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길 위에서 묻는다” – 고추장의 뉴욕대학 강연 참관기 2

- Beilang(동아시아사상사연구자, 뉴욕이타카)

3.

(나오유키) 일본에서도 공동체운동은 많이 있어왔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시골에 들어가 공동체를 만드는 방식이며, 연구활동을 새로운 삶의 방식과 결합시킨 예는 전무하다. 그런 점에서 ‘수유너머’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한국에서의 코뮨 운동의 역사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운동에 대해 좀 더 얘기해 달라.

사실 한국의 실정도 비슷하다. 많은 코뮨 운동은 농촌공동체를 모델로 삼고 있고 심지어 성격이 다른 종교적 공동체들조차도 그러하다. 이런 운동의 한계는 설사 자율적 공동체를 만드는데 성공한다 해도 밖과는 고립되고 만다. 우리가 도시에서 코뮨을 만드는 이유는 이런 위험을 피하고자 함이다. 물론 도시에는 숱한 문제가 있다. 그러나 많은 문제만큼 자원도 풍부하다. 인력과 정보, 통신, 교통 등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자원을 찾아내 재전유하고 활용한다. 문제가 있는 곳에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해법도 숨어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이런 바탕에서 나는 ‘가상 서울’-서울의 여러 코뮨들을 가상으로 연결하여 전체가 하나의 도시처럼 상상되고 작동할 수 있게 하는 작업을 구상한 적도 있다.

(유키코 하나와) ‘유목민 대학’이라는 새로운 기획을 하면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공포’다. 실패에의 공포 그리고 그 실패가 운동에 가져올 부정적 영향에 대한 공포 등. 그래서 실패하지 않으려고 많은 원칙을 세우며 세부사항을 끝없이 확인하고 이러면서 정작 제대로 시작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막상 시작해 보면 이런 철저한 준비도 현실이라는 벽과 마주쳐 쉽게 허물어지곤 한다. 새로운 것을 기획하는 상상력과 그것을 추동하고 실천하는 힘은 다른 것 같다. ‘수유너머’도 이런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고 10년여를 지속할 수 있었나? 현실과 조응하면서 그걸 극복해내는 그 변혁의 힘(transformative force)의 근원은 무엇인가?

중요한 것은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말로 간단히 표현해 보자면 “쫄지마!”다. (웃음) 공포란 나 자신이 가진 힘을 공포의 대상에 투영하여 그 대상을 더 강한 상대로 상상하고 스스로 그 앞에 굴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공에 너무 집착하면 실패에 대한 공포도 커지고 이 공포는 결국 일을 지지부진하게 만든다. 그러면 내적인 갈등이 생기고 일울 추진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그보다는 새로운 시도를 배움의 기회 그리고 새로운 ‘사건’, 새로운 ‘현장’을 만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성공하려 하지 마라. 대신 다르게 실패하라”고 말하곤 한다. 앞서 얘기한 2006년의 ‘대장정’이 어마어마한 일 같지만 실은 몇몇 동료들과 같이 밥 먹다 FTA에 열받은 친구, 미군기지 문제에 열받은 친구, 새만금 개발에 열받은 친구들이 분노를 터뜨렸고 이 분노를 공유하다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다. 생활을 같이 하는 것, 같이 밥을 하고 먹는 것이 이 분노에 공감하고 행동에 동참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완벽히 준비하고 시작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어디 있겠나. 그러나 실제로 일을 처리할 때는 경험이 많은 연장자의 판단을 존중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불문율 같은 것이 있는데 하나는 “원하는 바가 있으면 시끄럽게 떠들어라!” 하는 것과 “같이 할 친구를 찾아라!”하는 것이다. 우리도 전체회의가 있다. 하지만 거기서 중요한 일에 대한 최종결정이 내려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설사 그런 결정이 내려진다고 해서 그것이 그대로 실행되는 것도 아니다. 수많은 ‘부분기계’들이 작동하고 있고 그런 것들이 잘 움직여야 전체가 제대로 유지된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변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유연성이 중요하다. ‘월스트리트 점거운동’ 과정에서도 경찰이 주코티 공원의 전원을 차단해버리자 사람들이 자전거로 발전기를 돌려 대응하지 않았나.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는 이런 임기응변의 능력이 중요하다.

