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꼼

SBS의 새 공개 코미디 <개그 투나잇> 코너 면면에 흐르는 도저한 99%의 정서

- 황진미

11월 5일 SBS의 <개그 투나잇>이 첫 전파를 탔다.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 폐지된 뒤 근1년 만에 출범한 공개코미디프로그램이다. 절대강자 <개그 콘서트>에 도전하는 <개그 투나잇>의 차별성은 시사와 코미디의 결합이다. 박준형·강성범이 진행하는 ‘한줄 뉴스’와 ‘투나잇 브리핑’은 직접 시사를 언급한다. ‘투나잇 브리핑’은 SNS 차단법이나 물대포 등 다소 센 주제를 말하기도 하고, ‘한줄 뉴스’에선 강도와 이를 응징해야 할 슈퍼맨과 배트맨이 ‘포항인맥’으로 얽히는 아찔한 촌극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개그 투나잇>의 진정한 풍자성은 시사에 대한 직접적 언급에 있지 않다. 코너 면면에 흐르는 도저한 ‘99%의 정서’가 더 본질적이다.
<더 레드>는 노골적이다. 농밀한 음악이 깔리는 가운데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한 여자가 있다”는 내레이션과 함께, 빨간 드레스를 입은 그녀(홍현희)가 등장한다. 그녀는 뇌쇄적인 눈빛과 도도한 목소리로 관객들에게 자신의 ‘치명적인 매력’을 우겨댄다. 이때 핸섬한 남자가 등장한다. 교수, 변호사, 의사, 외교관, CEO, 재벌2세 등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멘트가 끝나기 무섭게 그녀는 “잘난 척 하지 마, 어디서 유세야 유세가?”하며 남자를 힐난한다. 국비장학금을 받았다는 남자에게 “내가 낸 세금으로 너 공부시켰는데, 넌 나한테 뭘 해줬냐?”고 따지고, “학점이 4.3”이었다는 말에 “난 4.4였다, 학자금 대출이자율이. 10년째 이자만 내. 비정규직은 답이 없어”라 응수한다. 그녀는 엘리트남성을 존경하기는커녕 “거만, 허례허식, 욕망, 개나 줘버려”라며 일갈한다. 남자는 1%의 삶을 대변한다. 레저스포츠를 즐기고, 맛 집을 찾아 세계여행을 다닌다. 여자는 99%의 삶을 대변한다. 상급공무원 연봉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최저임금이 시급 4천3백20원임은 명확히 알고 있다.
<한사장>은 은근하다. 학교나 회사 등 지도편달이 행해지는 현장에 누군가 “한사장!”을 외치며 등장한다. 그(김민제)는 “10년 전에 빌려준 내 돈 7천9백70원을 갚으라”고 집요하게 요구한다. 그는 다른 이들과 덩달아 한사장의 지시를 따르기도 하고, 혼자서 7천9백70원에 대한 타협안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그의 말이 안 들리는 듯 행동한다. 그는 유령인가? 자기 말이 들리는지 알기위해 그는 다른 이들을 자극하며 한사장에게 다가오지만, 정작 한사장 앞에 이르면 한사장이 그를 공격한다. “불리할 때만 보이나?” “끝까지 소통 안 돼” “안 듣는 건지 못 듣는 건지”등의 멘트로 마무리되는 이 코너의 이름 ‘한사장’은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이의 이름이 아니다. 권력자의 이름이다. 많지도 않은 돈을 정당한 자기 몫으로 한사코 요구하는 존재는 이름이 없다. 그는 보이지 않고, 이름도 없으며, 셈해지지 않는 존재이다. 1500일이나 시청 앞에 텐트를 치고 외치는 재능노조, 1000일 가까이 싸우고 있는 쌍용차해고노동자들. 안 보이는 듯 행동하다가 권력의 코앞까지 다가오면 잘 보이는 듯 밟아버리는 공권력의 모습이 겹친다. 11월 19일 방영분에서 김민제는 콜트기타 노동자 지지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우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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