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방사능 감추는 나라에서 살아남기

- 이지언(서울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월계동 주택가를 처음 찾은 것은 11월1일. 비정상적으로 높은 방사선이 나타난다는 제보를 듣고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국내로도 방사성물질 일부가 유입되긴 했다. 다만 유입된 방사성물질이 미량에 가까웠고 4월말부터는 감시망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일본 원전 사고로 유출된 방사능이 서울의 한복판에 남아있을 가능성은 낮았다.

이날 동행한 ‘방사능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려는 모임(차일드세이브)’의 한 회원이 방사선 계측기를 이용해 제보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방사능은 인간의 오감으로는 감지할 수 없기 때문에 오로지 방사선 계측기의 화면을 통해서 존재를 드러낸다. 시간당 최대 2.5마이크로시버트를 기록했다.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도로 바닥에 가까울수록 방사선량이 높게 나타났다는 점을 근거로 우리는 아스팔트를 오염원으로 지목했다. 그리고 인근 도로 위에서 계측한 방사선도 자연 수준으로 나타났다. 고농도의 방사성물질이 도로 포장재에 섞여 들어가 일부 구간에서 사용됐다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실제로 다음날 원자력안전기술원의 정밀 측정 결과 방사성물질이 도로 포장재에 혼입됐다는 사실이 재확인됐다. 11월3일, 월계동의 다른 도로에서도 추가로 높은 방사선이 조사됐다. 앞서 주택가보다 구간의 길이가 두 배 긴 이 도로는 고등학교와 전철역을 사이에 두고 상가와 주택이 밀집해 인구와 차량의 통행이 잦은 곳이다. 두 구간의 도로는 모두 2000년에 시공됐다. ‘월계동 방사능 아스팔트’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사건이 발생하고 40일이 흘렀다.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번 사건은 국내에서 사실상 처음 벌어진 방사능 오염이었다. 방사능 오염이란 주로 원전 주변 주민들이 감당해야 할 고통 정도로 간주됐다. 그리고 앞서 올해 초 포항과 경주 지역의 도로에서도 방사능 오염이 나타나 사실상 월계동 사건을 예고했지만, 이는 주목조차 받지 못 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에서 유입되는 공기와 음식물에 섞인 방사능을 둘러싼 불안이 크게 높아졌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을 의심쩍어하는 정도였다.

매우 복잡한 핵발전 기술의 통제나 방사능과 관련된 정보는 밀실의 관료와 전문가 소수에 의해 독점돼왔다. 정부가 국내에서 가장 노후한 고리1호기의 수명연장 평가보고서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고리 원전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핵심 자료인 이 보고서는 올해 5월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한수원이 교과부(당시 과학기술부)에 제출하고 무려 5년이나 지난 뒤였다. 게다가 5500여 쪽에 달하는 9권의 보고서에 대해 복사나 촬영은 물론 간단한 기록조차 금지한 채 열람이 허용됐다.

원자력 진흥을 국가정책의 전면으로 내세우는 한국 정부는 원전과 방사능의 위험성을 축소해왔다는 논란에 끊임없이 휩싸여왔다. 이런 상황은 월계동 방사능 아스팔트의 경우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전과 같지도 않았다. 시민과 환경단체가 문제를 먼저 알렸고, 무엇보다 오염원이 서울의 주택가 도로였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교과부에서 분리돼 원자력 안전규제를 책임지는 독립기구로 신설된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출범한지 일주일만에 방사능 도로 문제와 맞닥뜨리게 됐다. 그래서 방사능 아스팔트의 처리나 건강영향을 평가하는 대목은 원자력 안전 당국에 대한 신뢰성을 가늠하는 일종의 지표가 됐다. 결론부터 말하면,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방사능 방호대책에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을 뿐더러 책임을 회피하기에 바빴다.

 

월계동 아스팔트에는 세슘137이라는 방사성물질이 고농도로 섞여 들어갔다고 규명됐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인근 주민들의 방사선 피폭량은 기준치 이하라며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 근거는 “지역 주민이 받을 수 있는 연간 방사선량은 0.51-0.69밀리시버트(mSv)로, 원자력안전법에서 정한 일반인 연간 선량한도인 1밀리시버트 미만”이라는 것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이런 결론에 도달하기까지는 몇 가지 매우 의심스런 근거가 적용됐다. 주민들의 방사선 노출되는 시간은 ‘매일 1시간’이란 임의적 기준으로 설정됐고, 방사능 먼지가 아스팔트에서 떨어져 공기로 날아다니다가 인체에 흡입되는 ‘내부피폭’ 시나리오도 배제됐다.

이번 사건을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해프닝으로 치부하려는 원자력안전위원회와 달리, 시민들의 자발적 방사능 감시 활동은 더 활발해졌다. 일본에서와 같이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한국에서도 시민들이 고가의 방사선 계측기를 구입해 일상적인 감시에 나선 것은 정부를 향한 불신이 작용했다. 월계동 사건에 대한 원자력 안전 당국의 대응은 이런 불신감을 더욱 키웠다.

도로 포장재뿐 아니라 대학병원과 초등학교 운동장에서도 평균선량을 크게 웃도는 방사선이 계측됐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올해 말까지 도로포장과 관련된 정유, 철강, 아스콘 업체에 대해 실태조사를 벌이겠다지만, 방사능 오염이 도로를 넘어 이미 훨씬 더 광범위하게 존재해 왔다는 의미다. 생활 주변에서의 방사능 오염이 전국적으로 확인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이미 ‘방사능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지 모른다.

 

방사능 시대의 가장 처절한 교훈 중 하나는 정부가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사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주민 뒤에 숨어있는 동안, 주민과 지자체는 생소한 방사능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노원구청은 방사능 아스팔트를 신속하게 걷어냈고, 서울시는 주민에 대한 건강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생활주변에서 방사선 이상준위가 발견되는 경우 국민의 불안을 조기에 해소하기 위하여’ 생활방사선기술지원센터를 신설한다지만, 월계동 사례처럼 고농도 방사능에 대해서도 “안전하다”하는 마당에 시민들이 얼마나 이를 신뢰할지 의문이다.

무엇보다도 정부는 방사성물질의 이동과 관리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는 방사능의 위험을 제대로 소통하기 위한 우선 조건이다.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 방사성물질이 있는지 그리고 그 중 방사능의 유출이 발생했는지에 대해 누구나 알 권리가 있다. 물론 정부는 이런 기본적인 정보조차 공개하기를 꺼릴지도 모른다. 방사능의 위험성에 더 많은 사람들이 눈을 뜰수록 원자력 기술에 대한 시민의 토론과 통제는 더 활발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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