(점거운동하는 대학원생) 미국에서 새로운 운동을 하려는 사람들이 마주치는 현실적인 문제는 여럿이지만 당장 마주치는 것은 ‘건강보험’ 같은 것이다. 소속이 없으면 보험도 없고 이는 상당히 불안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더 큰 공포는 국가의 자의적 개입이다. 우리가 하는 일을 국가가 불법이라고 단정하고 언제든 억압할 수 있다는 생각이 우리를 짓누른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새로운 무엇을 시도할 때 겪는 공포들이다. 한국의 사정은 어떤가? ‘수유너머’는 그런 어려움을 겪지 않는가?

다행히 한국에는 공공보험 제도가 있어 기본적인 의료비에 대한 걱정은 없다. 그리고 건강과 의학에 상당한 식견을 가진 사람들이 주변에 있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식습관이나 기타 문제에서 많은 조언을 받기도 한다. 국가에 대한 공포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온갖 공포에 떨며 산다. (웃음) 국가의 횡포, 자본의 횡포, 먹고 사는 일에 대한 두려움에 이르기까지 걱정거리가 한둘이 아니다. 예를 들면 아까 발표 중에 보여준 ‘G20 쥐 포스터’를 그린 동료는 구금되어 상당한 고초를 겪었다. 검찰은 ‘수유너머’ 전체를 배후로 같이 엮으려 하기도 했다. 벌금형으로 끝이 났지만 국내외의 많은 지지운동이 없었다면 실형을 받았을 지도 모르고 다른 사람들도 엉뚱한 피해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서 얘기한대로 공포를 증폭시키지 말고 공동체가 협력하여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실제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 특히 중증 장애인들을 가르칠 때 많은 어려움에 봉착할 것 같다. 어떤 언어를 선택하는지, 어떻게 의미 있는 교류가 가능한지 등을 알고 싶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지위와 지식을 특권화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민중, 소수자들과 같이 할 수 있는지도.

가르치는 것은 물론 쉽지 않고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이냐, 아니 어떻게 서로 배움을 얻을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 중증장애인들의 경우에는 의사표시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이 다수다. 그들의 표정을 전혀 읽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들은 보통 활동보조인과 같이 오는데 이들은 또 새로운 변수가 된다. 예를 들면 의사전달의 메신저인 그들도 이 배움의 장의 일부인가 아닌가? 이런 것에 답하는 것도 쉽지 않고 가르치다 보면 헷갈리기도 한다. 이런 문제에 대한 손쉬운 답은 없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최선을 다해 그들과 교류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중증장애인들과의 만남에 그런 어려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같이 읽으며 “내면의 맹수들”을 얘기했을 때 그들이 보여준 반응을 잊을 수 없다. 그들은 그 글에 마치 짐승 같은 몸부림과 울부짖음으로 반응했다. 글이 그들의 신체에 격한 반응을 일으킬 정도의 큰 울림을 가졌다는 말이다. 억눌려온 내면과 자신들을 소외시킨 신체에 대한 민감한 각성이 그들을 ‘내면의 맹수’라는 말에 그렇게 강열하게 반응하도록 하였으리라. 난 이들이 니체를 전공한 학자들보다 ‘내면의 괴물’의 정체를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강의를 보자. 내 생각에 교수들은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대화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언어를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덮어씌우려 하는 것 같다. 거기에 과연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사이의 진정한 교류가 있을까? 그렇다고 강의를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개방하는 것도 아니고. ‘수유너머’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배우러 오기도 하지만 새롭고 개방적인 삶의 방식에도 이끌리는 것 같다. 예를 들면 같이 밥을 먹는 것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종종 혼자가 아니라 친구들과 같이 오곤 한다.

그리고 위계에 대해 얘기하자면 동등함을 주장하면서도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사이에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위계가 한없이 지속되지는 않는다. 탈성매매 여성들과 같이 공부한 이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시작할 때는 어떤 위계가 존재하지만 강의가 진행되면서 그들이 자신의 삶의 이야기와 문제들을 풀어 놓기 시작하면 이전의 위계는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한다. 가르치는 자가 그들의 삶의 문제에 대해 그들보다 나은 답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기에 그때부터는 서로가 같이 문제해결을 위해 서로에게 배우는 동등한 동료의 입장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헨리 임) 수유너머의 ‘정치성’에 대해 묻고 싶다. ‘무엇’을 배우는가하는 것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어디서 누구와 배우는가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했는데 설사 그것이 단지 필요에 의한 것이라 해도 그 ‘어디’와 ‘누구’에 따라오는 암묵적, 명시적 정치성이 있을 것 같다. 나아가 ‘수유너머’에 대한 그런 서사(narrative) 그 자체도 정치성을 내포하고 있지 않을까? 정치성의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제도권 대학 밖에서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는데 대학과 어떻게 관계설정을 하고 있나?

