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의 뒷골목

생체실험, 인간에서 날생명으로

- Beilang(동아시아사상사연구자, 뉴욕이타카)

1. 들어가며

지난 번 칼럼에서 다룬 린칭이 힘의 과시를 위한 적나라한 “중세적” 폭력의 스펙터클이었다면 인간의 몸을 실험의 대상으로 삼은 생체실험은 지극히 정교한 “근대적” 폭력이다. 린칭이 특정 그룹의 사람들-사회의 다수자인 백인집단-이 소수자에게 극단적 물리적 고통을 가하고 생명을 앗아감으로써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확인하는 일차원적 폭력이라면, 생체실험은 과학자, 특히 실험의 성격상 의학 연구자라는 근대 전문가 집단이 ‘과학’이라는 근대적 지식체계 아래 인간의 몸을 대상으로 다양한 실험을 행하는 것으로 이전의 물리적 폭력과는 여러 가지 점에서 구분된다. 린칭이 국가권력 밖에서 행해진 공공연한 ‘사적’ 폭력인 것에 반해 생체실험은 정부와 사회의 여러 공식적 기관들-대학, 병원, 군대, 학교, 형무소, 고아원, 양로원 등이 직간접으로 관여하는 은밀하지만 공적이고 조직적 폭력이다.

‘생체실험’이라는 말은 우리에겐 무엇보다 먼저 일본의 731부대 그리고 ‘마루타’라는 음험한 이미지와 그리고 나치 독일의 잔혹한 행위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생체해부 같은 아주 잔인하고 극단적인 생체실험을 했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들이 이차대전의 패전국이었다는 사실에도 기인한다. 승전국 미국의 생체실험도 상당한 강도와 그리고 빈도로는 다른 모든 나라들을 압도할 정도로 행해져왔지만 승자가 써내려가는 역사 속에서 패자의 악마적 실체만 부각되고 승자의 악마성은 그 아래 감춰져 왔다. 그 승자의 지저분한 뒷골목을 한번 들여다보자.

2. 생체실험의 유형

20세기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생체실험은 크게 다음의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 같다. (이글에서 생체실험은 생체해부같이 죽음을 염두에 둔 극단적 실험부터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는 않는 “임상실험”의 경우까지를 포괄한다.)
1) 핵무기, 생화학 무기, 독극물 개발 등 국가방위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행해진 생체실험. 정부의 주도 아래 정부 연구소나 대학 혹은 기업에 위탁연구를 맡긴다. 전시, 냉전체제 아래서 특히 성행했다.
2) 의학연구를 위한 생체실험으로 대학과 대학 산하 연구소가 주체가 된다.
3) 상업적 이득을 위한 기업의 필요에 의한 생체실험. 대학과 기업 연구소가 주관한다.
이 세 가지 유형은 목적이라는 점에서는 명확히 구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다. 핵무기, 생화학 무기개발처럼 군사적 목적으로 처음부터 정부와 대학이 긴밀하게 협력하여 과학적 연구와 같이 발전시킨 프로그램이 있고, 말라리아같은 전시 군인들을 위협하는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위한 연구는 바로 의학적 연구이기도 하다. 의약품, 화장품 등의 상품 개발을 위한 생체실험은 대학과 대학연구소와 밀접한 연계 속에 이루어져 오고 있다.

1) 군사적 목적을 위한 생체실험
정부가 주도하여 과학연구의 의제를 설정하고 자원을 동원한 것은 원폭개발을 위한 ‘맨하탄 프로젝트’라는 거대한 프로그램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오펜하이머, 페르미, 파인만 등 당대 최고의 과학적 재능과 엄청난 인원과 예산이 투입된 이 대규모 프로젝트가 비밀리에 만들어져 인류 최악의 살상무기를 만들 때 비극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프로젝트로 국가가 연구지원을 통해 과학연구의 방향을 조율, 통제하는 전형을 만들어냈고 이로부터 과학자들이 정부의 정치적, 군사적 목적을 가진 자금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기업의 자금으로) 연구활동을 하고 그로 인해 연구의 목적과 방향이 국가와 자본에 의해 직접 결정되는 계기가 된다.

