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2011년, 끝낼 수 있을까

- 박정수(수유너머R)

2011년도 열흘밖에 남지 않았네요. 년도는 단지 숫자에 지나지 않는데도 한 시기가 ‘끝났다’고 말하곤 합니다. ‘끝났다’는 게 뭘까요? 삶은 지속될 뿐인데 인간은 시작과 끝으로 삶을 토막내곤 하죠. 연말이면 습관처럼 지난 날들을 회상합니다. 2011년 한 해를 돌아보면 ‘끝’이란 단어의 허망함을 느낀 일이 참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쥐 그래피티 사건이 대법원 유죄판결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함께 준비하고 실행한 동료들은 쥐 그래피티 활동을 아직 매듭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을 끝낸다는 것, 매듭짓는다는 것, 그래서 기억의 창고 안에 넣어두는 것, 그거,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매듭짓지 못할 때 앙금이 남고 상처가 남습니다. 끝내지 못했기에 새로운 시작도 어렵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85크레인 농성이 끝났습니다. 하지만 송경동 시인과 정진우 실장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마음에서도 농성은 끝난 걸까요? 현대차 성추행피해 노동자의 200일 노숙농성이 끝났습니다. 그 여성노동자는 복직되었고 가해자는 해고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 속에서도 모멸과 울분과 설움으로 점철된 그간의 싸움이 끝났을까요? ‘끝났다’는 말과 함께 그녀는 더욱 고독하게 2차 폭력과 내면의 상처에 맞서 싸워가야 하는 게 아닐까요?

두리반 점거농성이 끝났습니다. 531일 동안의 긴 싸움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고 많은 밴드들의 공연이 있었고 많은 청년들이 거기 살았습니다. 가게를 빼앗겼기에 가게를 돌려달라고 요구했고, 시행사는 “정말 그 이상의 보상은 원치 않느냐?”고 세 번 물은 후, 서교동에 두리반 가게자리를 마련해줬습니다. 빼앗긴 걸 돌라달라는 단순한 싸움이었기에 단순하게 협상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요구사항과 협상결과는 단순했지만 싸움의 중심에 있었던 안종려 사장님의 마음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마음 속에서 분노는 아직 가시지 않았고 ‘적’을 잃은 분노는 그녀 자신을 해치려 어슬렁거립니다. 이런 걸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라고 하나 본데 이건 의학의 문제가 아니라 상실된 자존감을 되찾는 싸움의 문제이고, 일상과 예외상태의 경계를 재정립하는 정치의 문제입니다. 협상을 향한 투쟁은 끝났지만 실존의 회복을 향한 안종려 사장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위클리수유너머>96호에는 두리반 칼국수처럼 깊이 우러난 그녀의 내면적 갈등과 끝나지 않은 싸움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재능노조의 시청앞 천막농성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2007년부터 전기도, 난방도 없는 텐트에서 다섯 번의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12명의 노조원들에게 ‘끝’이라는 단어만큼 설레고도 아픈 단어는 없습니다. 언제 이 기나긴 싸움이 끝날까요? 예외상태의 노숙농성을 1500일 동안 이어오면서 그들의 마음에는 어떤 괴물들이 생겨나 서로 싸우고 있을까요. 분노, 희망, 환멸? 그 어떤 단어로도 이름붙일 수 없는 그 울화의 괴물들이 실존에 상처를 내 왔을까요. 재능농성장에서는 12월 매주 수요일 ‘죽’을 나눠먹으면서 마음을 녹이고 있습니다. 위클리수유너머에서 죽처럼 뭉그러진 그들의 마음과 따뜻한 희망의 염원을 담았습니다.

<위클리수유너머> 100호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애초 100호까지만 내자고 시작한 일인데 막상 100호가 다가오니 ‘끝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18대 국회도 4개월 후면 끝납니다. 이 지옥같던 18대 국회를 우리는 정말 끝낼 수 있을까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복직싸움은 언제나 끝날까요? 우리는 구천을 떠도는 18명의 영혼에 대한 애도를 끝낼 수 있을까요? 무간지옥같은 이 죽음의 시대를 정말 끝낼 수 있을까요?

응답 1개

  1. […] [편집자의말] 2011년, 끝낼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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