‘교육’과 ‘정치’ 그리고 ‘정신분석’을 같이 언급한 분야라고 설파한 <Analysis Terminable Interminable>라는 글에서 프로이드는 이 세 분야가 기존 가치와 기존 질서를 넘어 ‘새로운 주체’를 만들려 하는데, 이는 궁극적으로는 실현불가능성을 그 핵심에 내포하는 공통점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여기서 등장하는 교육과 정치는 ‘계몽’의 틀에서 바라보는 교육, ‘현실 정치’가 아니라 그걸 넘어선 인간의 근본적 변화와 관련된 그 무엇을 지칭하는 말로 내가 생각하는 교육과 정치의 의미에 근접한다. 의미있는 변화는 내가 ‘현장’ 중시에서 강조하듯 ‘해방구’처럼 기존의 조건과 자격들을 넘어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단절된 시공의 체험을 필요로 한다. 교육은 어떤 종류의 것이든 정치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교육은 계몽적 지식전수 모델로서의 교육도 아니고 정치는 좁은 의미에서의 현실정치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대학과 대학의 외부를 절대적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우리가 대학을 대신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겠다는 총체적인 비전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 아니다. 그 보다는 주어진 구체적 조건 아래서 최선을 다하고 원하는 바를 실천하고 보여줄 뿐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반-대학주의자가 아니다.

정치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 보자. 어떤 체제를 상정하는 ‘통치’(government)보다는 ‘자신을 통치하는 것 (governance of self)’이 더 정치적이라고 생각한다. ‘점거운동’이 원하는 바도 어떤 특정한 목표를 염두에 둔 ‘성공’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삶의 원형’을 창조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 편이 훨씬 급진적이다. 단순히 주어진 제도에 반대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런 표면에서의 반응보다는 지층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2008년의 지층으로 파고 들어가면 금융위기 이전에 가능했을 삶의 형상들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30년 전으로 파고 들어가면 신자유주의이전에 가능했을 삶의 모습들을, 그리고 더 깊이 200년 전으로까지 내려가면 자본주의 이전에 가능했을 다양한 삶의 양식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대중들에 의해 상상되는 삶의 이미지, 삶의 형상을 새롭게 만들어 내고 바꾸어 가는 것이야 말고 진정한 정치적 중요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장애인들이 자신의 몸을 쇠사슬로 묶고 처절하게 싸우는 운동에서 배운 바가 많다. 그런 싸움은 장애인 자신을 위험에 처하게 할망정 남에게 위험을 가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비폭력적이지만 실제로는 지극히 급진적이고 과격한 운동이다. 어떻게 그런 싸움의 양식을 만들어 낼 수 있었는지를 장애인 운동 리더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건 자신들의 삶의 확장일 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들은 종종 집안에서도 사슬에 묶인 채 지내며 그 현실을 집밖 운동의 현장으로 가져온 것뿐이라는 것이다. 정치란 이런 삶의 확장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당신에게 권력이 주어진다면 그 권력을 어떻게 쓰고 싶은가? 무엇을 바꾸고 싶은가?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것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건강에 관심이 있고 건강한 삶을 꿈꾼다고 꼭 의사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삶의 원형, 삶의 전망 자체를 바꾸는 일이 중요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만약 대중이 새로운 삶의 형상과 비전을 요구할 때 이에 호응하는 것이 정치가와 정책결정자들의 역할이다. 그들이 그걸 제대로 하지 못하면 사회가 엉망이 된다. 다시 말하지만 현실 정치에서의 권력에 나는 하등 관심이 없다.

