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나의 소금에 대한 기억

- 김융희

  2011년을 보내면서 조금은 어수선했던 년말이 지나, 덕담과 더불어 들뜬 설레임으로 한 해를 여는 새 해 아침입니다. 별 의미도 없는 빠른 세월만 돋보여 다가옴은 아마도 나이 듦의 심리 탓인가 싶습니다. 빠른 세월의 의미를 외면하고 무시하려지만, 어디 그게 우리들 의지의 문제인가요, 우리로선 어쩔 수 없는 대자연의 순리인 것을!  씁쓸 착잡한 심사로 지난 한 해를 회고하려니 무수한 일들이 촘촘히 스칩니다.

적잖이 있었던 그 일들을 생각하면 한 해가 결코 외면하고 무시할, 아주 단순한 시간만은 아니었다는 새삼스런 느낌도 없잖습니다. 적잖은 일 일을 거론하며 따져 무엇하랴 싶지만, 그래도 한 해를 통해 특별했던 일을 그냥 보내려니 아쉬운 미련이 있습니다. 그래 나는 한 해를 보내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소금을 ‘2011년 화제의 식품’으로 꼽으면서, 소금에 대한 이모 저모를 생각해본 것이, 지난 주에 올린 ‘여강 만필’(97호)인 것입니다. 오랜 옛적 가난이 지겨웠던 배곯던 시절, 염전에서 느꼈던 것, 마치 동화속 요술처럼 놀랍게도 탐스런 설탕밭 세상이 되어 보석처럼 햇빛에 반짝이는 소금밭에 대한 기억.

날씨만 좋으면 마음껏 바닷물을 끌어들여 가득 채워만 두면 무진장으로 쌓인 소금을 보면서 이것이 쌀이였으면 하고 간절히 소원했던 생각… 소금밭에 경험이 없으신 분께서도 겨울철 소리도 없이 내려 간밤에 하얗게 쌓인 눈을 보는 순간의 감탄과 저 많은 눈이 쌀이였으면,이란, 스친 생각의 경험은 지난 가난을 겪고 살았던 이들이라면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아름다운 기억의 풍경으로 남아있습니다만, 그때 나는 “저 소금이 쌀이고, 설탕이었으면” 싶은 마음 뿐, 소금 자체는 여간 싫었습니다. 무거운 수차를 열심히 밟아 바닷물을 끌어 올리는 일에서부터, 무진장 쌓인 소금을 끌어모아 창고까지 옮기는 일이, 감당하기 힘든 나에게는 너무 고된 노동이었습니다. 특히 작은 창고의 좁은 공간에 계속 쌓이기만 하면서 팔리지 않는 소금쌓기는 참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집안 형편이 돈은 필요한데 팔리지 않는 소금을 장날이면 시장에 나가 팔아야 했습니다.

큰 금보다도 더 무거운 소금짐을 지고 새벽부터 시오릿길(6km)을 걸어서 겨우 시장 모통이에 자리를 잡아 노점 판매를 하는 것입니다. 긴 긴 하절의 해가 벌써 서쪽에 기울었는데 아직도 비워지지 않는 소금자루를 보면 다시 집에 돌아갈 길이 두렵습니다. 거의 버리다싶은 값에 떨이로 자루를 비우고 판 돈을 해아려 보면, 요샛 돈으로 칠팔 천원쯤 되었을 것입니다. 점심도 거른 후줄근한 배를 위해 국밥이라도 한 그릇 들었으면 싶은데, 집에서의 꾸중이 두렵고, 아무리 해아려 봐도 요기를 체울 여유가 없습니다. 어둠이 깔린 한참 후에야 터덜걸음으로 집에 도착하여 저녁을 때웠으니… 소금에 대한 나의 옛 감정은 이러했습니다.

