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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장미없는 꽃집> – 부모,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예시답안

- AA

사람은 모두 부모에게서 태어나고 어른이 되면 대부분 자신이 누군가의 부모가 되는 길을 걷는다. 즉 사람에게 ‘부모’란 누구나 일단은 지니고 태어나는 유전자 같은 것이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모의 존재가 사라지거나, 변형되어간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생물학적인 부모가 없으면 사람은 태어나지 않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아이를 낳으면 부모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오늘 소개할 드라마는 아이를 통해 ‘부모’가 되고 비로소 ‘사람’이 되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아이가 부모를 통해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먼저 소개할 드라마는 2008년 후지 TV에서 방영한 <장미 없는 꽃집> 이다.

일본의 유명작가 노지마 신지가 각본을 쓰고 일본의 국민가수 스맙의 멤버 카토리 싱고가 주연을 맡은 월요 드라마라 방영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주인공 에이지와 시즈쿠 부녀의 꽃집에 미오라는 맹인 여성이 나타나며 시작되는 이야기인데 드라마를 끌어가는 등장인물들은 기본적으로 아버지와 딸, 즉 부녀지간이다. 주인공인 에이지와 시즈쿠를 비롯해, 맹인 여성 미오와 그녀의 아버지, 또 시즈쿠의 외할아버지와 시즈쿠의 죽은 엄마. 이렇게 세 부녀가 맞물리며 극이 진행된다. 주인공 에이지는 시즈쿠의 엄마 루리가 시즈쿠를 낳다 죽은 뒤 혼자 시즈쿠를 키웠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시즈쿠는 에이지에게 있어 유일한 가족이자 둘도 없는 친구다. 이 부녀에게 접근한 미오는 눈이 보이지 않는 연기를 한 것 뿐, 진짜 맹인이 아니다. 그녀가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병원의 안자이 원장이 미오 아버지의 힘든 수술을 빌미로 그녀에게 어떤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척 하며 에이지에게 접근해 그의 모든 것을 빼앗고 파멸시키라고 한 안자이는 시즈쿠의 외할아버지, 즉 죽은 시즈쿠 모친의 친아버지다. 안자이는 딸이 죽은 후 발견한 일기장에서 딸이 시즈쿠를 임신한 당시 에이지에게 비참하게 버림받았음을 알게 되어 복수를 계획했다. 아버지의 목숨이 걸린 문제라 미오는 안자이가 준비한 복수극의 히로인이 되어 에이지 부녀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안자이에게서 듣던 것과 달리 막상 만나 본 에이지는 누군가를 버릴 만한 사람이 아닌 듯 하다. 좋은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바른 사람’의 표본처럼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다정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딸 시즈쿠를 소중하게 키우고 있다. 그래서 처음 의도와 달리 미오는 착한 꽃집 아저씨 에이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안자이의 복수가 진행되면서 미오와 주변 사람들은 에이지의 진실을 하나 둘씩 알게 된다. 에이지가 어릴 적 부모에게 학대를 받으며 자란 아이였다는 것과 사실 시즈쿠의 생부가 아니라는 비밀을 말이다.

다음 소개할 드라마 <마더>는 2010년 니혼TV에서 방송되었다.