(그래버) 만약에 한국에서 대통령이 하루아침에 증발해 버리고 한국이 당신이 생각하는 하나의 코뮨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가정할 때 지식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자본주의의 원리와는 다른, 계산에 기초하지 않은 선물과 증여의 원리로 사회를 구성할 수 있다고 믿을 지도 모르지만 선물의 교환은 다른 의미에서의 부채(감)을 지속시키는 것이다. 지식이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는데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지식에 대해 조금 다른 얘기를 해보고 싶다. 연구자는 ‘앎에 대한 신뢰’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신뢰는 어떤 특정 지식이 맞다, 그르다하는 차원에서의 신뢰가 아니라 앎이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이라는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근대적 지식에서 이런 믿음의 체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앞서 얘기한 ‘삶과 앎의 일치’ 같은 것 말이다. 근대적 지식은 사물에 대한 특정한 인식을 전제로 특정한 관계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지식의 대상인 사물을 객관화한다고 할 때 객관화는 곧 객체화이며 이건 사물에 대한 지배를 내포한다. 나는 이런 지식으로 새로운 사회구성의 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서로에게 선물이 되자!”라는 구호를 내세울 때 그 선물은 자본주의의 원리와는 다른 계산에 기초하지 않은 교환에 의해 새로운 삶을 구성할 수 있는 그 무엇이라고 믿지만 당신이 얘기한 것처럼 다른 의미에서의 부채를 끝없이 만들어내는 선물과는 다른 무엇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우리 모두는 나무가 뿜어내는 산소에 빚지고 있다. 그러나 나무가 어떤 호혜를 기대하며 우리를 위해 산소를 발산해주는 수고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나무의 생존 메커니즘의 일부이며 생명체의 배설작용과 비슷한 것일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나무에게 아무런 빚을 지고 있지 않다. 진정한 선물적 관계란 이처럼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채무를 만들지 않으면서 서로를 돕게 되는 호혜의 선순환적 관계일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 이런 관계를 구축해나갈 수 있는가를 아는 것이 ‘앎’의 문제의 핵심이 될 것이다.

(하루투니언) ‘수유너머’에 함축되어 있는 배움의 모습은 제도권 교육과 정반대의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우리의 교육과정은 시작과 끝을 상정하고 어느 단계가 되면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다른 곳을 찾아 떠나야 하는 이별과 출구 그리고 분산 등으로 규정되는 형태인데 이는 배움의 점진성, 단계성을 상정하는 모델이다. ‘수유너머’는 어떤 점에서 시작도 없고 이별도 없는 지속적 교육 모델인 것 같다.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다른 얘기이긴 하지만 우리에게도 안과 밖의 경계를 나누고 어느 쪽을 강조하느냐에 대한 갈등이 있다. 내적인 삶의 ‘일상’을 강조하는가 아니면 외부와의 연결고리, 접점을 만들고 ‘활동’하는 것을 중시하는가에 따른. 어느 쪽이던 자신에게 중요한 ‘현장’을 찾아 지키며 거기서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밖을 향할 경우에는 안을 향한 구심력은 더욱 중요해진다.

당신의 생각은 지식의 민주화를 주장하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개방된 학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지식 등은 한 편으론 교육의 문제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윤리의 문제이기도 한데 결국 지식을 인간화(humanizing knowledge)하는 것 같다. 그런 인간적, 윤리적 태도가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를 규정하게 될 것인데 이는 지식의 장을 평준화해 버릴 것이다 (leveling the field of knowledge). 비슷한 시도의 하나가 기존의 지식 구획의 문제를 넘어서고자 하는 ‘학제간 연구’인데 문제를 노출시티고 있다. 인간적 윤리적 측면에서 당신의 시도는 가치 있는 것들이지만 지식체계의 관점에서 볼 때는 상당한 문제가 있어 보인다.

내가 비판적 관심을 갖는 것은 전통적 의미의 지식생산 체계가 생산하는 사건을 경험하지 못한 앎의 공허함, 즉 자신의 진리의 붕괴를 경험하지 못하는 앎의 문제다. 내가 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쓰게 되었는가를 얘기함으로써 논의를 진행시켜보자. 내와 같이 활동하는 중증장애인인들이 격렬한 권리투쟁을 하던 시기는 소위 민주화된 정부에서였다. 그들과 투쟁하면서 느낀 것은 ‘민주주의’의 ‘다수결의 원칙’에 입각하면 그들은 대책 없이 차별받는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절대가치로 여겨지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 그들의 삶을 위협하는 근거가 된다는 역설에서 나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것이 바로 사건과 사건의 현장이 주는 깨달음-공허하지 않은 앎이라 생각한다.

