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두리반 안종려 사장, 나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 박정수(수유너머R)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 두리반 칼국수집을 찾아갔다. 시원한 해물육수에 직접 뽑은 칼국수 면발이 너무 맛있어 흡입하듯 한 그릇을 비웠다. 중독성 강한 국물맛이 아쉬워 마지막 한 모금까지 마시려는데 옆 테이블에서 늦은 점심을 드시던 안종려 사장님이 김치전골 한 접시를 말없이 갖다 주신다. 너무 얇아 투명한 만두피 안에 부추가 듬뿍 섞인 만두 속이 보기에도 먹음직하다. 칼칼한 국물과 함께 한입 베어 무니 부추 속 두부와 고기에서 우러나온 육즙이 입 안 가득 퍼진다. “너무 재료를 아끼시지 않는 거 아녜요? 식재료 값이 많이 올랐을 텐데” 6,000원짜리 두리반 칼국수의 맛과 양에 감동하면서도 은근히 걱정스러워 여쭸다.

1년 6개월만에 고기값이 두 배로 올랐어요. 다른 식재료 값도 마찬가지고. 인건비도 올랐고 월세도 올랐죠. 할 수 없이 두리반 원조 칼국수를 제외한 다른 칼국수 메뉴는 1,000원씩 올렸어요.

육수는 뭘로 내느냐, 만두 속은 어떻게 만드냐, 이렇게 얇은 피로 만두를 어떻게 빚냐? 따위의 변죽거리로 시작된 안종려 사장님과의 대화는 뜻하지 않게 투쟁의 속살을 훔쳐다본 소중한 인터뷰로 진전됐다. “531일 동안의 투쟁 끝에 다시 얻은 칼국수집인데, 어떠세요?”

닷새 동안 동안 잔치하고 본격적으로 영업한지 일주일 됐어요. 그런데, 일반 손님들을 편하게 대할 수가 없어요. 오전에는 일반손님들이 주로 오는데 그때마다 저는 구석에 숨게 되요.

맙소사, 음식 장사 하는 사람이 손님이 무섭다니, “아니, 왜요?”

두리반에 대해 꼬치꼬치 물어 볼 것만 같고, ‘그렇게 떼쓰더니 결국 가게 새로 열었네’ 라고 말할 것만 같고, 이해 못할 사람들에게 그 많은 사연과 아픔을 어떻게 얘기하나 겁도 나고. 며칠 전에는 심히 양아치스런 사람들이 와서 “뚝닥뚝닥 하더니 가게 하나 차렸네” 하고는 그냥 나갔어요. 예전처럼 편안하게 손님 맞기에는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것 같아요.

승리의 기쁨만 생각했던 나로서는 철거싸움의 상처가 아직 가시지 않았다는 말에 조금 의아했다.

일반손님들을 보니까 또다시 2009년 12월 철거당하던 때가 떠올라요. 어제까지 지속되던 일상이 무너져버렸다는 거, 오던 손님이 안 오고 항상 보던 건물들이 사라지고 하루 아침에 길거리로 나 앉게 된 상황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6일 동안 문 잠그고 웅크리고 있었어요. 사람들 보는 게 너무 겁나더라고요. 이상하지만, 나 자신이 너무 창피한 거예요.

억울한 건 알겠는데, 창피하다니?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 보잘 것 없구나. 이렇게 하찮은 대접을 받아도 되는 존재구나. 아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그 일상을 뭉개버려도 아무렇지 않은 그런 먼지 같은 존재구나. 그게 너무 창피하고 분하고,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화나고 그렇더라고요. 그렇게 일상이 무너진 자리에 사람들이 찾아오고 다시 힘을 얻고 용기를 내고,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일깨우며 싸워온 나날이 500일이 넘었죠. 그러다 다시 그 일상을 되찾게 되니까 새삼 두렵고 분한 거 있죠. 마음속에 분노가 아직 가시지 않고 있다가 다시 움트는 거 같아요.

이겼으니 됐다는 생각은 얼마나 무심한 객관적 관점이었나. “분노라면?”

자존감이 짓밟혀 버린 것에 대한 분노, 하찮게 취급해도 된다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대한 분노 같은 거죠. 그런데 이제 그 분노를 쏟아낼 ‘적’이 사라진 거예요. 타깃을 잃은 분노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전철연’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이기든 지든 싸움이 끝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마음 속의 울분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몰라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쏟아낸다고. 그렇게 ‘자멸’해 간다고.

그제서야 손님들에 대한 두려움의 정체를 조금 이해할 듯했다. “일반 손님들은 많이 오나요?”

오전에는 주로 일반손님들이 오고 오후부터 두리반 싸움을 아는 사람들, ‘우리편’ 사람들이 와요. 저는 오전에는 구석에 있다가 오후부터 손님 맞이 해요.

“장사하는 사람이 그러면 어떻게요? 음식이 맛있으니까 일반분들도 많이 오실 거예요”

두리반 싸울 때 오신 홈리스분이 그러시더군요. ‘앞으로 연대동지들은 오지 말아야 한다’고. 그래야 예전처럼 정상적인 영업을 할 수 있게 된다고. 그 얘기에 다른 연대동지는 벌컥 화를 냈어요. 두리반은 보통 가게와는 다르다. 진보와 예술의 아지트같은 칼국수집이 되어야 한다고.