앞서 소개했던 <그래도 살아간다>의 작가, 사카모토 유지의 작품이다. 방영 당시에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같은 해 일본 드라마 아카데미에서 작품, 각본, 연출, 여우주연, 신인상 등 6개 주요 부문의 수상을 하기도 했다. 이야기는 주인공 스즈하라 나오가 임시 교사직을 맡고 있던 학교에서 초등학교 2학년짜리 학생을 유괴하여 자신의 딸로 삼으면서 시작된다. <그래도 살아간다>와 마찬가지로 설정 자체는 말 그대로, 독하다. <장미 없는 꽃집>과 달리 이 드라마에서는 모녀지간의 인물들만 등장한다. 즉, 제목이 보여주듯 모든 등장인물들은 엄마였거나, 엄마이거나, 엄마가 될 수 있는 여성이다. 주인공 나오는 30대 중반의 독신 여성으로 가족과 거의 연을 끊은 채 홋카이도에서 10년째 혼자 살고 있었다. 원래 대학에서 철새를 연구했지만 대학 연구실이 없어지는 바람에 초등학교에서 임시 교사직을 맡아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런데 임시 담임을 맡은 반의 미치키 레나라고 하는 여자아이가 학대아동임을 알게 된다. 아무리 자신이 맡은 학생이고 학대를 받아도 일에 관여하지 않으려 할 만큼 나오는 남의 일에 대체로 무관심한 성격이라 레나의 일을 방관하려 한다. 하지만 어느 추운 날, 레나의 집에 찾아갔다가 쓰레기봉투 속에 담긴 채 노상에 버려진 레나를 발견한다. 나오는 레나를 유괴하기로 결심하고 레나에게 자신이 엄마가 될 테니 딸이 되겠냐고 묻는다. 갑작스러운 전개지만 그 이유는 나오의 개인사에서 비롯되었다. 나오 자신도 어렸을 적 친엄마에게 버림받았기 때문이다. 나오는 레나에게 츠구미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고 도주의 길에 오른다. 경찰을 피해, 사람들의 눈을 신경 쓰며 어린 츠구미를 데리고 홋카이도에서부터 도망치던 나오는 결국 도쿄의 가족과 10년 만에 함께 살게 되고 자신을 버린 친어머니와도 재회하게 된다.

두 드라마에서 부모가 되는 주인공 남녀는 친부모에게 버림받았거나 학대받은 유년시절을 겪은, 즉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상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라지 못한 사람들이다. 보통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은 변변한 부모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실제 그런 예도 많다. 그래서 대부분 편견 어린 시선을 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좋은 부모의 손에서 자란 아이들이 100%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나쁜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들도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는 당연한 ‘희망’ 같은 것을 두 드라마에서 찾을 수 있다. 부모와 가족에 대한 결핍을 겪은 이들이야말로 평범한 가족의 따뜻함을 갈망하면서 동시에 ‘되어서는 안 될 부모’에 대한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기에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도 있다는 희망 말이다.

<장미 없는 꽃집>에서, 친부모에게 학대받으며 자랐던 에이지는 말한다.

“부모가 아이를 때리는 것, 가정교육이라거나 사랑의 매라거나 그런 건 변명일 뿐이에요. 아이는 바보가 아닙니다. 부모가 무서우니까 듣는 척을 하는 거예요. 납득한 게 아니야. 정말 애정이 있다면 이야기하면 돼요. 이야기해서 그래도 모른다면 또 이야기하면 돼요. 그렇게 몇 번이나 이해해줄 때까지 얘기를 하면 돼요. 그런 끝없는 인내가 진정한 애정이에요.”

또 <마더>에서 어린 시절 친엄마에게 버림받은 나오는 이렇게 말한다.

“흔히들 부모자식간의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하잖아요. 반대라고 생각해요. 어린 아이들의 부모를 향한 사랑, 오름사랑이라고요. 아이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설령 죽임을 당한다고해도 버림받는다 해도 부모를 사랑해요. 그러니까 부모도 절대로 아이를 떼어놔선 안 되는 거예요.”