방사능 생체실험은 이런 배경아래 군대, 감옥, 병원, 고아원 할 것 없이 비밀리에 아주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아일린 웰슨(Eileen Welson)이라는 작은 지방신문 기자가 우연히 보게 된 서류에 의혹을 품고 6년간 집요한 추적 끝에 인체에 플루토늄을 직접 주사한 생체실험의 비밀을 폭로했고 이를 계기로 1994년 클린튼 대통령은 전면적 조사를 지시하였다. 조사 위원회가 꾸려지고 상세한 보고서가 만들어져 있어 비교적 정확하게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생체실험의 유형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1944년부터 1974년까지 수 천 건의 방사능 인체 노출 내지 동위원소 체내 실험이 행해졌고 수 백 건의 의도적 방사능 대기유출 실험이 행해졌다.

1951년 네바다에서 행해진 핵폭발 실험에 동원되어 생체실험의 대상이 된 군인들의 모습. 인근의 민간인들도 방사능에 노출되었고 이들의 상당수는 암과 백혈병에 걸렸다. 방사능 노출의 위험이 명백히 알려진 이후임에도 불구하고 ‘국방’이란 이름 아래 이런 실험은 계속되었다.

메사추세츠 주에서는 정신장애아들을 위한 공립학교에서 MIT의 과학자들이 학생들이 먹는 아침 씨리얼에 방사능 물질을 넣어 실험을 했고 (1946-1954), 하바드와 보스톤 의대의 연구자들이 또 다른 정신장애자 학교에서 방사능요오드를 먹이는 실험을 했다 (1961). 알래스카에서는 에스키모 원주민(Inuit)이 사는 지역을 방사능 물질로 오염시켜 실험을 했고 (1958-1962) 흑인 신생아한테 방사능요오드를 주사하는 실험까지 있었다. 그리고 밴더빌트 대학병원은 테네시 주와 연방정부의 도움을 받아 검진을 오는 가난한 800명이 넘는 백인 임산부들을 상대로 방사능 물질이 든 음료를 먹이고 태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실험했다 (1945-1949). 이것 말고도 임신한 여성과 수유중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수십 건의 실험이 드러났다. 이밖에도 1970년대 죄수들의 고환을 고강도 방사능에 노출시키는 실험 (1963-1973) 그리고 암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위험천만한 방사능 노출실험 등등이 있었다.

2) 의학 연구를 위한 생체실험
의학 연구를 위한 생체 실험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터스키기 매독 실험”이다. 1932부터 1972까지 무려 40년간 지속된 이 인체실험은 미보건국이 알라바마주 터스키기(Tuskegee)에서 약 700명의 매독에 걸린 가난한 흑인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병세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치료없이 관찰함으로써 많은 환자는 물론 배우자와 새로 태어난 아이들까지 감염되어 죽게 한 실험이다. 1947년부터 기본치료제가 된 페니실린도 처방하지 않고 조직적으로 다른 곳에서 치료를 받지도 못하도록 방해했다. 2차 대전으로 실험 대상인 흑인들이 징집되자 지속적인 실험을 위해 징집을 취소하도록 압력을 넣어 의도하지 않은 병역기피자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최근에 알려져 크게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사건은 미국이 1946년부터 1948년까지 과테말라에서 약 1300명의 고아, 군인, 정신병 환자들에게 매독균이나 임질균을 눈, 척추, 성기 등에 주사하고 경과를 관찰한 실험이다. 감염시킨 성매매 여성들을 감옥이나 정신병동에 보내져 남자들을 감염시키기도 했다. 페니실린의 효능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상당수의 환자는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의학사 연구자 수잰 러버비(Susan Reverby)가 터스키기 매독 실험 관련 자료를 뒤지다가 우연히 과테말라 실험의 책임자 커틀러(John Cutler 당시 미보건국 성병 관리부의 수장)가 남긴 보고서를 발견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커틀러는 60년대엔 터스키기 매독 실험에도 관여했다. 나중에 이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자신은 잘못한 것도 추호의 후회도 없다고 말한다.)

시카고 의대가 주관하여 일리노이 감옥엣 수형자들을 대상으로 말라리아균을 주사하고 관찰한 설험(1944-1946)은 1946년 뉴렘베르그 재판에서 나치의사의 변호인들이 나치와 다를 바 없는 실험이라는 비난을 듣을 정도로 문제가 많은 생체실험이었고 적의 생화학 공격이 어마나 효과적인 지를 알기 위해 출퇴근 시간대 뉴욕 지하철에 병균을 살포한 것을 비롯해 (1966) 미 전역에 걸쳐 수백 건의 살포 실험이 행해졌다. 무해한 균이라는 주장이지만 발암물질도 있었고 정말 무해한 것인지는 당사자인 군당국의 증언 외엔 없다. 실제로 실험에 즈음해 그 때문에 사망했다고 의심되는 케이스도 있다.