날씨만 좋으면 얼마던지 무한 생산할 수 있는 천일염 소금, 그래서 언제나 가득 쌓여있는 것이 염전의 소금창고였습니다. 지금은 몰겠습니다. 옛적 내 경험의 소금창고는 그랬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점은 쌓아둔 채 자연스럽게 간수가 빠져 불순물이 스스로 많이 제거되는, 고슬 고슬한 양질의 소금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 때는 염전 소금이라면 으레 그랬었는데, 지금은 그런 조건들이 품질 표시의 설명문이요, 좋은 소금으로의 PR문구로까지 이용되고 있습니다. 오염이 되지 않는 청정 갯벌에서 생산, 5년이상 저장으로 간수가 제거되었으며, 무기질이 풍부한 소금이 우리 남해안에서 이처럼 무진장 생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2012년 3월이었습니다. 일본 후구시마의 강진이 발생하면서, 지진과 여파인 쓰나미로 인한 예기치 못한 대재앙이 덮쳤습니다. 강진과 쓰나미로 완전 초토화된 후쿠시마는 사상 유례없는 목불인견의 참혹한 현장이었습니다. 쓰나미의 여파는 상상을 초월한 대재앙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근해에 설치된 핵 발전소의 파괴는 육 해 공을 불문하여 후쿠시마 전역을 완전 저주요 재앙의 환경으로 초토화시켰고, 그 재앙은 점점 더 확대되면서 알게 모르게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방사능의 오염은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식품에까지 영향을 끼쳐 우려를 넘어선 심각의 수준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 지구의 7할을 넘는 바다는 모두 하나로 통합니다. 그 바다의 바닷물 또한 함께 뒤섰여 끊임없이 흐릅니다. 더구나 우리 해안은 일본과 지척으로 인접해 있습니다. 셈과 눈치 빠른 한국의 주부들이 이를 모르고 놓칠 리 없습니다. 청정해역인 남해안이 결코 안전지대가 아닌 방사능 오염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소금이 문제다, 소금을 미리 비축해야한다’. 너도 나도 서둘러 소금 사재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소문이 경쟁으로 변하면서 소금 주문이 늘어납니다. 처음 주문에는 느긋했던 걸 보면, 막상 염전에서는 예측을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럴 만도 했습니다. 창고에 가득한 물량, 또 필요하면 언제나 체울 수 있는 여건과 생산을 위한 만반 채비이고 보면, 소금이 딸리리란 생각은 천만에 였습니다. 사상 초유의 경험도 생각도 못했던 소금 파동은 결국 몇 배의 가격 폭등에 완전 매진으로 끝났던 것이, 2011년의 소금 파동이었습니다.

살다보니 금을 케는 광산에만 있는 줄로 알았던 노다지가 지난 해에는 뜻밖에도 우리의 염전에서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사재기를 못한 주부들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마 소금만은 금년같은 진풍경은 다시 없을 것입니다. 오염만 별문제로 하면, 다른 자원과는 달리 바닷물이 모두 마르지 않는 한 소금은 앞으로도 무진장, 결코 자원이 고갈되지 않을 것입니다. 새 해의 밝은 희망의 소식으로 여겨, 올해는 소금처럼 매사가 기쁨으로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응답 2개

  1. 김정미말하길

    선생님,,새해가 밝았는데 인사가 늦었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취직을 했습니다.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고 보람과 돈을 캐러 다닙니다. 책볼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아쉽지만 지금의 선택이최선이라 여기며 열심히살아가렵니다. 틈틈이 책도 열심히 볼꺼구요. 글은 계속 잘 보겠습니다.
    다음글을 기다리며 부디 이 세상에, 또는 누군가에게 소금같은 사람이 되렵니다. 안녕히계세요.

  2. 말하길

    일본 원전사고, 바다생태계의 방사능 오염, 소금값 폭등. 소금에 담긴 세계사적 위기군요. 소금에 대한 샘의 기억, 참, 격세지감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김장 담궈봐서 아는데, 소금, 참 중요합니다. 오죽하면 빛과 소금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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