 기상학이라고 불렀다. 새로운 지층학이 개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소득의 가을을 맞이하기 전에.

  1. 원문은 http://www.jfissures.org/2011/08/29/soil-and-farm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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