제도권에서의 좀 더 구체적 예로 대학에서의 강의를 한번 생각해 보자. 그건 하나의 앎이 또 하나의 다른 앎으로 연결되고 치환되는 것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니체에 대한 얘기는 헤겔에 대한 얘기로 연결되고 헤겔은 또 다른 사상가와 연결되는 식으로. 내가 현장 인문학 과정에서 한 강의들을 생각해보면 그런 것과는 아주 다르다. 감옥에서의 강의는 수감자들의 삶의 얘기와 바로 연결되고 그들은 궁지에 몰린 자신들의 삶의 출구를 물어와 나를 당황하게 하기도 한다. 차이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홈리스들은 겉모습부터 변한다. 갑자기 옷을 깨끗이 빨아 입거나 머리를 단정히 깎고 오기도 한다. 대학에서 해온 많은 강의 경험에서 앎이 학생들의 삶은 바꾸는 경험을 해본 적은 거의 없다. 작은 예지만 그들의 삶, 그들의 몸을 변화시키는 앎, 그것이 바로 내가 주목하는 앎의 형태이다.

당신이 주창하는 것은 결국 엘리티즘을 추상적으로 부정하면서 그 반대 극단을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것 아닌가. 이런 예를 나는 톨스토이에서 발견한다. 고등교육을 받았고 세계적 문호이자 세련된 교양을 갖춘 그가 농촌 공동체를 낭만화하기 시작하면서 문맹인 농민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을 엘리트가 자기가 가진 것을 그들에게 강요하는 폭력이라 여겨 반대하고 결국은 지식인 자체를 악마화하기까지 했다. 그의 이런 낭만적 공동체론이 남긴 긍정적 영향은 없다.

난 ‘가르친다’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보다는 ‘배우게 한다’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가르친다는 것은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위계를 상정한다. 그리고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는 가도 중요하다. 당신은 지식만을 유일한 대상으로 설정하는 것 같은데 난 이 세상 모든 것이 가르침과 배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농부가 우리에게 학문적 지식을 가르칠 수는 없다. 그러나 농부의 삶의 형태 그 자체로부터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지식인은 예술가를 일깨울 수 있고 예술가는 노동자를 각성시킬 수 있으며, 노동자는 다시 자신의 삶으로 우리를 배움의 길로 인도할 수 있다. 말과 개념만으로 한정된 지식을 가르침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면 우리는 이렇게 상생의 길을 만들어 갈 수 있다.

4.

이번 강연이 참가자들에게 하나의 사건, 하나의 현장이 되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몇몇 대학원생들의 부정적, 비판적 반응은 자신의 미래가 걸린 학계 진입을 위해 거의 맹목적으로 ‘현장’을 외면하고 학계의 규칙들을 신봉하고 체화해야 하는 그들의 입장에서 이번 강연이 주는 불편함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몇몇은 곤혹스러움을 공공연히 드러내기도 했지만 난 그들도 이번 강연의 메시지를 두고두고 되씹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반해 가장 연장자이며 학문적 명성은 높지만 기존 학계의 규칙-예를 들면 ‘지역학’이 지식을 생산하는 방식-에 통렬한 비판을 계속해왔고 그로 인해 학계에서 경원의 대상, 불편한 존재가 되어 온 하루투니언 교수와 다른 학자 그리고 운동가들이 ‘수유너머’에 대해 열렬한 지지와 찬사를 보내는 것은 기존학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수유너머’가 밖에서 구현하고 있다는 판단에 기인한 것이리라.

추장의 답변은 질문에 바로 대응하는 방식이 아니라 질문을 둘러싼 콘텍스트를 다른 콘텍스트로 바꿔 자신의 얘기를 풀어가는 일종의 메타-답변이 많았다. 까다로운 질문, 모호한 질문, 비판적 도전들이 없지 않았지만 추장은 모든 질문에 주저함 없이 자신의 답변을 내어놓았고 그 답변들은 모두 도전적이면서도 설득력이 있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앎’이 ‘삶’이라는 ‘현장’에 기반을 두고 그 안에서 단련된 단단한 지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간단치 않은 ‘현장’의 메시지, ‘현장’이라는 메시지는 펴져 갔다.

‘현장’이란 말이 강하게 내 머리에 남게 된 사건은 오래전 <창비>에 실린 민중 신학자 안병무 선생과의 인터뷰 기사였다. 독일의 대학에서 자신을 주제로 한 박사학위 논문이 나온 것에 대해 선생은 상당히 겸손한 태도로 자신은 “독일에서 허덕거리며 겨우 학위 하나 받은 것이 전부다. 그들이 신학의 이론적 관점에서 내게 뭘 배울 게 있어 날 주제로 학위논문을 썼겠나. 우리가 그들이 가지지 못한 실천적 신학의 ‘현장’을 가지고 있기에 그렇게 한 것 아닌가”라는 발언을 기억한다. ‘이론’과 ‘실천(의 장)’을 나누고 “서양” 콤플렉스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계를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현장’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은 중요하다. 그것은 서구 지배담론의 반테제로 등장하는 민족주의도 아니고 어줍지 않은 다원주의도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자리 잡고 살고 있는 터전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과 성찰적 관여(engagement)에서 나오는 것이다.

