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연대의 쾌락에 빠지다 – 우리는 죽지 않아, 다만 죽을 먹을 뿐

- 빨간거북 (서울서부비정규노동센터(준) 상임활동가)

풍경. 지난 11월 서부비정규노동센터(이하 서비센터) 운영위원회

지난 4월부터 매월 진행되고 있는 ‘연대하기 좋은 날’ 이라는 프로그램을 의논하는 시간.
“이번엔 뭘 하지?” 모두 잠시 침묵.
“재능지부가 요즘 집중 기간이잖아. 1월28일이 1500일이 되는 날이라 그때까지 집중한다고. 그러니 우리도 뭔가 거기에 호응할 수 있는 것 없을까?” 또 침묵.
“일단 날이 추우니까 따뜻한 뭔가가 필요해.”
“그냥 한번 필요한 것 챙겨주고 끝나는 거 말고 자주 갈 수 있게 하는 거면 좋겠다.”
“먹는 거 어때? 힘들고 추울 때는 뭐니뭐니 해도 밥심이지!”
“그거 괜찮은데, 준비가…흠…”
“조합원들 번거롭지 않고 우리가 준비하기도 간편한 것 없나?”
“죽, 어때? 보온병에 담아가면 따뜻하게 먹을 수 있고. 나누어 먹기도 쉽고.”
“회원들도 각자 부담 없이 준비 해 오기도 쉽지.”
“아무래도 집중 기간이니까 우리도 집중하자. 격주 간격으로 수요일 낮과 저녁. 어때?”
“그러자. 우리는 죽 (때리는) 연대하고, 재능교육은 죽 쑤라고 하고! 하하하. 웃겨. ㅋ”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회의에 참석한 모든 운영위원들의 찬성.1 이른바 ‘죽 연대’.

이렇게 1월까지 서비센터의 <연대하기 좋은 날>은 ‘재능 교육! 너희는 죽을 쑤고 있어라. 우리는 죽을 먹고 있으마’ 로 결정되었습니다. 사실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란 제목도 물망에 올랐지만 웹자보를 담당하는 회원의 특권으로 제목은 그이의 손에 맡겨져 완성되었죠.

자유연상기법. 먹는 것-노동-삶의 권리에 대한,
스스로 강해져서 홀로 살아남으라는 이들에게 복수하는 법, 연대의 쾌락에 빠지기

‘왜, 먹는 것으로 연대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러게요. 우리는 왜 ‘죽 연대’를 결정하며 그렇게 즐거웠을까요? 곰곰 생각하다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산다는 건 같이 밥을 나누어 먹고, 따시게 등 붙이고 사는 것일 뿐’이란 누군가의 말이 기억났거든요.

밥을 먹는다는 것, 노동을 한다는 것은 인간 존재의 물질성을 인정하는 것이란 말도 떠오르더군요. 그러니 인간이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 노동을 통해 존재를 유지한다는 것은 ‘노동자’로서의 삶, 즉 ‘노동자인 그이의 삶의 권리’, 당연히도 ‘노동권’=‘생존권’이자 ‘삶의 권리’가 되는 것. 이런 생각을 하다가 ‘학습지교사도 노동자’라는 당연한 사실이 획득되어야 한다는 현실이 아프게 와 닿았습니다. ‘노동자’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 차압과 해고, 구속과 성희롱, 4번의 여름과 4번의 겨울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할 수는 없다고,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그것은 부당하다고.

잠깐, 그런데 말이죠, 그것도 맞긴 맞는데…‘노동’과 ‘먹는 것’과 ‘삶의 권리’란 삼위일체는 자본주의 노동윤리 신화에 어울릴 법한 말 아닌가? 그러니까 ‘노동’이 먼저가 아니라… ‘먹는 것’이 먼저여야 하는 것 아닌가? ‘노동’이 먼저가 되어 버리면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노동의 신화를 이어갈 뿐 아닐까? 먼저 ‘먹을 권리’가 있으니 그것이 ‘삶의 권리’가 될 수 있고, 비로소 ‘노동은 권리가 아니라 쾌락’이 될 수 있지 아닐까? 그래야만 먼저 ‘노동자되기’를 획득하고 그에 따른 먹을 수 있는 자격과 등급을 매기는 수순을 밟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닐까? 그래야만 개인의 능력에 따른 경쟁을 신의 경지에 올려놓고 절대 돌아보지 않는 이들, 일중독을 통해 자신의 삶의 불안함을 해결하려는 이들을 흔들어 다른 선택지에 대한 고민을 가능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고…너무 멀리 와 버렸네요…

아무튼 이런 생각들의 바탕에는 일중독과 경쟁에 지친 우리의 삶에 하이킥을 날리고 싶은 바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삶의 문제는 오로지 개인의 경쟁력에 달려 있다는 말들에, 경쟁에서 밀려나면 삶의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어떤 이들의 잔인함에, 까라면 깔 것이지 뭔 말이 많냐는 호통에, 그렇지 않다고 손을 드는 것, 이의를 제기 하는 것 말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먹어야 힘이 난다고. 같이 먹고 살아야 한다고. 그래야 행복하다고. 그래야 더 힘이 난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나 봅니다. 아마도 우리는 ‘먹는 것을 나누는 것을 통한 연대’가 그 답이라고 자연스레 알았나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즐거웠나봅니다.

  1. 참고로 서비센터의 운영위원회는 관례적으로 만장일치제를 채택하고 있다. 한 사람이라도 반대의견이 있으면 그 안은 폐기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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