3) 상업적 목적의 생체실험
기업이 저지른 생체실험의 주된 패턴은 수형자들을 상대로 의약품 임상실험의 가장 위험한 1단계 생체실험을 하는 것이었다. 이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케이스로 펜실바니아 의과 대학 피부과 의사인 클리그만(Albert Kligman)이 1952년부터 1974년까지 펜실바니아주 홀름스버그 감옥에서 수형자들을 상대로 온갖 피부 관련 생체실험을 하였다. 그는 다우 케미컬(Dow Chemical)의 의뢰로 수형자들에게 월남전에 공급하는 에이전트 오렌지의 성분인 다이옥신을 노출시키는 실험을 대행했고 군의 의뢰로 피부를 손상시키는 화학물질들을 실험하기도 했다.

클리그만은 이런 생체실험을 통해 개발된 Retin-A라는 여드름 치료제로 특허를 받아 큰돈을 벌고 나중에 주름제거와 피부변색 방지 효과까지 알려져 엄청난 부를 쌓았으며 93세까지 장수했다. (자신은 나이가 들어서도 단 한번도 Retin-A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널이 쓰이고 있는 여드름 치료제, 주름방지 크림 뒤에는 이런 슬프고 고통스러운 얘기들이 숨어있다. 그는 처음 감옥에 들어서서 “내가 본 것은 넓디넓은 피부들이었고 그건 마치 농부가 처음으로 넓디넓은 비옥한 토지를 보는 심정과 같은 것이었다“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홀름스버그 감옥은 이 밖에도 20년이 넘게 온갖 화학물질과 독극물 등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것들의 실험장소로 한 번에 수십 건의 실험이 동시에 진행되기도 했다. 나중에 그 감옥에서의 생체실험을 폭로한 책을 쓴 혼블럼(Allen Hornblum)은 ”인간 실험의 수퍼마켓“이라 불렀다. 이후에도 이런 실험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뒤에 상술)

대학원을 마친 23살 청년 혼블럼이 문맹인 수감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러 홀름스버그 감옥에 갔다가 거기서 이루어지는 일에 충격을 받고 쓴 폭로물.

대학원을 마친 23살 청년 혼블럼이 문맹인 수감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러 홀름스버그 감옥에 갔다가 거기서 이루어지는 일에 충격을 받고 쓴 폭로물.

3. 생체실험의 희생자들

생체실험의 대상자들을 보면 사회적 약자-타자들이 누구인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가난한 자, 유색인종, 고아, 장애인, 수형자, 이민자 등. 피해자들 가운데 아마 군인들만이 사회적 타자가 아니라 근대국가의 정식 구성원이 되는 자격을 획득한 이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국방이라는 이름아래 동원되어 목숨을 담보 잡힌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들이 방사능 실험대상으로 쉽사리 이용된 것은 그저 동원의 다른 한 형태일 뿐이다.

여기에 덧붙여 내부의 타자들뿐만 아니라 외부의 타자들-피지배인의 몸도 이런 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20세기 초에는 쿠바의 이민노동자들을 황열병에 감염시키고 살아남으면 100불 죽으면 200불을 주는 목숨거래를 했으며 (1900) 당시 학살을 통해 점령한 필리핀에서는 하바드 대학의 연구진이 수형인 상대로 열대병 실험을 하면서 13명이 죽기도 했다 (1906). (필리핀의 경우는 참 아이러니다. 학살 지휘관의 한명이 맥아더 장군의 아버지인데 학살자 아들은 후에 필리핀의 영웅이 된다.) 그리고 20세기 중반에는 앞서 언급한 과테말라에서 천 명이 넘는 고아, 군인, 정신병 환자들을 상대로 한 매독과 임질균을 주사한 생체실험이 있었다.