독특하고 창의적인 생각은 사상사적 풍요로움에 빚지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 ‘현장’이 주는 구체적이면서도 강렬한 삶의 원초적 느낌에 의해 만들어지고 풍성해 지는 것이 아닐까? 훗설의 현상학과 하이데거의 존재론 그리고 앞서 번역어로 제시된 바흐친의 문예이론 모두를 동원해도, 여기에 니시다 키타로의 형이상학을 더해도 ‘현장’이라는 지극히 일상적 언어 하나를 철학적으로 정초시키기에는 모자람이 있다. 학자들은 현장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들을 읽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이들의 개념들을 배워 현장에 덮어씌운다. 아니 그냥 가지고 논다. 어차피 덮어씌워 바야 잘 들어맞지도 않거니와 애초에 그런 문제의식 자체가 별로 없다. 바람직한 방향은 ‘현장’이 이들의 개념의 회로 속으로 포섭되어 대치되기 보다는 역으로 그 회로를 바꾸는, 다시 말해 추장의 주장처럼 “하나의 지식 체계를 또 다른 하나의 지식체계와 연관해 이해하거나 대치하는 끝없는 앎의 소외 현상”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의미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왜 이놈의 철학은 밑도 끝도 없이 정교해지고 복잡해지며 우리로부터 점점 더 소외되어 가기만하는가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철학 개념이 자리 잡고 있는 현장이 없거나 시초가 된 현장으로부터 유리되어 ‘전문화’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현장이 없기에 개념들은 서로 “자유롭게” 짝짓고 배척하고 이리저리 연결되어 무더기로 날아다니고 미끄러져 다닌다. 그런데 이런 무제약성은 실은 불가능성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우린 마찰 없는 얼음위에서는 걸을 수 없다. 삶이 우리에게 가하는 ‘근본적 제약’은 역설적으로 우리를 가능케 하는 조건인 것이다. 무제약적 ‘사고실험’이 낳은 홈 패인 공간은 실은 자기 충족적, 자기 규정적 체제일 뿐이다. 이 대책 없는 개념놀음의 자취가 다름 아닌 ‘학술지’라는 우리 시대 지식 전문가들의 보고서를 수놓고 있는 우리 시대의 수많은 ‘진리’들이다. 그래서 추장은 강연에서 “우리 시대의 ‘진리’는 결국 객관화되고 정교해진 우리 시대의 ‘오류’의 다른 이름이다”라고 말해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현장에서 나의 진리가 붕괴되는 체험”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실존적 주문을 ‘앎’의 영역에서 그리고 ‘삶’의 영역에서 요구하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이유와 권위를 스스로 합리화하는 이런 자족적 폐쇄회로를 벗어나는 길은 우리 삶의 근본적 조건에 대한 깊은 성찰적 개입이며 이런 개입은 ‘현장’ 밖의 다른 곳에서 나올 수는 없다. 현장을 다시 기존 개념의 회로 속에서 순환시켜 다시 박제된 개념의 굴레 속으로 밀어 넣지 않고, 역으로 그 현장의 역동성과 잠재성을 기반으로 기존의 개념의 회로들, 파인 홈들의 외부를 만들어 그것들과 대면하게 해야 할 것이다.

이번 발표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물어진 것만큼이나 물어지지 않은 것에 있다. 가장 많은 말을 할 수 있었던 이들은 단순한 질문과 코멘트 외에 그 이상 아무런 ‘현장’의 분석이나 개념화, 재전유나 재영토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자신의 학문적 주특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묵묵히 ‘현장의 사건’에 참여했던 것이다. 그들은 침묵해야 할 때를 알았다. 그 침묵은 자신들이 마주한 ‘현장’에 대한 승인의 징표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 ‘현장’이 자신들의 벼려온 정교하고 현란한 언어의 규정에서 벗어난 “해방구”-그들의 언어가 멈추는 지점-이라는 것을 인식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침묵을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언어, 살아있는 언어를 만드는 일은 ‘현장’을 살고 지키는 모든 이들의 몫으로 남는다. 그러나 ‘현장’과 ‘사상’의 풍성한 만남을 필요로 하는 이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추장의 이 ‘현장’에 대한 본격적 논의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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