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weekly수유너머 100호, 웹에서 자라나는 무지개

- hanjun

2010년 1월 16일 또 하나의 수유너머가 문을 열었다. 이름 하여 weekly 수유너머. 자신의 삶을 웹에서 공유하고자 하는 바람이 그 시작이었다. 육아와 농사 문학과 여행 등 삶의 요모조모를 기록하고 공유했다.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오가면서 동료들이 늘고 네트워크가 넓어졌다. 그렇게 여러 사람들과 교집합을 이룬지 2년. weekly 아흔아홉 번째 시간. 오늘은 그동안 이야기하지 않았던 weekly 수유너머의 뒷모습을 담았다.

# 탄생

weekly 수유너머는 병권, 정수, 여일, 은유, 기화, 현식. 이 여섯 사람에 의해 탄생됐다. ‘자신의 삶을 공유하는 웹 공동체’라는 취지하에 코너를 만들고 이야기를 채워 나갔다. 비슷한 삶의 모습을 다른 색의 목소리로 담아내니 신선했다. 박정수의 ‘매이데이’, 윤여일의 ‘여행을 사고하다’가 주목을 받았다. 매이데이는 정신분석학자가 쓴 육아일기라는 점에서 화제가 됐는데 어린아이가 보여주는 일정한 행동 패턴을 정신 분석학적으로 분석해 놓은 글이었다. 당시 육아에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음은 물론 필자인 박정수씨도 ‘조금 더 매이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여행을 사고하다’ 또한 일반적 여행기와는 달랐다, 기존의 여행기가 시간을 기준으로 여행경로를 소개하는데 그쳤다면 ‘여행을 사고하다’는 그 지역과 윤여일씨의 문제의식이 공유되는 지점을 축으로 삼아 내용을 전개했다. 그래서일까? 이 글은 1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읽히고 책으로도 출판될 예정이다.

# 편집의 난

전문 주간지도 아닌 weekly 수유너머가 100회라는 긴 시간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법 하지만 편집진들은“별 어려움이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weekly 수유너머의 엔지니어였던 김현식씨는 그간의 숨은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weekly 수유너머의 웹은 산후조리원 앞 PC방, 고대 병원 앞 PC방에서 만들어 졌다는 것. 산후조리원과 고대병원이라? 뭔가 쌩뚱맞다. 사실 웹이 구축되던 시기에 득남을 한 덕(?)분에 PC방과 산후조리원을 오가며 작업을 했고 그러던 중 아이의 폐렴증세로 고대병원 앞 PC방에서 마무리 작업을 마쳤다고 한다. 힘든 상황에서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던 숨은 열정이 오늘날 100호를 있게 한 원동력 아닐까?

# 이념의 르포르타주

20호부터 1년여 간을 편집진으로 참여했던 노규호씨는 ‘20대 무한독전’이라는 코너를 통해 활동이 글로 공유되는 즐거움을 배웠다고 말한다. ‘20대 무한독전’은 사랑, 놀이, 주거에 대한 생각을 20대의 목소리로 다루는 코너였다. 매주 많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저마다의 삶의 방식을 글로 공유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친구들이 모였다. 사회의 이야기 보다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는 놀이터가 된 것이다.

편집진이 생각하는 weekly 수유너머는 어떤 공간일까? 개별로 진행된 인터뷰였음에도 의견은 비슷했다. “weekly 수유너머는 내 밥을 짓는 공간이다”(고병권), “시간이 지나도 담론이 형성되는 현장성의 공간이다”(윤여일), “사회적 이슈보다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는 공간이다”(노규호), “현장과 이념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다”(박정수)

weekly 수유너머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공간이라기보다 자신의 활동을 통해 감각과 사유를 확장시키는 공간이다. 이념적 사고에만 국한하지 않고 현장의 목소리를 함께 담아낸다는 점에서 이념의 르포르타주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100호라는 긴 시간동안 지속될 수 있지 않았을까? 편집진들은 weekly 수유너머의 힘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마 기존의 주간지처럼 사건만을 소개하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대변했다면 절대 100호까지 올 수 없었을 거에요 우리의 이야기와 문제의식으로 사건을 드러냈다는 점에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윤여일) “weekly 수유너머가 얼마나 알려지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가 우리 메시지를 듣고 변화하길 바라진 않죠. 참여한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얼마나 변화 하는가, 공부했던 주제들이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는가가 중요한거죠.”(고병권)

# 100호와 그 이후

weekly 수유너머 100호는 안팎의 많은 사람들의 결실이다. 내부적으로는 필진들의 역할이 컸다. 씨네꼼, AA의 일드보기, 여강만필, 전선인터뷰, 커버스토리, 청년 노동 잔혹사, 해외 및 국내 칼럼 등. 6명의 편집진 옆에는 항상 든든한 필진들이 함께했다. 화요일이면 어김없이 울려대던 원고 독촉전화가 탐탁치 안았을 텐데도 2년여의 시간동안 꾸준히 글을 써 주신 것을 보면 weekly 수유너머에 녹아있는 사람들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내부의 필진들 못지않게 외부 독자들 또한 weekly 수유너머 100호의 숨은 공신이다. 아무리 좋은 글이 많아도 읽는 사람이 없다면 의미가 퇴색되기 마련이다. 이에 박정수씨는 “내, 외부의 완벽한 조합이 100호라는 기적을 만들었다”라고 이야기한다. 서로를 끈끈하게 이어주며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힘. 이러한 힘은 한 두번의 단발적 호흡이 아닌 여러 사람들의 결과 겹이 만들어낸 하나의 숨으로써 가능하지 않을까? weekly 수유너머 100호를 기점으로 편집진과 몇몇 코너가 개편될 예정이다. 새로운 삶의 방식과 참신한 담론으로 현장과 이념의 교집합을 만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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