이런 끔찍한 실험들의 시행기간을 보면 대부분 1970년대 초중반을 기점으로 급격히 감소하며 잔인한 실험을 금지하는 정책과 제안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는 1968년 마틴 루터 킹의 암살과 민권법이 통과로 한 매듭을 지은 미국의 민권운동의 여파가 사회 곳곳에 미치기 시작하던 때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렇게 운동의 영향은 무섭다. 직접 의도하지 않은 것이 이루어지고, 직접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회의 곳곳에 효과가 파급 된다. 미국은 이렇게 뒤늦게 자신의 ‘근대적 야만’과 대면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자신의 야만을 제어하기 시작하면서 공공부문에서의 잔인한 생체실험은 많이 사라졌다. 여전히 이루어지는 생체실험에서 사람이 죽거나 심한 상해를 입는 경우가 때때로 있지만 최소한 빈도에 있어서는 그전과 비교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아니 어떤 의미에서 그전보다 더 극심해진 것은 기업, 특히 다국적 제약회사의 행패로 이들은 이제는 세계를 무대로 제3세계 특히 아프리카인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하곤 하는데 역사적으로 노예제를 연상시키고 앞서의 피지배국가에 대한 착취의 연장선상에 놓인다.

대표적인 예로 파이저가 나이제리아에서 트로반이라는 뇌막염 치료제를 시험하면서 13명이 죽고 다수가 심한 부작용을 보인 사례가 있었고 (1996), 짐바브웨에서는 미국 정부가 이미 효과가 입증된 에이즈 증상 지연제인 AZT 실험에서 위약(placebo)이나 극소량만을 투여하는 실험을 해서 의도적으로 치료를 외면하고 증상의 진행을 관찰하였다. (1997) 이로 인해 약 천명의 태아들이 HIV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알려져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터스키기 매독 실험과 다를 바 없다는 혹독한 비난을 받았다. 2000년에는 하바드 의대 연구진이 중국의 시골 마을에서 제대로 허가와 피실험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위험을 줄이려는 충분한 노력도 없이 유전자 실험을 해서 많은 비난을 샀고 당시 총장이던 로렌스 서머스가 중국으로 날아가 사과해야 했다.

4. 분석

숱한 생체실험의 케이스들을 보면서 놀라운 것은 먼저 실험의 빈도 그 자체다. 이전까지 알려진 것은 고작 수십 건 정도였는데 나중에 밝혀진 것은 방사능 노출 건만도 수천 건에 이르며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다른 생체실험을 포함하면 최소한 수 만 건은 될 것이다. 이렇게 많은 실험이 이루어져 왔고 아마 지금도 어디선가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이 비공개성은 실험의 비윤리성을 감추는 장치이자 실험을 더욱 더 비윤리적인 방향으로 유도하는 조건이 되었다. 이 실험의 은밀함과 관련해 놀라운 것은 철두철미한 비밀유지다. 극소수만이 아는 실험이었다 해도 최소 수 만 건에 이르는 실험에 관계되는 사람의 수는 적지 않았을 것이다. 관료, 행정을 담당관부터 의사, 과학자, 간호사 등등. 이제까지 알려진 생체실험의 수많은 관계자 가운데 터스키기 사건을 고발한 피터 박스톤(Peter Buxton) 이외에는 단 한 사람의 내부고발자도 없었다 (혹은 있었지만 어떤 연유로 알려지지 않았다). 과학자, 관료, 기업 등 수많은 당사자들은 거대한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여 수십 년 길게는 반세기가 넘는 동안 비밀을 유지하며 생체실험을 계속할 수 있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윤추구에 눈이 먼 자본가와 기업 그리고 그 하수인들은 물론 의사, 과학자 등의 소위 ‘전문가’ 집단 그리고 정부 관료들까지, 이 모두가 도덕적, 윤리적 판단 따위에 개의치 않는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집단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리고 그 수많은 패악질에서 단 한 건도 그들이 사법적 처벌을 받은 경우를 찾지 못했다. 무수한 손해배상 소송은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가하고 나아가 죽이고도-때론 고의적으로 때론 미필적으로-기소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시를 제외하고 사람을 죽이고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이런 비상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미국 법률가들 자신이 나치 의사들을 사형과 중형에 처한 후 그 근거로 1947년에 만든 <뉴렘베르그 규약>(The Nuremberg Code)에 따르면 미국의 생체실험 관련자 가운데 교수형 내지 중형을 선고받아 마땅한 사람이 넘칠 듯하다. 그러나 그들은 시작부터 그런 규약은 나치같은 사악한 적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지 자신들 같은 “좋은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떠들어 도리어 과거와 미래의 자신들의 악행을 합리화하는 구실로 삼았다. 승리자의 오만은 이렇게 무섭다.