얼핏 생각해도 난해한 문제다. 칼국수에도 이념이 있을까?

보통 개업하면 며칠 동안 고객들을 위한 행사 같은 거 하잖아요. 공짜 음식도 대접하고, 할인행사도 하는데 저희는 ‘우리편’ 잔치만 일주일 했거든요. 문은 열었고 사람도 북적이는데, 일반손님은 안 받는다는 게 이상하긴 했을 거예요. 기분 나쁠 수도 있죠. 들어와 보니 ‘NO 국보법’ ‘FTA 반대’ 피켓도 있고 투쟁의 메시지도 여기저기 붙어 있으니 기분 나쁠 수 있다고 봐요. 거꾸로 생각해서 음식점 들어갔더니 이명박 찬양하고 촛불집회를 난동이라고 떠드는 사람들만 득시글거리면 아무리 맛있어도 꺼려지게 되잖아요. 일전에는 노인분들이 오셔서 ‘NO 국보법’ 피켓을 보고는 빨갱이들은 다 잡아 죽여야 한다며 화를 내고는 나가 버렸어요.

듣고 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다. “벽에 붙은 ‘좌파’ 메시지를 떼어야 하지 않을까요?”

너무 눈에 띄는 건 떼었어요. 바닥의 그림만 해도 일반 영업집이라면 그냥 ‘이색적이네’ 할 것도 ‘두리반’은 좌파들의 소굴이라는 이미지가 되죠.

“그래도 영업을 시작했으니 성공해야잖아요”

성공해야죠. 망하면 안 돼요. 제 자존심 문제예요. 건설사에게 짓밟힌 자존심을 되찾으려면 제 손으로 망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요. ‘다시 차려 줬더니 6개월도 못가서 망했네’ 라는 소리는 절대 듣고 싶지 않아요. 5년이든 10년이든 제 스스로 ‘이젠 됐다. 다른 걸 해보자’ 그런 생각으로 접는 날이 오더라도 그 전에 문 닫는 건 제 자존감이 용납치 않아요.

자존감, 그래,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왜 우리는 철거반대싸움을 보며 항상 ‘권리’와 ‘투쟁’, ‘승리’만 생각하고 ‘존재감’의 상실과 회복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래도, 두리반은 외형적으로 승리해서 이렇게 다시 영업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철거민과 영세상인들 마음은 얼마나 분하고 슬플까, 그 생각만 하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다들 두리반의 ‘승리’라고 하는데 그 승리의 의미는 뭘까요?”

마지막 협상할 때 영업손실과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지 말지 잠깐 고민했어요. 그때 유채림씨(남편)가 강건하게 ‘가게’ 외의 보상은 요구하지 말자고 했어요. 애초에 우리가 요구한 것도 ‘돈’이 아니라 ‘가게’였으니 가게 말고는 다른 어떤 것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시행사가 ‘얼마면 돼?’ 라고 할 때 우린 두리반 같은 ‘가게를 달라’고 했고, ‘글쎄 그게 얼마냐고?’ 라고 할 때 ‘그건 당신네들이 알아보라’고 했죠. 홍대 인근 가게자리 중에서 과거 동교동 두리반과 유사한 등급을 요구한 것도 그런 이유예요.

산신령과 도끼 이야기 같네요.

시행사가 ‘가게 보상 외에 또 얼마를 원하냐’고 물었을 때 우리는 또 ‘가게’면 된다고 했어요. 그러자 시행사가 깜짝 놀라면서 못 믿겠다는 듯 세 번씩이나 거듭 ‘정말 그 이상 원하는 게 없냐’고 물어 봤어요. 우리는 두리반 가게를 원한다는 원칙을 끝까지 놓지 않았어요. 그래서 ‘대책위’ 사람들도 당당하게 협상을 마무리할 수 있었죠. 안 그러면 ‘대책위’가 돈 받아주는 단체가 되잖아요.

또 다른 두리반을 위하여, 어떤 싸움을 하고 있나요?

예전 두리반과 같은 두리반에 대한 요구가 제게는 나쁘게 작용하기도 해요. 지금(서교동) 두리반 인테리어 공사할 때 인테리어 도와주는 친구들한테 제가 막 못되게 굴었어요. 주방 식구들에게 짜증도 많이 내고. 예전 두리반과 똑같은 두리반을 만들려고 집착했거든요. 그때의 테이블, 그때의 천장, 그때의 인테리어…. 만약 자의로 이전했다면 그러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하루아침에 두리반을 뺏겼잖아요. ‘잃어버린’ 걸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동교동 두리반과 똑같은 두리반에 집착한 거죠. 아직 분노가 가시지 않은 탓이에요. 상담이라도 받아야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어요.

안종려 사장님은 그렇게 자기 안의 분노와 싸우고 있었다. 그 싸움은 과거의 두리반과 다른 두리반의 탄생과 함께 또 다른 승리를 낳을 것이다. 그 승리의 칼국수 맛을 보러 틈틈이 두리반을 찾아갈 것 같다.

응답 4개

  1. 놈리말하길

    안종려 언니 짱 멋져요!!!!

  2. 말하길

    잘 읽었습니다. 한번 식사하러 가야겠어요

  3. […] [동시대반시대] 두리반 안종려 사장, 나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

  4. 밥톨말하길

    너무너무 멋있는 우리 사장님 화이팅! 모든 사람이 존엄성을 되찾는 그 날까지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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