두 드라마는 또한 혈연관계가 없는, 생판 타인인 어른과 아이가 부모 자식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가족의 가장 근본적인 구분점인 핏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이 100%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친자식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학대하는 친부모가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뉴스가 끊임없이 나오는 현실이다. 가족이라는 유기적 구성체의 성격이 오로지 혈연관계에서만 오는 것일까. 당신이 아이였을 때 부모를 사랑한 이유는 단지 낳아준 사람이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매일 밥을 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보듬어 재워주던 몇 만 번의 손길이 쌓이고 쌓이며 나를 지켜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임을 느끼지 않았는가. 또 당신에게 아이가 있다면 어떠한가. 단지 당신이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인내하고 아낄 수 있을까. 대부분의 가정집 벽에 남아 있는 아이의 키를 잰 표식. 그것은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사랑한 흔적이며 동시에 아이를 통해 생명의 신비와 인생의 굴곡을 체험한 증거다. 처음 시작은 운명적이라 하더라도 그 과정은 단순한 혈연관계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일,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모를 일들을 가족은 하고, 안다. 매일매일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잠을 자는 그 오랜 시간 동안 애정을 가지고 서로를 보고 겪었기 때문이다. 피가 통하지 않은 아이라 할지라도 애정으로 하루하루를 쌓은 에이지가 얼굴을 가린 많은 아이들 속에서 시즈쿠를 찾아내고, 학대받던 레나를 모른 척 하려했던 나오가 츠구미의 새로 난 영구치에 기뻐하는 모습은 ‘진짜 부모’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두 드라마에서 가장 1차적인 가족 형태인 부모-자식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관계’가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공동체다. 피가 섞이지 않은 타인이 가족이 되고 그 가족이 탄생함에 따라 각기 섬처럼 떨어져 있던 다른 가족, 다른 개인이 새로운 가족을 매개로 공동체가 되는 모습을 담은 것이다. 이는 대가족이 천연기념물처럼 되어버린 현대 사회에서 하나의 개인, 하나의 가족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대가족 체제에서는 부모 하나가 없어도, 혹은 부모가 제구실을 못해도 어느 정도 커버해주는 다른 가족이 있었다. 하지만 시대와 산업의 흐름에 따라 핵가족 위주로 사회가 개편되어 각각의 가족은 섬처럼 떨어지게 되었고, 숫자가 적어진 만큼 구성원 하나의 부재가 엄청난 파탄을 몰고 오기도 한다. 가족 구성원의 부재, 혹은 구성원의 과오로 흔들리는 사람들 중 특히 아이들은 가장 큰 피해자다. 그래서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이들은 약육강식의 정글에 툭 떨어진 것처럼 피난처 하나 없이 비를 맞고, 추위에 떨게 된다. <장미 없는 꽃집>에서 동네 아는 할머니에게 가족이 되자고 제안하는 장면이나 <마더>에서 츠구미의 친엄마가 딸을 학대하기 시작하는 시점을 보여주며 이러한 문제를 풀어낸다.

부모와 자식 간의 유대는 기본이요 이를 넘어 가족 이외의 새로운 사람과도 끊임없이 유대관계를 맺는 것, 가족보다 더 큰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대가족 체제의 부재에 대응하는 하나의 해결책임을 제시한다. 앞서 <백야행>을 소개할 때에도 언급하였지만 시스템에서 오는 문제를 부모나 아이,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어서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다. 가족이 확장되어 공동체가 되고, 그렇게 구성된 공동체가 지역 사회에서 활성화되고, 또한 그 지역 사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가 그 책임을 다 해야 비로소 개인이, 그리고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두 드라마는 누군가의 부모가 되면서 비로소 남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자신 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며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게 되는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공동체에 대한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고 있다.

“시즈쿠가 없었다면 아빠의 인생은 의미가 없었어. 자신의 일 밖에 생각하지 못해. 나만 괜찮으면 돼. 나를 위해서는, 나를 위해서만은 노력했을 거야. 그런 인생은 의미없어. 그걸 알려준 게 시즈쿠야.” – <장미 없는 꽃집> 의 에이지

“너의 엄마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내 친엄마를 만날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해. 너의 엄마가 되었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엄마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단다.” – <마더>의 나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먼저 산업화했고 그래서 미국, 유럽 등지에서 먼저 나타난 산업, 자본 사회의 가족 문제를 우리보다 먼저 겪고 있다. 이혼률, 1인 가구, 비혼남녀, 고독사의 증가, 저출산과 고령화 등과 같은 현상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그 추세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드라마에는, 결국 모든 문제와 그 해결책이 단순한 ‘핏줄’에서 그치는 실정이다. 타인과의 융합이라고 해봐야 결국 가족과 가족의 부딪힘인 혼사가 전부다.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는 현대사회의 ‘가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것이 결코 이르지 않다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울리고 있는데 말이다. 소개한 두 편의 드라마가 정답은 아니지만 설득력 있는 예시답안 정도로 참고하여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덧붙여, 두 드라마 모두 주인공 ‘딸’로 나오는 아역들이 참 귀엽고 예쁘다. 깜찍한 아역 배우들의 연기가 드라마를 끝까지 보게 하는 원동력 중 하나라고 자신 있게 추천한다.

응답 1개

  1. 예희말하길

    정말 필요한 드라마군요. 맞아요. 아이는 바보가 아니죠. 살기 위해 순종하는 척 하는 것일뿐… 오름사랑이란 말도 신선합니다. 가족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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