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위기에 빛나는 共生國家 스위스

- 맹찬형(연합뉴스 제네바 특파원)

 지금 유럽은 경제위기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있다. 2011년에는 그리스와 포르투갈이 구제금융을 받았고,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지금까지도 10년 만기 장기국채 금리가 위험선인 7%를 오르내리며 채무 위기에 허덕이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2위 경제국인 프랑스도 자국 은행들의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대한 위험노출액(익스포저)이 커서 위기에서 결코 안전하지 않다.

 2012년은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유로존 회원국들은 긴축에 긴축을 더하는 정책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출범한 지 10년 된 유로화의 존폐가 올해 결정 날 것이라는 비장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유로화는 1999년 금융결제수단으로 출범했지만, 유로존에 처음 가입한 12개 나라가 자국통화를 폐지하고 유로화를 전적으로 도입한 것은 2002년 1월 1일부터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국가 중에서는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만 위험권에서 벗어나 있다.

해가 바뀐 뒤에도 위기의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는 요즘 서유럽의 한복판에 위치한 스위스경제의 힘은 어두운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별이다.

 스위스가 유로존 위기에 휘말리지 않은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물론 유로화를 도입하지 않고 자국 통화인 스위스프랑을 고수한 데 있다. 통화발행권을 보유한다는 것은 위기에 대처하는 강력한 수단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유로화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2011년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인 스위스프랑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고, 이 때문에 유로화 대비 스위스프랑의 가치는 한때 45% 이상 치솟았다. 여담이지만 제네바에 거주하는 필자는 개인적으로 많은 환(換) 손실을 입었다. 실업률은 2.8%로 매우 안정적이고, 환율 때문에 흔들리던 수출은 스위스중앙은행(SNB)이 작년 9월 대(對) 유로화 고정환율제라는 초강수를 쓴 이후로 다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사정은 크로나를 사용하는 스웨덴, 크로네를 쓰는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북유럽 국가들도 유럽 경제위기로부터 거리를 두면서 자국 화폐의 가치가 급등하는 것을 방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은 것만으로 스위스 경제가 상대적으로 안정을 누리는 것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파운드화를 고수하고 있는 영국의 경제가 어렵기는 대륙의 유로존 국가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스위스가 안정적인 경제 상태를 유지하는 비결은 특정 부문에 다 걸기(all-in)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부문이 생존해나갈 수 있도록 국가의 자원을 배분하는 데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공생국가(共生國家)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말 현재 스위스의 산업구조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것은 금융(13%)이다. 금융과 관광을 비롯한 서비스 분야가 전체의 73%를 차지하는, 전형적인 선진국형(型) 구조다. 제조업은 26%를 차지하고, 농업은 1%다. 제조업은 주로 제약 등 화학제품, 정밀전자기계, 시계 등 굴뚝 없는 산업이 대부분이다. 서비스와 제조업은 그 자체로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다. 굴뚝형 소비재 산업인 자동차와 가전제품 등은 대부분 수입해서 쓴다.

주목할 것은 1%밖에 안 되는 농업에 대한 지원정책이다. 스위스 농촌에 가보면 들판 곳곳에 소와 양들이 떼 지어 풀을 뜯는 목가적인 풍경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데 그냥 노닥거리는 것이 아니라 보조금을 받는 귀한 몸들이시다. 하루 일정 시간 이상을 햇볕을 쬐며 자연친화적으로 방목하면 마리 당 정해진 보조금을 정부에서 지급한다. 축사에도 일정 조도 이상의 조명을 유지하면 보조금을 주고, 닭들이 닭장과 마당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하면 보조금을 준다. 밭에 해바라기와 유채를 심어도 보조금이 지급되고, 가파른 산비탈에 조성한 포도밭도 높이에 따라 차등화된 보조금이 나간다. 이 모든 것이 어디서나 카메라만 들이대면 화보가 된다는 스위스의 풍광을 이루는 요소다. 즉 농업은 동시에 관광산업이기도 한 것이다.

한 산업부문의 기능을 고유한 영역에만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면적으로 활용하는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매년 스위스 농가에 지급되는 돈이 평균 우리 돈으로 6천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금융과 첨단 제조업으로 버는 돈들이 다양한 장치를 통해 취약 부문으로 흘러가도록 한 것이다. 가장 약한 고리 중 하나인 농업까지 단단한 생존의 기반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대중은 안정적인 구매력을 유지할 수 있다.

 스위스의 1인당 국민총생산(GDP)은 2010년 말 현재 7만1천380 스위스프랑(약 7만6천 달러)이다. 단순히 1인당 GDP가 높아서 좋은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산업부문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고르게 소득이 분포돼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또 소득에 따라 세율과 사회보장 부담이 차등화 돼있어서 좀 적게 벌어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다.

특정 산업부문을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온 국민이 먹고 살 수 있다는 논리는 스위스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휴대전화 단말기와 자동차를 잘 만들어서 많이 팔면 GDP 수치는 커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벌어들인 소득을 취약한 부문에 재분배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지 못하다면 소비 주체인 대중의 만성적인 구매력 약화를 피할 길이 없다. 재벌기업이 돈을 벌고 사내유보금이 늘어난다고 해서 서민의 삶이 나아질리 없다. 비록 죄(罪)의 개별성에 관한 언급이기는 하지만, 성경에서도 아비가 신 포도를 먹는다고 해서 아들의 이가 시리겠느냐고 했다.

경제당국이 발표하는 수치에 대리만족을 느끼던 시대는 한국에서도 이미 지난 지 오래다. 성장이 대중의 구매력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물줄기를 돌리는 강력한 펌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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