승자의 오만하고 오도된 단죄 뉴렘베르그 전범재판 광경

승자의 오만하고 오도된 단죄 뉴렘베르그 전범재판 광경

관련 과학자들이 과학자 집단 내에서 피해나 불이익을 받기는커녕 승승장구하고 학자의 이름을 딴 상이 제정될 정도로 존경을 받기까지 했다. 이런 배경 아래서 해당 과학자들 가운데 단 한명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몰상식이 통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터스키기 매독 실험을 옹호하는 논문을 쓰는 유명대학 학자들이 있다.) 국방을 위해, 의학연구를 위해, 그리고 소비자의 건강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판에 박힌 말로 자신들의 행위를 옹호한다. 이들의 이 오도된 자만은 자신들의 행위가 공적인 기관의 뒷받침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조차도 결국 자신들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온 것이다. 우리 모두는 국가에 자신의 안전을 의탁하고 의사에게 건강을 의탁하며 기업에 생활을 의탁한다. 생체실험은 결국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한편으론 자신들의 도덕적 윤리적 감각을 정면으로 거슬리는 패악질에 분노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그 패악질과 패악질을 행하는 세력에 삶을 의탁하고 있다는 삶의 역설적 조건을 드러낸다.

과학의 윤리성 강조와 실험윤리 규정이나 의약품 안정성 시험 강화-이것은 생체실험을 합리화하는 주요한 명분이었다!- 등은 잠정적 대응일 뿐 문제해결의 답이 될 수는 없다. 앞서 본 것처럼 관료, 과학자, 의사, 기업들은 자신의 권력 추구, 지식과 명성 추구, 이윤 추구에 몰두할 뿐이며 이들이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 마구 쏟아내어 상품화되는 온갖 과학적 장난질을 일일이 그 장기간에 걸친 폐해까지 측정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가능하다해도 그 어마어마한 시간과 인력, 비용을 뒷받침할 주체가 없다.

5. 끝맺으며

적을 악마로 상정하고 악마를 없애기 위해서는 모든 걸 감수할 수 있다는 오도된 생각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실험동물로 전락시킨 국가, 전문지식의 진보를 위해서는,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위해서는 뭐든 감수할 수 있다고 믿는 과학자와 전문가 집단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뭔 짓이든 한다는 장사치들. 이들 생체실험을 추동하는 세력의 죽이고 싶은 욕망, 알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 그리고 벌고 싶은 욕망은 근대 권력의 세 가지 유형-국가 권력, 지식-권력, 자본-을 그대로 반영하며 생체실험은 이 욕망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지저분한 역사의 뒷골목인 것이다.

생체실험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장기간에 걸친 실험이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제약회사와 병원들은 건강을 판다는 미명하게 다수의 사람들을 상대로 의약품과 약물 그리고 의술을 가지고 실험을 하고 있고, 먹거리 장난질 유전자 변형 식품(GMO) 역시 장기간에 걸친 인체실험에 다름 아니다. 경찰이 마구 쏘아대는 “안전한” 최루액과 전기총 등도 공안이라는 미명하에 행해지는 생체실험이다. (이런 의미에서 물대포는 전근대적 요소가 다분하다.) 그리고 원자력 발전의 경우 그 연원부터 생체실험 그리고 대량학살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지금도 소수의 사람을 직접적으로 방사능 오염에 노출시키고 다수의 사람들을 저농도로 노출시키며 진행되는 생체실험 가운데 가장 큰 위험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저강도의 형태로 건강, 연구, 공안, 에너지 등의 이름으로 우리 삶의 피할 수 없는 일부로 자리 잡았다. 생체실험이라는 역사의 더러운 뒷골목은 이렇게 고스란히 우리가 사는 현재의, 뒷골목 같아 보이지 않는 뒷골목으로 도처에 널려있다.

응답 2개

  1. 환경보호말하길

    방사능에 노출된 실험을 당한 사람으로 부터 동의를 받았는지 궁금하네요.

    설령 그렇더라도 저런 실험을 해야 헸을까요.

    이건 뭐 인간이 아니라…..

    지금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전세계인을 상대로 생체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참으로 이글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저도 지금 핵에 의해 생체 실험이 되고 있네요.

  2. tibayo85말하길

    으~ 토 쏠린다. 미국이 이런 나라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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