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김정일 사망 단상

- 이계삼

급식소에서 점심을 먹고 들어와 양치를 하러 나가려는 길에 김정일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난데없는 일이었다. 불과 사나흘 전에도 그가 어디 현장지도인가 나가서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본 것 같았는데, 황당했다. 교무실 텔레비전으로 KBS 뉴스 속보가 정신없이 떠들어 대고 있었다. 핵 위협으로 한반도를 화약고로 만들었고, 우리를 향해 수없이 도발했으며, 그러면서도 북한 주민들을 굶주림으로 몰아넣은 무능한 독재자로 그를 묘사하고 있었다. 아마도 저런 식으로 김정일의 인생을 정리해도 괜찮으리라는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교무실 동료들은 장성택, 김정은을 거명하며 왕가의 권력게임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먼 나라 이야기인 양, 어제 본 조선왕조 사극 이야기하듯.

김정일의 사망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짧은 순간이었지만, 뭔가 어질거리는 느낌이 지나갔다. 경망스런 상상이지만, 20세기를 관통한 전쟁과 학살의 시작을 알리는, 사라예보의 총성을 떠올렸던 것이다. 이제 시작인가, 하는 이 시대에 드리운 무거운 구름장을 느끼기도 했던 것이다. 솔직한 내 느낌이 그랬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북한 체제가 비교적 안정되어 있어 급작스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들 말하고 있다. 그리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나 그 또한 하나의 기대일지도 모를 일이다.

또하나 스쳐간 생각은, 이명박은 정말 억세게도 운이 좋구나, 하는 것이었다. 집권 5년차까지, 온갖 시궁창 같은 냄새로 진동하는 그의 권력은 이렇듯 적재적소에 터져준 돌발 상황으로 끝날 때까지 이렇게 덮히고 덮히며 지나가겠구나, 하는 안타까움이었다.

북한이라면 죽그릇을 들고 나래비 선 고아원의 코흘리개를 떠올리고,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든데 이북에 퍼주지 말고 그 돈으로 일자리나 만들어달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이제 남한 인민들에게 북한이란 문닫고 쫓아내버리면 싶은 ‘거지’인지도, 그저 너희는 너희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살면 딱 좋을 ‘남’인지도 모른다. 북한은, 그리고 그 인민들은 냉정하게 타자화된 존재가 아니라, 사실상 배제되고 추방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기억 바깥에서 존재하기를 바라는 이 북한이란 존재가 이제 김정일의 사망을 시작으로 우리 삶 속으로 밀고 들어오게 되는,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 열린 것은 아닐까.

북한은 70년 가까운 세월동안 미국과 유형 무형의 전쟁을 치러왔다. 북한은 더 이상 버텨낼 수 있을까. 그들과 ‘한민족 한핏줄’이라고 입버릇처럼 가르쳐 온 이 나라에서도 이 오래된 전쟁의 실상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북한의 절대 권력 또한 지혜롭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최악의 고립과 봉쇄를 이를테면 쿠바와 같은 방식으로 전환하지 못했고, 그럴 의지 또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격대형 병영국가를 넘어서려는 노력보다는 오직 ‘강성대국’, ‘피의 보복’ 따위 무망하기 짝이 없는 서슬퍼런 레토릭으로, 핵무기와 으름장으로, 대결하면서 인민들을 극한의 조건으로 밀어넣었고, 그들 자신 조금씩 막다른 곳으로 몰려오지 않았는가.

그나마 그 안정성을 지탱해주던 버팀목마저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거침없는 격류가 흘러들어올지도 모른다. 내가 김정일의 사망 소식을 들으며 느낀 가장 큰 생각은, 이 격류를 막아내는 일에도, 피해가는 일에서도 우리는 사실상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깊은 무력감이었다. 돌이켜보면 이 가련한 나라에서 살았던 우리는 지난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각자의 운명을 지켜줄 그 어떤 보호막도 갖지 못했다.

나는 열 아홉 살 무렵, 내 부모와 조부모 세대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할아버지는 식민지 시절 농토를 잃었고, 가족과 함께 일본에 돈벌러 가야 했고 공장 노동자 생활을 했다. 그리고 해방을 눈앞에 두고, 가족을 먼저 보낸 뒤 혼자 귀국하시다 현해탄에서 미군 포격으로 수중고혼이 되셨다. 그래서 우리는 할아버지 무덤이 없다. 졸지에 할머니를 도와 소년가장 노릇을 하게 된 아버지는 동생들을 거느리고, 서툰 조선말로 구두닦이부터 시작하여 기약없는 날품팔이로 젊은 시절을 지내야 했다. 먹고 살기 위해 우익 청년단원 노릇도 했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미군의 폭격을 견디다 못해 결국 고향 평양을 떠나 피난길에 나선 어머니는 가족을 잃고 고아로 연평도에서 자라났다. 연평도에 조기잡이가 성황을 이룰 때, 풀빵을 팔러 거기까지 온 아버지를 만나 이곳 밀양까지 따라온 우리 어머니의 뱃속에서 내가 태어났다. 우리는 역사와 얼마나 가까이 살아왔는가. 우리는 얼마나 오랜 시절동안 역사의 격랑 앞에 맨몸으로 마주서야 했는가.

김정일은 기차 안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의 부친 김일성이 1994년에 사망했을 때에도 사인은 심근경색이었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권력의 극점에까지 가 보았을 이 부자도 생물학적 유전의 영향력 안에서 죽음을 맞아야 했다. 박정희가 죽었을 때, 김수환 추기경은 ‘이제는 대통령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하느님 앞에 서게 된 박정희를 연민한다’고 했다 한다. 그 말씀을 하신 김수환 추기경 또한 추기경이 아닌 한 인간으로 하느님 앞에 섰을 것이다. 그리고 일생을 권력의 심장부에서 살면서, 무수한 권력적 촉각 속에서, 그 자신 무수한 목숨을 척살했을 것이며, 척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래서 많이 고독했을 것이며, 허무에 몸부림쳤을지도 모를 김정일도, 이제 온 민중의 숭배를 받는 신과 같은 절대권력자도, 혐오감 1위의 독재자도 아닌, 한 인간으로 하느님 앞에 서게 되었다. 이제 그는 그의 삶이 걸어온 길대로, 한 치의 오차 없는 인과(因果)의 법칙 속으로, 인간의 오해와 욕망이 틈입할 수 없는 자연의 질서 속으로 던져지게 되었다. 결국 그도 빈 손으로 세상을 떠났고, 하느님 앞에 하느님 앞에 한 인간으로 서게 되었다.

떠난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 다만 남은 자들의 세계, 우리 한반도, 으르렁거릴 극우의 이빨들, 계산기를 두드리다 수틀리면 ‘에잇’하는 맘으로 극우와 손을 맞잡을 자본가, 정치인들, 그리고 그들이 두는 수대로 장기판의 졸로 역사의 격랑 앞에 맨몸으로 마주서게 된 우리의 운명이, 북한 인민들이 가련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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